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머피 Mar 05. 2020

달아나는 마스크와 도망가는 마스크

마스크를 낀 사람과 끼지 않은 사람


거리에 웬 사람들이 웅성웅성 시끄럽다.


아침에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선 광경이 보인다. 평일 아침에 젊은 사람 늙은 사람 할 것 없이 인파가 길게 무리 지어 있었다. 얼핏 봐서는 지역 축제가 있나, 착각할 정도였다. 아니면 단체로 어떤 행사가 있나, 수학여행을 가나? 버스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아니지, 동년배들이 아니니까. 그렇담 아파트 주민들이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나? 그러면 우리 집에는 왜 연락이 없었지? (이런 일로 연락 온 적은 없다.) 그럼에도 어쩐지 나만 소외되는 느낌 아닌 느낌. 지금은 모이는 게 낯선 시기다.


가만히 보니 그들은 행사나 여행을 가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긴 행렬을 좇아서 맨 앞으로 가보니 문 닫은 우체국이 보인다. 아하, 마스크를 사려는 줄이었구나. 줄 선 사람들을 찬찬히 보니 십 대 이십 대가 눈에 띄었고 중간을 타 넘어 육십 대 칠십 대가 많아 보였다. 연령대를 봤을 때 중간에 삼십 대부터 사십 대, 오십 대까지가 빠져 있었다. 줄은 대체로 어리거나 늙었다. 평일 아침에. 길게 줄 선 거로 보아 그 줄을 형성하려면 최소 몇 시간이 걸렸을 터다. 딱히 시간이 많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연령대다. (일반적으로 세금을 주로 내는 계층도 아니거니와 가정을 위해 시간을 공적으로 희생하거나 투자할 생산 연령대가 아니란 뜻이다.) 시간이 많다 하더라도 그들은 가정에서 보호와 사랑을 받을 연령대다. 한편 공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오롯이 마스크를 향한 나름의 집념과 시간적 여유가 부럽기도 하다. 그들도 몇 시간을 고작 마스크 몇 장을 사려고 줄을 선 것이니 굳이 여유라고 부르면 억울하겠지만, 비단 전염병이고 뭐고 신경 쓸 틈 없이 한창 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삼사 오십 대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싶다. 그들은 세금을 더 많이 내기 위해 줄 설 여유가 없다. 아무렴 삼사오십 대를 위해 십이십 대와 육칠십 대가 희생하는 것이리라. 원래는 거꾸로 되어야 마땅한데 작금의 뉴스가 그러하니 그나마 평일 아침, 세금을 다소 적게 내는 줄 설 수 있는 가족 구성원이 희생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요컨대 요점은 그게 아니다.

마스크 몇 장을 사려고 몇 시간을 길게 줄 서야 한다는 현실이 문제다. 가까운 마트를 가도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은 이는 한 명도 없다. 간혹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다니는 이를 보면 유달리 시선이 간다.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지만, 어찌 그리 이기적이세요? 어떻게 자기 편한 것만 생각하세요? 당신은 당신이 전염병에 걸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당신이 내뿜는 입안의 기타 매개체로 인하여 타인이 피해를 본다는 건 고려하지 않으세요? 배려가 참 없으시네요. 따라서 당신은 개념이 없는 사람입니다.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하지만, 마스크를 쓴 이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을 바라보며 길게 목을 쭉 일부러 내빼 시선을 거두지 않고 계속해서 비아냥댄다. 개념도 없는 주제에 지금 뭘 사러 나오셨어요? 어라, 냉동만두와 바나나를 바구니에 담았네요. 생각도 없고 배려도 없으면서 꼴에 만두는 먹고 싶은가 봐요? 혹시 만두 봉지를 찢어 만두를 입에 물고 돌아갈 생각은 없으신가요. 돌아가는 동안 녹을지도 모르잖아요. 바나나 껍질을 벗겨 마스크처럼 입과 코를 막고 다니세요. 그러면 아하,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간절하구나, 하늘에 사무쳤구나 하고 이해해 드릴게요. 라고 속으로 아주 강력하게 말하는 나 자신을 보고 놀란다. (이때는 마스크를 착용했을 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가 왜 고개를 저을까, 자꾸 젓다가 허기를 느꼈고 식당으로 들어가 국밥을 시켰다. 식당에서는 물론 마스크 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마스크를 벗고 마주 앉은 이에게 뭐라 뭐라 재잘재잘~ 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에취이~~한바탕 재채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숟가락을 들어 국그릇을 박박 긁어서 후루룩 국물을 떠먹고 깍두기를 으적으적 씹었다. 씹으면서도 그들은 대화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벌린 입안에 있던 파편과 침은 상 위에 놓인 밥과 국과 찬으로 그리고 상대의 수저에도 물수건에도 얼굴에도 파바박 튀어 (얼마간의 비행 끝에) 무사히 안착했다. 밥을 다 먹고 사람들은 상대의 침이 튄 자신의 물수건으로 손등과 손바닥을 닦았고 심지어 얼굴 전체를 닦았다. 여기 얼마야? 내가 계산할게, 도대체 얼마에요? 라고 뱃심을 끌어올려 사자후를 날린 후 (기합에 의해 공중으로 흩뿌려진다.) 지갑을 꺼내 계산을 하고는 꺼억~! 식당 홀을 향해 트림을 날려준 뒤 (다시금 흩뿌려진다.) 그들은 다시 마스크를 끼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바깥의 공기를 두려워하며 마스크 안에서 걸어 다닌다. 식당뿐만 아니라 카페에서도 마찬가지다. 커피를 호로록 소리 내며 열심히도 떠든다. 우리는 말하기 위해 카페에 왔으니 뭐? 마스크? 마스크는 걸리적거릴 뿐이다. 지금은 괜찮지 않겠니? 열심히 침을 주고받고 교감한 후 우리는 바깥으로 나와 아차차! 상대의 욕을 먹을세라 주섬주섬 서둘러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리고 어딘가 대중 속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를 따라다니며 눈빛을 쏘아주고 속으로 욕을 한다. 저런 인간들 때문에, 저런 무개념 같으니라고.


