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통행세부터 2년 계약직까지... 방송계의 '청춘 땔감' 사용법
"현실은 영화보다 더하다"라는 말은
종종 창작자들에게 게으름에 대한 면죄부가 된다.
최근 화제가 된 유튜브 콘텐츠 중 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비극적인 죽음을 모티브로 삼은 영상이 있었다. 이 영상은 스스로를 '하이퍼 리얼리즘'이라 포장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실재했던 비극을 가장 저열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불행 포르노'일 뿐이다.
썸네일에 피칠갑이 된 여성의 얼굴을 전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선배들이 후배에게 싸구려 학교폭력물에서나 볼법한 쌍욕을 퍼붓는 연출까지. 시청자들의 도파민을 자극하기 위해 창작된 이 '픽션'은 고인이 겪었던 고통의 본질을 왜곡한다. 실제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그런 원색적인 욕설과 폭력이 아니라, 뉴스 리딩에서 배제하고 투명 인간 취급하며 서서히 자존감을 갉아먹은 '은밀하고 구조적인 따돌림'이었다. 유튜버는 이 복잡한 맥락을 거세하고,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자극적인 MSG를 쳐서 조회수를 챙겼다.
더욱 기만적인 것은 타깃 시청층을 노린 '선택적 팩트'의 배치다.
영상 속 방송사 'MDC'는 사건을 끝까지 은폐하고 절대 사과하지 않는 악의 소굴로 그려진다. 이는 MBC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일부 커뮤니티의 입맛을 정확히 겨냥한 정치적 상술이다.
분명 MBC는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 사업장이었다. 공식 결과가 중요하다고 해도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으며, 그 기간 동안 유족들은 고통받아야 했다. 이는 비판받아 마땅한 지점들이다.
하지만 영상의 묘사와 달리, MBC는 노동부의 결론이 나온 직후 자사 메인 뉴스인 '뉴스데스크'의 마지막 순서에 자신들의 과오와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사실을 주요 뉴스로 배치해 보도했다. 사장이 직접 대국민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고, 추모 공간 마련과 유족분들에 대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며 이를 전파로 쏘아 올렸다. 미비한 지점을 지적할 수는 있고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할 순 없겠으나, 영상처럼 끝까지 진실을 덮고 조작하려 했다는 식의 묘사는 명백한 왜곡이다. 혐오 장사를 위해 '그나마 존재했던' 수습 과정조차 지워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죽은 자의 살점을 뜯어먹는 ‘렉카’ 유튜버일까?
그들이 깔아놓은 '가짜 리얼리즘'의 연막을 걷어내면, 그 뒤에는 훨씬 더 거대하고 끔찍한 진짜 포식자가 입을 벌리고 있다. 바로 사람을 태워 화려한 조명을 밝히는 방송계의 '식인 시스템'이다.
당시 타 방송사들은 마치 자신들이 이러한 업계 구조와 무관한 청정 구역인 것처럼 위선적으로 행동했다. MBC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앞다투어 보도하며 정의의 사도라도 된 양 맹비난을 퍼부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이것은 업계의 문제가 아니라 MBC의 문제여야만 했으니까.
그들의 보도국과 아나운서실 풍경은 MBC와 그리 다른가? 전혀 아니다.
그들 역시 아나운서와 캐스터들을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포장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2년이 되면 가차 없이 해고하는 똑같은 착취 구조를 공유하는 공범들이다. 그들이 쏟아낸 비판 기사는 방송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외침이 아니었다. 경쟁사의 약점을 파고들어,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똑같은 만행을 가리기 위한 비겁한 '눈속임'에 불과했다.
‘공정’의 탈을 쓴 약탈적 먹이사슬
이 바닥의 '진짜 수렁'은 특정 방송사의 일탈이 아니라, 방송국과 아카데미, 그리고 불안한 노동자들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뜯는 '약탈적 먹이사슬' 그 자체다.
비극은 입문 단계부터 시작된다. 아나운서나 기상캐스터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공정한 채용'은 이미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여기저기 ‘공채 합격’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지만, 사실상 그렇게 보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방송사들은 공채를 줄이고 있고, 그나마 있는 정규직 자리도 경력 위주로 선발하기에 지역 방송국이나 비정규직 일은 필수 통과의례가 되었다.
아카데미 추천제라는 이름의 '통행세'
문제는 그 과정에서 소위 '아카데미 추천'이라는 명목으로 인력을 수급한다는 점이다.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 단위의 수강료를 내고 대형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을 이수하지 않으면, 이력서를 낼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통행세' 구조다. 심지어 수강생들은 이 추천을 빨리 따내기 위해 고가의 커리큘럼을 여러 학원에서 중복으로 듣기도 한다.
