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는 집에서 국제로터리를 빙그르르 지나 봉곡동의 심장, 봉곡 로터리를 향해 걸었다. 학교에 가는 도중 몇 번이고 길을 건너서 봉곡동 서부시장으로 향했다. 봉곡 로터리와 서부시장은 모두 학교 근방이다.
꼬마는 길이 낯설었다.
무조건 동쪽으로 할머니들이 많이 보이는 곳으로 가면 그곳에 학교가 나타났다. 미용실 집 큰아들 꼬마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작은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엄마의 당부대로 손을 꼭 잡고 학교로 갔다. 큰아들 입장에서도 전학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교 가는 방향이 낯설기는 매한가지였다. 처음엔 손을 잡고 가다가 어느 날부터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바닥에 보도블록 사이 금을 밟지 않으려고 총총 뛰면서 걸었다. 지루한 등굣길에서 일종의 게임 법칙이었다. 금을 밟으면 안 되고 짙은 색의 보도블록도 밟으면 안 되는 게임. 파란 블록을 밟으면 10번의 기회가 생겨난다. 반대로 빨간 블록을 밟으면 바닥 금을 밟은 것과 같이 기회가 차감된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서로 밟으면 안 되는 블록을 피해 요리조리 뛰면서 누가 빨리 가나 하는 것으로 긴 등굣길의 무료함과 낯섦을 타파했다.
꼬마는 동생과 하는 게임에서 초반에는 계속 이겼다.
하루는 동생이 또 게임에서 지자 그만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떼를 쓰기 시작했다. 동생은 형이 뒤돌아보자 더 크게 울어 젖혔다.
"형아가 아까 반칙했잖아."
"나 반칙 안 했는데?"
"아까 금 밟는 거 봤단 말이야."
"으응? 그럼 오늘은 형아가 진 걸로 할게."
꼬마는 승부를 동생에게 양보했다. 동생은 의기양양 어느새 제법 능숙한 걸음으로 앞장섰다.
이튿날 늘 그랬듯 꼬마가 또 이겼다.
동생은 다시 주저앉아서 울었다. 꼬마는 뒤돌아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그대로 모른 척 걸어갔다. 뒤에서 동생은 뿔이 나서 더 크게 울었다. 형이 돌아보지도 않자 다급했다. 앉은 채 두 발을 동동 차면서 울었다. 그럴 때면 늘 꼬마는 뒤돌아 동생을 챙겼지만, 그날만큼은 애써 무시하고 갔다.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서 봉곡동 서부시장을 쩌렁쩌렁 울렸지만 꾹 참았다. 그리곤 코너 담벼락으로 돌아가 몸을 숨겼다. 이제 저 뒤에 동생 눈에서 형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꼬마는 생각했다. 이제 동생의 울음이 그쳤을까? 저도 보채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겠지? 이만하면 됐겠다 싶어 살짝 엿보는데, 아아 동생은 여전히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급기야 울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목소리는 잠기고 얼굴에 눈물 콧물이 범벅되었다. 꼬마는 놀라서 뛰어가 동생을 안아 일으켰다. 그러곤 미안하다고 말하며 동생의 옷을 털었다.
"형아가 잘못했어, 이제 안 그럴게."
동생도 지쳤는지 형아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는 겨우 울음을 그쳐서 딸꾹 딸꾹 거렸다. 꼬마는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형아만 쳐다보는 동생. 얼마나 무서웠을까. 동생의 손에 묻은 먼지를 털며 꼬마는 보았다. 일곱 살 조막만 한 손. 지금 국제로터리와 봉곡 로터리 사이에 아는 이라곤 오직 형아뿐인데. 고작 초등학교 1학년 동생인데. 꼬마는 동생이 안쓰러워 그날부터 동생을 이길 수가 없었다.
동생은 신이 나 앞장서서 걸었고 꼬마는 동생을 뒤따르며 어제도 지고 오늘도 지고 또 졌다.
꼬마가 진주에 온 지 반년 정도 지났을 때 집은 봉곡동으로 옮겨갔다.
