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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맛, 회령손만두국

조PD의 맛있는 이야기

by 조승연 PD


주인공이 고구마를 먹으며 눈물을 흘린다. 허영만 선생님의 [식객-고구마 편] 마지막 컷이다. 연재 중단까지 고민할 정도로 반응이 없었던 [식객]을 일으킨 에피소드다. 만화 식객 에피소드를 달달 외울 정도였던 나는 이 컷에 공감하지 못했다. '뭐 음식에 눈물까지 흘리냐'. 음식에 감동받아 우는 영화나 드라마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유 오버다. 저건'. 맛있으면 웃음이 나와야지 왜 눈물이 나올까. 그러던 내가 울었다. 만두를 먹으면서. 양평의 [회령손만두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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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에서 알 수 있듯이 경기도 양평의 '회령손만두'는 함경도 출신 할머니의 손맛이 대물림되고 있는 식당이다. 메뉴도 만둣국, 만두전골, 만두 뚝배기에 녹두 빈대떡이 전부. 양평의 숨겨진 맛집이었는데, 백반기행을 제작할 때 오토바이 라이더들의 도움으로 알게 되었다. 숨은 맛집의 정보력은 현장을 누비는 라이더들이 최강이다. 촬영은 했지만 '회령손만두'의 음식을 먹어보지는 못해 늘 아쉬웠다. 촬영 영상 속의 '회령손만두' 만둣국은 깔끔했다. 맑은 고깃국물속에 동동 떠있는 만두 다섯 알이 전부인 만둣국. 꾸밈도 치장도 없는 순수한 한 그릇이 영상 속에 있었다. '오, 저 집 진짜인데'. 느낌이 왔다. 그리고 6년이 흐른 후에 드디어 만났다.

KakaoTalk_Photo_2025-04-02-21-44-23 008.jpeg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방송 화면


회령손만두의 유명한 만둣국을 만나기 전에 밑반찬과 먼저 조우했다. 아! 만나기 힘든 '쩡한 맛'의 물김치가 한 사발 턱 하고 놓인다. 깍둑 썰지 않고 무를 토막 내 김장한 이북식 깍두기도 함께. 물김치와 깍두기만으로도 만둣국에 대한 기대치가 머리꼭지까지 차온다. 멀리 양평 용문읍까지 온 차비가 물김치와 깍두기만으로 다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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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둣국!! 한 입 크기의 만두가 따뜻한 육수에 담겨 있다. 평양냉면이 보여주는 슴슴한 외모가 회령손만두의 만둣국에서도 보인다. '어디 맛을 보자.. 어라.. 뭐야 이거..'. 육수 머금은 만두피가 품고 있던 만두소가 입안에 슴슴하게 퍼진다. 두부와 돼지고기 숙주에 씻은 김치가 버무려진 은은한 맛. 담백함과 감칠맛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절묘하게 서 있는 균형감. 입을 지나 혀를 거쳐 먹먹한 무언가가 가슴에 차 오른다. "여보, 왜 그래? 왜 눈이 촉촉해? 당신 울어?". 맞다. 내가 울고 있다. 다시는 못 만나리라 생각했던 외할머니의 만두가 지금 내 입 안에 있다.




만두는 북한 음식이다. 일제강점기 개량밀이 전파되기 전 서울 이남 지방에서 밀은 귀한 식재료였다. 밀 농사가 비교적 성행했던 이북 지역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전파된 만두가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1978년 문화공보부는 [전통향토음식조사연구보고서]를 발간하여 각 지방의 대표음식을 발표했다. 이 중 만두가 전통 향토음식에 포함된 지역은 총 5군데였다. 함경도의 감자 막가리 만두(감자전분 만두피 만두), 평안도의 굴린 만두와 평양 만둣국, 제주도의 메밀만두, 서울의 메밀만두, 생치만두(꿩만두)와 편수, 경기도의 개성편수가 전통향토음식이라고 국가 기관에서 인정한 것이다.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는 만두가 전통음식에 포함되지 않았다. 얼마 전에 만난 전라북도 출신 선배도 "난 만두를 대학에 가서나 먹어봤다. 명절 때도 만두를 먹어본 적이 없어"라고 하니, 만두가 남쪽 지방의 전통 음식이 아님은 분명하다. 덕분에 우리는 만두에 관련된 몇몇 고유명사를 얻게 되었다. 이북 손만두, 평양 왕만두, 개성 편수 등등. 만두의 대표적 수식어는 죄다 북쪽 지명이다.

