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제상 Jan 31. 2023

강남호스트바에서

밤의 선수들


  요즘 다나카상이 뜨고 있다. 재밌게 보고 있고 호스트를 적절하게 희화화시키는 아이디어가 대단하다. 허나, 내가 일한 호스트바는 좀 다르지.


  극단에서 선수로 뛰던 선배가 웨이터 자리가 펑크 났다고 나를 긴급히 불렀다. 한 달만, 일주일만이라도 제발 일해 달라고.


  내 와꾸(생김새)로 선수는 불가하다. 아닌가? 거기 에이스 형님이 싸이 닮긴 했다. 싸이 형님은 목소리와 재치가 미치긴 했다.


  이 형님의 접대는 좀 지저분하니 궁금하면 만나서 말해주겠다.


  솔직히 밤일은 하기 싫었다. 진상이 어마어마할 것이고 불법적이라 생각하기에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나였기에, 돈도 많이 준다길래 일단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인간의 추악함과 돈이면 모든 게 가능한 그 장소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인간 혐오만 키워졌다.


  열흘 남짓한 시간에 ‘사’ 자가 들어가는 직업의 누님들을 다 봤다.


  욕망에 충실한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성과 담배 연기가 자욱한 12평 룸에 들어갈 때마다 어린 나에게 편견이 생기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웨이터가 하는 일은 청소와 서빙, 심부름이다. 당시에 오만 원권이 풀리기 시작했다.


  “누님 담배 심부름 시키려면 오만 원부터입니다. 저도 까까 사 먹어야죠! “


  빠르게 그곳 생리를 파악한 나는, 능글맞게 팁을 요구했다. 고작 3분 거리의 편의점에서 담배 사 오는 일로 오만 원을 팍팍 쓰시는 누님들이니까.


  대한민국 오만 원권은 여기 다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때 평생 만져 볼 오만 원권을 다 만져본 것 같다.


  담배 심부름하고 나의 탄탄한 엉덩이 터치 한 번이면 오만 원이 생긴다. ‘이거 꿀인데?’


  다행히 웨이터에게 진상을 부리는 누님은 없었다.

 

  가끔 나는 얼마냐고 물어보는 특이한 누님들도 있긴 했지만, 선수 형님들이


  “아~ 누님 왜 그러실까? 얘는 대학도 다니고 꿈이 큰 아이예요. 통통한 영계 말고 저랑 놀아요.” 라며 잘 막아주었다. 진짜 삐끗했으면 지금 어떤 삶을 살았을지 눈앞이 먹먹하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환경이 이러니 돈에 눈이 멀기 시작했다.


  일하는 사람이 귀하고 도망자들이 많은 밤일은 주급으로 아르바이트비를 받았다. 팁과 주급으로 단 번에 백만 원에 가까운 돈을 버니까 사람이 눈이 돌아간다.


  그러나 선수 형님들의 말로를 듣기 시작하자 점차 정신이 돌아왔다.


  지명받지 못하는 선수들은 호스트바와 게이바를 같이 운영하는 곳으로 빠진다. 내가 있던 곳이 1등급이면 남녀 모두를 받는 곳은 3등급이다.


  쉽게 돈을 버니, 사치에 눈이 멀어 사채까지 끌어 쓰다가 패가 망신한 사례도 들었다.


  누님 공사 치려다 남편에게 걸려 불구가 된 사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결정적으로 선수 형님들이 나를 데리고 온 극단 선배의 싸대기를 때리며


  “우리 인생만 망치면 되지 누구 인생까지 말아먹으려고?”


  나를 두둔하며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나의 선수끼가 보였는지, 당신들을 혐오하는 나의 눈빛을 보았는지, 돈에 타락하는 나를 보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한 달 예정되었던 일은 빠른 대타가 구해져 열흘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높아 보이던 사람들의 타락한 단면을 보고 인간 혐오가 스멀스멀 키워졌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정상적인 조언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아직도 가끔 강남에 가면 그 호스트바를 멀리서 바라본다.


  내 선택이 어떤 나를 만들어가는지 생각하면서, 그 열흘 밤을 떠올린다.

작가의 이전글 필경사 바틀비 서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