봉곡동의 시작점인 국제로터리 어느 상가주택의 다세대 집이었다. 언젠가부터 국제로터리를 오죽광장이라 부르는데 국제적인 명칭에 매료된 주민들과 기타 인터내셔널을 지향하는 이들은 오죽광장을 오직 국제로터리라고만 불렀다.
꼬마는 그중 미용실 집 큰아들이었다. 엄마가 미용실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벌이는 오락가락했다. 미용실에는 남자 손님도 꽤나 드나들었다. 아버지는 엄마가 남자들에게 헤픈 웃음을 내보인다고 못마땅해했다.
꼬마는 아직 봉곡동이 낯설어 늘 미용실 앞 자갈밭에서 길 건너 인사동을 바라봤다. 건너편은 봉곡동보다 낙후된 상가주택이 늘어섰는데 정면에 이용원이 자리했다. 미용실 집 아들인 꼬마는 나중에 중학생이 되면서 그 이용원에 드나들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처럼 이용원은 하얀 타일이 새카만 검정으로 얼룩진 아주 오래된 이발소였다. 이용원에서 하얀 면도 크림을 헤어 라인에 따라 두르고 사각사각 면도칼로 훔치는 쾌감이란. 꼬마는 그 맛에 미용실 집 아들인 주제에 이용원을 다닌지도 모르겠다.
나이 든 이발사 아저씨의 까무잡잡하면서도 메마른 주름이 생각난다. 정갈하게 입은 하얀색 가운에서, 차가운 면도칼의 감촉과 대비되는 그의 따뜻한 손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촉각의 기억이란 이미지의 시각보다 오래가는 듯하다. 섬뜩한 칼이 내려오기 전 먼저 손가락으로 그 주변 부위를 잡아 고정한다. 움직이지 말라는 표시다. 단단히 힘을 주어 경각심을 주면 꼴깍 침도 다 삼키지 못하고 기다린다. 신성한 행위가 곧 이루어진다. 행위는 아름답다. 수많은 연습 뒤 실전을 치르는 것처럼 고단한 세월을 밑천 삼아 오로지 아름다운 그 행위 하나를 위해 숱을 치고 거품 내 바르고 등받이를 뒤로하여 마침내 누워서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다.
아버지는 곧잘 화를 내곤 했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 쓸던 비를 들고서 미용실 의자를 비롯하여 여러 집기를 마구 후려쳤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드디어 사각! 피부는 매끄러울까. 면도날이 지나갔다. 칼날의 직선을 견딜 만큼 일정한 표면으로 이루어졌을까. 아직 모른다. 어떻게 생겨가는지. 서슬 퍼런 칼날의 유려한 움직임을 위해서 피부는 유리면처럼 매끄러워야 한다. 그리고 칼날이 내려갔을 때 뒤이어 어떠한 느낌이 오는지 나는 서늘한 통증의 갈래로서 어렴풋이 구별해야 했다. 시원하다. 그뿐인가? 시원함 뒤에 어떤 아릿함이 뒤따르지는 않는가. 피가 난다면 그것은 칼날이 아니라 피부 표면의 잘못이다. 칼날이 지나갔으니 피부는 아픔을 각인하여서 그것이 공부가 되어 비록 피를 봤지만 장래 더 나은 매끄러움을 위해 되려 당연히 겪어야 할 아픔일지니, 꼬마는 크림을 바를 때부터 두근두근 긴장되는 마음으로 칼날을 기다린다. 이번에는 피나지 않을까. 무사할까. 어른이 되기 위해, 남자가 되기 위해 관리받고 다듬어져 가는 과정이니 꿋꿋이 참아야 한다. 이발사는 자신이 길 건너 미용실 집 아들임을 알아서 좀 더 심혈을 기울여 이발해 주리라, 꼬마는 마음속 깊이 되짚어본다. 미용실에서 다룰 수 없는 남자들만의 세계와 분야에 그만의 기품 어린 기술을 과감히 시용하여 꼬마를 남자로 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마냥 의존하던 엄마는 미용실에서 차츰 홀로서기 시작했다.
목욕탕에 가자.
