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파병 요구, 맹목적 동맹주의의 끝과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
전쟁의 포화 속에서,
맹목적 동맹주의는 무의미하다.
현대 국제 질서는 심대한 구조적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약 30여 년간 유지되어 온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는 강대국 간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는 비대칭적 다극 체제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으며, 최근의 미중을 중심으로 한 신냉전 담론도 그것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점차 미국은 조급해하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자국주의 기조를 굳히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다가 결국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바로 지난 2월 말부터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5차 중동전쟁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기전으로 끝내겠다는 심산으로 보였으나, 역사적-민족적 뿌리가 깊은 이란은 지도자를 잃었음에도 오히려 항전 의지를 더욱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2026년 3월 현재, 중동 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이란 간의 무력 충돌을 비롯한 지정학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으며,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과 중국을 동시에 압박하며 호르무즈 해협 통행의 안전 확보를 명분으로 군사적, 경제적 비용 분담을 노골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은 단순한 안보 차원의 협력을 넘어, 방위비 분담금 증액, 상호 관세 연동, 대규모 투자 압박 등의 경제 이슈와 결합하여 전방위적이고 거래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도 현실적 선택의 측면에서 고심하는 상황이다. 이번 파병 요청은 아직까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SNS 메시지 수준이기에, 미국 정부의 정식 협력 요청이 오기 전까지는 한발 물러서서 관망하고 있는듯 하다.
이 중대한 구조적 전환기 속에서, 동아일보 김승련 논설실장은 일련의 칼럼을 통해 한국 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이른바 '보은 외교'를 주창하고 있다.
김 위원은 이란이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에 묶인 한국 국적선 26척의 상황을 거론하며, 한국이 당사국으로서 마땅히 자국 상선 보호 역할을 수행해야 함은 물론, 지난 70여 년간 한미동맹으로부터 누려온 막대한 안보적, 경제적 수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제는 군사적·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현재 성장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는 과거 이라크 전쟁 당시 한국이 전투 부대 파병을 기피하고 의료 및 공병 부대만을 파견하여 전사자가 없었던 사례를 언급하며, 작금의 사태에서는 이란의 미사일이나 드론 공격으로 인한 교전 및 전쟁 연루 위험성까지도 감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당시와 달리 위험성이 존재하는 파병임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일을 기회 삼아 한국이 동맹으로서의 역량과 위치를 재정립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요구를 적극 수용한다면 그걸 레버리지 삼아 현재 한미 합작으로 진행중인 여러 사안들의 추진력을 높이고, 관세 압박 등에서 일정 부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논리일 것이다.
또한, "파병 반대"를 외치는 다수의 여론을 무지한 이들로 전제하고 신중론을 펴는 의원들을 "무서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두려워하는 이들로 매도하며, 소신 있는 정치인이 총대를 메고 미국의 지정학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미국이 ATACMS의 러시아 본토 타격을 허용한 맥락을 설명하며 동맹국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뉘앙스를 내비친다.
그러나 이러한 김승련 위원의 무책임한 ‘보은 외교' 담론은 현재 국제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적 구조 변화를 철저히 간과한 극히 위험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전략적 맹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한미동맹을 가치와 신의에 기반한 영구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로 전제함으로써, '자비로운 패권국'에서 동맹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약탈적 패권국'으로 변모한 미국의 대전략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다.
둘째, 현대전의 비대칭적 확전 리스크와 대리전 구조 속에서 약소국 및 중견국이 겪게 될 전쟁 연루의 치명적인 함정을 무시하고 있다.
셋째, 안보와 경제가 긴밀하게 연동되는 지경학적 현실 속에서, 맹목적인 진영 편승이 초래할 공급망 붕괴와 경제적 보복의 파멸적 결과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과거의 부채 의식에 얽매여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국익을 희생하는 맹목적 동맹 추종은 냉혹한 국제정치경제 현실에서 국가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는 치명적인 전략적 오류다.
다극화로 인해 정체된 국제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대안적 국가 대전략을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고 가볍게 제시하면서 심지어는 그것에 대한 접근이 조심스러운 이들을 되지도 않는 비유로 비판하는 글에 충격을 받아 이에 대한 글을 쓴다.
글을 쓰기 전에 결코 우습지 않은 전쟁상황에 대해 <호르무즈 파병은 ’무서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우스운 농찌거리로 칼럼을 낸 동아일보 김승련 논설실장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기뢰가 산개되어 있고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전쟁의 포화 속에 젊은이들을 내몬다는 결정을 하고자 한다면, 당신이랑 당신 가족들부터 짐 챙겨서 미국에 보은하고자 전쟁터로 가시라고. 당장 이 칼럼을 담론으로 낸 동아일보 편집국과 함께. 안전한 전쟁터니 본인이 가면 되지 않느냐.
