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이 안에서 목욕하는데

누나 앞에서 발가벗은 꼬마 (봉곡동 주택 마당에서)

by 머피




보이지 않는 곳이라도 뒤로 돌아가 보면 엄연한 주택이다.


사람은 보이는 곳에서 만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산다.

진주시 봉곡동 국제로터리에 줄줄이 늘어선 대로변 상가주택은 앞과 뒤가 다르다. 앞은 상가고 뒤는 주택이다. 요즘처럼 1층이 상가고 2층이 주택인 것과는 사뭇 다르다. 뒤에는 마당을 중심으로 사람 사는 방이 따닥따닥 붙었다.

마치 한옥 같은 풍경.

안방, 사랑방, 툇마루, 뒷간까지. 마당을 중심으로 상가와 붙은 방에는 가게를 하는 이들이 세 들어 살고 마당 너머 윗방 아랫방, 방만 주르륵 있는 안채는 주인이 산다. 주인 내외는 윗방에서, 외동딸은 아랫방에서 잔다. 주인집 딸은 중학생이다. 이름은 심희경 14살이다. 상가에 세 들어 사는 방은 다방, 미용실, 슈퍼가 있다. 그중 미용실 집 꼬마는 초등학생 13살이 되었다. 꼬마는 주인집 딸 가방에 적힌 이름을 보고 알았다. 누나의 이름이구나. 그동안 이름도 모른 채 누나라고만 불렀는데. 심희경. 이름이 정답기도 하고 담백하기도 하네. 꼬마는 늘 심희경이라는 세 글자를 연달아 상기하였다. 즉 희경이 아니라 성까지 붙여 심희경이다.

누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저와 같은 두 글자 이름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존재 세 글자로 변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같이 뛰어놀고 스스럼없이 어울렸는데 언제부턴가 누나의 눈빛이 이상하게 느껴졌고 그런 누나가 불편해질 때가 왕왕 생겨났다.

여름이었다.

꼬마는 여름이 싫었다. 겨울이면 목욕하러 목욕탕에 갔지만, 여름이면 마당에서 목욕했기 때문이다. 마당 한가운데 수돗가에는 커다란 고무 다라이가 있다. (요즘엔 대야지만 이 때는 다라이였다) 어린아이 둘이 들어가면 적당한 크기. 봄부터 가을까지 줄곧 다라이에 몸을 담갔다. 처음엔 다라이에 앉아서 때를 밀었다. 엄마는 꼬마의 목과 팔, 가슴, 등, 그러다 끝내 꼬마를 일으켜 세워 때를 밀었다. 다리를 벌리게 하여 사타구니가 벌게지도록 밀었다. 심희경 누나는 툇마루에 앉아 물끄러미 목욕하는 전경을 지켜봤다. 마치 저 멀리 풍경을 감상하듯 대수롭지 않게, 평소의 가볍거나 장난기가 어린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놀라거나 낯설거나 신기하거나였다. 즐겁고 기쁜 표정은 아니었다. 지극히 심각한 얼굴로, 내가 보는 게 무엇일까? 내가 지켜봐도 되는 걸까? 분명 지난주도 봤고 작년에도 봤고 그전에도 봤는데 오늘 내 눈에 보이는 저것은 왠지 이상해. 눈치를 보니 녀석도 나더러 보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 같은데, 보이고 싶지 않으면 여기서 목욕을 안 하면 되잖아, 뭐라고? 여기가 네겐 숨은 공간이라고? 그래, 네게는 뒤지만 우리 집에서 보면 여긴 앞이라고, 여긴 내 방이란 말이야, 툇마루는 늘 내가 앉아서 책 보는 공간이야, 그러니 여기 앉아서 마당을 보는 건 너무 당연한 거야. 눈에 보여서 그냥 보는 거야.


마당에 있는 네가 훌쩍 커버린 게 잘못이라고.




방과 후 저녁 먹기 전에 씻는다.


다라이에 꼬마와 동생이 들어간다.

한동안 물속에서 때를 불린다. 동생은 퐁당퐁당 신난다고 물장구친다. 꼬마는 왠지 움츠러들어 무릎을 세워 두 손으로 감싼다. 마당에는 심희경 누나가 어슬렁거린다. 누나는 물끄러미 꼬마를 내려다본다. 꼬마는 더더욱 웅크려 작아져서 눈치를 본다. 마당에서 목욕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른이 많다. 녀석들 목욕하는구나. 이모가 밀어줄까? 뒤돌아봐, 아줌마가 살살 밀어줄게. 몇몇 어른들이 보는 것과는 다르다. 뭐가 다를까? 친구도 아닌 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심희경 누나는 예쁘다. 예쁜 누나가 지켜본다.


상가주택에는 다방도 있어서 화려한 이모가 많다. 이모들은 마당을 통해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짧은 옷, 짙은 화장. 그러나 동년배만이 느끼는 아름다움이란 게 있다. 꼬마의 눈에는 누나가 처음이다. 예쁜 사람이라서 부끄럽다. 부끄러워서 잘 쳐다보지 못하겠다. 시선을 마주치기 힘들어. 날 안 볼 때 내가 보고 내가 볼 때 날 쳐다본다. 서로 훔쳐보는 사이. 떨린다. 안 보는 줄 알고 보는데 보고 있다. 어쩌지? 고개 들어 올려다보고 싶은데 날 보고 있을까 싶어 눈 뜨지 못할 거 같아. 꼬마와는 고작 한 살 차이지만 어른과 아이의 차이랄까. 중학생과 초등학생의 갭은 어마어마하다. 꼬마는 제법 컸는데도 아이처럼 씻었다.


