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은 늘 보는 곳이지만 도로에 막혀 잘 가지 않는 곳이다. 도로 하나를 두고 여긴 봉곡동 저긴 인사동이다. 인사동은 나서면 맨 처음 보이는 동네. 길 건너 눈 뜨면 보이는 곳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소녀가 등장했다. 그곳에 살고 있다는 소녀. 이때부터 인사동이라는 이미지가 다채롭게 형성되었던 것 같다. 봉곡동이나 인사동이나 거기서 거기지만 꼬마에게는 달랐다. 봉곡동은 내가 사는 동네고 인사동은 그녀가 사는 동네다. 봉곡동은 남자의 동네고 인사동의 여자의 동네다. 길 한번 건널 뿐인데, 교차로를 지나 인사동에 발을 디디면 괜스레 가슴이 뛴다. 엄마는 도로를 건너지 말라고 했다. 위험하니까 이 동네에서만 놀라고 했다. 가끔 인사동에 가더라도 혼날 것 같아 금방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이 두근거림은 뭐지?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그런가? 아니야. 그것과 달라. 왜 인사동에만 가면 기분이 좋아지지? 어쩐지 금방이라도 만날 것만 같아. 엄마가 아니라 그녀와 마주칠 것 같은 생각. 막상 눈앞에 나타나면 어쩌지? 이를테면 기분 좋은 두려움?(나는 지금도 인사동에 갈 때면 그 시절 두근거림을 느낀다. 인사동은 아내가 살았던 동네다.)
어째서 한 번도 보지 못했을까?
짧은 머리에 다소 마른 체형. 작은 얼굴이지만 키는 꼬마보다 컸다. 꼬마는 떨렸다. 소녀는 꼬마에게 초콜릿을 손에 쥐어주었다. 내게? 초콜릿을 왜? 선물이야? 아이가 아이에게 주는 선물? 꼬마는 손에 든 초콜릿이 맛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뭇머뭇 곧장 뜯지 않았다. 뭔가 특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특별함은 곧 소중함을 의미한다. 왜 소중하지?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아니면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덮어놓고 초콜릿을 먹어버리면 안 될 것만 같은... 소중한 메시지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무언가 할 말이 있을 거 같은...
알쏭달쏭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같이 놀고 싶다는 건가? 같이 놀고 싶다면 그냥 만나서 함께 놀면 그만인데, 왜 초콜릿까지 주면서 놀아달라고 하나? 친구가 없나? 모르겠다. 모르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마음. 친구가 되고 싶다는 거 같은데 그러면 우리 동네에 오면 되잖아. 우리 집에 와서 똑똑 문을 두드리거나 미용실 안에 들어와서 내 이름을 부르면 될 텐데. 왜 우리 동네나 집이나 가족이나 그런 울타리를 거치지 않고 이렇게 나한테 직접 쥐어줘 버리면... 난 아직 꼬만데, 난 아직 나를 뚝 떼어내 독립적인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데, 뭔가 정중한 다짐처럼 부탁하고 부탁받는 과정, 난 아이란 말이야. 그런데 이상하게 떨려. 이 감정은 뭘까? 왜 자꾸 가슴이 두근거리지?
꼬마는 미용실 소파에 앉아 물끄러미 초콜릿을 봤다.
먹을까 말까? 먹으면 사라지는데. 없어지는 건 싫어. 그래도 자꾸 보고 있자니 먹고 싶은데. 어떡하지? 어떤 맛일까 궁금하기도 하여 꼬마는 결국 포장지를 조심조심 뜯었다. 겉 종이 안에 은박지로 싸인 초콜릿. 겉 종이를 내려놓는데 안쪽 면에 글귀가 보였다. 직접 손으로 쓴 볼펜 글씨다.
『안녕, 널 그동안 쭉 지켜봤어.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편지 보내. 이번 주 토요일 1시 둑에서 만나. 기다릴게』
꼬마는 놀랐다.
마음에 든다는 말을 이처럼 직접적으로 할 수 있다니! 친구 사이에 같이 놀다가 좋으면 더 오랫동안 같이 놀면 되는 건데 그걸 굳이 편지로 쓸 수 있다니! 그것은 엄청난 폭풍이 되어 부담으로 밀려왔다. 처음 느껴보는 부담. 고개를 드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이. 파도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입을 쩍 벌린다. 더구나 둑이라니? 어디를 말하는 거람? 둑이 하나로 각기 절단된 형태가 아닌데 가령 봉곡동에서 이현동으로 길게 이어진 전체가 둑인데, 그리고 봉곡동에서 인사동 방향으로도 짧지 않은데, 대체 어디서 보자는 거야? 사방이 둑 천지라고.