대체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지만, 마스크는 일상에서 전염병을 예방하는 데 그나마 최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너무 마스크에 종용되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에 있어서 때때로 부작용을 낳는다. 마스크가 모자람을 어쩌랴.      




위기는 늘 갑자기 찾아온다.

우리 집에 마스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일회용 마스크는 고작 다섯 장이다. 그것은 모두 고상한 아내의 몫이다. 나는 방한용 면 마스크를 낀다. 면 마스크는 내 얼굴에 비해 다소 작아서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다. 코를 유달리 압박하여 그렇지 않아도 코끝이 뭉툭하여 평소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몸인데. (지금은 콤플렉스고 뭐고 없다.) 마스크가 자꾸만 누르니 마스크를 오래 썼다가 벗어보면 콧잔등에 빨갛게 마스크 자국이 남는다. 그리고 숨을 쉬는데 뜨거운 입김이 위쪽 눈가로 올라온다.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한 지 어언 십오 년째. 차가운 겨울 날씨라 그나마 차가움으로 버티는데, 뜨거운 습기를 머금은 동남풍이 코 밑에서 불어닥치니 내 두 눈은 버틸 재간이 없다. 눈이 뜨겁고 따갑다. 마스크가 싫다. 그런데도 나는 열심히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데 어디서 네놈이 마스크도 없이 다니느냔 말이다. (나도 모르게 흥분한다.) 청정지역을 더럽히지 말아 다오. 헤벌쭉 웃는 너의 입술 사이로 하얀 옥수수가 눈에 띄는구나. 확 그냥 출장 보내줘 버릴까 보다. 왜 그렇게 흥분하냐고? 네놈이 말할 때마다 침방울이 무수히 튀어나오는 게 햇볕 아래 뿌옇게 투영되는데, 어찌 네놈은 마스크도 없이 그렇게 옆 사람이랑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단 말이냐. 마스크 쓴 내가 말하길, 마스크를 쓰고 나오지 않은 사람은 밖에서 말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자격은 누가 매기나.)

급기야 어느 틈엔가, 끝끝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사람이 아닌 짐승이 되고야 만다. 사람은 짐승을 보며 욕한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주제에 어딜 감히 나다닌단 말인가. (목줄도 없이 어딜 혼자 다닌단 말인가.) 뭐라고! 그렇담 짐승은 할 말이 없을쏘냐. 당최 마스크가 없는데 어찌하란 말이오. 평소 마스크를 싫어하여 독감에 걸렸어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자가면역과 약에만 의존하여 왔는데 이제 와 새삼 마스크를 쓰려니 적응이 안 되어 그러오. 또 미리 구비해둔 면 마스크도 없거니와 일회용을 구하자니, 약국에서는 맨날 품절이라 그러고 심지어 어떤 약국이나 병원이나 다이소나 마트나 슈퍼에서도 ‘마스크 품절’이라고만 유리창에 붙어있으니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형편을 알아주시오, 라고 짐승은 눈을 부라리며 답한다.


그러면 안전문자로 오늘 정오에 우체국에서 인당 석 장씩 마스크 판매 소식을 받았을 텐데 어젯밤부터 줄을 서 있지 않은 죄가 참으로 크다고 사람들은 쏘아붙일 수가 있는 것이다. 아하, 비로소 우체국 앞에 길게 줄 선 저들의 입장을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십이십 대와 육칠십 대가 삼사오십 대를 위해 그리고 짐승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줄을 섰구나,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살기에 참 피곤한 세상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코가 납작해지고 빨간 딸기코가 되든 말든 눈이 말라비틀어져서 빨갛게 충혈되든 말든 일단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시대. 이 땅에 나는 마스크 없이 숨어 다니거나 마스크를 쓰고 당당해지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된다.


어쩌면 인간은 이미 두 갈래로 나누어졌는지도 모른다. 확진자이거나 확진자가 아니거나, 가 아니다. 확진자는 일단 예외다. 게임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확진자가 아닌 자 중에서 마스크를 낀 자이거나 끼지 않은 자이다. 조심하는 자이거나 조심하지 않는 자. 예방하는 자이거나 예방하지 않는 자. 걸리면 안 된다고 행동하는 자이거나 행동하지 않는 자.


어떤 공간이든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서 나는 마스크를 착용한 부류에 끼기 위해 어제 그제 쓴 일회용 마스크를 다시 주머니에서 꺼낸다. 모처럼 아내가 하사한 것이다. 일회용 마스크가 귀한 시대. 어제 그제의 입김이 말라 오묘한 냄새가 난다. 오늘은 뒤집어서 써봐야겠다.


나는 불편을 참고 눈을 부라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를 찾아 저 멀리 피해 걷는다. 저 멀리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내가 나를 피해 총총걸음으로 달아나는 게 보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