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본주의의 비극,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미국 건국부터 중국 LGFV까지, 부동산 버블이 만든 비생산적 디스토피아

by 무딘날

우리는 첨단 기술과 지능형 자본이 부를 창출하는 고도의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경제의 가장 깊은 기저에는 수천 년 전 고대 바빌론 시대와 다를 바 없이 '토지'라는 가장 원시적이고도 강력한 자산이 확고하게 군림하고 있다. 마이크 버드의 저서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는 현대 주류 경제학이 범한 가장 뼈아픈 오류를 지적하는 데서 출발한다. 바로 토지를 기계나 공장, 지적 재산과 같은 일반적인 '자본'의 범주에 뭉뚱그려 취급했다는 점이다.


저자의 핵심 주장에 따르면, 토지는 인간이 만들어낸 다른 자본 자산들과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아무리 수요가 폭발하더라도 공장을 돌려 생산량을 늘릴 수 없는 '공급의 고정성', 자본처럼 국경을 넘나들거나 필요한 곳으로 떼어 옮길 수 없는 '이동 불가능성', 그리고 건물이 감가상각되어 낡아가는 동안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멸성'을 지닌다. 특히 토지의 가치는 소유주 개인의 혁신이나 노력이 아니라, 그 주변에 깔리는 인프라와 일자리 등 사회 전체의 경제 활동에 무임승차하듯 결정된다. 누군가 더 많은 토지 자산을 축적하려면 필연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공간을 빼앗아야만 하는 본질적인 제로섬 게임인 셈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현대 자본주의를 이른바 '토지의 함정'으로 몰아넣었다.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은 끊임없이 우상향하는 땅값이라는 환상에 깊이 중독되어 있다. 땅값이 오르면 이를 담보로 금융권의 신용 대출이 팽창하고 자산 시장을 밀어 올려 겉보기에는 화려한 경제 호황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는 거대한 착시 현상이다. 실물 경제로 흘러가 혁신을 일으켜야 할 생산적 자본을 토지가 블랙홀처럼 모두 흡수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서는 기업의 생산적 투자가 위축되고, 가계는 살인적인 주거 비용에 짓눌리며, 부의 세습으로 인한 구조적 불평등이 사회의 역동성을 완전히 질식시키고 있다.


이에 저자는 140여 년 전 헨리 조지가 《진보와 빈곤》에서 던졌던 "문명이 발전하고 부가 축적될수록 왜 대중의 삶은 더 팍팍해지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21세기의 거시경제적 맥락으로 완벽하게 부활시킨다. 토지는 단순한 경제적 배경이나 피투적 결과가 아니라, 현대의 모든 금융 위기와 구조적 저성장을 이끄는 주요 동력이다. 우리가 이 역사상 가장 오래된 자산의 특수성과 폭력성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작금의 거시경제적 위기들을 근본적으로 진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 책이 던지는 첫 번째 화두다.


역사적 전개와 토지의 금융화 과정


미국의 건국 역사를 되짚어보면 토지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핵심 담보물로 자리 잡았는지 그 기원을 명확히 알 수 있다. 흔히 미국 독립 혁명은 영국의 부당한 과세에 대한 저항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토지를 자유롭게 소유하고 이를 신용과 돈으로 바꾸려는 식민지인들의 강렬한 경제적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상적인 정치가인 동시에 서부의 땅을 헐값에 매입해 비싸게 되팔려던 대규모 토지 투기꾼이었다. 이들은 토지를 신성불가침의 유산으로 묶어두려던 영국의 봉건적 제약을 타파하고, 토지를 누구나 사고팔며 담보로 잡을 수 있는 완벽한 '금융 상품'으로 변모시켰다. 오늘날 전 세계를 지배하는 부동산 담보 대출 중심의 금융 시스템은 바로 이 18세기 미국의 개척지에서 잉태된 것이다.


19세기 후반 산업화의 눈부신 발전 속에서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모순을 꿰뚫어 본 헨리 조지는 그 해답을 '토지 사유제'와 '지대(Rent)'에서 찾았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발생하는 토지 가치의 상승분은 소유자의 노력이 아닌 사회 전체의 산물이므로 이를 세금으로 온전히 환수해야 한다는 그의 '단일세' 주장은 당대 최고의 지성들을 매료시키거나, 혹은 분노를 야기했다. 그의 사상은 이 양면적 반응 속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자본과 토지를 동일시했던 마르크스주의 좌파와, 혁명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을 주택 소유자로 만들어 보수화시키려 했던 우파의 '자가 소유 민주주의' 전략 사이에서 압사당하고 말았다. 비록 서구에서 조지주의는 실패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울프 라데진스키의 주도하에 동아시아(한국, 대만, 일본)에서 단행된 급진적인 토지 개혁은 경작자에게 땅을 분배하는 것이 어떻게 폭발적인 경제 성장의 마중물이 되는지를 역사적으로 증명해 냈다.


