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모르는 한 소녀가 특별한 인간 친구를 만나
글그림: 최여원
소나기가 차츰 그칠 때였다.
몇 개의 작은 나무로 만들어진 듯한 가게 안에서, 12살쯤으로 보이는 한 소녀가 파란 남색 빛의 기모노를 입고 검은색 머리는 양쪽으로 단정하게 땋은 뒤, 자신의 손바닥보다 조금 큰 나뭇잎에 검은색 볼펜으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소녀는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에 앉아 "이제 열어야겠구나"라고 마치 저 햇빛에게 속삭이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 조용히 반응하듯 알록달록 금붕어가 그려진 조그마한 풍경(작은 종)이 나무로 만들어진 낮은 천장에 매달려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흔들거렸다. 소녀는 풍경의 청량한 소리에 나뭇잎에 글을 쓰다 말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무도 모르는 조그마한 가게. 그 가게 안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물건이 아주 조용히 빛나고 있다. 그저 우리가 그 빛을 아직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빛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소녀의 마을을 움직일 수 있다면...
오늘은 새로운 그림을 그리러 갈 것이다.
저번에 건물 풍경을 다 완성했으니 이번엔 숲으로 가 볼 것이다. 어쩌면 숲에는 아무도 모르는 존재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존재를 내가 찾아낼 수 있다면 한없이 좋을 것이다. 만약 진짜로 찾아낸다면 매일 그 숲으로 찾아가서 그 존재와 세상 이야기를 해야지. 그리고 숲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떤지 물어볼 것이다. 나는 숲을 좋아하니까. 11살이 되던 해의 여름. 나는 하늘 위 구름 그리는 것을 참 좋아했다. 끝없이 넓은 다양한 색의 하늘.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모양의 구름들. 그것을 보고 나면 문득 손으로 만져보고 싶을 때가 있다. 구름이 형태가 없다는 말이 진짜일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구름 속에 누군가가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거기 누가 살고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마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계속 구름 속에서 무슨 신비로운 마법을 부릴 것만 같다. 이 세상의 몇 안 되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기 위해서.
숲으로 향하는 지금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는다.
묵묵히 자기가 갈길을 향해 천천히 걷는 구름들이, 어쩐지 어른스럽다고 느껴졌다. 나도 나중에 저런 어른이 된다면, 정말 멋질 것 같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크게, 행복하게 말할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천천히 걸어가면서, 갑자기 설레서 바람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뛰었다. 몸이 마치 바람으로 변한 것처럼 가벼웠다. 복잡한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를 떠나 초록빛의 넓고 넓은 초원과 푸른빛으로 구름들이 펼쳐지는 파란 하늘에 몸을 맡겨 바람과 함께 멀리 뛰어갔다. 마치 나의 기분처럼 새하얀 스케치북 하나를 들고서. 숲으로 가는 동안에도 새하얀 스케치북을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곧 있으면 깊은 숲 속으로 가서 이 스케치북 위에 연필 하나로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채워야겠다. 노란색의 열매, 빨간색의 열매, 한없이 푸른 산. 벌써 가을처럼 주황빛으로 물든 나무. 그리고 작고 귀여운 이파리들. 한껏 들뜬 마음으로 바람 속에 몸을 맡겨 오랫동안 뛰었다. 이상하게도 숨이 차지 않았다. 그저 기대되고 기대되는 마음뿐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래의 나를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그 미래의 나는 지금 과거의 나를 생각하며 과거의 내가 자신을 생각했다는 걸 알고 재미있어하겠지. 지금 내가 바라는 일을 하면서. 아마 숲으로 가면 지금의 내가 상상도 못 할 일이 생겨 나를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오늘 숲에서 그림을 그리고 난 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푹신하고 커다란 침대에 앉아 오늘 그린 풍경화를 보면서 뿌듯해하며 웃겠지.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서. 달리면서 그런 생각을 하니 미래의 일이 기다려졌다.