지금 이 상황이 이라크 파병 당시와 같은 상황도 아닐 뿐더러, 현재의 한국은 과거와 같이 일방적으로 요구를 들어줄 만큼 국가적 레버리지가 부족한 상황이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만약 미국의 폭거에 못 이겨 파병을 하게 되더라도, 저 논설실장의 말처럼 국회의원 몇명이 주장하여 할 일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 여론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 마땅하다. 파병을 위한 국민적 여론의 조성 및 설득 과정을 충분히 거치고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김승련 위원의 '보은 외교' 주장은 근본적으로 미국이라는 패권국이 과거와 동일한 도덕적, 전략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환상에 기반하고 있다. 그는 한미동맹이 한국에 베푼 역사적 은혜를 강조하며, 동맹에 대한 기여가 곧 상호 호혜적인 안보와 번영으로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적 구조주의 이론과 현실주의 패러다임은 이러한 순진한 동맹관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Stephen M. Walt)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80년간 세계 권력 구조는 양극 체제에서 단극 체제를 거쳐 오늘날의 불균형적 다극 체제로 변화해 왔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대전략과 패권의 성격 역시 극적으로 변화했다.
냉전 시대 양극 체제 하에서 미국은 동맹국의 안녕과 번영이 소비에트 연방을 억제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었던 '자비로운 패권국'으로 행동했다. 이 시기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이 경제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으며, 규칙 기반 질서를 창출하고 상호 번영을 도모했다. 김승련 위원이 기억하고 보답하고자 하는 70년 한미동맹의 황금기는 바로 이 자비로운 패권의 시대에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하의 미국은 철저한 '약탈적 패권국'으로 변모하였다. 월트에 따르면, 약탈적 패권국은 기존의 양자 관계를 순수한 제로섬(Zero-sum) 방식으로 구조화하여 혜택이 항상 자국에 유리하게 배분되도록 강제한다.
이들의 일차적 목표는 모두가 더 나아지는 안정적이고 호혜적인 관계 구축이 아니라, 모든 상호작용에서 타국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데 있다. 약탈적 패권국은 적국뿐만 아니라 동맹국에게도 금수조치, 금융 제재, 근린궁핍화 무역 정책 등 경제적 압박 수단을 동원하여 양보를 강요하며, 군사적 보호의 제공을 경제적 청구서와 노골적으로 연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청하며 방위비 확대, 상호관세 연동 등 '호르무즈 통행 청구서'를 내민 것은 정확히 약탈적 패권국의 전형적인 행태다. 월트가 지적하듯, 트럼프는 타국이 자국 경제나 안보에 의존하는 취약성을 이용해 지속적인 굴종과 상징적 복종, 심지어 '공물'을 요구한다.
따라서 김 위원이 주장하는 '과거의 수혜에 대한 보은' 은 전략적으로 완벽한 자충수다.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이나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미국의 요구에 따라 정치적·군사적 리스크를 짊어진다 하더라도, 약탈적 패권국은 이를 과거의 은혜에 대한 '당연한 상환'으로 여길 뿐, 미래의 안보 보장이나 경제적 이익으로 보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맹목적인 순응과 선의적 양보는 패권국에게 "동맹국을 더 강하게 압박하면 무한대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신호를 주어,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끝없는 착취의 굴레로 한국을 몰아넣게 된다.
약탈적 패권의 부상과 더불어 국제 질서를 규정하는 또 다른 핵심 원리는 '거래적 호혜성'의 노골화다. 오렌 캐스(Oren Cass)의 대전략 분석에 따르면, 과거 미국이 관대한 패권국으로서 자국의 막대한 무역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동맹국들의 수출 주도 경제 성장을 용인했던 이타주의적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현재 미국 대전략의 최우선 과제는 미국 중심의 경제적 이익 수호이며, 이는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철저하게 무역 수지의 균형을 요구하고 무임승차를 징벌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스는 미국이 동맹국들을 향해 "만약 모든 구성원이 당신들처럼 행동한다면 이 동맹이 붕괴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강력한 상호주의를 강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한국, 일본, 독일 등 핵심 동맹국들이 과거 불공정한 수출 주도 성장을 통해 미국의 희생 위에서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누렸다고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이들에게 철강, 자동차, 배터리 등 전방위적 산업에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자발적 수출 제한을 강제하며, 철저한 무역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동맹의 블록에서 축출하겠다는 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러한 냉혹한 경제적 현실 속에서는, 한국이 호르무즈 파병이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통해 지정학적으로 미국에 완벽하게 동조하면 경제적 보상이나 관세 면제가 돌아올 것이라는 김승련 위원의 논리는 완전히 파탄난다.
