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최여원 12살 (5학년)
두 번째의 일.
팔은 시리고 다리는 따뜻하다.
"크흑... 오늘도 그딴 달리기를 할 것인가!"
나는 달리기를 싫어했다. 재미없게 뛰기만 하는 것도 숨이 차고 머리가 웅웅 거리는 것도 싫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달리기를 더 싫어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나는 좌절하며 맨 먼저 뛰었다. 옆에는 약간 통통한 여자애가 있었다.
'그래 봤자 나보다 다리도 짧은데 어떻게 뛰겠어' 하며 한껏 긴장을 놓았다. 시작했을 때 그 애는 있는 대로 빨리 뛰는 것도 모자라 내가 선 밖으로 나오게 일부러 옆으로 밀었다. 하긴 그냥 뛰어도 얘가 좀 더 나보다 앞섰을 것이었다. 그렇게 나보다 빨리 뛴 것도 모자라 숨도 안찬지 계속 서서 떠들어댔다. (달리면서)
"아유 아유 좀 앉아있을게요."
나는 선생님한테 숨소리로 말했다.
'허유 뭔 여자애가 저렇게 빨리 달려?'
나도 여자지만 여자치고 빨리 달렸다. 그런데 다른 애들은 나보다 더 훨씬 잘 뛰었다.
'내, 내가 약골인 건가? 아니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다시 뛰었다. 거의 그 애를 따라잡을 때쯤 오글거리는 말이 들려왔다. (아, 계속 뛰는 중이구나)
'크헉!'
나는 그 여자애의 말에 당황했다. 아니 그렇기보단 뭐랄까. 어이없었다.
그건 그렇고 전에 내가 악력 검사를 했을 때도 여자애 중에서는 내가 제일 악력이 낮았다. 우리 반 애들은 힘이 센게 틀림없었다. 아무튼 그럭저럭 한 달리기였다. 그 체육 시간도 막을 내린다.
끝~ 다음 시간에~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면 나는 후다닥 신발장 앞에 선다.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딸아이가 들어온다. 나는 양팔을 활짝 벌려 "우리 딸 오늘 힘들었지?"라고 묻는다. 그러면 딸아이가 다가와 폭 안긴다. 나는 두 손으로 딸아이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말한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요." 그럼 딸아이는 조용히 대답한다. "응~"
여느 때처럼 저녁 준비를 하는데 딸아이가 와서 말했다.
"아빠! 오늘 달리기 했어요. 달리기 하는데 통통한 아이들이 더 잘 뛰어요."
"그래? 아빠가 보기엔 우리 딸도 달리기 잘하는 편인데?"
"아니에요. 통통한 애들이 힘도 더 세고 달리기도 잘 뛰어요."
달리기에서 졌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달리기를 제법 잘하는 편이라고 여겼는데 무지개 초등학교 5학년 6반은 대체로 특별한? 아이들이 있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빠! 근데 웃긴 일이 있었어요."
"뭔데?"
"제가 달리는데 지켜보던 친구 누군가가 '여원짱'이라고 응원해줬어요. 기분이 이상했어요."
나는 김치를 잘라 식판에 놓다 말고 딸아이를 돌아보았다. 말하는데 막 웃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나 보다. 여원짱이라니. 어쩌면 감격했는지도 모른다.
(딸아이는 친구가 없었다. 나는 일명 '뚱못시'라고 이름 지어 주었다. 뚱뚱하고 못생기고 시끄러운의 줄임말이다. 딸아이를 위로해준답시고 지은 것이다. 이후 한동안 우리는 뚱못시가 어쩌고, 뚱못시가 오늘 있잖아요 하고 이야기하곤 했다)
1학기 때는 주 3일만 등교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나고 지금은 주 5일 전면 등교다. 더 많이 학교에 가는데도 딸아이의 불만이 줄었다. 혹평만 하던 반 친구들이 싫지 않다고 한다. 뚱뚱이에서 통통이로 변했다. 뭔가 변화가 있다.
내가 "우리 딸 힘들었지?"라며 팔 벌리는데 "아빠가 팔 벌리고 있으니까 꼭 십자가 같아요"라고 한다. 형식적으로 안기곤 금방 떠들어댄다. 누가 자기를 여원짱이라고 응원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고 한다. 웃는 걸로 봐서 즐거움의 한 종류리라 짐작된다.
그래, 이렇게 가슴 한편 안심이 되는 이유.
힘들었지?라는 질문에 '응'이라는 대답이 없는 것.
잠시간 흐느끼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