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 표면이 볼록하다
꼬마는 6학년 5반이었다.
그때 친구는 옆 반 6학년 6반.
6반 교실, 어느 책상 위 꽃다발 여러 개가 올려져 있다. 교실에 친구는 나오지 않고 친구 대신 꽃만 덩그러니 놓였다. 책상 주인은 어느덧 친구가 아니라 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책상 앞에 놓인 의자. 의자의 또 다른 이름은 걸상. 꼬마의 눈에 띈 걸상. 걸상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린다. 왜 오지 않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자신을 바라보는 꼬마에게 '어서 주인님을 찾아주세요'라고 동정 어린 눈길을 보낸다. 허전하다. 누군가 앉아야 하는데 아무도 앉지 않는다. 걸상은 아무것도 모른다. 책상처럼 꽃이 놓이지도 않는다. 아무도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 전처럼 책상과 주인을 양분하지 못하고 공유하지 못하고 받쳐주지 못하는 공허. 걸상은 그저 기다린다.
그러면 친구는 어디로 갔는가.
친구는 진주성 서장대에서 남강을 바라보다가 더 높은 곳에서 자세히 보고 싶다는 욕구를 참지 못했다. 결국 성곽 난간 위에 올라가 타박타박 걷는데 난간 폭은 60㎝ 정도. 어쩌면 딱 걷기 좋은 넓이 인지도.
야! 조심해!
친구는 양팔 벌려 균형 잡는 시늉을 한다.
괜찮아!
나는 비행기다. 바람을 타고 난다. 바람을 타니 균형도 잘 잡힌다. 이것 봐! 나 잘 걷지? 너도 올라와! 신난다. 까짓 별것도 아니야. 굳이 양팔을 벌리지 않아도 괜찮아. 곡예하듯 바람을 타면 보는 이가 안심하지 않을까 하는 동작.
괜찮아요, 괜찮아. 나 집중하고 있어요. 잘 걸어요. 자아 보세요. 균형 잘 잡죠? 근데 여기 경치가 참 멋져요.
야! 갑자기 왜 그래?
친구에겐 남강이 더 크고 파랗게 다가왔다.
진주교에서 본 촉석루
촉석루
그녀의 눈빛은 내내 처연하다.
6만 진주 성민이 죽은 밤.
술병 든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그런 손을 내려다보는 눈꺼풀도 바르르 떨린다. 멈춰보려 의식적으로 힘주어 보지만 떨림은 오히려 빨라지기만 한다.
촉석루에는 왜장 수십 명이 둘러앉은 가운데 논개는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술을 따른다. 달빛은 밝고 술은 차갑다. 구름이 간간히 지나간다. 빛나는 달빛. 그 아래 구름. 달빛을 가린 그림자. 그림자가 그녀 얼굴을 덮을 때마다 짙은 속내가 스친다. 보일 것만 같다. 들키지 않으려고, 논개는 마음을 비운다. 실은 비우려고 애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손이 술을 따르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이 술잔을 본다. 술잔 속 표면에 잔잔한 원이 그려진다. 동심원 안에서 또 다른 원이 잘게 쪼개져 수많은 원을 낳는다.
나는 어이하여 이 자리에 있는가.
갑자기 떠오른 의문. 그녀는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하다. 천지가 피비린내로 진동하고 진동한다. 왜장은 차가운 술로 열을 식히고자 한다. 좋구나. 한낮의 광기, 살육, 끓었던 피를 누그러뜨리는 시간. 바로 이 맛이야! 천천히 즐기면서 씻어내고자 연신 술을 마시고 따르게 한다.
그녀는 계속 읊조린다.
고향으로 가고 싶어.
왜장은 술을 위해 여인네들을 바로 죽이지 않고 살려놓았다. 단지 술을 따르게 하려고. 논개는 무연히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시선을 맞춘다. 자신을 보는 왜장의 눈빛이 소름 끼친다. 촉석루 주변에는 자욱하니 안개가 꼈다.
죽은 이들의 숨결.
달빛과 구름과 안개와 숨결의 혼합.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숨지며 뱉은 한숨. 한숨들은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하여 여기저기 무겁게 맴돈다. 진주성의 부서진 길, 무너진 성곽, 죽은 사람들, 사방이 처참하다. 그녀는 등 뒤로 뻗어오는 숨결의 손길을 느끼며 고향 생각을 한다.
