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 일도 아니었던 그 사소한 사건들이 결혼초엔 나를 이해심도 없는 옹졸한 아내로 만들어버렸더랬다. 누구보다 쿨하게 모든 것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잔소리나 간섭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던 야무진 포부를 갖고 결혼한 나에게 말이다.
사건 1, 게임 좋아하는 신랑.
나는 신랑을 스무 살 때부터 만났다. 생각해보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대학교 저학년의 학생이, 곧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불려 갈 날이 머지않은 청춘의 학생이 당시 대유행이었던 pc방에 청소년 때부터 물들지 않았더라면 그게 더 이상했을 그런 시절.
그래서 나는 연애시절 pc방 아르바이트까지 했던 신랑이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였을까.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란히 티브이를 보고 있다가 말없이 홀연히 방으로 들어가 버린 신랑에게 서운해져 버린 것은. 내가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계속 같이 봐주실 바랬는데. 나란히 앉아서 오손도손 얘기도 하고 싶었는데. 왜 말도 없이 들어가 버리지? 지금 나 무시한 건가? 그 바람에 울컥 화를 냈더니 도리어 당황한 것은 신랑이었다. 게임하러 방에 들어갔단다. 그게 그렇게 보고씩이나 해야 될 일이었냐고.
결혼 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종종 이렇게 묻던 나였다.
결혼해도 자신만의 시간 있어? 같은 집 안에 있어도 각자 하고 싶은 일 하고 지낼 수 있는 거지?
누구보다 개인의 독립적인 사생활을 가장 보장받고 싶어 하던 나였는데. 왜 자가당착에 빠져버렸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이기적이었던 거다. 나의 독립적인 시간도 보장받아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은 신랑도 무조건 함께 할 것이라고 믿었던 막연한 이기심.
1년이 지난 지금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집안 영역에서 본인이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긴다. 가끔씩 소리를 내어 묻거나 얼굴을 빼꼼히 내밀어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반드시 신랑이 같이 좋아해야 할 의무는 없으며 내가 하는 행위를 반드시 신랑이 같이 해줘야 할 의무도 없다. 그 반대도 물론 마찬가지이고. 이 단순한 원리를 연애하는 12년 동안 완벽히 연마했다 생각했던 나의 자만심이 초래한 결혼 초의 첫 번째 굴욕.
사건 2, 집안일 독박쓰는 아내.
나는 주로 6시에 퇴근하는 편이지만 신랑은 업무량에 따라 퇴근시간이 매우 유동적이다. 일이 많을 땐 11시까지 못 들어올 때도 있고.
맞벌이 부부로서 나는 집안일은 공평하게 나눠서 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흔히들 언론에서 말하는 독박 가사, 독박 육아 이런 게 너무 싫었다. 일종의 강박이었는지 오늘은 내가 이만큼 집안일했으면 내일은 신랑이 이만큼 집안일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게 어떻게 그리 자로 잰 것처럼 공평하랴. 간단한 청소, 빨래, 집안 정리 등 매일매일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들은 늘 먼저 퇴근하는 나의 몫이었다.
그래서 기어코 한 번은 터지고 말았다. 회사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들어온 날, 어김없이 치워야 할 집안의 잔해들이 눈앞에 보였던 날. 일단 나는 술을 꺼냈다. 안주도 잔뜩 꺼냈다. 한참이나 실컷 먹고 마셨다. 그리고 보란 듯이 마음껏 어질렀다. 일종의 객기였다. 그 후엔 서럽게 신랑에게 연락했다.
왜 맨날 나만 치워야 돼? 나도 실컷 어질러 놓고 잘 거니까 늦게 들어오더라도 어디 다 치워놔 봐!
다음 날 아침, 눈 비비고 일어나 마주한 집안이 너무나도 말끔해 도리어 머쓱했다는 후문.
집안일을 반반 나눠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그 얼마나 단순했던가. 1년이 지난 지금은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상대적으로 평일 저녁 시간이 여유로운 나는 말 그대로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자잘한 청소, 빨래, 집 안정리를 담당하고 주말은 무조건 쉬는 신랑은 청소기 돌리기, 화장실 청소, 쓰레기 버리기를 비롯한 각종 메인 요리 담당으로.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싸운 적 없어? 예, 싸운 적 없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결혼 생활에 적응이 느렸던 초보 아내의 조바심에서 비롯된 부끄럽고 옹졸한 굴욕담이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