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 같아서 사실 주변에 말해본 적도 없다.
내가 첫눈에 반한 당사자인 신랑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은 하지도 말라고 손사래를 치며 나에게는 분명 그렇게 느껴졌던 20대의 본인의 모습을 부정하니 도리어 내가 더 머쓱해질 따름이고.
나는 정말 진심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그때의 그를 정말 가슴 벅차게 좋아했는데.
얼굴이 잘생겨야 첫눈에 반하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땐 신입생들이 선배들에게 밥을 사달라 조르며 얻어먹고 선배들은 신입생 누구에게 밥 사달라는 연락 왔다며 내심 인기의 척도를 가늠하는 그런 친목 다짐이 관례이던 시절이었다.
나는 동기 중 누군가가 당시 학부 선배였던 신랑에게 밥을 사주겠다는 승낙을 얻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곁다리로 따라가 우연히 그를 만난 경우였고.
첫 만남. 대학가의 어느 오래된 철판볶음밥 집. 그날따라 손님이 있는 테이블은 우리밖에 없었고 엄마의 뾰족구두를 처음 빌려 신고 나온 나는 내내 발끝이 아팠다.
그런데 구두 속에 구겨진 발가락을 불편스레 꼼지락거리던 나는 어느샌가 아픔을 잊고 그의 이야기와 유머에 웃고 있었더랬다. 소위 요즘 말로 하면 밥을 먹는 내내 빵빵 터졌달까.
그가 특별히 나에게만 말을 거는 것도 아니었고 그는 그저 이런 자리에 처음 나온 후배들이 어색할까 봐 제 딴에는 나름 고심해서 준비했을 대화와 화제들을 던졌던 것뿐이었겠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과 살갑게 마음을 트길 어려워하던 나였는데 그날은 정말 이상했다. 그때의 나는 어느 자리에서나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 주뼛거리는 타입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만큼은,
모든 것이 좋았다.
거리에 나와 모두와 헤어지고 집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 나는 좀 멍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내 설레는 마음을 알았다. 좋아하게 되어버렸다고.
잘생기지도, 근사한 옷을 입지도 않았지만 웃는 게 밝고 대화에 자신감이 넘쳤으며 여유 있어 보이던 그의 모습에.
6개월 뒤면 군에 입대할 남자를, 그리고 같은 학부 그것도 한 학번 선배와는 캠퍼스 커플은 하는 게 아니라는 그 모든 금기를 깨고 마음 가는 대로 움직여버린 용감했던 그 시절의 나.
+ )
사실 그게 첫 만남은 아니었는데. 신입생답게 노란색 폴로 피케셔츠를 입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채 나간 날이 있었다. 선배들과의 오리엔테이션 비슷한 술자리.
술에 익숙지 않았던 그때의 나에게 누군가 자신이 나의 고등학교 선배라며 다가왔던 순간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삼 학년 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학우의 사촌오빠라고.(믿기 어렵겠지만 그런 인연도 있었다, 신랑과 나.)
술에 취해 어지럽고 몽롱해서 그의 얼굴도 목소리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잔상이 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술집에서 그와 함께 마주 앉았던 투박한 테이블 모양, 그리고 노르스름했던 조명 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