아버지는 꼬마와 동생에게 말했다. 형제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미용실 집을 나섰다. 국제로터리 길을 막 건너기 전, 아버지는 꼬마에게 말했다. 가서 엄마에게 목욕비 받아오너라. 꼬마는 궁금했다. 목욕비를 받아오라니? 아버지나 엄마나 늘 돈이 수중에 가득한 어른이 아닌가. 혹시 아버지가 농담하는 거야? 아버지는 가게를 하고 엄마는 미용실을 하고, 꼬마가 먹고 싶을 때 사고 싶을 때 언제든 용돈을 내주는 주체가 아니던가.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삼촌과 기타 친척에게도 항상 용돈 드리는 사장님이 바로 아버지인데 고작 목욕비를 받아 오라니? 아하, 갑자기 나오느라고 지갑을 챙기지 못하였구나, 했다. 꼬마는 미용실로 돌아가 엄마에게 그대로 전했다. 엄마! 아빠가 목욕비를 안 가져왔다고 목욕비 받아 오래. 그러자 엄마는, 뭐라는 거니? 너희 아빠는 목욕비도 없다니? 그럼 목욕을 안 가야지, 시골에는 잘도 갖다 바치면서, 하면서 역정만 냈다. 돈을 안 주고 화만 내어 꼬마가 눈대중하길, 아빠와 엄마가 또 싸웠구나, 했다. 아버지는 어디라도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다 싶어서 목욕탕에 가자는 거였다. 꼬마는 아버지에게 돌아가, 엄마가 목욕비 없다는데?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그래도 한 번 더 다녀오라고 했고 꼬마는 세 번째 찾아가서야 목욕비를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정녕 목욕비가 없던 날이 잦았고 그래서 엄마와 자주 싸웠다. 엄마는 아버지가 미우면서도 한숨을 내쉬면서 목욕비를 주었다.
진주시 상봉동에 아직 진주교도소가 있던 시절, 교도소 인근 목욕탕에서 (목욕탕 이름은 부용탕이다.) 아버지와 꼬마와 동생은 화가 난 엄마를 피해 목욕을 다녀왔다. 아버지는 돈이 없구나, 꼬마는 생각했다. 돈이 있으면 집에다 가져다주지 왜 친척들에게만 줄까? 그래서 엄마가 미용실을 하는구나. 아버지가 하는 가게가 잘되고 안되고에 따라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주고 못하고 따위가 결정되고 우리는 불편하게도 여러 집이 함께 쓰는 공용화장실을 써야 하는구나, 하고 꼬마는 인식했다.
어른들이 각자의 가게에 바빠 형제랑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주말.
꼬마는 동생의 손을 잡고 봉곡로터리 옆 대웅 극장으로 갔다. 봉곡로터리는 진주 시내 중앙 광장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다. 크게 진주교부터 평안 광장까지를 시내라고 본다면 한 블록이 되기도 한다. 한 블록은 같은 동네라 해도 무방하다. 시내가 햇살이 빛나는 양지라면 봉곡로터리는 준양지 정도가 되었다. 지금이야 진주 시내를 시내라고 단호히 부르기에 어색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음지에 사는 이들이 양지로 구경 나가듯, 당시 진주 시내 지척의 대웅 극장은, 나 시내 나간다, 시내 다녀올게, 시내 간다고 쫙 빼입었네, 라는 표현이 어쭙잖게 어울리던 장소였다. 한편 한 블록만 떨어졌는데 그 한 블록의 차이는 컸다. 극장마저 시내 중심가에 있던 극장과 수준 차이도 컸다. 시내의 극장에서 새 영화가 상영되고 다음 영화가 나올 때쯤 헌 영화가 되어버린 새 영화가 대웅 극장에 걸렸다.
그날 영화 제목은 여곡성이었다.
