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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Nov 27. 2020

코로나 바이러스에 파란색을 입힌다

새벽 출근길 주유소에서 기름 넣다가 본 세상



아직 깜깜한 아침.  이놈의 코로나. 오늘은 또 몇 명이나 나올는지. 헉, 방금 속보 떴는데. 569명. 미친. 놈을 피할 기막힌 방법이 없으려나. 생각하다가 주유소에 들렀다. 근방에서 가장 저렴한 기름값. 그래서 늘 차들이 줄 서는 곳.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차를 댔다. 주유구 버튼을 누르고 시동을 껐다. 밖에 나가 마개를 돌려 여는 동시에 카드를 넣었다. '가득'을 선택하고 주유기를 꼽았다. 차르르 숫자가 올라간다. 기분이 좋다. 들어가라 들어가. 기름이 차에 들어가는 게 꼭 현금지급기에서 현금을 빼 지갑에 넣는 것 같은 느낌이다. 뒤에서 주유소 직원이 지켜본다. 손님들이 기름을 잘 넣는지 이상 없는지 체크하다가 내 맞은편 아주머니에게 말한다. "마스크 쓰셔야 해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마스크를 꺼내 쓴다. 그런 모습을 주유하는 사람들 몇몇이 지켜본다. 운전하느라 깜빡했구먼. 


이 시간 주유하는 풍경을 둘러보니 대체로 작고 낡은 차가 많다. 작고 낡아서 이른 아침에 남들보다 빨리 출근하는 것일까. 늦을세라 미리미리 일터로 달려가는 이들. 부지런한 얼굴. 개중에 유달리 작고 낡은 차 아저씨가 비닐장갑을 고이 끼고 주유를 한다. 적어도 20년은 되었을 것 같은 20세기 차. 원래는 하얀 차지만 덕지덕지 검정이 묻어 회색으로 보일 정도. 조심조심 손에 묻을세라 주유 마개도 천천히 돌린다. 주유기를 구멍에 넣어 달카닥 손잡이를 당긴다. 아기자기한 그의 동작을 보자니 절로 미소가 나온다. 주유하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마치 교향곡을 지휘하는 듯 우아한 손동작처럼 보인다. 




새벽이면 전부 파랗다. 동이 트고 해가 뜨면서 세상은 차츰 하얘진다. 하얘진 세상 속에서 군데군데 파란색이 보인다. 해가 떴지만 아직 파랗다. 파랑은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다. 바이러스에 색을 입혔다. 보인다. 이제 네가 어디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있다. 그간 잘도 숨어 있었지. 근처에 오지 마라. 오지 말라고 안 올 네가 아니지. 그렇다면 비켜가마. 에둘러 가면서도 네놈을 지켜본다. 이것으로도 큰 성과.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던 바이러스. 어디에 있는지 몰라 두려웠지. 누구에게 있는지 누가 감염됐는지 모호하기만 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 무증상. 증상이 있더라도 없는 척. 슬며시 완치되거나. 어디까지 왔나. 사방팔방이 두려웠다. 숨도 쉬지 못했다. 마스크를 끼고 손소독제를 바르며 좌우 앞뒤 돌아보고 쳐다보고.  


때마침 개발되었다. 바이러스가 취식하는 곰팡이. 색상은 투명하다. 사람 입김처럼 따뜻하고 수분을 머금었다. 입자가 너무나 곱고 가벼워서 마치 안개처럼 두둥실 떠다닌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인 줄 알고 곰팡이에 편승하는데. 곰팡이와 코로나가 만나면 스르르 색상이 나타난다. 파랗게 파랗게. 곰팡이도 바이러스처럼 한번 물들면 전체를 물들게 한다. 병들게 한다. 비록 없애지는 못하지만 파랑을 전염시킬 수는 있다. 그것으로 족하다.


이제 온몸에 파란 안개가 드리우면 그것이 곧 확진자라는 표시가 된다. 어딘가 파란 안개가 보이면 그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곰팡이를 피하지 못한다. 곰팡이는 세계 전역에 구름처럼 퍼져 세상을 감싼다. 마치 공기처럼. 곰팡이가 없는 공간은 까마득한 대기 성층권 밖. 마침내 우린 코로나가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멀리 파란 사람이 보이면 "너 파래. 어서 보건소에 전화해 봐"라고 소리쳐 준다. 매일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이 파란지 확인하게 된다. 확진자의 입에서 파란 침이 튕겨 나온다. 침이 묻은 옷과 사방이 파랗게 물들었다가 사라진다. 곰팡이의 존재는 어쩌면 백신이나 치료제보다 효과적인지 모른다. 피할 수 있으니까. 증명이 되니까. 백신과 치료제는 100%를 충족하지 못하는 한 안심할 수 없다. 




이른 아침. 출근하면서 바깥 풍경을 보면서 그런 상상을 해본다. 멀리 산등성이 사이로 붉은 기운이 솟아나는데 여기 주위는 아직 파랗다. 너무 짙어서 남색에 가까운 세상. 파란 물감에 물이 퐁퐁 덧칠되어 점점 옅어진다. 저기요, 색상으로나마 알려주면 안 될까요? 코로나가 너무 많이 퍼졌다. 그럼에도 역시 보이지 않는. 그래서 더 두려운 존재. 옷이라도 입혀서 더는 숨지 못하게 하면 좋으련만. 


차에 기름이 절반가량 남았음에도 주유를 했다. 예전에는 마지막 한 칸이나 두 칸 남았을 때 주유를 했는데. 요즘은 틈만 나면 가득 채운다. 혹시 몰라서. 갑자기 세상이 정지되어 멀리 피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속보 떴다. 당신이 사는 그곳은 끝났어. 코로나가 좀비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피해야 해. 남은 땅으로. 어디로든 떠나세요. 그러면 주유소고 마트고 모두 문 닫겠지. 언제고 멀리 떠날 채비를 해둔다. 계기판에 보이는 예상 주행거리를 보며 비로소 안심한다. 1000킬로. 나는 천 킬로를 달릴 수 있다. 어쩌면 마지막 운전. 나처럼 주유하는 이들의 표정 역시 불안 속에서 안도하는듯하다. 피난 갈 수 있는 밑바탕. 나는 기름이 묻을까 비닐을 낀 게 아니라 앞사람 손의 접촉으로 자칫 바이러스가 묻어날까 비닐을 끼고 주유기를 달카닥 건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아침. 파랑이 하얗게 물들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 가요, 안녕,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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