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스크린, 마지막 필름 속 자유와 사랑

<시네마 천국> 35주년 기념 재개봉

by 무딘날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시네마 천국》은 한 편의 아름다운 성장 영화이자 영화에 대한 애틋한 연서이다. 그러나 향수 어린 시선 아래에는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격동적인 변화를 미시적으로 포착한 날카로운 통찰이 흐른다. 권위주의적 사회에서 공론장을 토대로 한 민주적 사회로 변천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보아도 꽤나 재미있는 지점들이 많았다.


극장에서 광장으로, 닫힌 세계의 비파괴적 확장


영화 초반의 '시네마 천국' 극장은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축소판이다. 발코니석과 일반석으로 나뉜 좌석은 넘을 수 없는 계급의 경계를, 하층민 남성이 상류층 여성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소동이 벌어지는 풍경은 굳건한 사회적 위계를 상징한다. 이 위계의 정점에는 마을 신부가 있다. 그는 매주 제단에서나 쓸 법한 종을 들고 나타나 키스 장면마다 가차 없이 종을 울려 필름을 잘라내게 한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검열을 넘어, 조지 오웰의 '진리부'처럼 문화적 표현을 통제하고 획일적인 가치를 강요하는 권력의 메커니즘 그 자체다.


이 견고하게 닫힌 세계에 균열을 내는 것은 영사기사 알프레도다. 만원사례로 극장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그가 영사기를 창밖으로 돌려 광장 벽면에 영화를 투사하는 순간, 영화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장면 중 하나가 탄생한다. 이는 단순히 자리를 넓히는 기술적 해결책이 아니다. 소수에게만 허락되던 문화적 경험을 모든 이에게 개방하는 근본적인 민주적 전환의 선언이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public sphere)', 즉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모여 의견을 나누는 이상적 공간이 시골 마을의 광장에서 물리적으로 구현되는 순간이다. 극장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 '상상의 공동체'는 광장의 불특정 다수에게로 확장되며, 더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문화 공동체의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눈먼 자의 지혜, 세대를 넘어 이어지다


영화의 결정적 전환점은 화재로 인한 알프레도의 실명이다. 질산염 필름의 폭발과 함께 시력을 잃는 이 비극적 사건은, 그러나 물리적 감각의 상실이 정신적 통찰의 개화로 이어지는 상징적 구조를 지닌다. "이제 눈이 머니 더 잘 보인다. 전에는 못 보던 것들이 보여"라는 그의 독백은, 마치 고대 그리스의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처럼 육체의 눈을 잃고서야 비로소 세상의 본질과 지혜를 꿰뚫어 보게 된 현자의 경지를 보여준다.


알프레도의 실명은 토토와의 관계를 질적으로 변화시킨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이제 상징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깊어진다. 토토는 알프레도의 눈이 되어 세상을 읽어주고,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영화 대사를 빌려 인생의 지혜를 전수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 한 세대의 정신적, 문화적 유산이 다음 세대로 계승되는 숭고한 의식이다.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종용하며 그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은, 구세대가 신세대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창조적 전환의 모델을 제시한다. 전통은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가능성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줄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광장은 내 것이야!", 배제된 자의 외침


문화적 민주화의 상징인 광장에는 그러나 또 다른 목소리가 존재한다. "광장은 내 것이야!"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노숙자는 단순한 감초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새롭게 열린 민주적 공간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구조적 배제를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이다. 모두가 광장에 모여 영화를 즐길 때, 그는 그 환희의 공동체로부터 미묘하게 배제되어 있다.


그의 외침은 공공 공간의 소유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식적 소유권은 없지만, 그 공간에 가장 깊은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의 원시적인 권리 주장이다. 이는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에 대한 권리' 개념처럼, 배제된 자가 자신의 존재를 통해 공간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저항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알프레도가 연 광장이 모두를 위한 민주적 공간이라는 이상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조차 소외되는 존재가 있음을 상기시키며, 민주주의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배제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시네마 천국》이 그리는 민주적 전환은 결코 완결된 형태는 아니다. 30년 후, 성공한 감독이 되어 돌아온 토토가 마주한 고향의 광장은 더 이상 축제의 공간이 아닌, 자동차로 가득 찬 삭막한 주차장이다. 이는 공공의 공간이 사유화되고 공동체적 가치가 해체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위태로운 현실을 암시한다. 그 속에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는 이들이 다양한 형태로 방치되어있다.


하지만 영화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알프레도의 마지막 선물인 '잘려나갔던 순간에 대한 필름'을 보며 토토가 흘리는 눈물은, 상실에 대한 슬픔을 넘어 기억을 통해 현재를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갈 힘을 얻는 감동의 순간이다.