이 초원은 넓고, 아주 많이 넓다. 마치 내가 세계의 끝 부분으로 달려가는 것 같다. 빨리 숲에 도착하면 좋겠다. 마침 그림을 그리면서 먹으려고 맛있는 도시락과 시원한 차가 든 보온병이 생각났다. 빨리 먹고 싶었다. 처음으로 내가 직접 싸 본 도시락이기 때문이다. 무척 정성스럽게 요리했다. 바깥에서 풍경화를 그리면서 직접 싸온 도시락을 먹다니, 조금은 낭만적이고 멋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다 달리며 계속 숙이고 있던 고개를 왠지 모르겠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들었다. 그때 눈앞에 저 하늘의 구름만큼 큰 풀 덩굴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무겁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홀려 풀 덩굴을 헤치고 그 속으로 생각 없이 들어가 버렸다. 새하얀 스케치북도, 알록달록한 나무 열매들도, 갖가지 종류의 꽃들도,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앞만 보고 무겁게 걷기만 했다. 생각 없이 하늘의 저 구름 하나만 보며 걸었다. 저 하늘의 구름이 왜인지 모르게 하늘이 알지 못하는 하나의 사람 같았다. 하늘이 알지 못하는 구름... 그만큼 저 구름이 신비롭단 것 아닐까? 하늘도 알지 못하는 정도로. 그런 비밀스러운 생각이 나의 푸른 눈동자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다. 머릿속에는 아까부터 계속 그런 생각이 들고 있었다.
'만나고 싶어.'
누구를 만나고 싶은 건지는 나도 잘 모른다. 아니, 그 누구도 모른다. 저 하늘의 구름 조차도, 만나고 싶다. 계속, 누군가를... 한참이 지난 뒤, 구름이 점점 짙어졌다. 이제는 곧 비가 사정없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때, 우연이었을까? 눈앞에 정면으로 어느 한 작은 가게가 보였다. 그 가게 앞의 위, 구름이 같이 걷어지며 햇살이 쏟아지는 지금, 거기 나무에 이런 글자가 매달려있었다.
'숲 가게'
그 글자를 한 글자 한 글자 아주 천천히 천천히 읽었다. 그 순간 내가 여태껏 느껴본 적이 없는 정도의 엄청난 바람을 느꼈다. 그 바람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주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우주의 끝에서 오로지 나 혼자 떠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아무 느낌도 느끼지 못했다. 이런 기분, 왠지 전에도 느껴본 적 있는 것 같이 그리웠다. 그런 기분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다시 떴다. 그런데, 내가 눈을 다시 떴을 때의 그 풍경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그리고 차가웠다. 내가 본 이 하늘은, 살면서 내가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것이다. 아니, 절대로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본 그 하늘은, 정말로 아름다웠으니까.
말없이 계속 하늘을 바라보기만 하는 내가, 어딘지 허전하게 느껴졌다. 마치 혼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세계의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보랏빛 하늘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색색깔의 햇무리구름이 저 넓고 넓은 하늘 위로 자유롭게 펼쳐졌다. 그것은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아름다웠다. 그대로 또다시 눈을 감았다. 보랏빛의 하늘이 짧은 꿈같이 순식간에 스르르 녹아 사라졌다. 눈앞이 캄캄했다. 우주의 기운을 느끼는 기분, 이 공허함은 아까 그때의 느낌이다. 다시 눈을 떴을 때였다. 아까 전 본 흐린 빛의 하늘은 사라지고, 불타는 듯 고요하고 평화로운 붉은빛이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 뒤, 뒤늦게 적막하고 차분한 빗소리가 고요함 속에 녹아들었다. 그때, '숲 가게'라고 쓰인 작은 나무 간판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왠지 그립다. 저 간판 너머 나무 향이 나는 가게가 보였다. 저기로 들어가야 한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런 기분이 들어 결국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조심히 발 하나를 나무 바닥에 딛었을 때였다. 큰 바람이 불었다. 