꼬마는 종종 누나에게 공부도 배웠다.

"얘! 너는 이것도 모르니? 이리 와 봐!"

하면서 꼬마에게 수학을 가르쳐주었다. 꼬마는 책을 보면서 바로 옆 누나의 얼굴을 살금 보았다. 얼굴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봄 이파리의 향기. 풀숲 아래 엎드리면 은은히 나는, 마치 숲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어린 풀이 살랑살랑 꽃가루를 날리다 그보다 더 어린 벌의 얼굴에 한가득 뿌려지는... 누나의 살 냄새에 꼬마는 책을 보다가도 얼굴이 달아올랐다.

"얘! 너 왜 얼굴이 빨가니? 어디 보자."

꼬마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 누나는 꼬마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음, 이 정도면 잘생겼네~"

누나도 꼬마를 귀여워했다. 누나와 꼬마는 곧잘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었다.

"얘! 너 왜 자꾸 날 훔쳐보니?"

꼬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유~ 이 솜털 좀 봐."

누나는 꼬마의 얼굴을 만지작만지작 누르거나 당겨보기도 하며 장난쳤다.




저녁나절 목욕 후 밖으로 나왔다.


상가주택 옆 공터에 누나와 꼬마가 서 있는데 하늘에 까만 새들이 뱅글뱅글 돌았다. 어두운 하늘 가득, 새는 떼 지어 낮게 날았다. 동글동글 회오리처럼 종으로 긴 원을 그렸다. 이 밤에 무슨 새일까. 무슨 새가 잠도 안 자고 날아다닐까. 꼭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린 것처럼. 낮에는 웅크려 잠만 자다가 밤이 되어 이제 막 일어난 것처럼 활발하다. 가만히 보니 새는 박쥐였다. 박쥐 떼가 하필이면 이곳에 와서 날았다. 박쥐가 박쥐인 줄 몰랐을 때는 그저 신비롭고 아름답다고 여겼는데 박쥐란 것을 알고는 징그럽게만 보였다. 꼬마와 누나는 박쥐를 피해 마당으로 돌아왔다. 왜 밤만 되면 공터에 박쥐가 찾아올까.

"글쎄, 저기가 쟤들 놀이턴가 봐."

누나는 박쥐를 멀리서 볼 때만 반갑다고 했다. 가까이 오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했다. 멀리서 볼 때만 예쁜 새. 오랜만에 가 보니 공터는 사라졌고 건물이 들어선 지 오래다.




장마철, 비가 쉼 없이 내린다.


마당 가운데 스테인리스 대야에 빗방울 내리치는 소리가 따당 따당 들린다. 잠들 시간이다. 목욕 후 저녁도 양껏 먹었다. 누나와 함께 박쥐도 보고 수박도 먹었다. 고요하다. 비 내리는 소리가 사방을 균등하게 만든다. 늦은 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즈음 끄덕끄덕 눈꺼풀이 감긴다. 응애응애. 별안간 아기 울음이 들린다. 주인집에 아기가 왔나? 규칙적으로. 아니다. 이건 고양이 울음소리다. 고양이가 짝짓기를 위해 내는 소리다. 마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다. 찬찬히 들어봐도 아기가 우는 건지 헷갈린다. 아기가 한번 울고 고양이가 울고. 아기가 화나면 고양이가 되고 고양이가 절박하면 아기가 되는. 그들이 번갈아 우는 것만 같다. 고양이는 낮에 꼬마와 누나가 앉았던 툇마루에 올라가 운다. 툇마루는 누나의 방에 붙었다. 마당 건넛방에서도 이렇게나 큰데 누나는 저 소리를 어떻게 견딜까. 꼬마는 걱정이 된다. 응애응애. 야옹야옹. 소름 끼친다. 소리가 아기의 울음에 가까울수록 무섭다. 울음은 마당 툇마루에서 쏘아져 맞은편 여러 방에 부닥쳐 공명음까지 울린다. 메아리치듯 반복되는 소리. 빗속을 뚫고 하염없이 울리는. 바로 귓가에 대고 아기가 울부짖는 것 같다. 귀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아기인지 고양이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암고양이가 발정 났다고 아버지가 말한다. 너희들은 저 소리 듣지 말아라, 하며 이불로 꼬마와 동생을 덮어준다. 꼬마는 엎드려 소리가 멈추기만을 기다린다. 이튿날 비가 그치고 고양이 울음소리도 나지 않았다. 누나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꼬마를 보았다. 부끄럼 없이 지내던 눈에서 발가벗은 꼬마의 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봤다. 꼬마는 웅크렸다. 어쩌면 다라이에서 목욕하던 마지막 나날이 아니었을까. 아이에서 아이가 아니게 보이는 시점. 꼬마는 다라이에 앉아서 누나가 안 볼 때 누나를 보았고 누나는 꼬마가 안 볼 때 꼬마를 돌아보곤 했다. 둘은 어쩌다 눈이 마주쳤다.


아무 말이 없다. 엄마가 타월을 들고 오기 전 때를 불릴 때 잠시 잠잠한 순간.

.

.

.

언뜻 누나의 얼굴이 빨개진다.





다라이.jpg 골목 가운데 대문으로 들어가면 그 마당이 나온다. 오른편은 박쥐가 날던 공터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