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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Dec 31. 2020

잘 가요, 안녕, 기억할게요.

떠나는 날




“집에 가는 날마저 이게 뭐야?”


행정실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구시렁거리는 소리. 타닥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 전화받는 소리. 그리고 첼로, 피아노 소리가 은은히 들리는 라디오 클래식까지.

차장님은 지금 정년을 맞아 퇴직하는 오늘 이 순간까지도 일이 많아서 제 앞에서 연신 자판을 두드립니다. 흘깃 보니 늘 그렇듯 안경 속 얼굴이 딱딱합니다. 저는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지 못합니다. 밖에 나가고 싶은데 나가지 못합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배가 더부룩합니다. 벌써 해가 저물어 갑니다. 시간이 점점 다가옵니다. 이별의 시간. 저는 어느 타이밍에 편지를 전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느새 1년입니다. 

정말 시간이 후딱 지나갔네요. 차장님께서 1년 전, 저와 전근 동기로 우리 학교에서 함께 인사하고 적응하고, 제가 돌아볼 때면 늘 곁에 계셔서 얼마나 의지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지난 한 해 변함없이 제 앞자리를 지켜주어서 무한한 감사함을 느낍니다. 매일 아침 차 막히는 시간을 피해서 저는 늘 1등으로 출근합니다. 출근해 창 열고 환기합니다. 뒤집힌 전기포트에 물 그득 담아 끓여 놓습니다. 그러면 차장님이 여러 마실 거리를 타 이것 좀 드셔 보세요 하고 내줍니다. 매일 오후 퇴근 전 창 닫고 전기포트를 씻어 잘 건조되게 뒤집어 놓았던 차장님. 작은 행정실에서 저와는 비록 1년이지만, 이곳에서 한평생 오랜 세월을 보낸 차장님. 삼십 년이 넘도록 직장 생활을 이토록 모범적으로 마무리하시는 것에 존경하는 마음 가득합니다. 당장 가시는 길,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지만, 그동안 말로 나눈 대화보다 가슴으로 느낀 바 더 많다는 것을 전하고자 이렇게 글로써 인사드립니다. 




언뜻 제가 떠났던 순간이 떠오르네요. 

1년 전 이맘때 12월 마지막 날. 먼젓번 근무지에서 송별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2년간 근무하고 떠나는 사람이었지요. 남는 이들이 떠나는 저를 배웅하였습니다. 저녁 식사시간. 메뉴는 해물탕. 직원들이 끼리끼리 앉아서 찌개를 나누어 그릇에 담아 먹었습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직원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제 곁으로 성큼 왔습니다. 앞자리에는 저랑 매일같이 다투던 선배가 앉았습니다. 옆자리에도 한번 크게 다투었던 분이 앉았습니다. 친했던 사람도 많지만 마지막이라 그런지 일부러 멀리했던 이들이 가까이 앉았습니다. 그런 선배가 나온 음식을 후후 불면서, 해물이 싱싱하네, 이건 서비스라네, 이거도 좀 먹어봐, 맛있는 거야, 어여 먹자, 올 겨울은 왜 이렇게 춥다니, 하면서 이제 가면 언제 또 볼까, 그러게 언제 보려나, 봄에 하는 도내 체육대회에서나 보겠네,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중에도 시원섭섭할 뿐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헤어지는 날 갑작스레 친근한 말투는 외려 부담스러웠습니다. 다만 제가 모질 게 대한 장면이 떠올라 얼른 잊어주기를 하는 바람만 들었습니다.  


저는 그곳이 첫 발령지였습니다. 

선배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지금껏 이대로 쭉 해왔는데 아무 문제없었다, 하면서 일방적으로 윽박질렀지요. 저는 당돌히 대응하여 말했습니다. 제가 배운 것과는 다릅니다. 개선할 건 개선해야지요. 무조건이 어디 있나요?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언제까지 구시대적 태도로 넘어갈 겁니까. 어휴 답답해. 팽팽히 맞서다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껴 더러 무시하고 사과하고 또 맞서다가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마음에 앙금이 남아 한동안 표정으로만 웃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힘든 행사를 함께 치르거나 다 같이 으쌰 으쌰 일할 때면 선배는 자, 땀 좀 닦고 이거 좀 먹어봐라, 하면서 먹거리를 챙겨 주었죠. 그러면 금세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저는 다소 늦은 나이에 이곳 새 직장에 들어왔습니다. 오랫동안 회사에서 경쟁하고 싸우던 것이 몸에 익어 늘 경계태세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쉬 열지 못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왜 그 일을 해야 하죠?”가 저의 태도였습니다.   