꼬마는 마음이 바빴다.
토요일 1시면 모레다. 시간이 없다. 둑을 다 둘러볼 수도 없고. 어딘가 표식을 해뒀을 수도 있다. 근데 왜 시간이 없지? 무슨 준비를 해야 하길래? 꼬마는 두려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그리고 토요일 1시까지 어떻게 기다릴지도.
엄마에게 초콜릿 포장지를 보여주었다.
엄마는 이게 뭐야 하면서 읽더니 픽 웃으면서 나가지 마, 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리 말할 수가. 꼬마는 너무 쉽게 결정된, 나가지 말라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소녀가 그동안 쭉 지켜봤다며 어렵사리 용기 내 건넨 편지를 무시하라니. 안 나가면 내내 기다릴 텐데. 더구나 이건 처음 받은 거예요. 마음 다치면 안 되잖아요? 하고 엄마를 보는데 엄마는 걔네 집 못 사는 가게야. 만나봐야 좋을 것 없어, 라고 했다.
사람의 이미지는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만들어질까? 덧붙여질까? 바뀌지는 않는 걸까? 꼬마는 겨우 한번 소녀의 얼굴을 봤을 뿐이다. 예쁘다 예쁘지 않다를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착하다 착하지 않다도 몰랐다. 좋다 좋지 않다도 만나봐야 알 수 있는데, 왜 만나지도 않았는데 그 애를 다 아는 듯 여겨야 할까? 저렇게 높은 파도가 코앞까지 밀려왔는데 상대하기 싫다고 고개 돌릴 수는 없다. 엄마의 말과 달리 꼬마는 파도를 타고 싶었다. 한 번도 타보지 못했지만 물을 먹더라도 헤엄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둑이 어딘지 물어봐야 했다. 동네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여주었다. 둑이 어디야? 음, 걔네 집이 인사동이니까 건너편 제일 가까운 곳으로 가봐. 꼬마는 끄덕였다.
드디어 토요일 1시.
꼬마는 둑에 나갔다.
다행히 둑길에서 하천 사이 중간에 소녀는 앉아 있었다. 소녀는 하얀 원피스에 둥그런 밀짚모자를 썼다.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 같았다. 먼젓번과는 판이했다. 다리가 덜덜 떨려 왔다. 꼬마는 힘겹게 내려가 소녀의 옆에 앉았다. 소녀는 돌아보며 말했다.
"왔니?"
꼬마는
"으응"
답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동안 말없이 있는데 뒤에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났다. 동네 아이들이 모두 뒤따라와 둑길에서 지켜봤다. 누군가 얼레리 꼴레리라고 외쳤다. 꼬마는 왠지 부끄러웠다. 소녀는 뒤에 아이들의 소란에도 무연히 하천을 바라봤다. 나불천은 유유히 남강으로 흘렀다. 꼬마는 안절부절못했다.
"너 처음이구나."
소녀가 말했다. 뭐가 처음이라는 건지 꼬마는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남자가 먼저 말을 해야지."
꼬마는 남자니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실은 자신이 남잔지 방금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우리 좀 걸을래?"
소녀가 꼬마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소녀와 꼬마는 동네 아이들을 피해 진주성 서장대 방향 둑길을 향해 걸었다. 얼마 후 하천 끝에 남강이 보였다. 꼬마는 제 동네가 아니어서 그런지 처음엔 낯설었다. 그러다 차츰 무채색이던 동네에 색깔이 깃들기 시작했다. 연한 초록의 연두색. 진주성과 남강의 색이다. 인사동 둑길. 소녀와 함께 두근두근 걸었기에 그곳은 연두색으로 꼬마의 가슴에 자리했다. 그곳을 누구와 어떻게 거니느냐에 따라 그곳의 색이 만들어지고 가슴 깊이 층층이 쌓여간다. 소녀의 하얀 원피스를 보며 뭐라도 말을 하고 싶었다. 모자의 챙이 그늘을 만들어 소녀의 눈을 짙게 보이게 했다. 예뻐.
"뭐라고?"
