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머피 Mar 25. 2022

바보, 왜 몰라보는 거니?

[단편] 연애 폭력 (1)



찰싹! 


그녀의 뺨을 때렸다. 곧바로 그녀는 쓰러졌다. 쓰러진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고개 들어 슬며시 날 보더니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두려움의 눈빛. 그 떨림을 나는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떨리는 건 뭐야? 왜 떨어? 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기에? 잘못한 걸 알기는 알아? 당연히 맞아야 할 사람에게 마땅히 매를 들어야 하는 무거운 사명.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당연하다고 여겼을까? 잘못을 고쳐야 하니까. 내가 받은 고통을 다시는 맛보지 않기 위해. 옆에서 그녀의 전 남자 친구가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손을 치켜들었다. 손이 괴물로 변했다. 들어서 내리쳤다. 괴물이 돌진했다. 가녀리고 연약한 그녀. 그녀가 쓰러졌다. 쓰러진 모습. 지켜보는 나. 견딜 수 없었다. 쓰러지면 쓰러졌다고 소리쳤고 그녀의 비명 소리에 다시금 격앙되어 흥분했다. 


왜 그랬을까. 


더없이 소중한 연인에게, 만나고 헤어지고 싸우고 화해하고, 곁에서 최우선으로 보호자가 되어야 할 입장에서, 어쩌면 남자 친구라는 사명에 불타올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역할을 위해 기꺼이 손을 든다. 뺨에 닿는 이 감촉. 때리는 맛. 목표지점을 빗나가지 않게 천천히 다가간다. 다가가 살짝 스윙하여 스냅을 준다. 마치 고무줄을 튕기듯, 채찍을 휘두르듯,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만족, 중독성 있는 감촉에 젖어든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넘어졌다가 일어나서도 힐끔 날 쳐다봤다가 금세 못 쳐다보게 되었다.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더 이상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제자리로 돌아와 다음 차례를 기다린다. 날 쳐다보면, 어디서 감히, 라는 문구가 울컥 솟을까 봐. 나는 때리고 때리다가 때리기를 멈추었다. 흥분이 가라앉는 시점. 문득 정신이 든다. 어라, 내 앞에 고개 숙인 당신은 누구? 바로 내 앞에 있어서 다행인데, 사랑스러운데, 그래 현정이, 나의 소중한 여자 친구 이현정, 아아 나는 어쩌자고 당신을 때렸을까? 미친놈! 정말이지 미친 게 틀림없다. 얼마나 아팠을까? 정신이 번쩍 든다. 때린 내 손도 얼얼한데 맞은 그녀는 오죽할까? 연약한 그녀의 살갗이 빨갛다. 멍들었다. 미안해. 내가 죽을죄를 지었어. 용서해줘. 제발. 내가 죽일 놈이야. 그래, 용서해줄 때까지 집에 가지 않을 테다. 네가 뭐라고 떠들어도 상관없어. 나는 내가 저지른 행동을 알아. 참회하고 싶어. 네가 뭐라고 말해도 내 생각 변하지 않아. 날 스스로 용서할 수가 없어. 날 벌하는 거야. 너의 집 대문 앞에서 이렇게 무릎 꿇은 채 기다릴 거야. 뭐라고? 그냥 돌아가라고? 제발 살려 달라고? 용서한다고? 그럴 수 없어. 너의 의견이 어떻든 지금 내 생각을 굽힐 수는 없어. 날 미워해도 좋아. 난 속죄해야 해. 제발 날 내버려 둬. 신경 쓰지 마. 뭐라고? 한번 더 말하게 할래?     


그녀를 만나기 전, 나는 착하고 조신한 여자를 만나고픈 바람을 품고 열심히 소개팅에 나갔다. 친구를 졸라 하루 두 탕 세 탕씩 뛰면서. 그러다 거리에서 현정을 만났다. 뒤쫓아 그녀의 학교와 한 다리 두 다리 건너 지인을 찾았다. 소개해달라고 했다. 때마침 결별했다고 했다. 그녀는 나와 동갑이다. 동갑이라서 친구잖아 하면서 금세 경계가 풀려 급속도로 친해졌다. 처음 데이트하던 날, 현정의 얼굴은 상처투성이였다. 소주를 마시는데 그녀가 이상했다. 잔을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왜 떨려? 술을 많이 마셔서? 아님 나랑 만나는 게 좋아서? 대체 그 상처는 뭐야? 짙은 화장이 미간 사이 긁힌 자국과 눈두덩의 멍울을 덮었지만, 내 눈에는 낱낱이 보였다. 그것은 넘어지거나 사고를 당해 생긴 게 아니었다. 바로 남자로부터 당한 폭력이란 것! 손찌검이란 걸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가 소주를 들이키며 캬! 하고 부르르 떨 때마다 화장도 하얗게 떠 그 순간만큼은 상처를 감싸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연민과 호기심이 생겨났다.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은 생각, 좋은 남자 친구가 되어야지 하는 다짐. 이제 괜찮아, 내가 그 아픔 다 보상해줄게 하는 마음. 




그녀가 그녀의 남자 친구와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 잊을 수 없다. 


남자 친구와 팔짱 끼고 웃으며 마주 오던 그때의 표정. 넌 왜 그런 표정을 짓니? 네 옆에 남자가 진정 네 남자일까? 확신할 수 있어? 아니!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지. 그저 네 주변에 맴돌다 친해지고, 자꾸 보다 보니 이것이 사랑인가? 헷갈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사귄 건지도 몰라. 그래, 네 진정한 짝은 바로 나라고! 나야 나! 바보, 왜 날 몰라보니? 내가 이렇게 애처로운 눈으로 널 보는데, 마침내 우리가 만난 것인데,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시선 피하지 않고 쭈욱 지켜보는데, 비록 당장은 우리가 처음 마주친 사이라도, 네 옆에 사람과 오랫동안 사귄 것이라도, 


애초에 정해진 짝은...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바이러스에 파란색을 입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