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암 진단을 받았던 아버지가 지난달인 6월, 육체의 고통을 끝내고 영면하셨다.
5개월간의 투병은 가족 모두에게 갑작스럽고 두려웠으며, 힘겹고 버거울 정도로 슬픈 시간이었다.
삼십 대에 불현듯 찾아온 거센 폭풍 같았던 시간.
가족 중에 시급을 다투는 환자가 생긴다는 것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병원을 선택하고 의사를 선택하고 치료 방법을 선택하고.
갑자기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씩씩한 장녀였던 나는 사실은 그게 좀 버거웠다.
그런 나를 늘 안쓰럽게 지켜보던 신랑은 언제나 나를 다독여주었더랬다.
선택하지 못한 방법에 대한 후회는 하지 말라고, 어차피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으니 이미 선택한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그 당시에는 어쩐지 방관자처럼 서운히 느껴졌던 그 말들이 도리어 이제야 위로로 닿는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난 뒤 필연적으로 밀려오는 후회가 나의 일상을 삼키지 않도록.
어쩔 수 없었다는 방어적 합리화가 아닌 정말로 고군분투하며 최선을 다하였다는 위안으로 남을 수 있도록.
신랑은 거창한 말보다는 늘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환자였던 아버지를 묵묵히 병원에 모시고 갈 때에도, 철없이 하소연하던 나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어줄 때에도,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상실감에 젖어있는 나의 어머니에게 좋은 곳을 보여드리고 맛있는 것을 드실 수 있게 했을 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정에서는 언제나처럼 밝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늘 나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어떨 땐 나이에 비해 넘치도록 어른스럽다가도 어떨 땐 나이보다도 훨씬 소년 같은 매력으로 나를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필히 아버지가 늘 마음 쓰여하고 사랑했던 첫째 딸을 위해 남겨주고 가신 선물일 것이다.
덕분에 나는 평생의 업보인 그리움을 마음 한편에 고이 놔둔 채 웃고 떠드는 일상으로 복귀한다.
이 글이 유난스럽다고 비난해도 좋다.
낯간지러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글의 부제를 나의 반려자에 대한 예찬, 이라고 붙이고 싶기에.
오늘도 나의 하루를 살아내게 하는 그에게 정작 본인은 모를 애정 어린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