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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Mar 27. 2023

렛잇비 키스하러 가는 길

가슴 떨리는 순간


렛잇비를 부르며 자전거 타는 나




렛잇비를 들었을 때를 잊지 못한다.


고1 때였다. 음악시간이었다. 친구가 피아노 앞에 앉더니 반주를 쳤다. 저 노래가 뭐지? 뭔데 이렇게 가슴이 뛰지? 아아 렛잇비구나. 중학생 때 듣자마자 테이프를 사 한동안 미친 듯이 듣던 노래. 그러고 지나간 노래. 피아노 전주가 흐르자 친구는 노래까지 곁들였다. 웬이파이머셀프타임즈오버 머덜메리캄스투미~ 스피킹워즈위즈덤 렛잇비~ 렛잇비의 노랫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들리는 대로 끄적여 외웠다. 소절마다 렛잇비로 끝나는 매력. 렛잇비가 무슨 뜻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음악이 주는 감동. 낯선 정서. 두근거림. 다시금 렛잇비에 눈을 뜬 순간. 그야말로 한눈에 반해버렸다. 렛잇비의 피아노 반주와 노래에... 이런 세계가 있구나. 그 친구는 특이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바로 남녀공학 중학교 출신이었으니... 남중만 다닌 부류와 남녀공학 출신은 그 생각하는 바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여기서 생각하는 바는 이른바 이성을 보는 관점을 말하는데 관점의 차이는 무궁무진했다. 남중을 나온 내게 공학출신은 마치 대학생처럼 보였다. 그에 반해 남중 출신들은 초등학생이 덩치만 커진 형국이었다. 렛잇비를 치고 부르던 친구. 공학 출신인 그 친구는 끼가 다분했다. 그 끼는 수많은 남학생들마저 홀리고 다녔는데 적극적으로 그 친구 옆에 달라붙어서 어울리는 부류와 나처럼 먼발치서 아득히 바라보는 부류로 나뉘었다. 그 친구를 따라 미팅에 나가는 친구. 그 친구를 따라 편지를 쓰는 친구. 그 친구를 따라 데이트하는 친구. 이성에 처음 눈을 뜨게 된 시기. 이성이라는 느낌은 이런 거구나. 이렇게 떨리는 거구나. 너무 떨려서 미칠 것만 같아. 주체할 수가 없어. 뭐라고? 여자 중학교 졸업앨범에서 고르라고? 마음에 드는 아이를 수소문해서 어느 여고 어디에 사는지 알아서 소개해줄게. 뭐? 그게 가능해? 이번주말 커피숍에서 약속을 잡았다고? 어떡하지? 설레서 심장이 폭발할 것 같아. 심장이 왜 이러지? 나 왜 이러지? 이런 감정은 대체 뭐냐고? 열일곱 되던 해. 고등학생이 된 해. 비록 남고지만 공학출신 친구가 곁에 있어서 학교에 있는 일과 중 이성에 관한 얘기를 무던히도 들었다. 나는 몰랐다. 몰랐던 세상에 관한 이야기. 가슴 뛰는 이야기. 나도 이성을 만날 수 있을까? 이성도 날 좋아할까? 난 어느 위치쯤 될까? 궁금하고 궁금했다. 거울 앞에 서면 대개 시무룩해졌지만 가만 머리를 이렇게 저렇게 이 옷을 걸치고 눈을 희미하게 뜨고 씨익, 아 뭔가 괜찮은 거 같기도 해. 그렇게 금방금방 새로 태어나곤 했다. 


나는 그 친구만 보면 가슴이 뛰었다. 단순히 그 친구가 좋아서 뛰는 게 아니라 친구가 지향하는 끼의 세계에 푹 빠진 것이다. 친구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자전거로 인근의 여고에 가 아는 여고생들을 만나고 다녀와서 내게 자랑했다. 

"오늘은 키스하러 간다." 

"뭐? 키스?"

키스라는 게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인가? 영화 속이 아니잖아? 현실세상에서 함부로 입에 담아도 될 단어란 말이냐? 주말 저녁이었다. 집 앞에 나가니 자전거를 타던 녀석을 보게 되었다. 친구와 만나자고 약속한 게 아니었다. 친구는 이 동네 저 동네 할 것 없이 휘젓고 다니다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서 내게 윙크했다. 남자가 봐도 멋진 녀석. 짙은 눈썹에 선명한 쌍꺼풀. 귀 주위 아랫부분만 스포츠 스타일에 윗부분은 긴 일명 송태섭 머리. 하얀 얼굴. 빨간 입술. 각진 얼굴선. 왕방울만 한 눈. 어쩐지 외로운 눈빛. 하지만 언제라도 이성을 유혹할만한 자신감. 

"야? 키스라니?"

녀석은 새로 생긴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그녀와 만나 키스를 할 거라고 자랑했다. 나는 놀라서 바라봤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키스라니? 그때 내 눈에 녀석은 마치 티브이 속 연예인처럼 보였다. 연예인이 화려하게 치장하고서 특유의 끼를 부리고 다니는구나. 나와는 사는 세계가 다르구나. 여자친구 어쩌고 저쩌고에 저토록 당당하다니. 나와 동갑이 맞나? 내 주위에 저런 친구가 있다니? 





누군가를 만났다.

피아노 반주 소리.

렛잇비가 흘러나온다.

누군가는 어떤 여학생. 

괜스레 만남에 싱그러운 이미지를 투영해 본다.

별 의미 없는 만남에 마땅한 의미를 덧씌운다.

아무도 아닌 누군가에게 설렌다.

그렇게 만드는 시기. 

그렇게 만드는 노래.

친구가 건반을 친다. 

바로 이 노래다. 

이 느낌이다. 

햇빛이 난다.

이제 막 핀 벚꽃.

벚꽃 사이로 햇빛이 얼굴에 닿는다.

눈을 가늘게 떠 벚꽃을 올려다본다.

예쁘게 피었구나.

숲 속을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나타나는 공주님. 

그저 잘 흘러갈 것만 같은 만남. 

공주님 역시 나를 보고 미소 지어줄 거야. 

그런 자신감. 

가슴 뛰는 사람.

만나서 떨리는 사이.


그때는 그랬다. 이성을 만나는 끼. 형언할 수 없는 떨림. 내가 설레니 당신도 설렌다. 설레는 우리는 그 느낌이 통한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편히 웃을 수 있다. 웃으며 얘기할 수 있다. 얘기하며 사귈 수 있다. 사귀며 진도가 나간다. 어쩌면 키스까지? 설렘의 끝까지 손잡고 나아간다. 아아 친구에게 어서 자랑하고프다. 봄이 오는 날. 벚꽃이 피어나는 계절. 아마도 저쪽에서 그대가 마주 보고 있겠지.


나도 오늘 키스하러 간다.


삼십여 년이 지났지만 렛잇비는 내게 그런 노래다. 듣고 있노라면 그때 그 순간 뛰었던 심장이 미세하게 요동치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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