김 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 이슈와 무역/투자 이슈를 뒤섞어 보복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파병의 당위성을 역설하지만 , 이는 미국의 압박 메커니즘을 절반만 이해한 것이다.
마티아스 마티스(Matthias Matthijs)와 나탈리 토치(Nathalie Tocci)가 유럽의 사례를 통해 통렬하게 비판했듯이,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와 무역 압박에 굴복하며 취한 '유화 정책'은 철저한 실패이자 자기 파괴적 함정이었다.
유럽은 트럼프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군사비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미국산 무기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등 막대한 양보를 바쳤으나, 결국 돌아온 것은 지속적인 관세 위협과 동맹 방기의 위협뿐이었다. 유화 정책과 보은 외교는 패권국에게 타국의 협상력이 취약하다는 약점만을 노출시킬 뿐이다.
동맹이라는 미명 하에 군사적 리스크를 전적으로 감수하면 미국의 무역 보복이나 관세 장벽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현대 국제경제학의 '거래적 호혜성' 논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순진한 환상에 불과하다. 미국은 군사적 양보는 군사적 양보대로 챙기면서, 경제적 제재는 별도의 국익 논리에 따라 가차 없이 집행할 것이다.
김승련 위원은 한국 유조선 26척이 묶인 호르무즈 해협 상황을 거론하며, 당사국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군사적 역할을 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1000일을 맞이한 시점에서 미국이 장거리 미사일 ATACMS의 러시아 본토 타격을 허용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북한군 파병 등 복잡해진 전황 속에서 동맹 차원의 적극적인 군사적 관여 필요성을 은연중에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국제정치학과 군사 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동맹의 이름으로 강대국의 분쟁에 깊숙이 뛰어드는 행위는 약소국이나 중견국에게 파멸적인 비대칭적 리스크를 안겨주며, 전형적인 전쟁 연루의 함정에 빠지는 지름길이다.
김 위원은 호르무즈 파병을 단순한 상선 보호와 동맹의 임무 수행 차원으로 치부하지만, 중동 지역의 역사적·구조적 복잡성을 고려할 때 이는 극히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데이비드 프롬킨(David Fromkin)의 역작 『현대 중동의 탄생』은 현대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정이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2년,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의해 인위적으로 강요된 타결(1922 Settlement)에서 비롯되었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프롬킨의 역사적 분석에 따르면, 영국과 프랑스는 이슬람 종교가 정치와 삶의 중심이었던 중동 지역에 세속주의, 민족주의, 유럽식 국가 체제와 인위적인 국경선을 억지로 이식했다. 이라크,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의 국가는 현지 주민들의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족 등)과 무관하게, 오직 런던과 파리의 관료들이 빈 지도 위에 자를 대고 그은 선에 의해 탄생한 인위적 발명품이었다.
서구 열강은 무슬림 아시아의 정치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오만한 허브리스(Hubris)에 빠져 이 지역을 분할하고 통치했으나, 이는 중동을 "끝없는 전쟁의 길"과 "나날이 격화되는 테러리즘"의 용광로로 몰아넣는 근본 원인이 되었다.
현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나 반서방 세력(오사마 빈 라덴 등)이 서구 세계를 향해 적대감을 표출하는 핵심적 논리 역시, 80년 전 기독교 군대가 무슬림 영토를 점령하고 이들의 자결권을 짓밟은 역사적 원한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 속에서, 부족주의나 종파주의가 아닌 서구식 국가 시스템은 중동에서 적법성을 획득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끊임없는 내전과 국경 분쟁, 체제 전복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통찰을 현재의 호르무즈 사태에 적용해 보자. 미국 주도의 해위 연합군에 한국이 전투함을 파견하여 이란과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것은, 단순히 국제 해상로를 보호하는 치안 유지 활동이 아니다.
이는 100년 전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중동의 정치적, 종교적 현실을 무시하고 힘으로 질서를 강제하려 했던 실패한 역사를 21세기에 반복하는 서구 패권주의 군사 작전에 동참하는 행위로 중동 국가들에게 인식된다.