KakaoTalk_Photo_2025-04-02-22-12-42.jpeg 포자 만두. 발효된 만두피를 쓴다


외할머니는 평양이 고향이다. 전쟁을 피해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충주에 자리를 잡은 외할머니는 곱디고왔다. 외모도, 행동도, 말투도 내가 아는 한 외할머니의 것들이 가장 고왔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처음 본 사람이 고운 외할머니였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평양에서 산부인과 간호사였던 외할머니는 나를 외갓집에서 직접 받아주셨다. 큰 머리가 빠져나오지 못해 네 엄마 죽일 뻔했다며 호호호 웃던 외할머니의 웃음은 참 시원했다. 양조장을 했던 외가댁은 충주의 적산가옥이었다. 일본식 다다미방이 그대로 살아있던 외가댁의 여름은 외할머니의 웃음을 닮아 정갈하고 시원했다.


여름이면 적산가옥 마당 귀퉁이에 항아리를 묻고 포도주도 직접 담그셨다. 포도를 켜켜이 쌓고 설탕을 솔솔 뿌려 놓은 항아리에 과즙이 차오르면 큰 손자를 부르셨다. “승연이 포도 주스 맛 좀 볼래”. 새콤한 보라색 과즙이 입 안에서 달콤한 춤을 춘다. “어떠니 맛있지? 호호호”. 너무 달달해요 외할머니. 근데 이제는 단술보다는 푹 익은 쓴술을 자주 먹네요.


외할아버지가 사업을 말아 드신 덕분에 외갓집은 충주 외각 달천리의 조그만 한옥집으로 이사를 했다. 적산가옥의 수세식 화장실이 푸세식 화장실로, 타일로 꾸며진 신식 부엌이 아궁이 때는 입식 부엌으로 바꼈다. 외갓집에 가는 계절도 변했다. 좁은 시골집 방은 적산가옥의 다다미 방보다 더웠고, 자연스레 외갓집을 찾는 계절은 여름에서 겨울로 바뀌었다. 아궁이 불로 뜨뜻해진 아랫목에서 뒹굴거리면 부엌과 이어진 쪽문이 열린다. "큰손자 만둣국 먹자. 호호호".


교자상에 만둣국, 김치, 분홍 소시지, 조기 한 마리, 동치미, 조선간장 한 종지가 놓여있다. 젓가락은 고민 없이 분홍 소시지를 향한다. 초등학생 입맛에 분홍 소시지를 이길 수 있는 반찬은 몇 없다. "외할머니 만두도 먹어보라. 입맛에 맛을 지는 모르겠네. 호호호". 사골 국물에 담겨있는 만두 하나를 베어 문다. 슴슴하다. 아니 초등학생 입맛에는 심심하다. 조선간장에 찍어 먹으니 간이 맞는 것도 같다. 만두 속이 하얗다. "외할머니 좀 싱거운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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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식 만두의 특징이 뭐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다. "글쎄.. 슴슴해".

외할머니 만두소는 돼지고기, 두부, 숙주, 씻어낸 김치가 전부였다. 돼지고기는 갈아서 반드시 볶아서 썼다. 애호박이나 부추도 넣지 않았다. 이게 평양 만두의 특징이다. 돼지고기를 익혀서 넣고, 단맛이 나는 채소도 넣지 않는다. 맛이 슴슴할 수밖에 없다.

"엄마 북한 만두에는 애호박이나 부추가 안 들어가는 게 맞죠?". 얼마 전 어머니 만두를 먹으며 여쭤봤다.

