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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제상 Jan 16. 2023

필경사 바틀비 서평

자본주의의 따뜻한 보살핌

 유튜브 채널 중 승우아빠의 만들어 드세요 시리즈를 알고 있는가? 이 만들어 드세요는 요리사인 승우아빠가 본인이 직접 여러 제품을 만들어 먹는 영상이다.


 승우아빠는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재료를 직접 만들면서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는 건 정말 힘든 일이란 걸 보여준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부터 매일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까지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초기 자본주의자 아담스미스는 말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또는 빵집 주인의 자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 즉 돈벌이에 관심이 있기 때문”


  그렇다. 우리는 지금 시대에 가장 성공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에도 어마어마한 자본이 있다. 가게의 자본을 빼고 카페에 앉아 있는 유동인구의 자본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지금 카페에 대략 10명의 사람이 있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나처럼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기도 하고 있다. 10명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비싼 스마트폰을! 개당 50만 원이라고 쳐도 지금 이 카페의 동산은 500만 원이다. 그리고 노트북은? 개당 100만 원이 넘는 이 물건은 웬만한 가정에 하나 넘게 가지고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축복이다.


  쉽게 생각해 보자 내 손에 있는 스마트폰을 직접 만들면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까? 100만 원으로도 못 만든다. 아니 손도 못 대는 게 맞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반도체를 수제작 할 수 없다. 더 쉽게 생각해 보자. 단돈 1000원짜리 사과 주스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절대 1000원으로 사과 주스를 만들 수 없다. 즉, 자본주의는 사람의 분업이고 교류하여 싼 가격에 서로의 이익을 얻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다닐 때 우리 동아리는 운동권 동아리였다. 전국 문예패 연합 중 극패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였다. 시위 현장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마당극으로 풀어내는 동아리였다. 거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왜 자본주의는 우리가 타도해야 할 적인가요?"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언제나 나의 갈증을 해소해 주지 못했다. 다 뜬구름 잡는 소리거든. 지금 본인이 입고 있는 옷가지와 신발은 가내수공업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시위 현장의 여러 물건들도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래서 난 그렇게 자본주의가 싫으면 옷도 만들어 입으라고 이야기하면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게 뭐야?


  간혹 말꼬리를 잡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내 논리를 논파하라고 이야기했고 내 논리를 이해 못 하면 지능의 문제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지능의 문제라고 말하면 모두 입을 꾹 닫고 내 논리에 순응해 주었다. 이게 뭐야. 멍청한 사람은 되기 싫은가 봐?


  마치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나온 미도리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체계를 타파하자던 운동권 사람들이 미도리가 만든 주먹밥을 보고 여자가 주먹밥도 맛없게 만들면 어떡하냐라고 말하는 선배들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격하게 썼지만 난 그들을 혐오하진 않다. 나름 대학에서 회장까지 할 정도로 열성적으로 운동해 왔으니까. 다만 잘 못 된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슴 아파서, 아니 잘 못 된 지식으로 살아가는 게 슬플 뿐이다.


  책으로 가보자. 바틀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죽었다. 이 말은 자본주의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슬픈 뜻일까?  나는 그것보다 다른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틀비를 고용한 변호사를 보자. 그는 아무것도 안 하는 바틀비에게 최대한 의견을 들어주고. 복지까지 신경 써주었다. 심지어 감옥에서 밥 좀 챙겨주라고 간수에게 웃돈까지 지불한다.


  이건 아무리 봐도 따뜻한 기업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시각 장애인 안내견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작 장애인 안내견 교육을 정부나 지자체에서 하는 걸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높은 비용이 들어가는 안내견 교육은 공공기업이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안내견 육성 및 관리는 삼성에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대기업인 삼성에서 시각 장애인을 위한 복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이걸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는다. 자연적으로 사회 후생을 위해 하는 복지 활동이니 칭송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19세기 자본주의는 완성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실패를 하였다. 왜냐하면 바틀비 같은 노동자나 사회에 대한 관심보다 돈벌이에만 관심을 쏟았으니까. 그리고 대공황으로 초기 자본주의는 실패했다.


  그리고 이어서 나타난 큰 정부를 표방한 자본주의도 실패했다. 정치인들의 부패가 원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수정 자본주의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적당한 기업의 이윤과 적당한 정부의 규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기업을 죽일 생각만 하고 있다. 노동과 정치가 결합된 이번 정부는 기업을 철저하기 짓밟고 있다. 그러니 월급을 주는 기업이 힘을 못 쓰고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 상태이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실패한 큰 정부의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쯤 기업 정부 노동의 균형이 맞는 세상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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