카림 사자드푸어(Karim Sadjadpour)가 지적하듯, 이란 정권은 내부적 쇠퇴와 대중적 불만을 외부의 적(미국과 그 동맹국)에 대한 피해망상적 적대감과 민족주의로 돌려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이 이 화약고에 자발적으로 발을 들이밀고 군사적 표적이 되는 것은, 중동의 뿌리 깊은 반서방 연대 전선에 스스로를 노출시켜 국가적 테러 위협과 해상 봉쇄의 항구적 타깃이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프롬킨이 지적한 "억제되지 않은 힘의 무제한적 행사"가 초래한 파멸의 역사를 한국이 앞장서서 되풀이할 이유는 전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은 현대 21세기 전쟁에서 핵보유 강대국 간의 '암묵적 억지와 확전 임계점 관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레베카 리스너(Rebecca Lissner)와 존 카위카 워든(John Kawika Warden)의 안보 전략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자국 본토나 NATO 유럽 동맹국들이 러시아와 직접적인 재래식 충돌을 빚거나 핵전쟁으로 비화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철저하고 냉혹하게 확전 수준을 통제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면서도 '살라미 전술(salami slicing)'을 통해 러시아가 설정한 레드라인을 조심스럽게 시험하며 지원의 강도를 점진적으로 높여갔다. 김승련 위원이 긍정적으로 묘사한 ATACMS의 러시아 본토 타격 허용 역시 , 미국 본토의 안전이 100% 보장된다는 전제 하에 임기 말의 정치적 계산과 북한군 파병이라는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내려진 고도의 전술적 결정에 불과하다.
이러한 강대국의 확전 관리 전략의 이면에는 매우 잔혹한 국제정치의 진실이 숨어 있다. 가장 큰 물리적 인명 피해, 인프라 파괴, 그리고 국가 붕괴의 위험은 전장을 제공한 당사국(우크라이나)과 직접적으로 피를 흘리는 주변의 준동맹국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쓴다는 사실이다.
미국(패권국)과 준동맹국(한국, 우크라이나, 대만 등)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위험 감수 성향'에서 근본적인, 그리고 태생적인 차이를 지닐 수밖에 없다. 미국 본토는 러시아, 중국, 이란의 재래식 공격으로부터 완벽하게 절연되어 있지만, 전방에 전진 배치된 한국이나 우크라이나 같은 국가들은 적국의 즉각적이고 파괴적인 보복 타격의 1차 목표물이 된다.
만약 김승련 위원의 강력한 주장대로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감행하거나 , 동맹의 요구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전면 지원하여 분쟁에 직접 뛰어든다면, 이는 한국의 국가 생존을 담보로 한 타인의 체스판 위에서의 무모한 도박이 된다.
이러한 치명적 국가 안보 위기를 동맹으로서 감내해야 할 책임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국가 지도부와 안보 전략가가 지녀야 할 최우선 원칙인 '위협 최소화 및 억지'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직무유기다.
더욱 심각하고 구조적인 문제는, 미국의 글로벌 군사 안보 전략 자체가 근본적으로 축소 지향형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잭 쿠퍼(Zack Cooper)의 지정학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더 이상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팽창주의적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는 압도적인 경제적, 군사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미 국방 예산의 한계와 중국의 가공할 만한 해군력 팽창(A2/AD 전략 등)에 직면한 미국은, 결국 광범위한 역내 개입 정책에서 후퇴하여, 일본, 대만,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좁은 '제1도련선'에만 방어 역량을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전략적 수축을 강제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고립주의적 축소 시나리오 하에서, 미국은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핵심 동맹국(한국, 일본 등)에게 방위비의 대폭 증액과 전력 자산의 역내 전면 개방을 혹독하게 강요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본토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자국 군대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최전선의 동맹국을 방패막이로 삼으면서 언제든 발을 빼거나 타협할 수 있는 구조적 방기의 여지를 마련해 두고 있다. 실제로 현재 미국은 한국에 배치하는 것만으로 한한령 등 큰 외교적-경제적 타격을 입게 한 사드를 중동전쟁을 위해 바로 빼버리는 모습을 보인 것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미국의 글로벌 군사 개입 축소와 동맹 방기 리스크가 점증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지구 반대편의 분쟁(중동 호르무즈, 동유럽 우크라이나)에 전투 부대를 파병하거나 대규모 무기 지원으로 적극 참여하는 것은 자국의 핵심 방위 역량을 분산시키고 스스로를 취약하게 만드는 자해적 행위다.
한국은 현재 북한의 직접적인 재래식 도발 및 고도화된 핵·미사일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심각한 저출산 및 인구 구조의 고령화로 인해 징집 가능한 상비 병력 자원마저 급감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마이클 베클리(Michael Beckley)가 "정체된 질서(The Stagnant Order)"에서 강력히 경고하듯, 고령화와 경제 성장 둔화에 직면한 국가들은 방대한 복지 비용의 증가와 군사 연령 인구의 감소로 인해 기존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병력을 투사하는 데 심각한 제약을 겪게 된다.
한국의 한정된 국방 자원은 오직 한반도 방어와 동북아시아 역내의 확고한 억지력 확보에만 배타적으로 집중되어야 한다. 과거 70년 전의 은혜를 갚겠다는 감상주의적 명분으로 1만 킬로미터 떨어진 화약고에 귀중한 국력과 청년들의 목숨을 투사하자는 김승련 위원의 주장은 국가 전략 자원의 효율적 배분 원칙을 처참히 짓밟은 무책임한 발상이다.
