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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갈기 좋은날 Sep 24. 2021

'문화콘텐츠 전수자', 21C 엄마를 말하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문화콘텐츠라는 용어가 등장한지 어느새 30년이다. 1990년대 신조어로 등장했던 문화콘텐츠라는 말이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비록 새로운 것에서 오는 호기심은 사그라졌다고 해도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문화는 이야기하기 흥미로운 소재고 그 이야기들을 담아 전달하는 콘텐츠들은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다. 

    21C는 소통이 중요한 시대다. 사람 vs 사람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대화하려한다. 말이 끊기면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고 하지 않던가. 말하지 않아도 아는 단계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벽창호라고 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나 나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행동하고 피해를 주는 인간과계를 만나면 정신적인 평화와 안녕을 위해 흔히 ‘손절’이라는 것을 했다고 한다. 이런 관계만 아니라면 인간은 끊임없이 소통하려 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 소통이 면(面)대면을 넘어 인터넷, SNS와 같이 비대면으로 확대되고 코로나 시대를 만나면서 비대면 소통이 더욱 활성화 되었다. 회사 업무 상 회의도 온라인 줌(Zoom)이나 구글Meet 등을 활용한다. 인간의 소통이 매체를 통해서 가장 활발한 시대가 도래했다. 

   미디어 학자 마샬 맥루언이 1967년 그의 책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다’ 라는 말을 했는데, 그에 주장에 따르면 같은 내용이라도 글로 표현하는지 영상으로 표현하는지 등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즉 사람으로 따지면 같은 말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인데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같은 내용도 어떻게 표현하는지 매체, 즉 전달하는 매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기기의 발달로 지구촌이 하나가 된 지금 어디서나 수용자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창구가 활발해진 이후에는 매체와 수용자의 관계가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먹방 유투버가 자신이 음식을 먹는 것을 촬영해 영상콘텐츠를 만들었다. 이것을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사용하고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 소비자들, 즉 구독자들에게 공유한다. 유튜브에 영상포맷에 맞춘 화면 비율과 알맞은 플레이 시간, 촬영 각도를 고심해 음식을 담는 미장센, 먹는 모습, 효과적인 음식 먹는 소리와 나레이션, 자막까지 고심해야 하는 것은 매체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다. 같은 라면을 먹어도 어떤 유튜버가 더 재미있고 먹고 싶어지고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지 다르다. 그리고 이 영상을 구독한 구독자들은 기본적으로 댓글이라는 소통창구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 좀 더 적극적이고 싶다면 구독자의 오픈된 정보를 찾아 이메일이나 핸드폰 번호까지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대면 소통으로 시작되었어도 면대면 접촉까지 일어날 수 있다.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어떤 내용을 어떤 매체를 활용해 전달하고 소통할 것인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의 역할이 소통의 창구로까지 확대되었는데 21C 문화콘텐츠 전달의 역할을 하는 전수자로서 엄마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인간의 역사로 이야기의 주제를 넓혀야 한다. 

  자연은 시간의 풍파를 겪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남겨지거나 그 형태가 변하며 자연환경을 만든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시간을 기록한 결과물들의 집합체다. 기록이 전달되면서 역사가 된다. 동굴에 벽화로 그리거나 제의와 같이 무형의 것은 말이나 춤 등 신체언어로  전수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기록을 전달하는 것은 승자였고 역사는 전달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공룡도 그 생명체는 사라졌지만 뼈라는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우리가 공룡의 존재를 알고는 있지 않은가. 혹시라도 당시에 살았던 다른 생명체들 중 그냥 사라져버려 화석이라는 기록을 남기지 못한 존재는 자연사에 기록되지 못한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기록된다고 했다. 일본이 식민지 시절 마지막에 하려한 것이 민족말살정책으로 우리의 말과 글, 문화를 모두 없애버리려 했다는 것은 이미 배운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일본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고 여전히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면? 우리는 한글이라는 독자적 문자도 사용하지 못하고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고, 한복을 입지도 못할 것이며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그 어떤 것도 보편적으로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선가 숨죽이고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끔찍한 상상이다. 우리가 지켜낸 우리 것을 소중히 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기록의 전달, 전수라는 것은 중요하다. 누구에 의해서 기록되고 전수되었느냐에 따라 전달받고 전수받은 이에게 해석하는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동북공정이라고 해서 최근 김치와 한복을 중국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현 시태를 보면, 여간 불안하지 않은 게 아니다. 나는 김치가 한국의 것이고, 우리 집 밥상에서 항상 먹고 자라온 음식문화인데 그것이 한국 것이 아니라고 한다. 중국문화에서 기원한 것이고 한국이 중국의 문화를 자신의 것인 양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잘 대처해야 한다. 독도를 자신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일본에 의해서 전 세계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라고 명시되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과서마저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기록되어 전달된다. 우리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목 놓아 주장하지만 아직까지는 일본이 우리보다 선진국이고 세계에 행사하는 권력이 우리보다 높다. 독도는 생태학적으로도 의미가 크고 영토의 영역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대한민국 영토가 맞지만 일단 자기들 것이라고 우겨보는 것이다. 논쟁이 되게끔 말이다. 

