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도그에 설탕과 케첩을 발라 먹었다.
자꾸 쳐다보게 된다. 수업 중에도 쉬는 시간에도 본다. 아홉 살 꼬마는 늘 같은 반 아이를 눈여겨본다. 이름은 임지은. 꼬마는 임지은을 지은아, 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보통의 초등 친구들처럼 스스럼없이 부대끼던 사이가 아닌. 멀찍이서 내내 지켜만 보는 존재.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아이. 가슴 콩닥거리는 느낌. 꼬마에게 이것은 좋은 느낌이니? 왜 계속 보게 되지? 보다 보면 행복해지니? 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도리도리 대답할 테다. 그럼에도 계속 찾게 되고 좇게 되는 마음. 끌려서 동경하는 심리. 친해지고 싶니? 라고 묻는다면 또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은. 그럼 왜 아닌데? 그건 있잖아요. 차마 친해질 수 없는 마음. 선뜻 가까이할 수 없는 기운. 꼬마는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지켜만 보는 마음. 보고 있어도 설렘이 돋아나 가슴이 아린다고 한다. 결코 따뜻하지 않은 공간. 차가운 공기. 깨끗해서. 너무나 투명한 거리에서 맑게 맑게 나아가 티끌 하나 없는 먼지. 그래서 허무하고 허탈하고 또 허망한. 그런데 어떻게 다가가니. 다가가면 그동안 쳐다본 마음 사라질 것 같아서. 그 느낌 가실 것 같아서 차마 그럴 수 없어. 그냥 지금 이 간격이 적당해요.
꼬마에게 딱 한 명 친구가 있는데.
학교에서 임지은의 짝꿍이던 친구. 꼬마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친구. 그래서 집에 하굣길을 같이 가던 친구. 걷다가 장난치던 친구. 정답게 얘기하던 친구. 둘이서 갈 때면 둘도 없는 단짝. 그러나 교실에서는 무리와 섞여 색깔이 희석되어서. 네가 나랑 단짝인지 알아볼 수가 없어. 집에 갈 때만 같은 색이 되는 사이. 어릴 적 부대끼던 관계. 그러면 등굣길은 왜 따로따로 가? 딩동댕 학교 종례시간은 일정하지만 출발시간은 종을 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에게는 쌍둥이 누나가 있다. 쌍둥이 누나는 친구와 손잡고 함께 간다. 누나들은 고학년이다. 고학년 누나가 동생을 챙겨주는데. 꼬마는 뒤에 떼똑 떨어져 따라간다. 어? 친구네? 안녕? 쌍둥이 누나와 친구가 나란히 서서 간다. 꼬마는 혼자 간다. 얘 너도 이리 와 같이 가자. 그 말에 같이 가려고 해 본다. 누나들은 친구를 가운데 두고 손잡아서 간다. 꼬마가 어느 쪽이든 누나 옆에 설 수 있을 정도로 길은 널따랗지 않다. 같이 가더라도 같이 갈 수가 없다. 무리 지어 가도 무리는 갈라진다. 손 잡혀 가는 친구 뒤에서 꼬마는 자신의 손을 본다. 손을 어디에 두지. 가방 끈을 잡고 갈까. 주머니에 넣고 갈까. 힘차게 앞뒤로 흔들어보지만 금방 심심해 손 둘 데가 없다. 그게 어찌나 부러운지. 난 왜 누나가 없을까. 꼬마에게는 그것이 어떤 결핍으로 다가온다. 없어도 괜찮았지만 없어서 괜찮지 않게 되는. 친구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것.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는 깨달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숙명. 바꿀 수 없는 현실. 하소연하기에 마땅히 말할 데가 없고. 말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거. 안다. 다 알기에. 그저 묵묵히 뒤따라가며 바라만 보는 눈빛. 친구의 양 손을 잡은 누나들의 다정한 손. 언제나 웃어주고 혼내고 챙겨주고. 어리광 부리는 상대. 나는 없네. 한 명만 주지. 원래부터 없어서 필요하지 않았는데. 왠지 필요하게 되는 지점. 등굣길만이라도 누나가 있으면 좋겠다. 꼬마는 친구의 누나를 보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친구더러 혼자가라고 했다. 꼬마는 갈 데가 있다고 했다. 혼자 가본 적 없는 친구는 혼자 가기 좀 그렇다고 했다. 누나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꼬마는 그러라고 했다. 꼬마는 학교 앞 분식점에서 오십 원을 내고 핫도그를 샀다. 핫도그는 크고 두꺼웠다. 접시에 뱅그르르 돌려 하얀 설탕을 고루 묻혔다. 이어서 케첩까지 잔뜩 발랐다. 핫도그를 손에 들고 엄마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찾을 수 있지? 전에 엄마랑 짜장면 먹었던 가게. 그리로 와. 낮에 학교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러서 전화를 받아보라고 했다. 