아주 큰 바람이었다. 부웅 소리가 났다. 나의 짧은 곱슬 머리카락이 바람을 반갑게 맞이하는 듯이 앞으로 흔들렸다. 거침없이 다른 쪽 발도 내디뎠다. 그때, "이리 와 봐!" 하는 낯선 목소리가 내 마음을 차갑게 적셨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러 한걸음, 또 한걸음을 걸어갔다. 오른쪽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작고 아기자기한 계산대가, 왼쪽에는 두 개의 낡은 문들이 있었다. 그 문들의 금색 손잡이에는, 귀엽고 알록달록한 도토리와 조개껍데기들이 종과 함께 달려있었다. 나는 계산대 쪽으로 걸어갔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은 분명 저곳이다.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오로지 계산대 쪽을 바라보며 계산대 쪽을 향해 걸었다. 마침내 나무 계산대 바로 앞으로 갔을 때, 계산대 안쪽 아래에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작은 빨간색 둥근 의자에 앉아있었다. 노을빛에 빛나는 긴 검은 머리카락은 양쪽으로 조롱조롱 땋아 주황색의 리본 끈으로 단정하게 묶어 등 뒤로 넘겨놓고, 주황색 바탕에 알록달록한 금붕어들이 그려진 귀여운 기모노를 입었다. 게다가 눈동자는 사랑스러운 호박 빛으로 따스하게 반짝였다. '누구일까? 친해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 애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너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여기는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닌데... 이 시간엔 너무 위험하거든."
아까 날 부른 목소리가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무슨 뜻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위험하다'라는 말 한마디에 온 몸에 한기가 번져나갔다. 한 가지는 알겠다. 이곳은 꽤 위험하다는 것. 나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 그 아이에게 대답했다.
"음...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이곳, 위험하다고? 왜 위험한 거야?"
나의 무심한 그 한마디를 듣고 그 애는 낯빛이 싹 바뀌었다. 순간 얇은 옷을 입은 내 팔에 소름이 으스스 돋았다. 그 애는 애써 아까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 아무나 찾아올 수 있는 가게가 아니거든."
그 말을 한 뒤, 그 애는 자신을 소개했다.
"소개가 늦었네... 내 이름은 나이쇼고, 이 '숲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여기는 아주아주 특별한 자들만 찾아올 수 있는 곳이야. 환영해."
그 말이 왠지 모르겠지만 나를 살짝 흥분하게 만들었다. 멍하니 입을 벌린 채로 바라보다가 약간 뒤늦게 정신 차리고 나 자신을 소개했다.
"아... 나는... 야! 그런데 너는 설마 혼자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거야? 부모님은?"
"나? 나는... 부모님들이랑 떨어져서 혼자 살아. 말 그대로 독립하는 거지. 어때? 나 조금 대단하지 않아?"
조금 대단한 게 아니었다. 나이쇼의 나이를 감안해 보았다. 아무리 봐도 14살인 나와 나이가 똑같아 보였다. 그런데 이 나이에 벌써 독립이라니, 나이쇼, 참 독립성이 강하구나. 그렇게 혼자 생각하는 와중에 나이쇼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새어 나왔다.
"너... 이승과 저승의 세계 반대쪽에 있구나...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중얼거리듯 혼잣말하는 억양으로 말한 나이쇼의 표정은, 뭔가 다정한 느낌이 이미 싹 가신 뒤였다. 뭐랄까, 감정이 사라진 사람 같았다. 왠지 너무 수상했다. 하지만 정체모를 위압감에 그 생각을 말하지 못했다. 보통 제정신인 상태로 이 말을 들었다면 보통 오글거리고도 남았을 텐데, 지금은 전혀 아니다. 어쩐지 맞는 말 같았다. 나는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찬물이라도 뒤집어써야 하나...'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다 지금 이 상황을 거의 완벽히 깨달았다. 일단 이 가게와 이 애, 너무나 수상하다.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신을 차리고 가게를 다시 꼼꼼히 훑어보니, 가게는 아주 독특했다. 나이쇼의 독특한 외모만큼이나 독특했다.