선배는 말했습니다. 

그동안 고생했다, 애썼다, 다음에 밥 같이 먹자, 오면 연락해라, 그래 연락하고 지내자, 힘들었던 기억은 다 잊어버리고 좋은 추억만 가지고 가, 라는 덕담도 들었습니다. 이제 집 가까이 가니까 좋겠네, 라는 축하도 받았습니다. 숟가락을 놓고 일어나 가게 문 앞으로 가는데, 문득 이 자리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왜 갑자기 눈물이 났을까요? 의아했습니다. 그곳 직원들과는 맹숭맹숭한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깊이 마음을 터놓은 적도 없습니다. 출근하면 개인적 공무에만 치중하다가 퇴근시간만 기다리던 일상이었습니다. 같은 지역 사람도 아니고, 떠나면 잊을 사람들, 때때로 다신 안 볼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동안 저는 얼마나 떠나고 싶어 했는지 모릅니다. 후진 지역이 싫다고, 제발 좀 옮겨 달라고 고충도 쓰고, 집에서 출퇴근하기 너무 멀어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고 여겼던 곳입니다. 그런 지역을 떠나 조금이나마 집 가까운 곳으로 가는 건데, 왜 눈물이 나나 놀랐습니다. 더구나 여기 바닷가 사람들은 체질적으로 저와 맞지 않는다고 자조하기도 했습니다. 독하다 독해. 이상하다 이상해.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징글징글하다고 몇 번이나 고개 흔들고 낙담도 하고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어떨 땐 철천지원수처럼 소리치고 반목하고 그러다 포기하고 얘기도 해보고 마주 보며 화해하고 풀어지고 그러다 또 무시하고 다시 웃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들어버렸지요. 매일 아침 인사하고 여러 경조사에 참석하고 다양한 행사, 음악회, 체육대회, 경연 시합도 같이 준비하여 치러내고 힘든 업무 손 맞춰 마무리하고 부대끼면서요. 회식자리도 참 많았습니다. 선배가 술을 권할 때마다 조금만 따르라 잔 든 손이 움츠러들었습니다. 한 잔 마시고 한 잔 주라. 여기 제 잔 받으세요. 그래 욕봤다.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네요. 덕분에 잘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웃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만 참 많이도 웃더라고 직원 중 어떤 분이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저와 가까웠던 직원이 제게 “감사해요,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고생하셨어요”라고 말하기에 저는 그만 그의 품에 안겨서 흐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우는 게 다소 황망했지만 속으로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세월, 모자란 저를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신세 많이 지고 갑니다. 그런데 이제 떠나면 우리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못 보잖아요. 다시는 그렇게 웃으며 싸우고 일하고 부대끼며 정답게 밥 먹고 얘기하고 했던 것처럼 사계절 함께 할 수는 없잖아요. 아마도 평생 영원히 은퇴할 때까지 지금처럼 같이 일할 수는 없겠지요. 다시는...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요. 바보처럼. 겨울이 되고 말미에는 말수도 줄여 되도록 데면데면하게 지내려고 했습니다. 냉랭히 서먹하게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떠나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다지도 뜨거운 눈물이 이렇게나 멈춤 없이 흐르다니 참 놀랐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만나고 헤어진 다는 것의 의미를요. 제가 흐느끼자 송별회에 참석했던 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위로해주었습니다. 괜찮다. 또 만나면 되지. 먼 곳도 아닌데. 언제든 전화 해. 선배는 이윽고 저를 커피숍에 데려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괜찮아진 걸 보고서야 일어났습니다. 꿋꿋하게 지내, 기죽지 말고, 꼭 놀러 오고, 라면서 손 흔들던 사람들.  


