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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Mar 28. 2022

바다 보러 가지 않을래?

[단편] 연애 폭력 (2)




바다 보러 가지 않을래? 


불쑥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다. 이 말이 나온 때는 저녁이었다. 한밤중 두어 시간을 달려 남해로 갔다. 바다가 보이는 곳 벤치에 걸터앉아 바다를 봤다. 파도소리가 철썩! 가로등 불빛에 비친 하얀 물보라! 작은 상점에서 과자와 소주를 샀다. 각기 한 병씩. 병끼리 챙~ 하고 건배. 소주병에 입 대어 그대로 마셨다. 이게 바다지. 그래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바다다. 바다의 소리, 바다의 냉기, 어둠, 공포, 광폭, 뭐 그런 류의 거친 것들. 

처음은 두려움에 몸을 떨지만 차츰 바다가 내뿜는 습기에 젖어 들어 동화되고 그것으로 슬며시 극복하려는 심리. 우리는 이미 술에 취해버렸다. 돌아갈 수 없다. 그런 것을 말로 나누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결국 낡은 모텔에 방을 잡았다. 


현정이 내게 말하길 "나 사실 남자 친구가 있어" 담담한 목소리였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첨부터 보고 있었어. 넌 인지하지 못했지만 줄곧 널 응시했었지. 그래 너 정도 미모에 남자가 쉽게 떨어질 리 없지. 지금은 질질 끄는 시기, 라고 생각했다. 남자 친구와 심하게 다퉜지만 아직 완전히 헤어진 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이해한다고 말했다. 네가 힘들겠구나. 그동안 남자 친구와 들었던 정도 있을 테고,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니 아니라고 확실히 말하지 그래? 라고 했는데 그녀는, 이미 몇 번이고 말했지만 차마 다시 그렇게 강하게 말하진 못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말했는데도 알아먹질 못한다면 그 남자가 이상한 녀석이네, 라고 내가 말하니 그녀는 너무 그렇게까지 호도하지 말라고 외려 놈의 편을 들었다. 나는 갑자기 기분이 팍 상해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놈을 생각하면서 어찌하여 이 시간 이 장소에 나랑 같이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글쎄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뭐 친구니까, 밤에 바다 보러 올 수도 있지 않냐고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우리가 친구라고? 친구? 라고 내가 의문형으로 말하자 그녀는 카운터로 전화해 방을 하나 더 달라고 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른 방으로 갔다. 


각자 방에서 잠을 청했다. 

따로 잘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채 지났을까.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 다른 사람이 듣건 말건 소리쳤다. 술 한잔 더하자고. 딱히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눈에 빤히 보이는 핑계. 바다까지 왔는데 우리 술 한잔 더해야 되지 않겠냐고 강요했다. 현정은 대답 없이 끝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렇게 무연히 아침이 밝았다. 나는 밤새 가슴이 바짝 타올라 마르고 말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참아야 했다. 다음날 우리는 다시 차를 달려 더 먼 바닷가로 나갔다. 


그녀는 술이 강했다. 

우리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 먹고 양주까지 사다 먹었다. 찬란한 보름달이 밝게 뜬 밤. 달빛의 마법을 기대했다. 어둠이 찾아오니 마음이 급해졌다. 술에 술을 더하던 중 드디어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현재 남자 친구가 자신을 너무도 힘들게 한다는 것. 어째야 될지 모르겠다는 것. 이런 일이 반복되니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모르겠단 말이야. 눈물이 흐르고 흘러 술에 섞였다. 섞이고 섞인 술은 가공할 취기를 불러왔다. 취기는 세상을 가공했다. 가공된 세상은 리셋을 의미한다. 포기했어. 너무 힘드니. 그저 될 대로 되라는 마음. 뭐든 새로이 시작하고픈 단계. 지쳤어. 귀찮아. 필요 없어.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괜찮아. 힘 내. 잘 되겠지. 그러자 그녀는 고개 들어 내 눈을 응시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커다란 눈망울이 깜빡이자 고였던 눈물이 왈칵 흘러내렸다. 고마워. 위로해줘서. 정말. 그녀의 말에 나는 답했다. 그럼 오늘부터 우리 사귀는 거다. 나는 재빨리 약속하고 내 품에 스러진 이와 함께 눈을 감았다. 



달 밝은 밤. 달빛이 얼굴에 계속 닿아 뒤척이는 밤. 고개 돌려도 달빛이 길게 방을 비춰 눈이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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