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소리, 그리운 맛, 그리운 이
지지지, 부엌에서 소리가 난다.
가만 들여다보니 프라이팬이 춤을 춘다. 우당탕퉁탕, 할머니의 리드미컬한 손놀림. 굽은 허리가 지휘한다. 냅다 흩뿌린 식용유, 커다란 배춧잎, 기름이 달구어지자 배춧잎에 밀가루 옷을 치덕치덕 입힌다. 한 장 두 장 배춧잎을 널따란 팬에 턱 올리자 지지지, 자글자글 즐거운 파열음이 들린다. 주름진 손이 꿈틀꿈틀 말한다. 얼매나 묵을 끼고? 그려, 이 배추전이 그리도 묵고 싶었더나. 이기 머시라꼬. 쪼글쪼글 주름진 얼굴. 흰머리가 삐죽삐죽. 손 거죽이 거뭇거뭇. 그 속에서 신이 난다. 지글지글 배추전이 익는다. 점점 짙어가는 소리. 기다리는 마음. 젓가락을 들고, 두근두근 마구 설렌다.
내가 꼬마였던 날.
터벅터벅 집으로 가는 길. 문득 배가 고프다. 어디로 가야? 어디로 가면? 길은 아직 멀었는데, 비틀비틀 헤맨다. 어디까지 걸어야 하나. 집에 가면 뭐 좀 먹을 게 있을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가면 누가 기다릴지. 주춤주춤, 걷다가 설핏 어떤 소리에 고개 돌리니 익숙한 냄새가 난다. 이 냄새는? 저절로 꼴깍 침이 고인다. 작지만 그 소리는 분명 전 굽는 소리. 눈앞에 정다운 정경. 그곳에서 나오는 냄새. 지글지글 배추전 익는 소리. 나는 계속 쳐다보다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갔나 보다. 입구에서 그만 눈이 마주친다. 할머니가 나를 본다. 오메! 이기 누구여?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가, 어떻게 여그까지. 꼬마 시절 나는 냄새에 이끌려 할머니 댁으로 갔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입에다 물면 할머니는 옜다, 이거 먹으라 하며 금방 구워낸 배추전을 하얀 접시에 얹어주었다. 나는 손으로 집다가 앗 뜨거! 하며 내려놓다가도 금방 접시 째로 입에 가져가 덥석 물었다. 배춧잎의 싱긋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지는데.
어느 날부터 할머니는 웃었다.
웃어대기 시작했다. 할머니 웃지 마세요, 해도 웃었다. 어떤 말에도 웃었고 어떤 소리를 내도 웃음으로 답했다. 평소 웃음이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웃을 일도 아닌데, 왜 웃는지도 몰랐다. 제발 웃지 말라고, 그만 웃어라 해도 저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고 했다. 치매였다. 어쩔 수 없이 할머니는 웃으면서 다녔다. 걷다가 웃어대느라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다. 할머니는 부러진 팔을 부여잡고 또 웃었다. 아픈데도 웃느라 울지를 못했다. 병원에 실려 가면서도 웃었고 깁스를 해 걸으면서도 웃었다. 마치 전원일기에 나오던 최불암처럼, 파아~ 힘없이 솟아 나오던 소리. 그렇게 마냥 웃던 할머니는 어디에.
이 맛이야?
맛이 좋아? 아내가 모처럼 배추를 사다 굽는다. 어때? 비슷해? 아내는 자꾸만 묻는데 나는 엉뚱하게 딸을 보며 말한다. 아빠가 딱 너만 할 때 맛있게 먹은 건데. 딸아이는 그 말이 진짜인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한 젓가락 먹다가 에게, 맛없어요, 한다. 아내는 줄곧 내 표정을 살핀다. 먹어보니 어떤데? 옛날 맛이 나? 배추전이 뭐 특별한 게 있나? 전이란 게 그 맛이 그 맛이지 뭐. 어떠냐고? 말 좀 해봐. 맛있지? 맛나지? 추억 돋지? 그러면서 동그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본다. 뭘 그렇게 봐? 내가 물으니 당신 배추전 먹을 때 얼굴이 귀여워서, 라고 대답한다. 그러곤 넌지시 배춧잎을 보다가 기어코 덧붙인다. 세상에 배추를 부쳐 먹는 사람이 여기에 있네, 우리 동네는 안 먹는단 말이야. 특이해. 계속 구워 줄까? 여기 배추 아직 많아. 내가 분명 부침가루 사 오라고 했잖아. 밀가루로만 반죽하니까 바삭해지지가 않네.
문득 토끼가 된 기분이다. 나는 배추를 서걱서걱 씹어 삼킨다. 입안에 배추가 미미한 단맛을 낸다. 단맛은 곧장 할머니를 부른다. 할머니는 지금 어디 계실까 떠올려본다. 그러자 대나무 소쿠리에 배추전이 한 장 슈우웅 날아와 철퍼덕 담긴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거래이. 옜다, 간장에 찍어 묵으래이. 나는 젓가락으로 북북 찢어 대충 간장에 퐁당 적시고는 입안에 쑤셔 넣는다. 우적우적 씹는다. 볼이 불룩해진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더니, 망할 놈의 자슥, 잘도 묵는다 하며 연신 배추전을 구워낸다. 으적으적 꿀꺽, 달달하니 맛있다. 길게 찢어 손으로 성큼 덥석 집어 먹는다. 어느새 손에는 기름이 반들반들 묻었다.