정치적 투쟁과 개혁의 대상이었던 토지는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며 현대 금융 시스템의 가장 핵심적인 연료로 탈바꿈했다. 모기지론을 필두로 하여 이른바 '대담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과거 기업의 생산 설비나 무역에 자금을 대던 은행들은 금융 규제 완화와 함께 가장 안전하고 도망가지 않는 담보물인 '토지'로 눈을 돌렸다. 현재 선진국 은행 대출의 60% 이상이 주택 담보 대출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경제의 혈맥인 금융이 어디로 고여 썩어가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더 나아가, 이는 기업 비즈니스 모델의 진화 과정에서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글로벌 프랜차이즈 맥도날드의 폭발적 성장은 햄버거 판매 자체보다 가맹점에게 목 좋은 땅을 임대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정교한 '부동산 임대업' 모델에 기인한다. 결국 현대 자본주의에서 은행은 기업의 혁신을 지원하는 조력자가 아니라 토지를 담보로 신용을 팽창시키는 거대한 부동산 헤지펀드로 전락했으며, 기업들조차 본업의 산업 경쟁력보다 부동산 자산 가치에 기대어 지대를 추구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실물 경제의 역동성이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중력에 의해 서서히 잠식당하는 과정이다.


토지의 금융화와

아시아의 '토지 본위제':

부동산 버블과 붕괴의 과정


현대 도시의 불평등을 다루기 전, 이 책은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또 다른 거대한 경제적 변곡점을 파헤친다. 바로 '어떻게 토지가 물리적 분배의 대상에서 완벽한 금융 공학의 도구로 탈바꿈하며 전 세계를 속여왔는가'에 대한 민낯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동아시아의 경제 기적을 이끌었던 '경작자에게 땅을 주자'는 급진적 토지 개혁의 이상은 1980년대에 이르러 페루의 경제학자 에르난도 데 소토(Hernando de Soto)의 '소유권 등기' 이론으로 급격히 대체되었다.


데 소토는 빈민들이 거주하는 무허가 판자촌 토지에 합법적인 소유권을 부여하자는 시장 친화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얼핏 빈곤층을 자본주의의 테두리 안으로 포용하는 혁신적 해법 같았지만, 그 내밀한 목적은 빈민들이 그 토지를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게 만드는 데 있었다. 이는 글로벌 토지 정책의 패러다임이 '평등한 재분배'에서 '모두를 위한 신용 공급(대출)'으로 완전히 넘어갔음을 알리는 역사적 선언이었다. 정부는 토지 불평등이라는 근본적 모순을 수술하는 대신, 국민 각자에게 빚을 낼 권리를 쥐여주며 빈곤과 불만을 유예시키는 마약을 처방했다.


이러한 토지의 금융화 마법이 국가 단위의 탐욕과 결합하여 만들어낸 파국적 시나리오는 동아시아의 현대 경제사에서 가장 극적으로 펼쳐졌다. 저자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거품 경제를 국가 전체가 금이 아닌 '토지'를 가치의 척도로 삼았던 기형적인 '토지 본위제'의 표본으로 지목한다. 당시 도쿄 황궁의 땅값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전체의 가치를 넘어섰다는 광기 어린 지표는, 기업들이 본업의 기술 혁신이 아닌 토지 담보 가치에만 기대어 무한정 빚을 끌어다 쓴 결과였다. 이 끝없는 신용 팽창의 피드백 루프가 끊어지자 자산 가격은 수직 낙하했고, 빚만 남은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투자 대신 부채 상환에만 몰두하는 '대차대조표 불황'이 도래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토지가 경제를 인질로 잡았을 때 국가가 어떤 내상을 입는지 보여주는 참혹한 선행 지표였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 대신, 홍콩의 치명적인 '토지 독점 모델'을 수입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거품을 잉태하고 말았다. 1980년대 개방 초기 자본이 부족했던 중국은 세금 대신 '토지 사용권 매각' 방식을 도입해 인프라 자금을 조달했다. 이 과정에서 토지의 금융화는 'LGFV(지방정부 자금조달 기구)'라는 기괴한 돌연변이를 낳았다. 직접 빚을 질 수 없었던 지방정부들은 LGFV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무수히 설립한 뒤, 자신들이 가진 국유지를 의도적으로 비싼 값에 팔아넘겼다. 빈 껍데기인 LGFV는 그 비싼 땅을 담보로 그림자 금융에서 막대한 돈을 빌려 지방정부에 지불했고, 정부는 이를 건실한 재정 수입으로 장부에 기록했다.