게다가 이런 고가의 커리큘럼을 수강하면서도 ‘업계 선배’랍시고 갑질을 하는 강사가 판을 친다. 배우는 수강생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인스타 저격이나 하고있는 얼빠진 강사, 수강생들이 촌지 대신 사다주는 브랜드 화장품을 받고서야 꼼꼼히 챙겨주는 강사, 자기 시간 소중한 줄 모른다며 수강생에 대해 길길이 날뛰며 수업 못한다고 나대는 강사... 가지가지하는 인간들 투성이인 시장이다. (물론 책임감 넘치고 선배다운 강사들도 있지만! 저런 밑바닥을 모르는 인간들도 많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최저한도라는 것 없이 인간성이 바닥을 치는 인간이 업계 선배 행세하기 좋은 시장이라고 해야 할까...) 커리큘럼의 적혀있는 ‘끝까지 책임지는 서비스’가 끝까지 업계 선배 대접해주며 자기 자존감 채운 후에야 나온다는 게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뷰티 카르텔과 치솟는 '입장료'
착취는 교육비에서 끝나지 않는다. 방송사들은 고화질(4K) 방송 환경을 핑계로 '카메라 테스트' 단계부터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완벽한 스타일링을 요구한다. 이러한 방관 아래 아카데미와 뷰티 샵은 거대한 수익 카르텔을 형성했다. 아카데미는 특정 샵을 '제휴'라며 추천하고, 샵은 "이 정도 세팅을 안 하면 떨어진다"는 공포 마케팅으로 지망생을 압박한다. 어떤 강사는 이 사이에서 브랜드도 없는 옷에 자기가 디자인을 했다며 엄청난 가격을 매기고는 수강생들에게 구매를 유도해 폭리를 취하기도 한다.
회당 10~20만 원을 호가하는 헤어·메이크업 비용은 수십 군데 지원서를 넣어야 하는 지망생들에게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여기에 의상 대여비, 구두와 액세서리 비용은 별도다. 게다가 서류 전형에 필수적인 '연예인 화보급' 프로필 사진과 영상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스튜디오에 또다시 회당 수십만 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짧게는 15분, 길게는 1시간에 마치 스드메라도 하듯 말이다. 방송사가 요구하는 이미지가 까다로워질수록, 이를 맞추기 위한 주변 업계의 단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붕괴된 도제 시스템과 '완제품'의 강요
과거 방송사들이 원석을 뽑아 방송인으로 키워내던 '도제식 시스템'은 붕괴된 지 오래다. 현재 방송사들은 아카데미와 샵에서 막대한 돈을 들여 스스로를 갈고닦은 '완제품'만을 원한다. 사비를 들여 발성부터 스타일링까지 완벽하게 세팅된 인력이 제 발로 찾아오는데, 방송사가 굳이 비용을 들여 인재를 양성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방송사는 이를 '자기 관리'라고 포장하며, "우리는 강요한 적 없다"고 발뺌한다. 하지만 합격자들의 획일화된 모습 앞에서 그 변명은 궁색할 뿐이다. 기업이 부담해야 할 인재 양성 비용은 0원으로 수렴시키고, 그 모든 리스크를 사회초년생의 가정 경제로 떠넘기는 악질적인 경영 형태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5만 원짜리 '일회용 배터리'와 2년의 시한부
가장 큰 모순은 이토록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 입사한 후의 처우다. 지망생들은 정규직 이상의 입사 비용을 치르지만, 막상 손에 쥐는 건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프리랜서 계약서'다.
대부분 지역 케이블 방송의 단발성 출연이나 리포터 등으로, 출연료는 교통비나 나올까 싶은 회당 5만 원 수준이다. 말이 좋아 방송인이지, 실상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 갈아 끼우는 '일회용 배터리' 취급이다. 운 좋게 주요 방송사에 입성해도 기다리는 건 '2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다. 정규직 전환 의무가 생기기 직전 계약을 종료하고 또 다른 '젊은' 지망생으로 그 자리를 채우는 '인력 펌프'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교육비와 꾸밈 비용은 지망생 부모의 등골에서 뽑아내고, 노동력은 헐값에 착취하며, 법적 책임은 종이 한 장으로 회피하는 것. 이것이 방송업계의 진짜 현실이다.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내리갈굼의 경제학'
더욱 기괴한 것은 이 착취의 피해자들이 생존을 위해 다시 가해자가 되는 구조다. 박봉과 실직 공포에 시달리는 현직 프리랜서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들은 생계를 위해 다시 지망생들의 주머니를 턴다.
