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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브로 Jan 10. 2023

오빠란 말은.

배고픈 남매

  꽤 많은 남자들이 '오빠'란 소리를 좋아한다. 대학에 다닐 때 동기나 선배들이 후배에게 '오빠' 소리를 들으면 아주 좋아하며 얼굴에 웃음꽃이 핀 걸 여러 번 보았다. '오빠'란 단어는 여자가 자신 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 부르는 호칭이다. 'XX 오빠', 아니면 그냥 '오빠'라는 호칭은 여자 형제가 없는 남자들에게는 자주 듣지 못한 단어이고, 그로 인해 그 남자들은 이 호칭을 듣고 참 좋아하나 보다. 특히 연애할 때 부르는 호칭으로 '오빠'라는 단어를 애칭으로 듣는 친구들도 있고, 여자들도 남자들이 좋아하니 '오빠'란 호칭을 자주 이용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빠'란 호칭은 연인이나 이성이 아니라 가족의 느낌이 더 크다. 애인이 나에게 '오빠'란 호칭을 쓰면 그리 좋게 반응하지 않고 호칭을 바꾸라고 종종 이야기했다. '오빠'란 단어는 나에게 한 명만 쓸 수 있다.


  나에겐 여동생이 있다. 지금 J동 치과에서 치위생사를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여느 남매와 다른 점은 많이 친근하달까? 친구들과 있거나 모임 자리에서 동생의 전화를 받으면 대부분 여자친구인 줄 안다. 많이 애교 섞인 목소리와 친근한 대화는 남매 같아 보이지 않아 보이나? 다른 친구의 여동생을 보면 내 여동생과 다르게 호칭이 '야!'라서 그런가? 아무튼 우리 남매는 많이 친하다.


  초등학교 3학년 고작 내 나이 10살에 부모님의 별거로 동생과 떨어졌다. 나는 아빠 따라, 동생은 엄마 따라갔다. 별거 기간은 6개월로 그리 길지 않았지만, 어린 나이의 나에게 그 기간은 무척 긴 시간이었다. 10살의 어린 나는 6개월 만에 만나는 엄마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고 그때부터 엄마에게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엄마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 있겠다. 어른에게 6개월은 큰 시간이 아니지만, 어린 나에게는 인생에 1/20의 시간이었으니까.


  어린 시절 짧은 동생과의 단절은 동생에 대한 가족애가 더 커졌다. 가족끼리 모이게 된 순간부터 부모님은 맞벌이를 시작하셨기에 어린 동생을 챙기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끼니때가 되면 밥을 먹이고 그릇을 설거지를 하고 같이 놀아주기도 하면서 동생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물론 나도 사춘기가 오면서 동생 저금통을 털고 괴롭히기도 했다. 그런 삐뚤어진 상태에서도 친척들에게 받은 용돈은 꼭 절반으로 나눠 동생에게 주었고 배고프다면 라면 끓여주고 밤에 방에 불도 꺼주는 그런 오빠였다.


  지금도 동생이 퇴근하면 내 방에 와서 인사를 하고 간다. 내가 누워있다가 귀찮으면 동생을 불러 불을 끄라고 하거나, 물 떠 오라고 시킨다. 그때마다 불평 없이 잘해준다. 그리고 동생도 나에게 시킨다. '오빠 배고파!', '오빠 스테이크!', '오빠 삼겹살!' 이러면 난 열심히 요리를 한다. 내가 잘하는 게 요리라 동생은 나에게 요리를 부탁하고 동생의 부탁에 특별하게 피곤하지 않으면 다 들어주는 편이다.


  요즘 가족끼리 원수도 많고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인터넷의 이상한 밈으로 남매 관계가 무슨 남자 형제나 괴롭혀야 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 세상이 이러니 내 동생과 친한 나를 무슨 돌연변이 보듯이 보는 친구들도 있다. 특히 여자 형제가 없는 것들이! 모든 사람을 이해시킬 필요는 없겠지. 동생이 좋아하는 스테이크 파스타나 만들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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