김승련 위원의 '보은 외교' 주장은 안보와 경제가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촘촘히 맞물려 돌아가는 현대 지경학적 현실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냉전 시대 한미동맹의 전성기에는 미국이 동맹국에 안보 우산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동맹국이 미국의 군사 전략에 동조하면, 미국은 자국 시장을 개방하여 동맹국의 수출 주도 경제 성장을 전폭적으로 보장해 주었다. 안보적 희생이 곧 경제적 번영으로 치환되는 암묵적인 정경연계의 선순환 구조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다극화 시대에 이러한 공식은 처참하게 붕괴되었다.
마이클 베클리의 "정체된 질서(The Stagnant Order)" 이론은 현재 국제 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지난 250년간 세계를 주도했던 인구 팽창과 파괴적 기술 혁신에 기반한 '신흥 강대국의 부상' 시대는 막을 내렸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는 생산성 향상이 둔화되고, 스타트업 창업이 감소하며, 인구가 수축하는 구조적 경화증에 빠져 있다. 중국조차도 인구 감소와 경제 성장 둔화, 부동산 버블 붕괴에 직면하여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다.
파이가 더 이상 커지지 않는 정체된 질서 속에서, 국가 간의 경제 경쟁은 필연적으로 타국의 부를 빼앗아야만 자국이 생존할 수 있는 극단적인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 변질된다.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과거의 강대국들(러시아, 중국)은 내부적 불만과 경제적 쇠퇴를 감추기 위해 무력 침공과 군사적 팽창주의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위협은 이러한 맥락에서 발현된 생존을 위한 제로섬 각축전의 일환이다.
이러한 무한 경쟁의 진흙탕 속에서, 이념이나 역사적 부채감에 휩싸여 어느 한쪽 진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반대 진영을 경제적·군사적으로 철저히 적대시하는 것은 곧 국가 경제의 숨통을 스스로 끊는 행위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미국 주도의 군사적 진영에 맹목적으로 편승하는 '보은 외교'가 한국의 글로벌 공급망과 대외 무역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힌다는 점이다.
제이슨 보도프(Jason Bordoff)와 메건 오설리번(Meghan L. O'Sullivan)의 에너지 안보 분석에 따르면, 오늘날 '에너지 무기화'가 전면적으로 귀환했다. 러시아는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여 거대한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었고, 미국 역시 관세 면제를 무기로 동맹국에게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강요하고 있다.
나아가 에너지 전환 시대의 핵심인 배터리, 태양광, 전기차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과 희토류 공급망은 전통적인 석유보다 훨씬 더 강력한 지경학적 무기로 전락했다.
한국 경제는 중국 및 중동 등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대한 에너지 자원 및 핵심 소재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다.
쭝위안 조 리우(Zongyuan Zoe Liu)의 경고처럼, 중국은 미국의 포위망 구축에 맞서 자국의 거대한 제조업 역량과 핵심 공급망 통제력을 완벽하게 무기화할 준비를 마쳤다. 중국은 갈륨, 게르마늄, 흑연 등 핵심 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무기 삼아, 자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국가들에게 심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힐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김승련 위원의 논리대로 미국의 군사적 하청업체로 전락하여 이란(호르무즈), 러시아(우크라이나), 중국(남중국해 및 대만)을 상대로 직접적인 군사적 적대 행위에 가담한다면, 이들 국가들로부터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경제적 보복의 표적이 된다.
이란의 통제를 받는 해상 루트에서의 원유 공급 차단, 러시아의 에너지 및 자원 수출 금지, 중국의 핵심 광물 통제 및 한국 기업에 대한 대대적 제재는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근간을 단숨에 붕괴시킬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미국이 동맹국의 이러한 경제적 손실을 보전해 줄 의지도, 능력도 없는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 상황에서 , '보은'이라는 감상적 명분으로 국가 경제의 자살 행위를 감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 경제 시스템 자체의 건전성과 글로벌 리더십 하락 또한 한국이 미국이라는 단일 바구니에 모든 것을 베팅해서는 안 되는 결정적인 이유다.
라엘 브레이너드(Lael Brainard)가 "터무니없는 약탈(Exorbitant Pillage)"을 통해 통렬히 지적했듯,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막강한 달러 패권은 오히려 미국 정부의 자해적인 정책들로 인해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분별한 재정 지출 확대와 천문학적인 부채 증가, 1930년대 스무트-홀리 관세법 수준의 극단적인 수입 관세 남발, 그리고 정치적 압박을 통한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 훼손 시도는 달러의 안정성과 국제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갉아먹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단기적인 정치·경제적 목적을 위해 글로벌 금융망 배제 등 경제 제재를 남발하자, 중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한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들은 달러에 의존하지 않는 '탈달러화' 전략과 대체 결제망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구조적으로 파편화되고 다극화되는 가운데, 한국이 특정 진영(미국)에 정치·군사적으로 완전히 종속되는 것은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 지형에서 한국의 협상력과 거대 신흥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스스로 봉쇄하는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는 한국이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 육성 중인 방위산업 생태계에도 심각한 타격을 준다.
