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카월드 빵값 논쟁 관련 댓글에 대한 추가 답변
일본 시장은 야마자키 제빵, 파스코 같은 거대 제조업체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와 자동화 설비를 통해 저렴한 '공장제 빵'을 대량생산하여 전국의 슈퍼마켓과 편의점에 공급합니다. 이 저렴한 공장제빵이 일본 국민들에게는 빵 가격의 기준선 역할을 하죠. 동네 빵집의 빵이 이보다 비싸더라도, 소비자들은 '주식'으로 먹는 빵과 '특별하게' 먹는 빵의 차이를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가격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지배하는 '상향평준화' 시장입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라는 거대 프랜차이즈가 시장을 지배하죠. 이들은 '공장제 빵'이 아닌, '갓 구운 빵'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운 전문점 형태로 전국 상권을 장악했습니다. 여기서부터 가격의 기준선이 일본과 달라집니다. 생지를 받아서 직접 굽는 준베이커리 형식이여서 이 프랜차이즈의 가격은 노동 임금도 필요하고, 높은 임대료, 가맹비, 마케팅비가 포함되어 있어 일본의 공장제 빵보다 높을 수밖에 없습 니다. 이 가격이 '일반적인 빵값'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고, 동네 빵집은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더 높은 품질과 경험을 제공해야 하므로 가격이 상향평준화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습니다. (물론 한일 간의 임대료 차이도 심각하기에 이 부분도 주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또한 그런 배경으로 인해서 경쟁의 목표가 달라지는 것도 큽니다. '트렌디'냐 '일상의 일부'냐로 나뉘는 것이죠. 앞서 원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 베이커리 카페 시장은 경쟁이 엄청 심각한 수준으로 과열되어있습니다. 트렌드를 못 읽으면 바로 폐업 수순인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두 나라의 동네 빵집이 마주한 경쟁의 양상과 소비자의 기대치 또한 극명하게 다릅니다. 일본은 특정한 몇곳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일상의 빵'을 책임지는 생활전문점의 이미지를 가집니다. 동네 빵집이 정말 지역 주민들의 '매일 먹을 빵'을 책임지는 이미지예요. 화려함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식빵, 단팥빵, 롤빵 등을 안정적인 품질로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객은 맛과 품질의 '일관성'을 기대하며, 빵집은 충성도 높은 단골을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일본에서 빵이 주식의 형태를 일정 부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총무성 가계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연간 빵 소비량이 이미 쌀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 그걸 방증하죠.
한국은 다릅니다. '경험'을 팔아야 하는 디저트 전쟁터가 되어버렸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조사에 따르면 빵 소비빈도가 늘고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주 1-2회수준의 간식거리로 남아있습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빵이란 매일의 식단이 아니라 하나의 이벤트에 가깝다는 것이죠. 샌드위치 시장 등 건강식단과 묶여서 잠시 반짝하는 부분도 있으나, 그 또한 대부분에게는 일상이라기보다 내 삶을 잠깐 바꾸는 이벤트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식이 아닌 만큼 일정 부분 프리미엄 경쟁으로 전략을 짤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상태입니다.
한국의 동네 빵집은 화려한 프랜차이즈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트렌드를 계속 좇으며 '특별한 경험'을 팔아야 합니다. SNS에 올릴 만한 화려한 비주얼의 신메뉴를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고, 트렌디한 인테리어는 필수입니다. 소비자들은 '새로움'과 '특별함'을 기대 하며 빵집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높은 고품질 재료비, 개발비, 인테리어비, 마케팅 비용을 유발하며, 이 모든 부담은 빵 가격에 전가됩니다. 비유를 하자면 마치 밥을 주식이 아닌 특별한 먹거리로 삼는 곳에서 ‘트러플 밥’ ‘인삼 밥’ 해가면서 프리미엄 경쟁을 이어가 전체 밥 업계가 가격이 올라간다는 그림을 생각하시면 될 것도 같습니다.
이렇게 전반적인 빵에 대한 인식과 소비성향,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주체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에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이지, 누군가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빵이 비싸서 주식이 되지 못하느냐, 주식이 되지 못하여 비싸진 것이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쟁이 되니 말은 줄였습니다만,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짠 고가 디저트 전략이 끼친 폐해일수도 있고 빵이 계속 비주류로 남아있던 문화적 영향도 있을 수 있고 그 근본 원인은 누구도 확답해서는 안되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또 가격이 싸지면 빵이 주식이 될까? 생각해봐도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는 게 개인적 소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