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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Mar 07. 2020

오줌을 누다가 산으로 간다

김치찌개가 맛난 곳




오줌이 마렵다. 으스스 몸이 떨린다. 뱃속에서 올라온 여진이 머리를 흔든다. 피부에 오돌토돌 소름이 돋아난다. 아내가 쳐다보더니 왜 부르르 떨어? 라고 묻는다. 마음 같아서는 후다닥 뛰어들어야 했다. 식당은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입장하는 식이다. 입술을 깨물면서 차분하게 신발 두 짝을 신발장에 넣었다. 급하지만 나란히 각도를 맞춰야 한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차라리 차분해지는 단계.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아내는 멀리 벽 구석에 앉아 김치찌개를 주문하였다. 나는 뒤따라 가 잠바를 벗어놓고는 나 잠깐 화장실 좀 하고 몸을 돌렸다. 나는 저 앞에 한 무리 정숙한 손님들을 헤치고 주방 쪽으로 향했다.


주방 앞에서 서빙하는 아주머니들이 양쪽으로 비켜서서 나를 지켜본다. 내가 가는 방향은 음식을 만드는 주방 쪽이다. 주방 아주머니들도 다가오는 나를 의식한다. 정확히는 주방 옆 쪽문 화장실. 서빙하는 분들이 물끄러미 날 지켜본다. 왜 계속 보는 걸까. 나는 화장실이 이쪽이죠?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주눅이 들어서 차마 정확히 발음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식으로 의사를 표현하였다. 당황하지 마세요. 당신네에게 달리 할 말이 있어서 다가온 건 아니니 안심하세요. 그쪽도요. 주방으로 들어가 손수 김치찌개를 만들려 함도 아니에요. 나는 구부정하게 서서 짧은 보폭으로 걷는다. 내려다보니 양말 한쪽이 구멍 난 게 보인다. 왜 하필 이때. 나는 더더욱 시선을 내리깔아 엄지발가락을 꼼지락 양말 끝을 스르르 움켜쥐는 스킬을 발휘한다. 문 앞에 슬리퍼 두 짝이 가지런히 보인다. 발은 슬리퍼를 신고 동시에 손은 주방 옆 쪽문을 연다. 좁은 공간이라 몸을 비켜 돌아서 나간다. 문득 소변을 참는 방광에 힘이 지그시 들어간다. 어금니를 깨물어 찌릿한 감촉을 버틴다. 바로 옆에서 정숙한 손님들이 열심히 김치찌개를 먹는다. 그들의 후루룩 쩝쩝 국물을 삼키는 소리에 내 움직임이 행여 시청각으로 침범 하지나 않을까. 입뿐만이 아니라 눈 코 귀 가슴으로 먹는 게 우리네 김치찌개가 아니던가. 그래서 평소에 먹던 그 맛을 변형시킬까 염려스러웠다.


슬리퍼를 신고 쪽문을 열자 정면으로 마당이 보였다. 오른편엔 화단과 창고에는 호스와 삽과 양동이와 화분 따위가 빽빽하다. 왼쪽으로 고갤 돌리자 어른 걸음으로 딱 한 걸음 코앞에 화장실이 있다. 어이쿠, 이렇게나 가깝다니. 좀 떨어져나 있지, 아쉬움이 들었다. 화장실 문은 없다. 완전히 오픈되어 일단 소변기가 보이는데 남녀가 함께 쓰는 구조다. 그러니까 화장실 한쪽에 좌변기가 있고 남자 소변기는 완전히 개방된, 24시간 활짝 열린 형태, 즉 옛날식이다. 만일 남녀가 동시에 화장실을 쓴다면 여자가 좌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볼 때 남자는 바로 옆 소변기에 서서 볼일을 봐야 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는 항상 여자가 먼저 좌변기에 앉아야 하고 반드시 뒤늦게 남자가 소변기 앞에 서서 폭풍처럼 쏟아내어 여자보다 빠르게 일을 끝내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져서는 안 될 만남이, 이거 참 보지 마세요, 지금 뭘 보시는 거예요, 아이고 남사스러워. 조준 좀 잘하세요, 볼 것도 없구먼, 저리 옆으로 한걸음 비켜나세요. 제가 좌변기에 앉아야 하잖아요, 무슨 여자가 부끄럼도 없어, 따위의 대화가 오갈 수도 있다. 나는 어떡할까 하다가 급한 김에 퍼뜩 소변기 앞에 섰다. 지퍼를 내리고 엉거주춤 엉덩이를 뒤로 내뺐다. 곧 소변 줄기는 소변기에 날아가 꽂힌다. 엉덩이가 엉거주춤한 이유는 혹시라도 줄기가 좌표를 벗어나 예상치 못한 반사각으로 바지에 튕길 것을 예방한 자세다. 컨트롤된 소변 줄기는 평소보다 얇았다. 얇은 줄기가 같은 양을 쏟아내려면 평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그들이 혹 오해를 할 수도 있기에 어떡하면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끝낼까, 효율성을 고려하자니 끝내 지속성이 최고로구나 결론을 내린다. 


