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확히 13년째 장롱면허였다.
스무 살 때 만난 신랑이 군대에 가있는 동안, 열심히 운전면허학원에 다녔고 단번에 합격했다. 그런데 그게 운전대를 잡아본 마지막이 될 줄이야.
직장으로의 이동거리상 어쩔 수 없이, 나는 서른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운전대를 다시 쥐게 되었다. 그리고 급히 배움을 요청할 사람은 당연히 신랑밖에 없었고.
주말에 나 운전 연수 좀 도와달라고.
그 말을 들은 신랑은 속으로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흔쾌히 대답해주었던 것으로 남아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정말 흔쾌히, 였을까 의문이 들긴 하지만.
사실 나도 들은 게 들은지라 신랑에게 제대로 연수를 받을 수 있을지, 서로 감정이 상해 싸우고 들어오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었다. 무엇보다 운전이 너무나 두려운 나 자신이 제일 걱정이었고. 겁이 많고 소심한 편인지라 여태껏 운전대를 잡아야 할 상황이 생기면 일부러라도 요리조리 피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나도 나 자신이 못 미더운데 신랑은 오죽했으랴.
하지만 신랑의 유난히 기복 없는 성격은 조마조마해서 어쩔 줄 몰라 혼자 우당탕거리고 있는 부인의 운전 연수중에서도 십분 발휘되었으니.(여기에서 기복 없는 성격이란 차분하고 조용한 편이기보다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성향이 꾸준하게 유지되는 느낌으로, 크게 화가 나지도 않고 크게 우울감에 빠지지도 않는 중도의 성격을 말한다.)
신랑은 초보운전 차량의 동승자로서 한치의 불안함도 보이지 않은 채 침착하게 나의 운전 연수를 도와주었고 나 역시 어설펐지만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며 첫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신랑은 놀랍게도 그 흔한 조수석 창문 위에 달린 보조 손잡이를 부여잡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더랬다.
연애할 때부터 늘 그런 편이었다. 장난이나 농담을 치더라도 항상 적정한 수위를 지킬 줄 알며 상대가 진심으로 상처 받을 법한 말은 절대로 꺼내지 않는. 그러고 보니 나는 신랑에게 한 번도 한심하다, 왜 그렇게 하냐, 왜 그 모양이냐, 라는 식의 비난의 말은 들은 전혀 기억이 없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신랑이 도와준 운전연수도 평화롭게 마무리될 수 있었고.
근 1년이 지난 지금 내가 운전하는 차를 가끔씩 얻어 타고나면 신랑은 내가 주차까지 다 마치고 나서야 지적이라기보단 넌지시 어떠한 점이 좀 위험해 보였다고 조언을 해주곤 한다.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서툴지만 그래서 여전히 성장해가는 모양이다.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