소녀가 물었지만 꼬마는 아, 아니야, 라고 얼버무렸다. 꼬마는 예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예쁜 아이는 네가 처음이야, 라고 생각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꼬마가 생각하길, 소녀가 어쩐지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도 길 건너 상가주택에서 살았다. 늘 인사동에서 봉곡동을 바라보며 학교에 갔을 테다. 꼬마는 봉곡동에서 인사동을 왕왕 돌아보다가 학교로 갔다. 위험하니까 가지 말아라. 엄마는 길을 건너지 말라고 했다. 차선은 넓은데 신호등이 없었다. 로터리에서 언제 차가 원을 그리다 빠져나올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우리 집 뒤에서 놀아라. 꼬마는 주로 인창 주유소가 있는 뒷골목에서 놀았다. 뒷골목의 집에 아이들이 있으면 모두 친구가 되었다. 상가에 붙은 집, 세 들어 작은 집, 허름한 집, 그리고 저택처럼 커다란 집까지. 꼬마가 더러 친구의 작은 집에서 끼니때가 되어 얻어먹고 오면 엄마가 뭐라고 야단을 쳤다.
“안 그래도 작은 집, 작은 방인데 너까지 들어가 비좁게 하면 어떡하니?”
“엄마! 노는데 좁고 말고 가 어딨어? 재밌으면 되지.”
“그래도 그러면 안 돼. 찬도 없는데 밥까지 얻어먹으면 민폐란 말이야.”
“찬? 찬은 많았는데? 우리 집보다 좋았어. 소시지도 있었단 말이야.”
“그건 너 때문에 꺼낸 거잖아, 아무튼 가지 말라면 가지 마.”
꼬마는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좁은 집에서는 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큰 마음먹고 아들 친구에게 밥 먹이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많이 먹으라 하며 웃고 있었는데 속으로는 다른 얼굴이었을까? 모르겠다. 우리 집에 친구를 데리고 왔을 때 비싼 바나나를 간식으로 내놓은 엄마의 표정이 떠올랐다.
"걔들은 왜 식 때가 됐는데 집에 갈 생각을 안 하니?"
생일날이나 한번 얻어먹던 바나나. 친구는 것도 모르고 허겁지겁 다 먹고 갔다. 친구가 돌아가니
"수준 있는 친구랑 놀아라"
하던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한편 뒷골목에서 가장 커다란 집에도 아이가 있었다. 큰 집에는 연못도 있었다. 꼬마는 이따금 큰 집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었다. 엄마는 큰 집에서 놀 때면 괜찮다고 했다. 가족이 아니라 일하는 아주머니가 차려주는 밥. 맛있지만 어쩐지 불편하다는 느낌. 몇 번 가다가 잘 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꼬마는 봉곡동 뒷골목에서만 놀았다. 편하다는 이유로. 길 건너 인사동은 쳐다만 볼 뿐 넘어가지 않았다.
소녀와 꼬마는 고등학생이 되어 딱 한 번 만났다.
많이 변했네.
너도 많이 변했다.
둘은 닮았지만 닮은 서로가 아니라 닮지 않은 곳을 나란히 찾았다. 그리고 맑은 눈으로 마주 보지 못했다. 둘 사이 중간을 뿌옇게 먼지 섞인 구름이 채워져 가로막았다. 소녀는 긴 머리 여학생이 되었다.
"그때 정말 웃겼잖아. 우리 둑에서 만나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나는 내가 뭐 잘못한 줄 알았어. 그래서 야단맞는 학생 같았고, 넌 선생님처럼 관찰하고."
"우리 계속 만났더라면 좋았을걸. 어색하다, 좀."
"지금은 공부해야 하잖아. 이다음에 대학생 되면 그때 다시 만나자."
이후 둘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꼬마는 생각했다. 가끔 봉곡동에서 인사동을 바라볼 때면 떠오르던 아이. 초콜릿을 받고 금세 좋아진 아이. 이제 둑길은 사라졌다. 하천은 복개도로가 되어 진주성 서장대까지 죄다 길이 되었다. 둘을 지켜봤던 하천은 감춰졌다. 끝까지 가야 남강물이 보인다. 거기는 이미 하천, 나불천 물이 남강에 섞인 뒤다. 소녀가 고백할 때까지 왜 한 번도 보지 못했을까? 정말 못 봤을까?
아니다. 어쩌면 몇 번이나 마주쳤는지도 모른다.
저기... 지금도 저쪽에서 걸어오는데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다. 몇 번이나. 나는 소녀가 쳐다보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걷는다. 바보야! 알아봐! 알아보라고! 내가 보고 있잖아! 지금이라고! 지금! 바보!
결국 지나치고 지나쳐버린다.
처음 마음이 끌려 만났던 소녀. 편지. 고백. 왜 그때는 몰랐을까?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