나는 방향도 집중하여 쏘았다. 직각보다는 둔각을 노렸다. 비켜 맞아야 물방울은 되도록 평행하게 튕긴다. 너무 정면으로 몰아붙이면 다시금 쏘아진 곳으로 고개를 돌려 돌아올 수도 있다. 물어뜯기지 않으려면 도망갈 문을 열어 쥐를 몰 듯 살살 달래야 깔끔하다. 오랫동안 참았던 소변이지만 나는 시원함을 느끼기보단 갖가지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일단 소변을 보는데 소변 소리가 나면 안 된다. 식당과 화장실로 연결되는 공간의 경계는 겨우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얇은 쪽문 하나가 전부다. 쪽문 건너편에서 정숙한 사람들은 정숙히 식사하는 중이다. 내가 소변을 보는 소리나 혹은 그와 같은 볼일을 볼 때 파생되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파열음을 내면 그들의 밥맛은 얼마나 떨어질 것인가. 가뜩이나 경기도 좋지 않은 마당에 모처럼 들른 식당에서 밥맛이 떨어지면, 상상하기 싫은 결과가 벌어질 터다. 이곳은 우리 부부의 단골 가게란 말이다. 정숙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우리끼리 식사하는 소리뿐만이 아니다. 설마 밖에서 너나 내가 예상하는 그런 소리란 말인가. (이제 막 나간 내가 지금쯤 어떠한 볼일을 볼지 그들은 소리로만 인지하며 상상하고 숟가락을 쪽쪽거리며 판단할 터다.) 아아! 방금 들었어? 밥맛 떨어져. 그러니까 내가 화장실 옆에 앉지 말자고 했잖아. 무슨 소리니? 여기가 따뜻해서 앉은 거잖아. 그리고 주방이 가까워서 추가 반찬을 시키기 좋은 자리라고 네가 그랬잖아. 여기가 따뜻해요, 이리로 앉으세요, 라고 정숙한 사람들은 애당초 서빙하는 아주머니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여기 앉지 않았을 거라며 서빙하는 아주머니를 쳐다본다. 애먼 아주머니는 애타는 심정으로 쪽문 너머를 기다린다. 쪽문 건너 그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나는 지척에서 온전히 정적을 지켜야 했고 물소리를 내면 안 되었다. 물소리는 차치하고 설핏 엉덩이 쪽 근육의(굳이 괄약근이라고 지칭하지는 않겠다.) 긴장을 이완시켜 소변을 보다 보면 부가적으로 섣불리 터질지 모르는 여러 기타 소리 따위를 의식적으로 조절해야 했다.


나는 하소연한다. 저는 배변을 보면서도 양말 구멍을 조절하고 동시에 앞과 뒤를 제어합니다. 적당한 강도로 잡아주고 버튼을 눌러야 하지요. 좁은 공간. 어쩌면 우리는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다른 공간이라고 다른 쾌감을 맛보며 공존하네요. 당신은 식사하고 나는 볼일을 봅니다. 턱밑에서 아주머니는 저를 지켜보고 저는 뒤돌아서서 볼일을 봅니다. 먹으면 싸야 하고 싸면은 먹어야 하지요. 먹고 싸는 행위가 더불어 이루어지니 여기는 어디인가요. 식당은 식사와 배설의 기본 욕구를 훌륭히 충족시켜 주는 소중한 공간. 그처럼 소중한 식당이 불경기 때문에 힘든 나날. 나는 생리적 욕구에 더없이 충실고자 이곳에 서 있음이니. 시원하지만 시원하지 않은 배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본능. 벌써 절반가량 내보냈으니 조금만 더 버티세요. 기다리세요.


