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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Mar 06. 2023

새벽 길거리 오뎅 국물 한 모금

그때 홀로 숨어서 먹던 휴식은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먹는 행복




아무도 모르는 시각. 




그대 아시나요? 

내가 어떻게 버티고 기다렸는지... 어느 늦은 밤이거나 새벽 즈음이거나. 곧바로 집에 가기 싫었던. 오직 나만이 누리는 시간. 아무도 없던 공간. 서성이던 발걸음. 뭐라도 먹어야겠는데 하며 두리번거리던. 마침 분식을 파는 포장마차가 보이기에 다가갔다. 먼저 오뎅 국물을 뜨려고 두리번거렸다. 종이컵이 없던 오래된 문화. 오래된 포장마차. 오래된 붉은색 조그마한 플라스틱 국자가 대접에 옹기종기 쌓여 있다. 플라스틱 국자는 닳고 닳았다. 너마저도 사십 대 후반이냐. 플라스틱이지만 표면은 어쩐지 나무를 닮았다. 오른손 기준으로 손잡이 왼쪽 표면만 거칠다. 국자는 수많은 입술과 수없이 만났을 터다. 국자는 제 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당해내었다. 사람들의 입술이 국자를 어찌 빨기만 했을까. 빨다가 흡입하고 잘근잘근 깨물고 탈탈 털어먹었겠지. 국자는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을까. 내 몸은 한낱 나약한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힘이 없다. 무게도 가볍고 스테인리스처럼 튼튼한 뼈마디도 없다. 조금만 힘을 줘도 휘어진다. 싸구려 플라스틱일 뿐이지만 포장마차에서는 한없이 긴 생명력을 기대받는 존재. 국자는 조그맣다. 조그만 놈이 당해내기에 국물은 너무 뜨겁고 사람들의 입김은 더없이 격렬하다. 국자는 소리쳤다. 내 몸을 쪽쪽 빨아대는 그대여. 내 몸을 깨무는 그대여. 아아 아프지만 그대 마음 알기 때문에 아무 말 않는 거라오. 그대의 고독한 처지를 알기에 묵묵히 내주는 거라오. 그러니 아무 말 않는 거라오.



나는 국물을 퐁당 가득히 떴다. 

수면이 참방참방 거린다. 뜨겁지만 일단 한 모금 마시려 입에 가져다 국자가 채 입술이 닿기 전 공기를 빨아들인다. 국자와 입술 사이의 틈새. 닿지 않은 존재. 가느다랗게 공기가 통하는 공간. 국자와 입술 사이 작은 틈을 넘으면 조금이나마 식어버린 촉감을 기대했을까. 직접적인 부닥침은 어쩐지 부담스러워. 접촉은 꼭 직렬의 방식만 있는 게 아니다. 부끄럽지만 에둘러 교류의 방식으로 접촉하고프다. 널 사랑하지만 꼭 입맞춤을 할 필요는 없다. 아껴주고 싶다. 지켜주고 싶다. 그러자 국자가 말한다. 아니 아니오. 굳이 그럴 필요 없소. 그냥 내 몸을 믿고 빨아 드시오. 내가 더럽소? 더럽다고 말할 수 있소? 나는 고개 젓고는 그러겠노라 입술을 가져다 댄다. 짭조름한 국물은 뜨거운 기운 그대로 혀를 찌릿하게 마비시킨다. 마비된 혀는 맛을 짭조름하다고 인지하고 그 내용 그대로 뇌에 신호를 전달한다. 나는 뜨겁고 짭조름한 국물을 연신 마신다. 몸은 어느새 따뜻해진다. 마치 그대를 만난 것처럼 든든한 기운이 감돈다. 뇌는 가슴에 신호를 보낸다. 그대를 한번 만났으니 한동안은 괜찮을 거라고. 그리고 오뎅을 먹는다. 간장에 찍어 으적으적 먹는다. 오뎅은 입안에 버무려지고 먹먹한 맛을 남긴다. 그러면 다시 국자를 들어 오뎅 국물을 마신다. 온종일 소금기가 다 빠져나가 싱거워진 몸에 짭조름한 국물이 에너지를 만든다. 활기를 돋운다. 그래 아직 할 수 있어. 버틸 수 있어. 긴 한숨이 나온다. 



그대 아시나요? 

그대 찾다가 결국 만나지 못한 날 집에 들어가기 전 새벽녘 길거리 오뎅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오뎅집에서 오뎅국물을 떠다가 후루룩 마십니다. 힘겨워 어깨가 축 처진 날, 오뎅 하나를 간장에 찍어 베어 뭅니다. 우물우물 씹어 먹다 보면 깊은 한숨이 나옵니다. 한숨은 조금만 더, 다음에 또, 언젠가는 만나겠지, 하며 버틸 시간을 벌어줍니다. 한숨은 그래 좀만 더 기다려보자, 하는 마음을 먹게 합니다. 그대를 만날 때까지 새벽이 오는 시각, 휴식을 먹습니다. 오뎅 몇 개에 배가 따뜻해져서 든든한 마음 안고 돌아갑니다. 



그때 홀로 먹던 붉은색 플라스틱 자그마한 국자. 닳고 닳은 자국. 바스러지고 하얘진 흔적. 깊은 한숨. 그리운 맛. 그리운 순간. 종이컵 다발 속에서 가끔 보이는 붉은색 플라스틱 국자. 젊은 날의 한때. 가끔 오뎅 먹으러 갈 때의 행복. 그대 기다리는 마음이 떠올라 낭랑해지는 마음. 그런 기억이 더해져 맛있는 오뎅. 길거리 오뎅을 먹는 시간은...


나만의 짭조름하면서도 퇴폐로운 한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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