이는 사실상 왼쪽 주머니에서 빚을 내어 오른쪽 주머니를 채운 거대한 폰지 사기(Ponzi Scheme)이자 내부자 거래였다. 장부상으로는 땅값이 끝없이 오르고 지방 재정이 튼튼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체는 갚을 길 없는 천문학적인 부채를 콘크리트 아파트와 유령 도시 아래에 파묻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빈민들에게 등기를 쥐여주어 대출을 받게 한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해법이나,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땅값을 뻥튀기한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나 그 본질은 정확히 일치한다. 지배 계층이 골치 아픈 토지 문제를 정면 돌파하는 대신, 토지를 영원히 마르지 않는 현금 지급기로 취급했다는 점이다. "집은 투기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규제(3개의 레드라인)가 가해지자 헝다(Evergrande)로 대표되는 이 거대한 빚잔치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이는 자본주의가 외면했던 거대한 청구서가 되어 전 세계적 위기로 날아들고 있다.


이러한 파멸적 궤도 속에서 저자는 유일하게 탈선하여 번영을 이룬 훌륭한 예외 사례로 싱가포르를 조명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강력한 토지 수용법을 통해 공공 개발의 이익을 국가가 독점할 수 있도록 국유지 비율을 90%까지 끌어올렸고, 국민의 강제 저축(CPF)을 활용해 저렴한 고품질의 공공 주택(HDB)을 자가 소유하게 만들었다. 이는 홍콩이나 중국의 '고지가 정책'과 완벽히 대척점에 있는 '저가 주택 정책'이자, 역설적이게도 19세기 헨리 조지가 꿈꿨던 '토지 가치 공유'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실험이었다. 수많은 중국 관료들이 싱가포르를 시찰했음에도 부동산을 철저한 거주 수단으로 통제한 이 핵심 철학은 외면한 채 권위주의적 겉모습만 모방함으로써, 결국 스스로 거대한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자가당착과 님비즘


책의 후반부에 접어들며 저자의 시선은 21세기 현재 우리가 직면한 가장 파괴적인 불평등의 진원지인 '슈퍼스타 도시'로 향한다. 런던, 뉴욕,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현대 지식 경제의 심장부들은 이른바 '집적 효과'를 통해 인재가 모일수록 혁신과 생산성이 폭발하는 번영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과거 산업화 시대의 도시들이 인구를 수용하며 끝없이 팽창했던 것과 달리, 오늘날의 슈퍼스타 도시들은 "일자리는 넘쳐나지만, 정작 사람이 살 곳은 없는" 굳게 닫힌 기형적인 요새로 변질되었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창출하는 높은 임금은 살인적인 주거비 상승분에 고스란히 잡아먹히며, 그 막대한 경제적 과실은 혁신을 주도한 청년 전문직이나 노동자가 아니라 그 땅을 선점하고 있던 기존의 지주들에게 아무런 노력 없이 귀속된다.


저자는 이러한 만성적인 주택 부족과 가격 폭등이 결코 자연스러운 시장의 결과물이 아니라, 기존 집주인들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정치적 바리케이드의 산물이라고 신랄하게 꼬집는다. 자산 가치 하락과 동네의 혼잡을 우려한 이기적인 '님비(NIMBY)'주의는 미국의 단독주택 전용 구역이나 영국의 그린벨트와 같은 강력한 용도 규제를 무기화하여 새로운 세대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혁명을 막기 위해 장려되었던 '자가 소유 민주주의'가 이제는 거대한 기득권 연합을 형성하여, 자신들만의 성벽을 높이고 뒤따라오는 이들의 도개교를 걷어차 버린 셈이다.


저자는 '모든 것의 주택 이론(The Housing Theory of Everything)'을 통해 작금의 부동산 문제가 단순한 자산 시장의 등락을 넘어 사회 전체의 근간을 붕괴시키는 만악의 근원임을 경고한다. 가장 생산성이 높은 도시로 노동력이 이동하지 못하게 가로막음으로써 국가 전체의 잠재 성장률을 갉아먹는 거시적 저성장, 천문학적인 주거 비용의 무게에 짓눌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해 버리는 청년 세대의 비극, 그리고 외곽으로 밀려난 이들의 살인적인 통근 시간까지 이 모든 병리 현상의 종착지에는 결국 토지가 도사리고 있다.