그러는 동안에도 자꾸만 뒤돌아보며 쪽문이 열릴까 걱정한다. 누군가 저 쪽문을 열어버리면 소변 줄기를 쏘는 내 뒷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 난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어찌해야 자연스러움이 연출될까. 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지만 마땅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끼익, 불안한 예감은 설마 설마 할 때 설마를 부른다. 삐걱~ 쪽문이 열리고 서빙하는 아주머니가 삐죽 고개를 내민다. 나는 벼락같은 움직임으로 돌아보던 고개를 바로 잡았고 애당초 당신네 고충을 아예 모른다는 식으로 줄기를 쏘았다. 줄기는 어느새 둔각을 벗어나 정면과 예각을 콰콰콰 헤집었고 강력한 적에 아군은 투두둑 되돌아와 내 손등에 묻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지만, 뒤에서 아주머니가 뒷모습을 지켜본다는 현실을 안다. 엉거주춤 뒤로 나왔던 엉덩이는 망연자실 앞으로 돌아왔고 후퇴하는 아군은 더없이 늘어났다. 어느 순간 쪽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후유, 돌아갔구나,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고 긴장이 풀려서일까. 별안간 뿌우우우 하는 파열음이 들렸다. 순간 나는 헉,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아뿔싸, 아침에 화장실을 다녀오지 않았구나. 내 몸은 어찌하여 이리도 쉬 망각에 빠질까, 난감했다. 아마도 작은 일이 아니라 큰일을 보는 건 아닌가 하는 한 가지 미션, 오해를 풀었기에 안심이 되었음이라.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 저 쪽문으로 돌아갈 것인가. 바지를 추스르며 어떻게 손을 씻을까 고민한다. 마침내 내가 쪽문을 열어 들어와 슬리퍼를 벗는데 정숙한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내게 시선을 쏘아주었다. 나는 나를 왜 보나,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슬리퍼를 벗고 주방 앞을 스무드하게 지나쳤다. 서빙하려고 준비하던 아주머니 두 분도 나를 보았다. 정숙한 손님 옆을 거의 다 지나가는데 양말이 미끄러져 마치 거북이 목이 거북이 등껍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엄지발가락이 그만 덩그러니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저 식사하기 전 잠시 화장실에 다녀올 뿐인데 시원한 듯 시원하지 않은 이 느낌은 무얼까. 정숙한 손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 단체로 내 발가락을 보았다. 그들은 아하! 무언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식사를 계속하였다. 이모! 여기 라면 사리 추가요, 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날씨가 흐리니 김치찌개가 더 감칠맛이 났다. 내가 저번에 구멍 난 양말 좀 버리든지 아니면 기워주라고 했잖아, 하고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밥을 한 숟갈 크게 떠, 국물 묻히기 전에 이거 더 먹어 아침에 커피를 마셨더니 별로 안 고프네 하면서 아내의 밥그릇에 덜어 주었다. 손으로 구멍 난 양말 끝을 끌어당겨 거북 껍데기 속에 발가락을 넣었다. 김치찌개에 돼지고기가 수북하다. 쌈을 열심히 싸 먹다가 나는 상추 한 장을 집어 큼직한 고기 한 점을 올리고 그 위에 젓가락으로 된장 한 움큼과 마늘 조각을 얹어 오밀조밀 상추를 예쁘게 접어 아내의 입에 쏙 넣었다. 아내의 뺨이 불룩하니 오물오물 잘도 먹는다. 내가 불쑥 화장실 쪽을 보니 서빙을 보는 아주머니가 때마침 나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김에 나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저기, 여기 상추 좀 더 주세요.


아주머니는 상추를 가져다주며 물수건 하나도 추가로 가져다주었다. 나는 목소리도 경쾌하게 감사합니다, 인사했다. 손을 깨끗이 닦아서 청결한 식당. 맛이 있어서 감사하는 식당. 배려하기에 아름다운 식당. 부부가 정다운 한때를 보내기에 적당한 식당, 


이곳은 역시 인정이 많은 곳이다.




 


아내는 내가 돌아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김치찌개에 손대지 않고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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