조금만 더 있으면 고향으로 갈 수 있나요? 조금만 더 버티면 저를 데려다주나요?
라며 묻고 또 묻는다. 주변은 아직 다 거두지 못한 시신들로 가득하고 시신은 몇 겹씩 아무렇게나 쌓여 마르지 않은 흙 몇 삽만이 겨우 덮여있을 뿐. 그에 반해 달은 유난히 밝아 마치 칼날처럼 반짝여 시신을 베고 베고 또 베는 것처럼 보인다. 논개의 얼굴에도 칼날이 비친다. 그녀는 왜장들의 둘레를 벌써 몇 바퀴나 돌았다. 왜장들은 저마다 논개의 잔을 받기 위해 입맛을 다셨다.
어허 술맛이 기막히구나, 그래! 오늘 같은 밤 이 몸의 춤사위가 어떨는지요,
하며 왜장 로쿠스케가 위암에 내려섰다.
위암 앞 남강은 핏물로 가득하다.
으하하! 이것 보라지, 하며 로쿠스케는 손으로 강물을 휘젓는다. 이게 다 조선인의 피로구나. 그가 손에 묻은 피 냄새를 맡고는 괴괴히 웃는다.
죽은 자들이여 잘 가거라,
소리치고는 논개의 손을 덥석 잡는다. 이어서 비탈진 사면을 따라 빙글빙글 돈다. 논개는 왜장의 손에 이끌려 휘청거린다. 핏빛 강물은 위암에 부딪혀 쿠쿠쿠 소리 내며 맴돈다.
눅진한 기운.
남강은 조용히 말보다 무거운 말을 한다. 습한 바람, 습한 공기, 습한 내음. 논개는 들었다. 비명에 스러진 장군과 군인과 부녀자와 노약자와 아이들의 비명을.
참으로 원통하구나. 인사 다 전하지 못하고 가 비통하오. 하고 싶은 말 못 해서 애통합니다. 제발 제 말을 아이에게 그대에게 부모에게 전해주시오.
바위 아래 강물은 꿈틀거리며 마치 혼이라도 삼킬 것처럼 소용돌이친다. 논개는 죽은 이들의 더미를 파헤쳐 몇 개의 가락지를 골라내었다.
소녀의 손에 열 개만 허락하시오.
그녀는 가락지를 손가락에 하나하나 끼워서 나아간다. 춤추던 로쿠스케는 거칠게 논개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품에 안는다. 그러곤 다시 빙글빙글 춤 춘다. 논개의 두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그녀는 팔 벌려 왜장의 등에서 깍지를 낀다. 로쿠스케는 으하하 좋구나, 하며 논개를 와락 껴안고, 가락지는 따다닥 틈 맞추어 뼈와 뼈 사이 단단히 밀착된다. 이윽고 돌고 돌다가 논개는 비틀! 가벼이 힘주어 그대로 남강에 몸 던진다. 남강은 기다린 듯 말없이 그녀를 받아들인다. 왜장은 논개의 품에 갇혀 핏빛 어린 이들의 함성에 괴로워 벌컥벌컥 피를 삼키고 잠시간 어억어억! 버둥거리다 죽는다.
촉석루 옆 작은 문을 통과하면 자그마한 의기사가 나타난다.
의기사는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꼬마는 논개 영정을 가만히 보면서 논개의 슬픔을 헤아려 본다. 영정을 보면서, 어떤 이는 이목구비가 뚜렷하다거나 용모가 단정하다느니 말하지만,
그게 아니야, 아니란 말이다, 라고 꼬마는 고개저어 생각한다. 단순히 겉모습으로 그녀의 절망과 탄식과 사명과 정념을 다 알 수 있을까. 꼬마는 생각에 잠긴다. 그녀의 눈두덩에 맺힌 고단함. 여인의 가녀린 몸으로 약한 뼈마디, 깍지는 아직 다 풀어지지 못했어. 상상하니 아직도 얇은 손가락 뼈가 투두둑 틈이 벌어져 부서지는 듯해 안쓰럽다. 힘센 어른이, 장군이, 군인이, 후손이 누구라도 그녀의 무게를 덜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확인하고 싶은데, 부탁하고 싶은데, 그런 생각으로 보니 영정에 그녀의 가냘픈 얼굴이 한없이 애처로이 보인다.