조선 시대 시어머니가 죽어 귀신이 되고 주인공 며느리가 귀신이 된 시어머니를 보고 연신 놀라는 영화였다. cg가 없던 시대 귀신 분장의 기술이 정점을 찍은 영화가 바로 여곡성이다. 며느리가 국수를 먹는데 국수가락은 알고 보니 지렁이였고 영화 때문에 꼬마는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몇 년간 국수를 먹을 때마다 국수가 실은 지렁이 무리가 아닐까 의심했다. 물국수보다 칼국수를 먹을 때 증상이 심하였는데 씹어보고 식감을 이로 세밀히 느끼면서 씹히는 몰캉함이 국숫발인가 지렁이인가, 엄마의 눈이 하얀가 까만가 분간하려고 애썼다. 그 정도로 꼬마와 동생에게는 파급력이 큰 영화였는데, 형제는 영화가 언제 시작되는지 또 시작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오백 원을 내고 무작정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좌석은 가득 차 앉을 데가 없었다. 꼬마와 동생은 두리번거리다 맨 앞자리에 가 그냥 앉았다. 여곡성은 이미 종반을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여곡성이란 말은 말 그대로 여자의 울부짖음이라는 말이다. 여자의 울부짖음이라는 자극적 공포 영화를 초등학교 1학년과 5학년이 극장 맨 앞자리에서 맞닥뜨린 것이다. 꼬마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영화는 계속 깜짝깜짝 놀라게 하며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음향은 또 어찌나 큰지 가슴이 콩닥거려 진정되지 않았다. 흡사 전설의 고향 속 비 내리는 공동묘지 현장에 온 것 같았다.
돌연 밤중에 며느리가 자다 말고 밖으로 나간다. 시어머니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추적하기 위함이다. 몰래 뒤따라가 괴상한 행동을 주시한다. 시어머니는 연신 뒤돌아보며 누군가 지켜보지는 않는지 불안해한다. 그러곤 몰래 닭장 안에 들어가 닭 한 마리를 들어 올리는데 그 순간 뒤에서 자박! 며느리의 인기척이 들리고 동시에 시어머니는 홱! 고개 돌려서 며느리를 째려본다. 그때 그 시어머니의 얼굴이란, 달빛에 비쳐 자못 하얗게 무척이나 하얘서 마치 죽은 자의 얼굴처럼 엷은 청색, 창백한 빛깔이다. 눈동자의 검은자위는 흐릿하게 흰자위에 매몰되어서 전부 흰자위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눈을 위로 치켜뜨는데 그림자가 안구와 콧잔등과 눈가에 까맣게 드리웠다. 결정적으로 그림자가 드리운 부분마다 피가 흐른다. 피 때문에 놀랐을까? 아니 피는 이미 익숙해졌다. 그럼 뭘까? 바로 하얀 눈동자 때문이다. 갑자기 돌아보는 그 하얀 눈에 동생은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앙! 꼬마는 일단 동생에게 조금만 참아, 라면서 다독이지만, 이윽고 시어머니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에, 마치 극장 안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다다다 달려오는 듯하여, 맨 앞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섰던 동생은 결국 참지 못하고 으앙 외침과 함께 뛰쳐나갔다. 꼬마는 이제 막 들어온 영화가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왔다. 극장을 나서고도 한동안 훌쩍이던 동생은 형의 즉흥적인 금 밟기 게임 제안에, 금세 헤헤헤 웃으며 앞장서 달렸다.
이후 몇 달이나 지났을까. 여곡성을 티브이로 볼 때는 그 무서움이 극장만큼 크지는 않았다. 동생과 꼬마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마저 보지 못한 여곡성을 보는데 결정적인 장면, 시어머니가 홱 고개를 돌리는 장면에서도 에이, 하면서 김 빠져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지방의 시내 변두리 낡은 극장에다가 어두컴컴한 실내, 거기다 맨 앞자리라는 특수성, 형제의 첫 영화관 관람, 어른의 부재라는 요소가 두루 섞인 효과가 아닐까 짐작된다.
종례 후 아직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교실에서 선생님은 말했다.
너 집 주소를 왜 이렇게 적었니? 국제로터리 근처 미용실이라니, 이게 주소니? 이렇게 적으면 우편물이 가니? (이 타이밍에서 아이들이 와하하 웃었다) 정확한 주소가 어떻게 되지?