두리번거리며 가게를 훑어보는 나를 나이쇼는 나의 마음을 다 읽는 듯한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때, 나이쇼의 작은 입에서 뜬금없는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저기... 케이크 먹을래?"
"케이크? 응."
그 한 단어에 온 정신이 쏠렸다. 나도 모르게 홀려 바로 대답해 버렸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뭐가 그리 급한지 나이쇼는 총알 같은 속도로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문을 향해 뛰어들어가 버렸다. 저기는, 아마도 부엌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윽고 나이쇼는 10초 만에 나타났다. 나이쇼는 양손으로 엄청나게 거대한 나무쟁반 위에 올려진 크고 둥근 2단 사과 케이크를 들고 왔다. 눈으로 보기에도 되게 무거워 보였는데, 나이쇼는 그것이 가벼운지 케이크를 들고서 엄청 빠르게 뛰어왔다. 하지만 역시 무거웠나 보다. 케이크를 계산대 위에 올린 나이쇼는 이상한 기합을 넣었다.
"끄어어억!"
"같이 들어달라고 하지?"
나는 당황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 괜찮아. 너도 엄연히 이 숲 가게의 손님인데, 내가 대접해야지."
그렇게 말한 뒤 나이쇼는 쟁반 위에 놓여있던 은빛의 작은 빵칼로 서걱서걱 커다란 케이크를 잘랐다. 커다란 케이크를 작은 분홍색 둥근 접시에 담아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우선, 이거라도 먹고 얘기하자."
그 말에 대답 대신 간단하게 살짝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작은 은빛 포크로 케이크를 크게 입에 넣었다. 입에 넣자마자 몸 전체에 퍼진 케이크의 맛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말도 안 되게 부드러운 생크림을 바른 빵을 한입 물자마자, 엄청나게 달고 향긋한 사과즙이 퍼져나가고 빵을 적셨다. 게다가 케이크의 겉면에는 달콤한 설탕가루가 잔뜩 둘러져 있어 씹을 때마다 작게 토독토독 소리가 났다. 그리고 빵 사이에는 작은 사과 조각이 듬성듬성 박혀있어서, 아작아작 소리도 더해졌다. 이렇게 맛있는 사과 케이크는 지금껏 먹어본 적이 없었다. 대체 누가 만든 걸까? 하고 감탄하고 있을 때, 나이쇼가 갑자기 놀란 듯 말을 꺼냈다.
"으악! 너무 맛있어서 벌써 3조각이나 먹어버렸어!"
그 말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쟁반 위에 놓인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1단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2단도 거의 반쯤이나 사라졌다.
"이 많은 걸 우리가 먹어 해치우다니... 믿을 수 없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나이쇼는 쟁반을 들고 다시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더니 다시 돌아오며 말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대화해볼까?"
그 말을 들은 뒤, 나와 나이쇼는 어느새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시간이 가는 사실을 쏙 빼먹은 채로, 나이쇼와 대화하던 그때,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따스한 온기를 느꼈다. 그 애와 이야기를 하는 게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너무너무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챙겨 온 도시락과 스케치북을 잊고 계속 가방에 넣어둔 채, 나이쇼와 나의 대화는 그칠 새가 없었다. 마침내 초저녁에서 밤이 되어,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했다. 그러자 나이쇼가 작은 나뭇잎으로 싼 꾸러미를 손에 쥐어주고, 가게 문 앞까지 나가 "잘 가"라고 배웅해 주었다.
'내일도 와야지'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순식간에 그 숲을 빠져나와 집으로 왔다. 도착해서 즉시 뜨거운 물로 씻은 다음, 어깨에 차가운 수건을 걸치고 차가운 물과 도시락을 맛있게 먹으며 나이쇼가 쥐어 준 나뭇잎 꾸러미를 열어보았다. 꾸러미는 주황색으로 물든 나뭇잎 한 장을 접어서 만들었는데, 노란색의 긴 실로 묶여 있었다. 리본 모양이었다. 리본 끈의 한쪽을 잡아당기자, 금세 느슨해지더니 끈이 풀려났다.