섀넌 오닐(Shannon K. O'Neil)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자국 방위산업의 공급망을 보호하고 강화하기 위해 고율의 관세 장벽을 쌓고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동맹국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글로벌 방산 생태계를 파편화시키고 있다.
유럽 연합 국가들과 영국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변덕스럽고 강압적인 무역 및 안보 정책에 회의감을 느끼며, 미국산 무기 구매를 축소하고 "유럽산 구매(Buy European)" 정책을 강화하는 독자적 국방 산업 육성으로 돌아서고 있다. 덴마크, 스페인, 프랑스 등이 미국산 무기를 배제하고 역내 무기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 주도의 글로벌 분쟁에 맹목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한국 방위산업의 입지를 매우 모순적인 상황에 빠뜨린다.
미국은 한국의 값싼 포탄이나 재래식 무기 지원은 환영하지만, 첨단 방산 시장이나 글로벌 군수 공급망에서는 철저히 한국을 배제하고 자국 이익을 우선할 것이다.
한국은 유럽 국가들처럼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방위산업의 다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김승련 위원의 주장처럼 미국의 지정학적 용병을 자처하는 것은 스스로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현대 국제 질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서방 중심의 시각에 갇혀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김승련 위원의 논리는 세계가 여전히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해 주도된다는 서구 중심주의적 오만함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새로운 유라시아 질서'와 글로벌 사우스의 강력한 부상으로 특징지어진다.
줄리앤 스미스(Julianne Smith)와 린지 포드(Lindsey Ford)의 "새로운 유라시아 질서" 분석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는 경제적 규모와 가공할 군사력을 바탕으로 사실상의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라는 다자 플랫폼을 활용하여 서방의 영향력을 배제한 채 아시아와 유럽을 관통하는 거대한 군사·산업·금융 블록을 형성 중이다. 북한, 이란과 같은 핵심 반서방 국가들을 끌어들여 군사 기술과 무기를 공유하고, 해저 케이블 절단이나 사이버 공격 등 회색 지대 작전을 통해 서방 동맹국들을 전방위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유라시아 블록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 주도의 군사 작전(호르무즈 파병,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의 최선봉에 서는 것은, 곧 중국-러시아-북한-이란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지정학적 단층선의 정중앙에 스스로를 묶어두는 꼴이다.
미국조차도 이들 블록의 협력을 완벽히 차단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전면에 나서 이들의 군사적 보복의 타깃이 되는 것은 안보 전략의 기초를 망각한 행위다.
더욱 뼈아픈 현실은, 서방 진영이 과거 향유했던 도덕적 우위와 국제적 정당성이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키쇼어 마부바니(Kishore Mahbubani)가 예리하게 비판했듯, 전 세계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글로벌 사우스(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남시아 등) 국가들은 이제 미국과 유럽의 위선적인 이중 잣대에 극도의 환멸을 느끼고 서방 질서에서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는 러시아의 주권 침해와 민간인 살상을 강력히 규탄하면서도, 가자 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민간인 학살(우크라이나 사망자의 수 배에 달하는 규모)에 대해서는 무기 지원을 계속하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노골적인 이중 잣대는 서방이 주창해 온 '규칙 기반 질서'의 도덕적 기반을 붕괴시켰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러시아와 중국의 손을 잡고 서방의 제재망을 무력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이나 이스라엘-이란 분쟁 등에서 미국의 친이스라엘/친서방 군사 노선에 동조하여 파병을 단행한다면, 한국은 스스로 글로벌 사우스의 눈에 '위선적인 서방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각인될 것이다.
자원 부국이자 거대한 신흥 시장인 글로벌 사우스의 협력 없이 한국 경제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도덕적 명분조차 상실한 미국의 중동 분쟁에 뛰어드는 것은,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외교적 고립만을 자초할 뿐이다.
김승련 논설위원의 '보은 외교' 담론은 한국이 직면한 복합적인 안보 및 경제적 딜레마의 원인을 오직 과거의 역사적 채무 관계로 환원하고, 이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미국에 대한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순응을 제시하는 심각한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앞서 국제정치, 안보, 지경학적 관점에서 면밀히 논증했듯, 현대의 냉혹한 구조적 현실은 약소국과 중견국에게 감상적인 동맹주의를 전면 폐기하고 차가운 현실주의에 입각한 생존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다음과 같은 대안적 국가 대전략을 시급히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다극화 시대에 중견국이 살아남기 위한 가장 교과서적이고 효과적인 생존 전략은 탄비 마단(Tanvi Madan)이 분석한 인도의 '전략적 다변화' 및 다자준연합 노선이다.