꼬마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꼬마는 부끄러웠다. 유쾌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모욕감이었다. 정확한 주소를 모르는 것보다 미용실 집에서 산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왜 미용실 집에서 살까. 미용실에 딸린 방 두 칸짜리 주택. 모든 우편물은 미용실에서 받고 바깥으로의 출입 역시 전부 미용실이지만 꼬마는 미용실에서 산다는 것을 들키는 게 두려웠다. 왜 두려웠을까? 그즈음 같은 반 어떤 여학생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꼬마는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자신의 집을 들키는 게 싫었다. 언젠가 학교를 파하고 꼬마는 여학생을 따라가 보았다. 여학생은 대웅 극장 옆 골목 철물점에서 살았다. 자신처럼 일반 가정주택이 아니었기 때문에 꼬마는 안도했다. 너도 가게에 딸린 집에 사는구나. 그렇지만 여전히 미용실 집에 사는 열등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미용실과 철물점의 차이는 뭘까? 꼬마는 철물점 여학생에게 들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집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서로의 이름도 똑바로 불러본 적이 없건만, 미용실 집 아들이라는 이미지부터 씌워버리면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꼬마는 선생님을 원망했다. 그리고 엄마를 생각하며 속상해했다. 우리 집 주소가 뭐야? 국제로터리 앞 미용실이지. 그게 주소야? 국제로터리에 미용실은 우리 집 하나뿐이니까 손님들은 다 이쪽으로 잘 찾아오던데. 엄마가 전화로 설명하듯 말한 것을 꼬마는 주소라고 알아들었다. 때문에 꼬마는 철물점 딸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주저앉았다. 아이들이 와하하 웃던 순간에 꼬마는 여학생의 몇몇 예비 남자 친구 리스트에서 삭제되었다. 거품이 잔뜩 묻은 리스트에서 서슬 퍼런 기요틴이 찰나에 떨어지듯 칼날이 지나갔을 때 깨끗한 피부.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피어나는 핏방울. 아픔은 차츰 피어난다. 아픔이 거듭될수록 이 이상의 아픔을 피하려고 반듯하게 커나간다. 미용실 집 아들이라는 간판을 짊어지고서 어느 날부터 꼬마는 이용원에서 이발을 시작했다.
꼬마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어린 동생은 홀로 학교에 갔다.
혼자서 금 밟기를 하며 갔을까? 형이 없는 길 위에서 동생은 더 울지 않았으리라.
지금 아버지 곁에는 엄마가 없다. 그래서 목욕비를 달라고 할 수가 없다. 아버지 곁에는 꼬마도 없고 동생도 없다. 그래서 목욕비를 받아오라고 시킬 아들이 없다. 엄마와 동생도 뿔뿔이 떨어져 산다. 나는 아버지와 목욕탕에 간 지가 언젠지 생각해보는데 생각나지가 않는다. 아버지의 젊은 날, 엄마와 함께했던 봉곡동에서 네 식구 옹기종기 살던 날, 목욕탕에서 꼬마와 동생은 서로 아버지의 등을 밀려고 아웅다웅 경쟁하였다. 국제로터리에서 토속적으로 살던 네 식구는 모두 국제적으로 제각각 혼자가 되어 그날을 잊고 산다. 얼마 전 오랜만에 봉곡동으로 가본 날, 미용실과 이용원, 철물점이 어디에 있었는지 헷갈려 찾지 못했다. 마땅히 가게는 바뀌고 바뀌어가고 바뀌어있었다. 다만 가게가 있던 건물이라도 보고 싶었다. 저기쯤이 우리 방인가, 가늠하고 싶었다. 결국 흔적조차 찾기가 쉽지 않아서 갸우뚱 헤매다가 종내 어째서 자주 와 보지 않았는지 스스로 자책하는데,,,,,,, 문득 저 앞에서 아이들이 금 밟기를 하며 걸어오는 게 보인다. 뭐? 꼬마는 동생에게 같이 가자고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며 뒤따른다. 이거? 나는 그 전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깜빡이지도 못하고 부릅떠 본다. 아아! 지금뿐이다. 간절히 꼬마를 부여잡고 자초지종 물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래! 마침내 나는 참지 못하고 꼬마에게 소리친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모두 떨어져 살지? 겨우 네 명뿐인 가족이잖아. 대체 내가 살던 집은 어딨는 거야?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가 않아. 다 어디로 갔는지, 이젠 찾을 수가 없단 말이야.
제발... 제발... 제발......
내가 말하는데도 꼬마는 동생이 건너는 길 옆에 차가 오는지 자전거가 오는지 쳐다보느라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