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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Apr 05. 2023

저녁 숲 속 길 산책

가로등이 켜져도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





저녁 숲 속길 홀로 걷는 나



해 지는 시각.

어둑어둑한 하늘.

실컷 뛰놀다 샤워하고 쉬는 시각.

집에서 편히 저녁 먹는 시각.

다 먹고 따뜻한 차 한 모금 호로록.

저녁이면 찬바람 부는 계절.

어디 한 번 나가볼까?

오옷? 

지금 이 시각에?

그런 적 없잖아?

뭐 어때?

아아~ 잠옷차림으로 나가보니 너무 시원한 이 세상은 뭐지? 

아무도 없는 시각 아무도 없는 곳.

여태 몰랐던 풍경.

어쩐지 벅차올라서 감개무량한 마음.




숲 속길 입구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이 숲길에 사람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오가고 저녁이면 아무도 가지 않는다. 가로등이 있어도 어둡기 때문이다. 인적이 없는 시각. 오르막을 올려다보면 외로이 가로등이 하나 서 있다. 그래도 조명이 들어왔다는 건 그리 걸어도 된다는 것이리라. 성큼 한 발짝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잠옷사이로 스며들어와 으스스하다. 평소 나가지 않는 시각 오르지 않는 곳에 이르니 시원함과 추움의 중간 즈음 아리송한 바람이 분다. 너무 시원해 벅차오르는 느낌. 너무 시원해 두근거리는 느낌. 운동하고 샤워하고 저녁 먹고 할 거 다 해놓은 상태. 언제든 잠자리에 들어도 괜찮은 상태. 글쎄, 잠자리와 숲 속 길 산책은 얼마나 동떨어져있는가? 어쩌면 잠든 상태로 사뿐 날아서 숲 속 길을 거니는 건지도.


이제 막 어두워진다고 여겼는데 어둠은 찰나처럼 다가와버렸다. 

저 앞에 무수한 대나무들이 우수수 소리 내며 바람에 나부낀다. 대나무와 대나무 사이사이 어둠이 무섭다. 어둠 속에서 어떤 시선이 느껴져. 대나무와 대나무 사이에는 역시 대나무가 있지만 그 사이 중간 어딘가 누군가의 존재가 느껴져. 바람소리에 묻혀 우수수 흔들리는 와중에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때론 무섭고 때론 시원해 어느새 설레기까지. 괜찮아, 다 씻고 잘 준비를 마쳤으니 곧장 집에 가 잠들면 그만이야. 그냥 잠자리 대신 산책을 택했을 뿐이야. 나는 자고 있는 거처럼 편안한 상태. 시원하다가 슬며시 추울 때가 있고 다시금 시원해지며 그 경계를 들락날락하니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마냥 즐기게 된다. 감기에 걸리거나 말거나.  


아무도 없다. 

다들 집에서 쉬는 시각. 쉬면서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가족과 얘기하거나 밥을 먹거나 아니면 씻거나 누워있거나 그러는 시각. 홀로 과감히 외출하여 가보는 산책. 어둠 속 숲길에서 새로이 만나는 세상. 숲 속이 쾌적하게 리부팅되는 시각. 슬며시 들어가 나무처럼 깨끗이 정화되는 맛. 숲길의 일부가 되어 엿보는 환상. 나는 사람이 아니라 나무랍니다. 나무가 되어 나무처럼 잠이 듭니다. 가끔은 해볼 만한 경험. 저도 이 숲길의 일부랍니다. 


남들 다 잘 때 자고 싶지 아니하거나 남들 다 잘 때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숲길에 오른다.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고요한 숲길에서 맨발로 걷는다. 걸으며 대나무 사이를 엿본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말래? 나도 여명이 밝아 오는 이 풍경 일부이거든. 풍경이지만 움직이고 있어. 어둠 속 저기 물 흐르는 소리로 가보고 싶어. 가서 졸졸졸 물속에 발 담그고 싶어. 그렇게 풍경 속에서 풍경의 일부로 그려지고 싶어. 풍경이 되어 풍경 속을 산책하고 싶어. 


누구도 보지 못하는 곳.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는 자연 속 존재. 

선선한 눈으로 보러 가 스르르 동화되리라.

나 홀로 숲 속 길 풍경화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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