인도는 냉전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소련(러시아),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특정 진영이나 동맹에 완전히 속박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해 왔다. 인도는 철저히 자국의 국익만을 기준 삼아 다양한 파트너들과 사안별로 유연하게 협력하는 다차원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의 지정학적 체급과 협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다. 인도는 이를 지렛대 삼아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값싼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으로 수입하는 등 미국이 금기시하는 행동을 하면서도, 역으로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안보 협력 및 첨단 기술 지원을 이끌어내는 외교적 묘수를 발휘했다.
인도의 지도자들은 하나의 강대국 동맹에 국가의 명운을 온전히 의탁할 경우, 그 동맹국이 언제든 약탈적 성향을 드러낼 때 감수해야 할 착취와 종속의 위험성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역사적 경험을 통해 깊이 깨달았다.
한국 역시 한미동맹이라는 단일 축에 과도하게 편중된 안보 및 경제 의존 구조를 획기적으로 탈피해야 한다. 미국과의 기본 안보 동맹은 억지력 차원에서 유지하되, 중국, 러시아, 아세안, 그리고 중동 국가들과의 경제적, 실용적, 다자적 파트너십을 다변화하여 미국이 한국을 쉽게 강압하거나 방기할 수 없도록 교차적인 지정학적 레버리지를 겹겹이 구축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 살상 무기 지원 요구에 대해서는, 철저히 한국의 핵심 국익(에너지 안보 유지, 한반도 및 역내 평화 관리)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자국민 보호 중심으로 지원 수위를 최소화하는 고도의 '전략적 모호성'과 지연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알렉산더 스투브(Alexander Stubb) 현 핀란드 대통령이 주창한 '가치 기반 현실주의'는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한 한국 외교에 지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로서 인권, 법치, 주권 존중이라는 근본적인 가치를 분명히 수호하면서도, 국가의 이익, 역내 평화, 그리고 생존이 걸린 사활적 문제 앞에서는 자국 국력의 한계를 냉정하게 직시하고, 타협과 균형, 다자간 협력을 추구하는 성숙한 현실주의 전략이다.
한국이 한미동맹이 공유하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자체를 부인하거나 폄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맹의 가치 수호를 명분으로 타국의 분쟁에 군사적으로 깊숙이 개입하여 자국의 생존권과 경제 기반을 송두리째 위협받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위대한 한국의 몫은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한 한반도의 팽팽한 군사적 안정을 관리하고, 역내 분쟁이 핵전쟁이나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완충적 억지력을 발휘하는 데 있다. 타국의 분쟁에 전투 부대를 파병하거나 살상 무기를 투입하는 것은 이러한 위태로운 안정을 우리 손으로 직접 파괴하는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다.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과 동맹에 대한 헌신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약탈적으로 변모하는 시대에, 한국이 가장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는 필립 고든(Philip H. Gordon)과 마라 칼린(Mara Karlin)이 촉구한 '플랜 B'의 수립과 실행이다.
미국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자비롭고 무조건적인 방패'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국가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독자적인 재래식 억지력,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잠재적 핵 억지력 확보에 대한 치밀한 논의와 준비를 하며 국가 역량을 비약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또한, 무기 체계와 방산 공급망을 전적으로 미국에 종속시키는 굴욕적인 관행에서 벗어나, 유럽연합(EU) 국가들, 인도, 호주, 일본, 아세안(ASEAN) 등과 방위 산업 교류 및 기술 협력을 다변화하고, 역내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소다자 협력 네트워크를 두껍게 심화해야 한다.
독자적인 방위 역량과 다층적인 안보 네트워크가 구축될 때, 한국은 비로소 "파병 청구서"를 들이미는 미국의 부당한 '보은' 요구에 당당히 국익의 이름으로 "No"라고 선을 그을 수 있는 온전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은 70년 전의 역사적 채무를 갚기 위한 맹목적인 종교적 서약이 결코 아니며, 철저한 국익의 계산식과 시대적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재조정되어야 하는 이익 기반의 안보 보험에 불과하다.
보험사가 일방적으로 보험료를 천문학적으로 인상하고(관세 보복 및 방위비 갈취), 고객에게 보험사의 다른 빚쟁이들과 대신 싸워달라(호르무즈 파병,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고 요구한다면, 고객은 마땅히 계약 조건을 전면 재검토하고 다른 보험사를 분산 탐색하거나 자체적인 철통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처사다.