나아가 슈퍼스타 도시의 화려한 번영에서 철저히 소외된 낙후 지역 주민들의 분노, 그리고 평생 일해도 내 집 마련의 사다리에 오를 수 없다는 무주택 세대의 깊은 좌절감은 트럼프 현상이나 브렉시트로 대변되는 극단적 포퓰리즘과 정치적 양극화를 잉태했다. 결국 현대 자본주의는 가장 역동적이어야 할 혁신의 중심지가 소극적인 지대 추구의 천국으로 전락하는 끔찍한 자가당착에 빠져버렸으며, 선진국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주택 소유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런 개혁의 칼을 빼들지 못하는 정치권의 딜레마가 이 거대한 함정을 더욱 깊게 파내고 있는 것이다.


신봉건주의의 문턱에서,

'부동산 공화국'이 된

한국에 던지는 경고


이 책은 지난 수천 년의 거대한 토지 역사를 관통한 끝에, 우리가 '토지의 함정'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망가져버린 세 영역을 고쳐야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가장 먼저 19세기 헨리 조지의 혜안을 현대적으로 소환하며 세금 제도의 개혁을 촉구한다. 기업의 생산적 투자나 노동의 의욕을 꺾는 법인세와 소득세는 과감히 줄이고, 대신 사회 전체의 발전으로 빚어진 불로소득인 '토지 가치'에 무거운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님비(NIMBY) 세력이 장악한 지방 자치단체의 도시 계획 권한을 중앙으로 회수하여 밀도 높은 주택 공급을 강제할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은행이 토지 담보 대출에만 목을 매는 관행을 끊어내어 자본이 혁신 산업으로 흐르게 하는 금융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하지만 저자 역시 이 거시적 개혁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꿰뚫어 보고 있다. 20세기 중반 서구의 보수 정치권이 체제 수호를 위해 장려했던 '자가 소유 민주주의'는 이제 선진국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집주인 유권자'라는 거대한 기득권 연합을 만들어냈다. 입으로는 집값 폭등과 청년들의 좌절을 걱정하면서도 막상 내 자산 가치를 떨어뜨릴 정책 앞에서는 결사반대하는 유권자들의 모순, 그리고 이들의 표를 의식해 어떤 근본적 수술 단추도 누르지 못하는 정치권의 교착 상태가 개혁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러한 책의 날카로운 통찰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적 현실과 뼈아프게 맞닿아 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이 '토지의 함정'에 가장 깊숙이, 그리고 치명적으로 빠져 있는 국가다. 가계 부채가 GDP를 훌쩍 넘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배경에는, 청년 세대마저 평생의 소득을 저당 잡혀 추격 매수에 뛰어들게 만든 '영끌'의 비극과 이를 방조하며 손쉬운 이자 장사를 벌인 금융권이 있다. 건설업과 금융권이 거미줄처럼 얽힌 거대한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위기가 거시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았고,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막대한 자본이 혁신 기업이나 첨단 R&D로 향하는 대신 수도권의 콘크리트 아파트에 묶여 무기력하게 잠들어 있다.


무엇보다 책이 경고한 '모든 것의 주택 이론'은 한국의 파멸적인 인구 절벽 현상을 가장 적확하게 설명해낸다.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슈퍼스타 도시로 모든 자원과 인재가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지만, 살인적인 주거비라는 굳게 닫힌 성벽 앞에서 최소한의 '공간'조차 확보하지 못한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생존 본능마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세당하고 있다. 혁신의 용광로여야 할 수도권은 철저한 지대 추구의 각축장이 되어 활력을 잃어가고, 그 밖의 지역은 처참한 소멸의 위기에서 허덕이는 중이다.


우리가 이 함정을 부수지 못한다면, 개인의 재능이나 혁신적인 노력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수도권 아파트'의 유무가 신분과 계급을 영구적으로 결정해 버리는 끔찍한 '신봉건주의'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경제 성장의 과실을 땅값이 모조리 집어삼키는 이 구조적 질곡을 끊어내지 않고서는 국가의 미래도, 산업의 역동성도 결코 되찾을 수 없다. 내 집값이 영원히 오르길 바라는 사적인 욕망과, 건전하고 공정한 거시경제를 바라는 공적인 당위 사이의 뼈아픈 모순을 우리 스스로 직시할 때, 비로소 이 오래된 덫에서 빠져나올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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