위암을 의암으로 그 이름마저 바꾸게 했으니.
그녀에게는 비탈진 바위 앞 의암이 마지막 디딘 육지가 된다. 꼬마는 당장의 형편에 대해 생각한다. 논개는 강에서 다시 촉석루로 올라야 하고 가락지를 풀어 편히 쉬어야 한다. 의암이 가까이 붙는다고 나라에 큰 환란이 생길 징조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논개의 한이 눈두덩 아래 뚜렷하지만 아무도 그 고단함을 말하지 않는다. 영정에서는 입술 양 끝이 선명하게 올라가 있다. 그것은 고단함에 흐릿해진 눈매에 비해서 야무진 인상을 주는데 일조한다. 입술은 곧 당신의 의지를 나타내니까. 때때로 슬픔은 멈출 줄을 모른다. 영정의 얼굴은 지극히 멀쩡하다. 영정은 아직 터지고 찢어지고 부서지기 전이다. 꼬마는 논개를 들여다보며 그녀의 입장을 생각해본다.
감히 그녀의 입장을.
모자란다.
모자라.
여태껏 만분지 일이라도 죽음을 상상하지 못하고 고통을 형언하지 못하며 느꼈을 두려움을 추측하지 못한다.
진주성
높은 곳에서 남강은 더 넓고 푸르다.
진주성에 올라선 만큼 남강 상류가 한 뼘 더 보이고 남강 하류가 한 뼘 더 커진다. 누구도 보지 못한 높이에서 친구는 상류와 하류만 봤을까? 어쩌면 한 뼘 너머 누구도 보지 못한 풍경을 봤는지도 모른다.
깎아지른 절벽을 앞에 두고 남강에 이르기까지 나무가 얼기설기 막아선다. 친구는 난간 위에 올라서서야 비로소 남강을 알았고 나무를 알았고 절벽을 알았다. 높은 곳에서 흐르는 남강을 보고 나무를 보고 절벽을 오르는 왜병을 보았으리라.
반들반들 딱히 잡을 것도 없는 벽면에서 그들이 무얼 잡고 오르나 친구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은 대나무로 만든 사다리를 세워 오른다. 어엇, 이게 뭐야! 친구는 다급해진다. 돌을 던져야 하나 물을 쏟아야 하나 창으로 찔러야 하나 화살을 쏘아야 하나 아니면 고함을 쳐야 하나. 야단 났다. 돌과 물이 없고 창과 화살도 없으니 좋다, 고함이라도 쳐볼까 하다가 다시 어디까지 왔나 돌아보았다.
절벽 아래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려던 마음.
알려줘야 해! 저기까지 왔어요! 누구에게? 누구에게라도!
이후 진주 시내 모든 학교에는 학생이 진주성 난간에 올라가지 않도록 교육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친구는 6만 성민의 품에 잠들었다.
새로운 책상 주인을 보려고 전교생이 교실 밖 복도를 서성거렸고 꽃을 놓았고 놓아진 꽃을 봤다.
꽃을 보는 이들은 보면서 친구를 기다렸다. 금방이라도 꽃을 대신해 친구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놀던 친구. 어울리던 친구. 말하던 친구. 움직이던 친구.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보고 싶다고 한참이나 불러보아도 나타나지 않았고 이제 기다림에 지쳤다고 푸념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꽃은 전주인처럼 책상을 두 팔로 양껏 지배하지 못했고 두 팔을 올려놓지 못하는 공허에 지켜보는 마음들은 상처 입었다.
며칠 뒤 꽃다발마저 떠났다. 꼬마는 6학년 6반 교실을 지날 때마다 친구가 앉았던 자리를 떠올렸고 꽃을 떠올렸고 더는 나타나지 않음을 생각하며 가만히 책걸상을 들여다봤다. 빽빽한 교실에 모두 주인이 있는데 반해 빈 책상과 빈 걸상은 확연히 눈에 띄었다.
가끔 진주성 성곽과 의암을 볼 때면 친구와 논개가 나타나곤 한다.
그들은 나를 보지 않지만 나는 때때로 그들을 본다. 보면서 그려본다. 저녁이면 서장대부터 이어지는 불빛. 은은한 조명.
진주성 건너 자전거길을 달리며 당신을 본다.
떠올려 본다.
유등을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