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달 전쯤, 신랑은 안과 질환 관련 수술을 했다.
전신마취였고 수술시간만 3시간 넘게 걸린, 어떻게 보면 인생에 있어서 나름의 대수술.
수술 경과는 아직도 지켜보는 중이고, 이미 한쪽 눈에 생긴 장애는 되돌릴 수 없는 상태다.
신랑이 유달리 참을성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큰 수술을 겪고 나니 그 기복 없는 성향이 더욱더 체감되는 바.
결국 아니길 바랐던 병명을 진단받았던 날엔 나는 급하게 회사도 조퇴하고 부랴부랴 타 지역까지 달려갔더랬다.
암에 걸린 아버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터라 이런 심각한 병명을 진단받았을 때 당사자의 낙심과 우울감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신랑은 허허 웃으며 뭐 하러 여기까지 왔냐고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날도 평소처럼 같이 밥을 먹고 곧 있을 수술이라던가 그것 말고도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다가 별일도 없이 잠이 들어버렸다.
엥, 원래 이런 건가?
별스럽지 않은 게 당연히 더 낫겠지만 결국 나만 이렇게 호들갑스러웠던 건가 싶어서.
수술 당일에도, 수술을 마치고 나와서 회복할 때에도 신랑은 그 흔한 불평불만 하나 없었더랬다.
분명한 신체의 장애를 얻게 된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불행을 지레 예측하지 않았고 현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았다.
평소와 똑같이 웃고, 장난치고. 맛있는 것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그의 의연함에 나는 그를 가엾게 보거나 동정할 틈조차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이로움을 느꼈달까.
물론 그의 덤덤함 속에는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음을 안다.
사실 일상생활은 다 할 수 있으니 구태여 엄살을 피우며 챙김 받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인 것도 안다.
심각하게 생각해 봤자 해결되는 것이 없으니 그저 일상에 충실하기로 한 그의 현실적인 성격임을 안다.
사실 무던한 건 내가 아니라 신랑인데,
나도 이런 시련에 무딜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작가명을 이렇게 지었는데.
따라가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