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군대 간 남자친구에게 내내 편지를 쓰던 스무 살 남짓의 내가 있다.
화려한 디자인이 들어간 편지지에 편지봉투는 꼭 일곱 가지 무지개 색깔.
그래야 일기처럼 매일 편지를 써서 일주일치를 한꺼번에 보낼 수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엄청 애틋해서 소위 뭐 죽고 못 사는 사이로 보일 수도 있는데
정작 그때의 나는 학점관리, 토익점수 높이기, 자격증 취득하기 등 각종 취업준비로 바빴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바쁘면 편지 정도는 소홀히 할 법도 한데 그때의 나에게는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곰신'도 하나의 역할값이었던 게 분명하다.
내 남자친구는 군대를 갔고, 나는 곰신이니까 편지를 꼬박꼬박 보내야 해, 와 같은.
그때도 글 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편지를 쓰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웠던 까닭에 곰신 여자친구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반대로 부대 안.
지금처럼 핸드폰 사용은커녕 전화카드로 공중전화만 간신히 가능하던 그 시절의 남자친구가 있다.
(구 남자친구, 현 신랑)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의 군인이니, 많은 통제와 금지가 있었을 시절이다.
까까머리를 한 채로 생활관 바닥에 엎드려서(아마 침대 같은 건 없었을 거다) 꼬물꼬물 열심히 답장을 썼겠지.
그때 남자친구의 나이가 스무한 살, 두 살 정도였을 걸 떠올리니 몹시 귀엽고 사랑스러워지는바.
지금의 신랑을 보면 나처럼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거나 답장 쓰는 것에 흥미를 느끼거나 할 타입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아마 그때의 남자친구 역시 '여자친구를 홀로 두고 군대에 입대한 남자친구'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던 게 분명하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오랜 시간 신랑을 지켜보니 성실성 하나는 정말 누구 못지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무려 군대까지 기다린, 장수커플이 가능한 이유는 역시 별다른 건 없는 것 같다.
성실함, 책임감.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서로 비슷한 비율로 내재하고 있는 성향정도랄까.
지금 우리 집 수납장에 고이 보관하고 있는 백여 통의 편지들. 결혼할 때 혼수로 잘 챙겨 왔으니 오래오래 간직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