동아일보 김승련 논설실장이 전개하는 일련의 '보은 외교' 담론은 한미동맹이 과거 한국에 베푼 70년의 안보적, 경제적 수혜를 갚기 위해, 이제는 한국이 호르무즈 파병이나 우크라이나 분쟁 개입 등 위험천만한 지정학적 십자가를 자발적으로 짊어져야 한다는 지극히 감상적이고 도덕적인 부채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그는 "파병 반대"를 외치는 다수 국민의 상식적인 우려를 무지한 대중들의 말로 깔고서 신중한 국회의원들의 태도를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피하는 비겁함'으로 매도하고, 정치적 리스크를 무릅쓰고 미국의 청구서에 결제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선동한다.
아마 본인은 아무리 미국이 과거만 못하다고 한들 한국이 권위주의 국가들과 붙어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한 미국이 경제-산업-기술의 핵심 중추라는 것은 결코 변치 않을 사실임을 강조하며 자신은 현실주의자지 부채의식이나 의무감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아무리 그러한 위치에 있다고 한들, 현실주의적으로 어차피 미국이 혈맹으로서 일인자로서 동반자로 간다고 한들, 한국의 국제적 역할과 위치를 명분도, 실리도 없는 지금의 전쟁 상황에서 결정을 한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트럼프가 지금 말하는 명분과 실리가 제대로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냥 제정신이 아닌거다.
그렇기에 필자는 김 위원의 주장이 작금의 국제 질서가 겪고 있는 거대한 구조적 지각변동을 철저히 무시한 지극히 위험하고 낭만적이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확실하게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스가 프로젝트나 동북아시아 AI 수도 등의 목표를 위해 미국 정부 및 기업들과의 공조를 위해 한국 정부가 현실적인 선택을 내리게 되더라도 변치 않는다.
적어도 공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신중론을 바탕으로 ‘정부의 선택을 존중하되, 국민들을 잘 설득하자’로 가고 그걸 도와야하지, 이딴 식으로 대중을 깔아뭉개고 국회의원들을 힐난하는 식으로 농간질을 칠 일이 아니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주의 질서를 수호하며 동맹의 번영을 자신의 안보와 동일시하던 과거의 '자비로운 패권국'이 아니다. 자국 우선주의와 극단적인 거래적 호혜성을 앞세워 동맹조차 제로섬 게임의 착취 대상으로 삼는 '약탈적 패권국'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변질된 패권국에게 과거의 은혜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일방적인 군사적 헌신과 정치적 양보를 바치는 것은 국가의 주권과 이익을 무기력하게 헌납하는 자해 행위에 불과하며, 끝없는 추가 양보를 요구받는 '자기 파괴적 유화 정책의 함정'으로 빠져드는 지름길일 뿐이다.
현대전의 복잡한 양상과 강대국들의 암묵적 확전 통제 구조 속에서, 약소국이나 중견국이 강대국의 대리 분쟁에 맹목적으로 연루되는 것은 국가 생존을 즉각적으로 위협하는 치명적인 비대칭적 리스크를 초래한다.
미국은 자국 본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동맹국이 최전선에서 파괴적 타격을 입는 것을 방관하는 살라미 전술을 거리낌 없이 취하고 있다. 1922년 서구 열강의 오만한 개입이 초래한 100년의 중동 분쟁사 가 증명하듯, 명분 없는 남의 전쟁에 국가의 군사력과 정치적 자본을 투입하자는 것은 안보 전략의 제1원칙인 '위협 억지와 국민 생명 보호'를 정면으로 배신하는 무모한 도박이다.
정경분리 원칙이 완전히 붕괴하고 지경학적 무기화가 일상이 된 '정체된 질서' 속에서, 미국에 지정학적 충성을 바친다고 하여 경제적 징벌(고율 관세, 공급망 배제)을 면제받을 수 있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대외 무역 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이 특정 진영의 돌격대를 자처하여 중국, 러시아, 그리고 에너지의 젖줄인 중동 국가들의 전면적인 공급망 보복 리스크를 덮어쓰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경제적 자살 행위와 다름없다.
대한민국 외교는 과거 냉전 시대의 낭만적이고 이분법적인 동맹관에서 벗어나, 실리적 관점에서 최소한의 현실주의적 선택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지금과 같이 동맹이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활용될 때는 더더욱 말이다.
'무서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주저하는 소심한 정치인이 문제라는 김승련 위원의 얄팍한 훈계는 변화된 국제 질서의 작동 원리를 읽어내지 못한 무책임한 감상주의적 수사에 불과하다.
과거의 부채 의식이나 명분에 얽매여 소중한 국익과 안보 자산을 탕진할 것이 아니라, 철저한 손익 계산과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독자적인 억지력을 굳건히 구축하고 국익의 절대적 극대화를 도모하는 것만이, 맹렬하게 다가오는 유라시아 질서의 재편과 혼돈의 시대에 대한민국이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