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밥>
생존과 행복을 위한 '식사'와
그 곳에 이르기까지의 불가피한 '폭력'
이 두 요소가 서로 환대하고 반목하며 공존하는
생태계의 순환을 그리다.
생태계의 먹이 사슬 아래, 살기 위해 살생을 범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관점이 상당히 깊이 있고 독특하다. 식사라는 행위를 단순하게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본질적으로 살생이다. 자신의 아주 주관적인 불쾌감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가 채식을 하든 육식을 하든 다를 바는 없다. 때때로 어떤 이들은 통각의 유무나 지적 활동의 수준, 혹은 자신이 느끼는 친밀감의 정도에 따라 멋대로 잣대를 세우고 자기만의 살생부를 적는다. 이것은 먹어도 되는 것, 저것을 먹는 것은 야만적인 것이라며 쉬이 남들보다 더 나은 이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얼마나 야만적인가. 지적으로 떨어지는 생명체는 함부로 범해져도 되나? 나에게 친밀감을 주는 '반려'동물의 종은 무조건적으로 보호받아야 하고,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축당하고 먹기 편하게 가려져 나오는 생명체들은 내 마음이 편하니까 도륙해도 괜찮은가? '반려'라는 이름으로 멋대로 잡혀서 야생에서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좁은 집에서 간신히 산책이라는 형태로 바깥의 삶을 그릴 수 있는 동물들의 삶은 사실 노예의 삶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것도 인간만큼의 자유를 갈망하지 못하는 지적 수준을 가진 동물들에게 함부로 휘둘러지는 폭력이 아닌가? 자신들의 기준으로 그 동물의 행복감을 측정해서 '행복하니 된 거 아니냐?'라고 편의적 해석을 하면 그만인가?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 <옥자>에서 그려내는 그 딜레마를 더욱 심도있게 파고든다.
이 작품은 그 수많은 딜레마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식사라는 형태로 논한다. 보편적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 폭력적인 살생의 기준을 식사라는 테이블에 올려놓고 해부한다. 그리고 '살생을 위한 살생'이 아니라면, 삶을 위해, 그리고 이 생태계에서 존재하기 위해 벌어지는 '식사라는 형태의 살생'은 생명력의 고리를 끊는 것이 아닌 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맛있는 것을 욕구하는 이기적인 욕망 추구의 형태라고 할 지라도, 그 과정은 식사라는 형태를 통해서 우리의 식욕과 행복감, 에너지를 채워주는 고귀하고 소중한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식사는 비가역적인 생명의 박탈'로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가역적인 생태계 순환의 고리' 역할을 제시한다는 부분이 의미있는 논의를 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단순히 '그 욕구 충족의 과정이 당연한 것이라며 무조건적으로 정당화하지 않고, 무분별한 포식 행위는 옹호하지 않는 것' 또한 이 작품의 미덕이다. 생태계 속에서 포식자와 피식자가 서로에게 더 나은 사슬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노력들 또한 그려낸다. 목적성을 잃고 끝없이 추구한 욕망의 끝은 결국 아무것도 만족시키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날개 사자'라는 상징을 통해서 이야기의 끝에 전달한다.
이 또한 폭력적인 것은 매한가지 아니냐, 인간 편의대로 행동하는 무자비함을 자기합리화 하는 것 아니냐고 매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이 작품은 결국 그런 관점의 충돌을 그려내는 작품이기 때문에. 만화라는 형태로 이만큼 식사라는 행위를 깊이있게 성토하는 작품은 없었기에 정말 잘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