계절이 바뀌어 막상 봄이 되었어도 저는 먼젓번 근무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도내 모든 행사와 대회가 취소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1년이 지났지만 지난 근무지 생활은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집니다. 돌이켜보면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저는 참 빨리도 잊었구나 싶습니다. 가끔 전화로 목소리만 들을 뿐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함께 지내며 신세 졌던 분들, 정들었던 이들, 고마웠던 그들에게 아직 고맙다고 인사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근무지. 

행정실에서 고개 드니 제 앞자리에 차장님이 보입니다. 

정년 맞은 차장님을 12월의 마지막 날, 이렇게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떠난 것처럼 차장님도 떠납니다. 한 직장에서 무려 삼십 몇 해의 세월. 오래도록 머물렀던 공간과 작별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이제 마지막 인사만 남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제가 일어나자 차장님도 제게 다가와 섭니다. 저는 차장님과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를 시선을 주고받습니다. 왠지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저를 보는 눈빛이 뜨겁습니다. 정말 이별이구나. 벅차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피하면 안 됩니다. 꿋꿋이 버팁니다. 그렇게 가까이 마주 보고 서서 미소 짓습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기억되리. 미소를 보다가 천천히 고개 숙입니다. 숙이면서 말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건강하세요. 많이 도와주셔서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결국 차장님은 웁니다. 안경 속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퇴근 시간이 되고 직원들이 하나둘 인사하러 옵니다. 곁에 서서 인사하며 마지막 안부를 전하는데, 차장님은 자리에 서서 멍하니 눈물 흘립니다. 차장님 안녕히 가세요. 돌아서려는데 차장님은 제 손을 꼭 붙잡고는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라며 뭐라 뭐라 말하다 눈이 벌게져서는 웁니다. 서로가 마주 보는 단 하나의 장면. 1년간 좁은 행정실에 앉아서 근무했지만 이렇게 가만히 마주 본 적은 없었습니다. 순간 왜 진작 보지 않았을까 후회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다, 집에 누가 아프다, 무슨 행사가 있다, 도와주세요, 제가 대신해드릴 테니 어서 가 봐요, 온종일 서로가 서로를 향해 주거니 받거니 다독였습니다. 제 앞에는 당연히 차장님이 있었고 차장님 앞에는 제가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이제 볼 수 없다니요. 이제야 마음을 여는데. 이제야 서로를 보는데.


저는 메신저로 쓴 편지를 보내고 쑥스러워서 곧장 행정실을 나섰습니다. 나와서 닫힌 문을 돌아보자니, 금방이라도 문이 열려 뒤따라 나오실 것만 같아서 멀리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자꾸만 행정실 문을 돌아보았습니다. 오래도록 몇 번이나 돌아보고 돌아보며 퇴근했습니다. 




차장님을 떠나보내며, 떠나 온 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동료들이 그립습니다. 저는 남해에서 사천으로 왔습니다. 집은 진주입니다. 주말이면 왕왕 남해로 나들이를 갑니다. 독일마을도 가고 상주 해수욕장도 가고 다랭이 마을도 갑니다. 그리고 갈 때마다 꼭 지난 근무지에도 들러봅니다. 가서 사진도 찍으며 그곳 동네를 무연히 돌아봅니다. 그러다 보면 따뜻한 기운이 뭉게뭉게 차올라 무언가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운 마음 담아서 편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새해가 되어 출근하니 메신저 창에 쪽지가 와 있습니다. 떠난 차장님이 보내온 것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들만 무조건 쭉 있기 빕니다. 그동안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저도요, 라는 말이 입안에 맴돌지만 이제는 메신저로 답장 보낼 상대가 없습니다. 행정실 전기포트도 지난해의 물이 담긴 채 바로 세워져 있습니다. 직접 포트를 씻어 물 끓이는데 그제야 차장님의 빈자리를 느낍니다. 받아들입니다. 안 계시는구나. 당신의 손길 느낄 수가 없구나. 행정실에 색소폰 소리, 피아노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울립니다. 저는 차장님을 좇아 행정실에 클래식 라디오를 켜놓았습니다.    


계절은 다시 바뀔 것이고 저는 또 차츰 잊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기억해 주세요. 그때 당신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요. 


당신과 함께 일해서 기뻤습니다. 



















*2021 경남교육청 주관 [자기고백이 담긴 편지쓰기] '지금 당신에게 편지합니다.' 출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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