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과 나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당시에는 서로를 전혀 몰랐다.
사람 인연이 참 신기한 게, 우린 서로를 몰랐는데 내 주변 친구들은 신랑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신랑 주변의 친구들 역시 내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훗날 성인이 되어 우리 둘이 사귄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인들이 놀라워하는 반응도 꽤 재밌었던 기억.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남녀합반은 아니었기에 건물 밖으로 오가는 등하굣길, 체육대회, 구내식당, 매점 정도에서나 남학생과 여학생이 서로를 마주칠 수 있었다.
그중에는 남자아이들과 또는 남자 선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동성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편하고 재미있는 딱 그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더랬다.
신랑도 비슷했던 것 같다. 또래의 남자아이들과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밤새 게임을 하고 공부나 운동 같은 야외활동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다만 그런 신랑의 반전이라고 하면 무려 고등학교에서 관악부, 그것도 플루트를 부는 남자였다는 것.
이 시골 소도시에서 플루트를 연주할 줄 아는 남자라니. 그것도 다른 악기들과 함께 합주 공연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이라니.
고등학교 땐 관악부 공연이 어느 행사에나 있었다.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 학교 행사 때는 물론이거니와 시내의 모든 고등학교가 모여 함께 치르는 연합 체육대회라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관악부 단독 콘서트, 같은 곳에서도.
나를 비롯한 우리들은 매우 당연하게 그런 곳에 종종 동원되곤 했다. 무대와 아주 먼 곳에 앉아 옆자리 친구들과 소곤소곤 수다를 떨거나 곡명은 모르지만 어딘가 익숙한 클래식의 연주를 들으며 단잠에 빠지곤 했던.
그땐 정말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다 또 어느 순간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던 그 순간에,
그 앞에서는 나의 미래의 남편이 몇 달을 보내가며 연습했을 혼신의 합주 무대를 펼치고 있었을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냔 말이다.
신랑 역시 그 무대를 보러 온 학교 후배들 중에 당시엔 존재도 몰랐던 미래의 배우자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고.
그럴 줄 알았더라면 공연을 좀 더 유심히 볼 걸, 졸지 말고 열심히 경청할 걸 하는 후회를 가볍게 한 적도 있었다. 어차피 결혼할 운명이었다면 서로 교복을 입었던 그 풋풋한 시절부터 연애를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고. 두발 제한이 있던 시절이라 까까머리의 어린 모습을 한 신랑을 공유하고 싶은 욕심도 너무나 났기에.
하지만 서로를 전혀 모르면서도 그 어린 시절, 의도하지 않게 같은 공간에 종종 함께 있었다는 그 뒤늦은 사실이 나에게는 좀 더 운명적이고 영화 같은 청춘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우르르 몰려나오던 하굣길을 나란히 걸었을지도 모르고, 앞다투어 간식 계산을 하던 매점에서 어깨를 부딪쳤을지도 모른다. 구내식당에서 줄을 서서 점심 배식을 할 때 앞뒤로 식판을 들고 서 있었을지도 모르고,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앞서 학교 근처 분식집에서 삼삼오오 모여 저녁을 사 먹을 때 옆 테이블에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해 우리는'이라는 드라마를 보니 나와 신랑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지만 사실 우리는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서로의 학창 시절을 치열하게 공유한 사이는 아니다.
다만 마치 드라마에서의 우연처럼 우리도 나름 그랬었지,라고 풋풋한 상상을 하며 싱그러운 기분에 잠시 젖어보는 것뿐.
결과적으로 그게 필연이었나,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