'부럽다. 나는 리본으로 못 묶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꾸러미 안에 든 물건을 보았다. 신기하게도 작은 빛이 솟아나는 열매들이었다. 각각 빨간색, 주황색, 초록색, 분홍색, 노란색으로 밝게 빛났다. 그리고 그 안에는 연한 분홍빛을 띠는 얇은 종이가 반으로 접힌 채 같이 들어있었는데, 열어보니 색색의 열매들의 효과를 알려주는 설명서였다.
빨간색은 식욕을 돋게 하는 열매, 주황색은 두뇌가 명석 해지는, 초록색은 눈이 좋아지는, 분홍색은 타인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노란색은 더러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버릴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열매 두 개를 동시에 같이 먹으면 다른 효과도 나타난다고 했다. 신기한 나머지 설명서를 계속 읽어나가고 있을 때, 맨 마지막 줄에 큰 검은색 글씨로 '단, 열매와 같이 꼭 물을 드세요'라고 적혀있었다. 그래야겠다고, 나는 굳게 결심했다.
그날 밤, 이불을 덮고 누워 나이쇼와 나눴던 대화들을 생각하며 달콤한 잠을 청했다. 한여름이었지만, 마치 한겨울밤 난로 앞에 앉아있을 때와 같은 온기가 느껴졌다. 내일 하루도, 기대된다. 상상만 해오던 나의 친구가 이렇게 생기다니, 한없이 기쁘기만 했다. 그렇게 나는 행복한 내일을 기대하며 더없이 깊고 깊은 행복한 잠을 잤다.
다음날 새벽, 나는 창가에서 들리는 수상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마치 어떤 유리를 긁어대며 울고 있는 소리 같았다. 잠옷을 입은 채로 어슬렁어슬렁 창가에 다가갔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을 받은 나는 곧바로 옷을 입고 나가서 내 방이 보이는 아까 그 창문 쪽으로 갔다.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갑자기 혼란스러워져 꼭 눈을 감았다. 지금 내 뒤에 누군가가 있다. 기척이 느껴진다.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아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무한까지. 이제는 아예 불안하다는 느낌도 나지 않았다.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점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어! 하이!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어, 누구 방이길래 저리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보고 있지? 설마... 훔쳐보는 거니?"
나의 등 뒤에서 지나치게 친근한 말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그곳에 나이쇼가 있었다. 하지만 모습이 이상했다. 아니, 너무도 기괴했다. 나이쇼의 얇은 다리와 신발들은, 거의 절반이 투명해져 있었다. 게다가 점점 더 위로 투명해져 가는 것 같았다. 사라질수록 파란 유리조각이 쩌적 하고 퍼져 나와 나이쇼의 발밑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떨어진 유리조각들은 점점 갈수록 쌓이고... 마침내 나이쇼의 눈만 보일 정도로 순식간에 쌓였다. 나는 그저 멍하니 보기만 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지켜보고 놀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나이쇼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나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내 기억의 조각들, 네가 다시 찾아줘. 내 가게도 말이야. 너라면 언젠가 찾을 거야. 내 존재를 믿는 한, 즐거웠다. 시이코!"
가게 안에서, 정체모를 빛이 쏟아져 나왔다.
저 빛은 주인이 사라졌을 때 보이는 빛이다. 왜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조그마한 가게.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었던 한 소녀가 있었다.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언젠가 그 가게를 다시 찾기를... 그 소녀는 지금 누군가에게 받은 노란색의 열매를 한 알 집어 들어 물과 함께 먹었다. 그 즉시 몸속의 더러운 기억들이 깨끗이 사라졌다. 앞으로도 평생, 소녀는 그 가게를 절대 찾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가게의 주인은 저 구름 위에 앉아 웃고 있었다. 그 소녀를 바라보며 태양처럼 웃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