할머니는 배추전을 굽는다. 소쿠리에 금세 수북이 쌓인다. 구부정한 허리로 냅다 기름을 뿌려 또 한 장 지져낸다. 널따란 팬에 커다란 뒤집개로 툭! 띄워 배추전을 뒤집는다. 철퍼덕하고 기름이 사방으로 튄다. 그러고 보니 프라이팬 주위가 새카맣다. 까만색이 여기저기 퍼졌다. 까만 점은 층층이 쌓여 두꺼워져서, 오래된 색이 주위로 차차 번져 난다. 움직인다. 점점 어두워진다. 할머니. 저 배추전이 먹고 싶어요. 더 구워주세요. 할머니! 제 말 안 들려요? 어디로 가셨어요? 아직 더 먹고 싶은데.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았는데.
보인다.
연탄불 위에 프라이팬. 가마이 앉아 있거래이. 할머니는 부엌에서 밥을 짓는다. 할머니는 한참을 부지런히 움직이더니 작은 밥상 가득 방으로 영차 내온다. 반찬이 영 부실 허지만 된장에 콱 찍어 먹으래이. 할머니는 작은 도마에 배추전을 올린다. 얼른 숟갈 뜨거라. 내 얹어주꾸마. 식칼로 가지런히 먹기 좋게 자른다. 한 젓가락에 한 점씩.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앙증맞은 간장 접시. 찍으니 간장 방울이 참방 거린다. 숟가락으로 흰 밥을 입 안 가득 머금고는 배추전 한 점. 짭짤한 그 맛에 밥은 금방 넘어간다. 맛있어요. 더 먹으래이. 여기 한 장 더 썰고 있으니. 할머니의 부엌. 비록 낡은 살림이지만 늘 정결히 관리하던. 할머니는 배추전을 먹기 좋게 자르고 내게 말한다. 또 머 먹고 싶노? 머 해주꼬?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배추전이 맛있어요. 더 구워주세요. 할머니, 할머니가 해주시는 배추전을 먹고 싶어요. 식칼로 반듯하게 자른 배추전을 참기름 두른 간장에 찍어 먹고 싶어요. 할머니! 제 목소리 들리나요? 밥 떴는데. 기다리는데. 숟가락에 뜬 밥 위로 하얀 김이 피어난다.
여덟 살 꼬마는 한동안 고모 집에 맡겨졌다. 고모는 바빠서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함께 살던 사촌 형은 가끔 꼬마를 혼내고 괴롭히곤 했다. 꼬마는 학교종이 치면 선뜻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배가 고팠다. 울면서 길을 헤맸다. 눈물자국이 얼굴에 번들번들할 때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보자마자 아이고 우리 강생이, 하며 등에 업어주었다. 업어서 우리 강생이 남의 집에 얹혀 살 맹서 울매나 고생이 많나, 그랴 그랴 하며 엉덩이를 두드려주었다. 그러면 꼬마는 이내 누그러져 가만히 할머니의 등에 얼굴을 기댔다. 편했다. 그러면 모든 게 괜찮아졌다. 까무룩 잠이 들었고 밥 먹으래이, 소리에 깜빡 눈을 떴다.
언제부턴가 나는 배추전을 먹지 못했다. 어쩌면 배추전의 존재마저 잊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손주에게 만들어준 그 배추전을. 손으로 북북 찢어 먹거나 반듯하게 잘라먹던 그 맛을 떠올려 본다. 할머니가 내 밥숟갈에 한 점씩 올려주시던 배추전. 그 맛을 잊지 못해 간혹 집에서 배추를 사다가 만들어보지만 전혀 그 맛을 살릴 수 없었다. 기억 속의 맛은 살아나지 않았다. 흰 부위는 물컹하게 물기만 잔뜩 고이고 이파리는 그저 뻣뻣하다. 배추가 예전처럼 구워지지 않는다.
어디서 찾을까. 이제는 아련하다. 어떤 맛이었는지. 차츰 추억은 바스러진다. 할머니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제사 때 엎드려 절할 때만 중얼거린다. 저 왔어요. 할머니. 그 맛을 그려본다. 이런 맛이었을까. 보고 싶어요. 언제 어디서 먹은 것이 가장 맛있었나. 이 맛인가. 흰 부위는 부드럽고 이파리는 쫀득했는데. 보고 싶은데. 간장에 찍으면 달짝지근하면서 때론 은은함이 가미되어 짭짤하다. 부드러운 맛. 어디 계세요? 나는 배추전과 할머니를 번갈아 연상한다. 내 기억이 멀어지는 만큼 할머니도 나를 잊는다. 점점 멀어진다. 어느새 배추전도 가물가물. 할머니의 모습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만이라도. 아슴푸레 그 맛을 간직하고프다. 시간은 흘렀고 이제 기억만 남았다. 지금은 기억마저 몽롱하여 뼈대마저 부서진다. 어째야 하나.