엄마는 모처럼 꼬마 있는 데로 찾아와 만나자고 했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나 핫도그 사 먹어도 돼? 물론이지. 전에 엄마가 준 돈 있지? 그걸로 사. 꼬마는 큼직한 핫도그를 먹으며 걸었다. 신났다. 예전 가족이랑 함께 살던 동네. 매번 가던 남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가면 돼. 핫도그를 반쯤 먹었을 때 저 앞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임지은이다. 꼬마는 깜짝 놀라 핫도그를 먹다가 쳐다보았다. 그러다 핫도그를 어디에 뒀는지도 몰랐다. 임지은은 오르막에 있던 회색 아파트로 들어갔다. 꼬마는 무작정 따라갔다. 낯선 곳에서 만난 학교 친구. 더구나 임지은이라니. 반가웠다. 아는 척이라도 해볼까. 손을 드는데 임지은이 돌아봤다. 임지은은 말없이 꼬마를 봤다. 우리 반 친구네, 하고 봤다. 꼬마의 입가에는 케첩이랑 설탕이 군데군데 묻었다. 꼬마는 그것도 모르고 임지은이 자신을 알아보네, 하고 기뻐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임지은의 동생이 쪼르륵 나왔다. 동생은 임지은과 똑같이 생겼다. 일곱 살 동생은 앞니가 없었다. 임지은은 꼬마를 볼 때와 다르게 동생을 보자 환히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자매는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꼬마는 그 모습을 망연히 보다가 돌아섰다. 핫도그가 어디로 갔지? 두리번거리는데 길 건너 엄마가 손 흔드는 게 보였다. 잘 찾아왔네. 꼬마는 엄마와 짜장면을 먹었다. 누구 아는 친구니? 엄마가 물었지만 꼬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방송 작가라고 했다. 우리는 우연히 친구를 매개로 연락을 시작했다. 그녀는 친구를 기억한다고 했다. 아홉 살 때 친구는 자신의 짝이었다고 되려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언젠가 교실에서 분단별로 연극하고 사진 찍은걸 얘기 꺼냈다. 내게 연극에 관해 기억하냐고 물어왔다. 그때 자신의 옆에는 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너도 사진 속 옆에 있냐고 묻길래 나는 아마 없을 거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멀찍이서 지켜봤으니. 지켜보는 존재는 자신이 보는 피상물을 늘 함께 한다고 떠올린다. 지켜보는 존재로부터 늘 함께 한다고 정해져 버리는 주체. 즉 그녀는 지켜보는 존재를 알지 못한다. 누군지도. 우리 집에도 그 사진이 남아있다. 동물 가면을 만들어 써서 연극했다. 어쩌면 기린 아니면 코끼리일지도. 각자 만든 가면을 머리 위로 올려서 두 줄로 섰다. 분단별로 서라고 했다. 앞줄에 다섯 뒷줄에 다섯. 앞줄은 앉았고 뒷줄은 섰다. 모두 멀뚱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본다. 꼬마는 엄마가 짜준 조끼를 입고 있었다. 앞머리가 가지런히 내려와서는 통통한 볼. 임지은은 사진에 없다. 임지은은 꼬마가 사진 찍을 때 교실 의자에 앉아 꼬마를 바라봤다. 바라보는 임지은을 의식하면서 꼬마는 사진사를 봤다. 한 사진에 담기지 않아서일까. 우리는 같은 연극을 하고 사진을 찍었지만 같이 연극 한 줄을 모른다. 같이 연극 한 줄을 몰라서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기억 속에 없다는 말을 실체로부터 직접 들으니 한없이 당황스러운 마음. 허탈하고 허망하여 허무한 게 이럴까. 반면에 나는 친구와 그녀를 동시에 기억한다. 내가 기억하는 건 무엇 무엇이 있을까. 머리카락이 짧다는 거. 똑 닮은 동생이 있다는 거. 아파트에 살았다는 거. 이름이 임지은이라는 거. 친구의 짝이라는 거. 이제는 방송 작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 그마저도 오래됐으니. 실체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나 또한 그녀가 연극한 줄을 모르고 있다.
아 그때가 아홉 살이었구나. 이 글을 쓰다가 사진이 있는 어머니 댁으로 한번 찾아가 찬찬히 찾아봐야지 생각했다. 아는 얼굴이 있나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봤다. 어찌 된 건지 사진 속 나는 임지은과 함께다. 같은 분단. 친구는 없다. 친구는 없고 친구 자리에 내가 있다. 나는 임지은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모르는 이를 조각조각 맞춰 추억하고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많이 봤는데. 아홉 살 때는.
다시 세월이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