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god의 <길>을 듣고, 멈춰 선 그곳에서

by 무딘날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우리는 늘 길 위에 있다. 누군가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오르막 비탈길에서 땀을 닦고, 누군가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정상 언저리에서 숨을 고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탈길을 걷는 자나 정상에 선 자나 고민의 본질은 닮아 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는 종종 이 불안한 질문을 지우기 위해 '높이'에 집착한다. 높이는 명확하다. 위 아니면 아래, 상승 아니면 추락이라는 일방향의 척도다. 숫자로 매겨지고 남들과 비교하기 쉬운 그 수직의 세계에서, 우리는 정상에만 오르면 모든 고민이 안개처럼 걷힐 것이라 믿는다. 정상은 고민의 종착지이자, 불안의 해방구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위만 보고 걷는다.


하지만 높이는 유한하다. 아무리 높은 산도 끝이 있고, 그 끝에 서면 더 이상 올라갈 곳은 없다. 게다가 막상 올라서서 둘러보면 내가 오르기로 한 그 봉우리보다 높은 봉우리는 사방에 널려있고, 다들 제각기의 멋을 내고 있다. 그렇기에 그 좁은 꼭대기에서 마주하는 것은 성취감 뒤에 오는 거대한 허무, 그리고 사방으로 뚫려 있는 공허함이다.


반면, 방향은 무한하다. 무한하기에 불안하다. 무서워서 외면해 온 그 수많은 이정표들을 보다 보면 자유롭기에 도리어 숨이 막히는 아이러니를 마주하기도 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는 말로 쉬이 대체되는 것이 삶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위'라는, 누구도 지시하지 않은 단 하나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상에 선 이들은 결국 알게 된다. 이곳은 종착점이 아니라, 단지 높은 곳에 위치한 또 다른 갈림길일 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그제야 발밑이 아닌 지평선을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좁은 정점에서 계속 머무를 수는 없으며, 뒤이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는 것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려온다는 것은 추락이나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산, 혹은 또 다른 들판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god의 노래가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라고 묻는 것은, 단순히 길을 잃어서가 아니라 길의 의미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걷는 길이 가파른 오르막이라면, 숨이 차오르는 고통 속에서도 당신이 바라보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남들보다 조금 높은 곳에 서서 막막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높이의 강박에서 벗어나 진짜 방향을 고민할 자유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 어둡고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당신이 그만큼 깊이, 오래 길을 걸으며 노력해 왔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볕이 안 들 정도로 깊숙하게, 또 정신없이 삶이라는 터널을 견뎌왔다는 것 아닐까. 막막한 길이라도 내가 앞으로 계속 걷는다면, 그것은 출구 없는 지옥이 아니라 무한한 길이 된다. 앞이 없다고 지레 겁먹지 않고 그냥 계속 걷기만 해도, 우리의 고통은 마치 기차 안에서 바라본 창 밖의 풍경처럼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탑이 아니라, 수평으로 넓혀가는 여행이다. 우리는 정상에 깃발을 꽂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방향 속에서 나만의 굴곡을 남기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정상이 아니어도 괜찮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방향은 무한하며, 우리는 언제든 다시 내려와 새로운 길을 낼 수 있으니까.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얼마나 높이 있느냐가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느냐이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다"는 그 바람처럼, 오늘도 우리는 고민한다. 그 고민이야말로 우리가 이 길을 걸으며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쉼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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