인스타그램 등에는 "현직 OOO 아나운서 직강", "합격 보장 과외"라는 홍보가 넘쳐난다. 금액도 회당 수십만원의 고액 과외다. 과연 그 합격자라는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으로 합격했는지 정확히 스스로 인지하고 있을까? 그 금액을 받는다면 합격을 보장하는 과외여야 할텐데,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시장이 워낙 축소되고 있다보니 최댜한 한 명에게서 뽑아먹겠다는 심산일 거다. 개중에는 이제 시장이 한계가 보인다 싶었는지 전형적인 성공팔이, 강의팔이로 나아가는 이들도 보인다.
그렇게 선배가 후배의 꿈을 담보로 돈을 벌고, 그 후배는 다시 그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지망생을 가르쳐야 하는 '다단계식 깔때기 구조'. 이것이 아카데미와 방송국이 방조하는 이 업계의 민낯이다.
가짜 분노가 아닌, 야만의 구조를 직시해야 할 때
결국 돈이 없어 '세팅'을 못 하거나 규격화된 미적 기준에 맞지 않는 인재는 원천 배제된다. 저널리즘에 대한 열정과 식견보다, 옷태와 화장발이 1차 관문이 되는 이 구조가 바로 ‘방송의 공공성’을 내세우는 그들의 실체다.
오 씨의 어머니도 딸을 위한 투쟁 끝에서 이 구조적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이 싸움을 하면서 우리 요안나처럼 정말 힘들게 일하면서도 프리랜서 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고통받고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는 젊은이들이 정말 많다는 것과 우리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직장 내 괴롭힘 문제 역시 개인 간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며 “오늘 회사가 약속한 재발방지 대책과 제도 개선 약속은 그 무게가 매우 무겁고 방송사 전체에 미칠 영향이 정말 크다”고 말했다. 이어 “MBC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오늘의 약속을 하나씩 이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저도 하늘에 있는 요안나와 함께 앞으로 MBC의 제도 개선 노력을 계속 지켜보려 한다”고 말했다.
콘텐츠 제작자가 그토록 '사회 고발'을 하고 싶었다면, 여직원들끼리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가짜 캣파이트가 아니라, 바로 이 지점을 비췄어야 했다. 꿈꾸는 자들의 돈을 빨아먹고, 젊음을 헐값에 소비한 뒤 가차 없이 버리는 카르텔 말이다.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것은 자극적인 영상뿐만이 아니다. 정의로운 척 MBC를 비난하지만 뒤로는 똑같은 착취를 일삼는 타 방송사들의 위선, 그리고 지금도 방송국 로비에서 청춘을 저당 잡힌 수많은 '미래의 오요안나'들을 방치하는 침묵이야말로 진짜 사회악이다. 우리는 유튜브 렉카가 던져주는 가짜 분노에 취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공고한 이 야만적인 착취 구조로 시선을 향해야 한다.
추가적으로, 최근 MBC에서는 기상캐스터라는 직군 자체를 기후 전문 용역으로 채용 방식 자체를 변경하고 기존 기상캐스터 4인을 계약 종료하여 퇴출시켰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또 늦장대응이고 진짜 악마는 MBC라며 1의 지성도 느껴지지 않는 비난을 인터넷 커뮤니티와 댓글창에서 이어가고 있더라.
기업이 사람을 내보낼 때 가장 무서운 건 여론이 아니라 '법적 리스크'다. 근로계약서 한 장 안 써본 방구석 여포들이나 사회 경험 전무한 이들이 "당장 안 자르고 뭐하냐"며 떼를 쓰는데, 명확한 수사 결과나 감사의 귀책 사유 입증 없이 여론만 믿고 계약을 해지했다간 회사가 되려 부당해고와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려 수억 원을 물어주는 '호구'가 될 뿐이다.
절차를 무시하고 감정대로 칼을 휘두르는 건 회사를 경영하는 게 아니라 소꿉놀이를 하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으며,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합당한 근거가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는 경영진의 판단을 '꼬리 자르기'나 '악마의 방조'로 매도하는 건 그저 본인들의 무지와 법적 문맹을 드러내는 꼴이다.
진정한 '정의구현'은 시끄러운 인민재판이 아니라,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뒤에 이루어지는 법적 처분에서 완성된다. 고용노동부의 감사와 법적 절차를 통해 가해자들의 비위 사실이 공적으로 박제되어야 회사는 비로소 '계약 위반'이라는 확실한 명분을 쥐고 그들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수 있는 것이지, 설익은 칼질로 빌미를 줬다간 가해자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복귀할 명분만 만들어주게 된다.
시스템이 돌아가는 원리는 무시한 채 사이다패스마냥 당장의 처벌만 외치는 건, 정의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본인들의 도덕적 우월감을 충족하기 위한 1차원적인 감정 배설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