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회상

<애프터썬>

by 무딘날

영화 <애프터썬 After Sun>을 보고 나서, 20대 초반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해 보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들이 은연중에 마음속에 묵혀있던 것일지, 아니면 이 영화 속 아버지의 모습을 반추하며 깨달은 것일지는 모르겠다만.


같은 하늘 아래에서 우린 그때 왜 그렇게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까. 같은 장소에서 다른 상황을 살아가던 나와 아버지의 모습은 엄청 가까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멀고도 험했다. 내 고집만 부리려다 보고도 모른 척하기도 했고, 정말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의 지직거림과 같이, 지금에 와서야 섬광처럼 번뜩이는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그 테이프가 다 끊기고 돌아보지 못할 때가 다 되어서야 잔여물처럼 내 안에 맴돈다. 노이즈로 흩뜨려 퍼진다.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젠 희미해져 상상만 하게 되는 지금의 내게는 더 진하게 사무친다. 어릴 적 나를 찍기를 좋아하던 아버지의 비디오카메라를 들여다보면 아버지의 시선을 돌이킬 수 있을까. 정작 그 시선 속에 아버지는 없었던 것 같아 나의 시선을 되짚어보지만,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촬영을 멈추기로 하고 까맣게 남겨진 브라운관 위에 언뜻 비치는 영화 속 부녀의 모습처럼, 앞으로 잊힐 일 밖에 없는 우리의 기억은 그 바깥에서 희미하게 채워져 가겠지. 제발 그 순간들이 모호하면서도 가장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이 영화의 장면들처럼.


엄청난 적막으로만 가득 채워지기도 하고, 그 적막을 넘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칠흑 틈바구니에서 폭력적인 파도 소리가 우리를 때리기도 하고. 그러한 적막의 혼잡 속에서 나의 기억도 엉크러져 갈 것이다. 아마도, 혹은 분명히. 그런 마음 때문일지, 왠지 모를 적막감에 잠겨서 새해를 맞이한다.


올해는 아버지에게 부탁하지 않고, 내 뜻대로 내 힘으로 잘해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장사의 기본, '근본'과 '곁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