"얘, 만두란게 겨울에 먹던 음식인데 뭐 넣을 게 있었겠니. 추울 때 구할 수 있는 재료만 있으면 감사했지". "아하".

최소한의 재료로 맛을 내려면 정성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어머니는 두부 물기 뺄 때 가장 신경을 쓴다. 베 보자기에 두부를 으깨 손으로 물기를 짜내면서 늘 읊조리신다. "이 정도면 됐나..?". 두부 물기가 너무 빠지면 퍽퍽해지고, 덜 빠지면 질척해진다고 수십 년을 걱정이시다.


평양냉면과 평양만두의 공통점은 중독성이다. 이건 뭔 맛이지라고 뒤돌아선 후 머릿속을 뱅뱅 맴돌게 되는 슴슴한 맛의 중독성.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겨울 방학이면 외가댁에서 평양식 만두를 먹었다. 담백함과 슴슴함 사이 어딘가에 곱게 자리 잡은 외할머니의 만두는 겨울 손님인 큰 손자를 언제나 맞아 주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집에 오니 외할머니가 계셨다. "치매 셔". 기억이 사라진 외할머니도 고왔다. 고집도 없으시고, 식탐도 없으셨다. 방 한편에서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면 환한 미소를 지어 주셨다. 그뿐이었다.


하루는 집에 나와 외할머니 둘만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외출을 하며 외할머니 식사 잘 챙겨드리라며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늘 받아만 먹던 내가 외할머니를? "만두 쪄놓은 거 육수에 넣고 끓여서 내어 드려. 반찬은 식탁에 다 차려놨어". 그래 모처럼 효도(?) 한번 하자.

"외할머니 식사하셔야죠".

"아니에요. 내가 챙겨줘야죠. 어떻게 하나. 내가 차려줘야 하는데".

외할머니는 평생 남자에게 밥상을 받아보신 적이 없었다. 사라진 기억 속에서도 남자에게 밥상을 차려줘야만 했다. "내가 밥을 차려야 되는데. 내가 해야 되는데". 나는 외할머니를 챙길 단 한 번의 기회도 가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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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회령손만두국]의 만둣국은 단순하다. 갈색 고깃국에 담긴 하얀 만두 다섯 알. 그 위에 뿌려진 파 십여 쪽이 전부다. 절묘하다. [회령손만두국]의 만두는 슴슴하고 곱다. 모나거나 튀는 맛이 없이 소담한 맛이 하얀 밀가루 피 속에 곱게 싸여있다. 이 맛을 화려한 고명과 국물로 치장함은 어리석은 짓이다. 간간한 고깃국물과 알싸한 파 몇 쪽이면 충분하다. 여기에 쩡한 물김치까지. 고운 만두맛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조합이다. 그래서 외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담백함과 슴슴함 사이 어딘가에 있었던 곱디고왔던 외할머니의 맛. 김치 양념마저도 맑게 씻어낸 무자극의 맛. 뒤돌아 서면 기억나는 중독의 맛. 33년 만에 만난 그리운 외할머니의 맛.


외할머니는 식사 후에 늘 신문을 읽으셨다. 신문을 읽다 졸리면 본인 팔을 베개 삼아 모로 누워 낮잠을 주무셨다. 엄마 뱃속에 웅크린 태아의 모습 그대로. 고요한 들숨 날숨만이 교차하는 평온의 시간이 외할머니에게 배어있었다. 고운 잠결에서 깨어나면 외할머니는 깜빡했다는 듯 말씀하셨다. "금세 잠이 들었었네. 호호. 손주 출출하지. 만두 쪄줄까?". 그럼요 외할머니. 막걸리도 한 사발 있으면 더 좋겠네요.


자극적이고 강한 맛은 머리에 각인이 되고, 슴슴하고 고운 맛은 마음에 젖어든다. 33년 만에 만난 외할머니 만두의 맛을 마음이 알았기에 눈물이 고였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외할머니, 반가웠어요. 외할머니가 생각날 때면 [회령손만두국]에 올께요. 이번 주말에도 다녀와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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