마지막 필름이 담아낸 자유에 대한 갈망,

잘려나간 사랑의 순간들에 대한 영원한 기록.


영화의 불이 꺼진 극장 안, 중년이 된 토토(살바토레)의 얼굴 위로 낯설고도 익숙한 흑백 영상이 흐른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것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가위질당해야 했던, 마을 사람 누구도 보지 못했던 키스 장면들이다. 이는 단순한 영상 모음이 아니다. 영사기사 알프레도가 평생에 걸쳐 준비한, 토토를 위한 마지막 선물이자 사랑과 시간에 대한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몽타주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감동적인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감동의 깊이는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이 단순한 '삭제된 장면 모음'이 아니라, '시간을 보존하고 사랑을 완성하는 최후의 걸작'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은 192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영화사의 흐름을 따라 세심하게 배열된 47개의 키스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무작위적인 나열이 아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적 아카이브'다. 찰리 채플린부터 그레타 가르보, 클라크 게이블에 이르기까지, 스크린 속 연인들의 열정적인 입맞춤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사랑의 역사'가 된다.


여기에는 심오한 역설이 존재한다. 본래 이 장면들은 가톨릭 교회의 엄격한 검열로 인해 잘려나가 영사실 구석에 던져졌던 필름 조각들이었다. 억압과 통제의 상징이었던 이 조각들을 알프레도는 버리지 않고 몰래 모아두었다. 그는 권력에 의해 금지된 사랑의 순간들을 이어 붙여,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던 가장 완전한 사랑의 선집(選集)을 창조해낸 것이다. 억압되었던 것들이 그의 죽음과 함께 해방되어 토토에게 전달되는 순간, 알프레도는 검열의 하수인이 아닌, 사랑을 보존하는 위대한 수호자로 거듭난다.


알프레도는 청년 토토에게 "여길 떠나, 돌아오지 마라. 편지도 쓰지 마라. 향수에 젖지 마라. 우리를 모두 잊어라"라며 고향을 등질 것을 종용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단호한 이별 통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제자가 더 큰 세상에서 자신의 운명을 성취하길 바라는 스승의 희생적인 사랑이 담겨있다.


디렉터스 컷에서는 알프레도가 의도적으로 토토와 그의 첫사랑 엘레나를 갈라놓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는 토토가 사랑 때문에 고향에 주저앉아 자신의 재능을 썩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진정한 사랑은 때로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성장을 위해 과감히 떠나보내는 것임을 알프레도는 자신의 방식으로 실천한 것이다.


이러한 희생적 사랑의 철학은 마지막 키스 장면 몽타주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 필름은 여러 겹의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는 잃어버린 순간과 억눌린 감정들을 보존한 시간의 캡슐이다. 둘째, 토토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엘레나와의 사랑을 스크린 속 이상적인 사랑으로 완성시켜주는 상징적 선물이다. 마지막으로, 이는 평생을 영화와 함께 살아온 알프레도가 자신의 삶과 영화에 대한 애정을 바쳐 만든 최후의 걸작이자 유산이다.


3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알프레도의 선물을 마주한 토토는 눈물을 흘린다. 이 눈물은 단순히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나 첫사랑에 대한 상실감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3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자신을 향한 알프레도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위대했는지를 비로소 온전히 깨닫는 데서 오는 감동과 경외의 눈물이다.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배우들의 키스 장면이 하나의 서사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토토는 깨닫는다. 비록 자신과 알프레도가 함께 긴 세월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나눈 사랑의 모든 순간들은 이 필름 안에 영원히 새겨져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알프레도는 영화 속 키스들을 통해 토토의 삶에서 비어있던 사랑의 순간들을 채워주고, 예술을 통해 그의 삶을 완성시켜 주었다.


결론적으로 알프레도가 남긴 키스 몽타주는 진정한 사랑이란 소유가 아니라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것임을 증명한다. 과거의 상실은 이 필름을 통해 현재의 충만함으로 전환되며, 토토는 알프레도의 사랑이 시간을 넘어 영원히 자신과 함께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토토의 눈물은 슬픔의 끝이 아닌, 사랑이 시간을 이긴다는 숭고한 진실을 마주한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동의 표현이다. 이 한 편의 필름은 《시네마 천국》이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 메시지이며,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가장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영원한 증거로 남았다.


역사의 흐름과 민주주의적 전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도 이 메시지는 유효하다. 억압되었던 사랑의 순간들이 스크린 위에서 영원한 생명력을 얻는 것처럼, 진정한 민주주의 역시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그랬듯 각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이상임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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