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이란 이름 뒤에 숨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존재들에게
[이 글은 픽션입니다.]
내 자식이 학교에서 반장에게 속된 말로 찍혔다. 반장은 반 아이들을 통해 교무실의 회초리를 들고와서 때릴 듯 말듯 휘둘렀다고 한다. 또 그에 동조한 아이들이 농구공과 축구공을 눈 앞에서 던져대며 반의 유리창마저 산산조각을 냈다.
우리 아이는 겁에 질려 그 다음 날부터는 집 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나는 당장에 달려가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학교 내에서 평판이 좋던 반장을 지켜주려는 듯이, 계속 미루고 미루었다.
미룰 때마다 나에게 하는 말은 이것이었다.
"반장이랑 반장 부모님과 합의를 하고 오시죠."
당연히 반장과 반장 부모들은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아이가 다치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냐고 한다. 아이를 데려오란다. 공포에 질린 자기 자식을 그 발단이 되는 인간들에게 데리고 가는 미친 부모가 있을까. 나는 못할 짓이라고 생각하여 그만두었다. 그냥 곧장 교육청으로 향해 신고하고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학교 측과 반장의 부모측은 나에 대해 독선적이고 지독한 사람이라며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 분위기를 망치는 짓을 하지 말란다.
그런 말이 발단이 되어 제발 조용히만 있어달라는 다른 부모와 학생들도 튀어나왔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당신 혼자 찬물을 끼얹냐,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고 죽일 듯이 노려본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나오는 말은 가관이다.
"당신 아이는 뭐 잘못 없어? 왕따 당할만 하니까 당했겠지. 우리 반장이 얼마나 똑똑하고 집도 번듯한 집안 애인데. 다친 것도 아니고 그냥 애가 장난 좀 칠 수도 있지, 왜 혼자 호들갑이야?"
참혹했다. 우리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 뒤였는데, 이 문제가 본인들의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아이에게 듣기로는 자기 말고도 당한 애들이 꽤나 여럿있다고 했다.
근데 어째서 그 당했다는 애들의 부모들도 내 앞에서 눈깔을 부라리고 있을까. 우리 애 고3인데...라며 잔뜩 성이 나있다. 헛웃음이 나오다가도 눈시울이 뜨거워져 기침으로 이어졌다.
난 이것을 언론에 제보했다. 내 목소리로는 감당이 안 되었기에 힘을 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의 목소리는 아무리 언성을 높인들 바닥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나약했으니까.
열심히 인터뷰에 응하고 우리 아이의 사정을 설명했다. 우리 가족이 처한 상황도 토로했다. 오늘 단독으로 신문에 우리 가족과 학교 이야기가 실렸다.
흔해빠진 말로, 눈물이 앞을 가려서 읽다가 덮어버렸다.
"...제보자는 자녀가 상대방으로 부터 끔찍한 학교 폭력을 당하여 일상 생활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상대 부모 측은 '끔찍한' 학교 폭력이란 명백한 허위 사실이며, 자신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이에게 위해를 가한 증거는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제보자가 지속적으로 협의 과정에 임하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음해가 지속될 경우 강력 대응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주변인들의 말에 따르면, 평소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OO 학생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본교 내에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신속히 양측의 협의가 이루어지길 당부하였다."
그날은 하루종일 구역질만 했다. 그 기사의 아래에서는 이미 사람들의 인민재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평판을 보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쪽도 문제가 명백해 보인다느니, 가해자라고 하지만 실제로 피해도 없는 듯 한데 마녀사냥하는 거 아니냐느니, 이래서 미꾸라지 한마리가 물 흐린다는 말이 나온다느니...
우리 가족을 옹호하는 댓글도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에 대댓글에 대대댓글에 싸움이 이어지다가 의미없이 끝맺었다. 이미 그곳에서 우리 아이, 우리 가족은 '원래 좀 이상했던 사람'이었다.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이제 교육청에서 열릴 학교폭력심의에 마지막 기대를 걸어보고자 했다. 여러가지 말은 많았어도 그동안 다른 학교에서 문제가 있었던 일들이 잘 처리되었다는 말을 듣고 기다렸다. 어차피 돌아가는 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면, 지금까지 모아둔 증거들과 용기를 내준 친구들의 증언을 제출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그렇게 일이 진행되었고, 심의 결과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아 안심했다. 이제 결과만을 기다리면 되겠다 안도했다.
그런데 교육청에 반장과 반장부모가 자기들에게 동조한 사람들에게 학교 평판을 떨어뜨리고 주변 집값 망치는 저 인간들 잡아내라고 소리치며 쳐들어왔다. 너무 말도 안되는 상황에 교육청 사람들과 우리 가족은 모두 당황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 측에 이에 대해 항의를 했더니 "그러니까 진작에 원만하게 합의를 잘 하시라니까... 그쪽도 지금 상황에 대해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저희는 양측 부모님들 사이에서 '중립'적으로 대응해야만 하는 입장입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언론에도 항의했다. 언론에서는 "팩트체크를 확실하게 해야하는 언론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최대한 '중립'적으로 사안을 다루어야만 한다. 양측의 견해를 다 받아 보도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고, 그것에 대한 결론을 내는 것은 교육청이나 법원이 할 일이다. 우리 언론은 자의적일 수 있는 가치판단을 지양한다."라는 원론적인 대답을 했다.
이 사건이 뉴스에 나자 댓글에는 교육청 원래 항상 일을 x같이 하는 걸로 유명하다며 얼마나 부당한 일을 겪었으면 저렇게 멀끔한 사람들이 이런 일을 벌이냐고 안타까워했다.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