    중국이 김치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우기기 시작한 것도 논쟁의 씨앗을 던진 것이다. 우리문화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 과거엔 힘을 가진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침략해 문화를 찬탈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심어왔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문화 자체가 가진 힘이 권력인 시대로 그 어떤 때보다 문화가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BTS가 일으킨 영향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 21C 문화콘텐츠 전수자로서 엄마는 왜 중요한가. 전수한다는 것은 전달의 의미를 넘어서 역사와 문화와 예술, 기술, 정보 등을 이어가는 세대 간의 소통이다. “잘되는 칼국수 집 비법이 뭘까. 전수받을 방법?” 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물론 오늘날엔 이 비법 전수도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MBC TV 프로그램 마리텔(My Little television)에 등장했던 것을 예로 들면 그는 그 자리에서 요리를 하며 맛있는 요리를 하는 법을 방송한다. 그가 한 요리비법은 TV로 송출되어 가정에 전달되고 이를 본 시청자들은 직접 요리를 해보고 그 과정을 기록해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하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 찍어올리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전달한다. 그의 요리 비법이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이미지로 기록된 것들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르지만 이건 기술 개발자들의 몫이니 남겨두겠다. 

    백종원의 비법은 TV를 통해 전수된다. 그가 요리에 일가견 있는 요리 전문가이니 누구나 그의 요리비법을 알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에 대중을 상대로 하는 TV라는 매체는 소비되기 위해 누구나 원하는 음식, 요리, 그 분야의 권위자를 통해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매체가 다양하고 확대된 시대에 전수자로서 왜 엄마인가. 좀 더 근원적으로 가보자. 지금은 세대를 넘어서 동시대에 문화가 공유되고 전달되며 실시간으로 전수되는 일이 가능한 시대지만 과거에는 이 전수가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일단 가족의 수가 많았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밥을 먹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든다. 그리고 엄마가 알려주는 생활의 지혜를 전달받는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아이들과 뛰어놀고 동네 아줌마들과 이웃 할머니들은 공동육아를 해주는 정신적ㆍ실질적 동반자였다. 아이는 가정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 밖으로 나갔고, 가정에서 벗어나 외부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가정과 이웃, 또래집단이 1차적 사회다. 이랬던 가정의 형태가 핵가족화 되고 엄마들 즉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아이들은 점차 외부기관으로 밀려나고 있다. 더구나 한국사회가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사회라고 한다. 초 저출산 국가라는 오명을 얻었고 국가는 외국인을 수입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육아 장려라고 출산 가능한 여성의 수를 수치화해서 보고했다가 쓴소리를 듣는다. 일각에선 종국에 한국인이 소수민족이 될 것이라고 극단주의적 발언을 하기도 한다. 청년들에게 인류의 오랜 문화이자 풍습인 결혼이 비혼주의에 물들어가고 부동산 문제로 집이라는 터전 마련이 꿈이 되어버리며 아이를 가지며 가정을 꾸려 종족보존을 해야 하는 생물학적 전수가 비일상이 되어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문화를 전달할 후손으로 아이들은 미래다. 즉 미래가 위기인 것이다. 물론 일각에선 인구수가 좀 줄어야 된다는 주장도 하지만 그들에게 과장되게 의견을 제시하자면 나라의 존속이 달린 일일지도 모른다고 하겠다. 코로나로 사람간의 소통이 비대면 매체를 통하게 되었고 외부에선 마스크라는 소통의 장애물이 생겼다. 마스크로 인해 아이들의 언어 발달이 늦어진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사실상 그 어떤 때보다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이에게 중요한 시점이다. 적어도 인간 vs 인간의 면대면 소통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이후 기계문명의 폭발적인 발달로 인간성의 상실을 두려워 한 사람들은 전인적교육, 인성 함양, 기계에 대적할 융합형 인재를 길러야 한다며 총체적 인간에 대한 갈증이 심화되었다. 이처럼 인간성에 대한 갈증이 불러온 사회전반의 이슈들을 보면 인성의 중요성을 갈망하고 있음을 확인 가능하다. 기사에 실린 미담을 보고 ‘돈쭐’내러 가야 한다거나, ‘맘충’이라고 해서 자신의 아이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엄마들의 행태를 욕한다. 합리적이지만 감성적인 인간, 인간성 상실의 시대 그 속에서 21C 엄마는 세상과 매체로 소통해야 되는 아이들에게 가장 밀접한 인간 매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엄마는 어떤 것을 아이에게 전수해야 할 것인가. 수많은 이데올로기 안에서 변하지 않고 기록되고 전수되어 온 것들. 즉 세대를 넘어 변하지 않는 진리의 내용들, 고전에 담긴 문화를 전달해야 할 것이다. 문화콘텐츠는 앞서 말했지만 1990년대 처음 등장한 신조어다. 이는 인문학의 위기와 IT 업계의 성장세에 따라 상호간 서로 학문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문화콘텐츠라는 개념을 활용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콘텐츠는 인문학, 공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을 융합 할 수 있는 개념의 학문이다. 

    문화콘텐츠는 대중과 성공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어떤 문화를 알려줘야 할 것인가. 변하지 않는 이야기 동화, 속담, 사자성어 등이 다루는 변하지 않는 고전부터 우리가 대중이 되어 경험했던 것들,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시각도 갖출 수 있게 하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 것을 선별하는 것이 21C 엄마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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