할머니! 할머니, 그냥 할머니만 있잖아요. 오늘따라 배추전 냄새를 떠올리니 할머니가 더 생각나요. 눈에 생각이 고인다. 눈물이 난다. 보고 싶은 마음. 그리움은 켜켜이 짙어 가는데. 그렇게 나를 부르던 할머니는 사라지고. 지글지글 부쳐 주신 예전의 음식. 어떤 맛이었나. 그저 아득하다. 하긴 손주가 이만큼이나 변한지도, 나이 든 줄도 모르시겠지. 내가 이만큼이나 커버린 줄도.
어느 겨울,
할머니는 경주의 오래된 화장터에서 화장되었다. 내내 웃다가 울음만 남기고 가셨다. 나는 재가 든 도기를 들고 야산 여기저기에 뿌렸다.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그냥 뿌렸다. 나는 지금도 후회하곤 한다. 아무래도 다시 찾아볼 훗날을 고려해야 했다. 그 야산이 어디였는지. 그저 할머니의 고향과 가깝다는 이유로 뿌리고 말았는데. 지금은 찾아보지도 못하고 그저 제사만 모신다. 일 년에 한 번, 할머니는 그곳에서 우리 집까지 잘 찾아오실까. 거리가 제법 멀다. 오셨다가 다시 어디로 가시려나. 나는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매번 후회의 끝자락에 이어서 한다.
쭝얼쭝얼.
잠결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중얼중얼. 원래 내 몸의 일부였던 것처럼 소리는 편안하다. 조곤조곤 아스라이 정겨운 목소리. 할머니의 목소리다. 오랜만에 듣는 할머니의 말씀. 벌써 명절인가. 간밤의 귀향길에 녹초가 되었나. 나도 모르게 할머니 댁에 왔나 보네. 피곤했나 봐. 긴 세월 둘러서 이제야 돌아와, 아랫목이 뜨끈하니 등짝이 녹아내린다. 여독 때문에 푹 잠들었구나. 그러면 지금이 가을이란 말인데. 어쩐지 계절이 낯설지만 뭐 아무래도 좋아. 성묘 가는 길, 코스모스가 피었겠네. 보고 싶다. 벌써 준비하시는 건가. 좋다. 이 냄새. 할머니의 목소리와 전 굽는 소리에 선잠이 깨는 아침. 나는 아직 눈을 뜨지 않는다. 한없이 그리운 순간. 할머니가 중얼거린다. 마할 년들 어여 일어나 준비 안 하고. 우리 아가! 마이 말랐구마. 내 새끼. 오랜만이제. 잘 있었더나. 오이야, 내 배추전 구워주꾸마. 좀만 기다리래이. 그러면서 전을 굽는다. 나는 차마 눈 뜨지 못한다. 계속 자는 척만 한다. 불현듯 스치는 생각, 나는 배추전 먹어본 지가 꽤 오래됐는데? 그제야 깨닫는다. 행여 소리가 멈출까, 들리지 않게 될까 봐 조마조마 두근거린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달그락거린다. 그 소리가 참 좋다. 지지지. 전 익는 소리가 난다. 어디서 나는 걸까. 프라이팬이 도닥도닥 전을 굽는다. 하얀 밥그릇이 작은 상에 놓인다. 수저도 다각다각 제 위치에 놓인다. 그려, 이게 그리 먹고 싶었더냐. 좀만 기다리래이. 내 금방 해줄 모양인 게. 할머니는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마할 년. 장에 배추 사다가 좀 구워주면 될 것을. 우리 알라가 자꾸 먹고 싶다 캐도 해주도 안 하고, 참말로, 애달쿠그로. 나는 초조하다. 눈뜨면 꿈일까 봐 목소리가 사라질까 봐,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다. 할머니, 할머니군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 할머니! 우리 할머니가 여기에. 당장 저예요, 저라구요, 말하고 싶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왜 할머니 목소리가 들릴까. 정말일까? 모르겠다. 눈 뜨면 보일까. 어떡하지, 다 사라질 것만 같은데. 아아, 아닌 것 같은데. 얼핏 냄새가 난다. 이 냄새는 그래, 바로 이 냄새였지. 이 냄새.
어린 시절, 나는 왕왕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손자를 제집에 데려가 낡은 부엌 정지에 앉히고는 좀만 기다리래이 하고 전을 굽는다. 나는 발을 토당 토당 놀리며 그 모습을 바라본다. 아이고, 내 새끼 마이 무거라. 할머니는 바스락 소리를 내며 어느새 준비하고 철퍼덕 배추전을 뒤집는다. 나는 꼴깍 침을 삼킨다. 할머니를 본다.
나는 여전히 눈 뜨지 못한다. 지지지,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