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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Mar 23. 2023

목욕탕 온탕에 들어갈 때

발끝부터 스며오는 아늑한 느낌


온탕 가운데 나뭇잎 한 장 두둥실 그저 행복한 순간





찌릿한 느낌.


발부터 들어간다. 따뜻한 감촉이 스르르 올라온다. 발가락, 발바닥,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 엉덩이까지 살며시 들어가 앉는다. 중간 앉는 턱에 걸터앉는다. 배꼽부위에 수면이 찰랑찰랑. 내가 왔도다. 이대로 찬찬히 온기를 즐긴다. 엉덩이와 골반이 물에 잠긴다. 비스듬히 등을 기대 눕듯이 편한 포즈를 취한다. 어서 오너라. 눈을 감는다. 그래 찌르르 올라오는구나. 아아 그들이 온다. 탕 안의 뜨거운 물. 기존의 열기가 내 몸과 융합하려고, 너 왜 이렇게 차갑니? 어디 갔다 이제 온 거니? 그냥 가만히 있어, 너도 나의 온기를 느껴봐, 하면서 다가온다. 내 하반신에서 골반까지 자신과 같은 온기로 만드려고 그들이 달려든다. 나는 거부하지 않고 그들의 공격을 받아들인다. 어디 한 번 해보라고. 내 안의 차가운 기운을 없애보라고. 그간 바깥에서 그토록 차가운 냉기들 속에서 어떻게 버텨왔는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층층이 쌓인 고난 속 냉기를 하나하나 없애보라고. 탕 안의 뜨거운 물은 어쩌면 내 병을 치료하는 약. 깨끗이 치료해 주세요. 그들이 능률적 움직임으로 내 몸을 덮쳐온다. 아프지 않아. 나는 가만히 있으면 그만. 그들이 알아서 침투해 올 거야. 들어와 내 몸속 냉기를 물리칠 거야. 그리고 따뜻한 약기운을 퍼뜨려줄 거야. 온기와 냉기가 싸운다. 스르르 찌르르 전투하는 느낌이 든다. 차츰 냉기가 사그라들고 온기가 퍼져간다. 아아 승리했구나. 지극히 포근하면서 아늑한 느낌. 보살핌을 받는 감각. 그래 이 맛이야. 어느새 치료된 거야. 하반신에 자리하던 냉기들이 상반신으로 몰려갔다. 나는 이만하면 됐지 하면서 온탕 바닥에 내려가 앉았다. 수면이 가슴과 목부위에서 찰랑거린다. 평행하던 시선과 수면이 가까워졌다. 온탕 가운데 뽀글뽀글 거품과 눈이 마주친다. 하얗게 부서지는 거품을 보며 취한다. 시선은 거품과 함께 사라지고 태어나고 퍼져나가고 만들어진다. 끝없이 몽글거리는 거품. 거기서 튀어나온 방울을 맞아 얼굴에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힌다. 눈꺼풀과 속눈썹 사이 물방울이 맺혀서 뿌옇게 보인다. 냉기는 이미 사라지고 온기만이 더욱 진하게 덮쳐온다. 내 몸을 알알이 일깨우는 온기. 내 몸을 치료하는 열기. 일주일간 고생 많았어. 잘 버텨낸 거야. 온탕의 약기운이 격려해 준다. 이제 다 치료했으니 앞으로 일주일도 괜찮을 거야. 넌 잘할 수 있어. 힘들어 쓰러질 때면 내게로 와. 춥고 냉기가 가시지 않으면 와. 그러면 언제든 내가 다 치료해 줄게. 물방울이 톡톡 터지며 귓가에 그리 속삭이는 거 같다.  


나는 일어나 냉탕에 들어가려고 발만 살짝 담가보았다. 어이쿠 차가워. 너무 차가워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금 손으로 물을 떠 허벅지에 끼얹어보았다. 화들짝 놀라는 감촉. 안 되겠다 싶어서 돌아서고 비누를 타월에 비벼 온몸에 묻혀 샤워했다. 목욕탕을 나가기 전 한 번 더 온탕에 담가보았다. 금세 찾아온 온기. 먼젓번보다 덜한 느낌에 서둘러 일어나 탕을 나섰다. 


머리를 닦으며 거울 앞에 선 내 얼굴. 발그스레 상기된 표정. 


내가 목욕탕에 가는 이유다. 단순히 몸을 씻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온탕에 들어가는 순간 그 느낌을 맛보기 위해서 간다. 스르르 들어가 찌르르 올라오는 느낌. 


그 퇴폐로운 한때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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