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목요일 오후다. 창밖을 보는데 갑자기 구급차가 보인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다. 왔구나.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데 그대로 아파트 주차장을 지나 나가버린다. 후유, 날 데리러 온 게 아닌가, 살았다, 하는데 문제는 아직 가타부타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거다.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보건소의 안내에 따르면, 양성이면 전화가 가고 음성이면 문자가 갑니다, 했다. 아침부터 종일 문자 소리가 나면 화들짝 놀라 확인하고 전화벨이 울리면 발신처를 먼저 본다. 흡사 대입시험을 치고 합격이냐 불합격이냐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심정이 이러할까. 죽어서 재판 결과 천당이냐 지옥이냐가 그러할지. 아무튼 오늘 밤 자정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음성이라고 했다. 그런데 자정까지는 또 어떻게 기다리나. 시간이 안 간다. 낮잠이라도 자면 될 터인데 잠을 잘 수는 없다. 잠자다가 구급차가 날아들면 그 황망한 겁박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이제 해가 중천에 떴다. 아침에는 내가 만든 김치볶음밥을 해 먹었고 조금 전에는 아내가 만든 물 국수와 스파게티를 먹었다. 두 번 다 설거지는 내가 했다. 음식물쓰레기를 당장 버리러 내려가지 못하여 찝찝하다. 카메라를 피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살그머니 계단으로 내려가 재빨리 버리고 오면 안 될까 궁리했지만 걸리면 괘씸죄로 살아남지 못할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문득 김이 없어서 김밥을 못 만다는 아내가 야속하다. 남편의 김밥 먹고 싶은 욕구를 외면하고 이제 두 시간 뒤에는 뭘 해 먹을까, 하며 아내는 연신 냉장고를 열어본다. 딸아이는 놀아달라며 제방에서 뛰어나오길 반복한다. 학교에서 임시로 보낸 원격수업 영상은 벌써 끝났고 나는 패드의 다른 영상을 틀어주고는 겨우 소파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오늘 밤 우리 가족의 표정은 어떻게 변할까. 자못 두렵고 궁금하다.
어제 수요일 8시.
어둠이 내린 보건소 앞 도로가. 이곳은 인적이 없고 차만 다니는 길이다. 옛 진주의료원 자리. 근처 장례식장이 아니면 잘 들르지 않는 동네다. 낯선 동네에 들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기다림은 어떤 방식인가 궁금했다. 주차하고 내려서 사람이직접 줄 서는 걸까. 보건소 건물이 저 멀리 보이지만 보건소로 들어가는 차들만 길게 줄지어 있다. 아무래도 검사를 기다리는 차들 같았다. “차가 너무 많은데, 그냥 내일 올까?” 내가 말하자 아내는 “그냥 기다리자, 오늘 밤 안에는 해주겠지”라고 말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가기 싫은 치과를 오늘이 아니라 내일 간다고 하면 당장엔 기쁘겠지만 걱정은 밤새도록 한층 더 깊어진다는 것과 같은 궤였다. 나는 길게 선 줄 끝에 서서 한 대씩 대략 오분에 한 대만큼의 거리를 가다 서다 하며 기다렸다.
저 앞에서 차 한 대가 빠지면 미리 준비하여 기어를 디로 놓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뗀다.
차 한 대만큼의 거리를 스르르 가고 다시금 기어를 피로 놓는다. 이대로 기다리면 과연 순서대로 검사를 받을 수 있을지, 의아하다. 궁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앞차가 기다리는 대로 따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누군가 나와서 안내라도 해주지. 인력이 여의치 않겠지만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헤아리지 못하나 한편 서운하다.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어쩌면 확률의 싸움이다. 이 줄에 서면 살고 저 줄에 서면 공연히 시간만 허비하며 죽어가리라. 새까만 어둠 속 앞차의 뒤통수에서 빨간불이 들어오면 브레이크에 발을 대 기어를 바꾼다. 사이드미러로 보니 뒤에도 길게 선다.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인데도 누구 하나 끼어들지도 않고 빵빵거리지도 않는다. 그저 줄을 서고는 막연히 기다리는 시간. 자신의 선택을 믿어본다. 차츰 앞 유리에 습기가 찬다. 이미 통풍구는 막아둔 상태라 에어컨을 틀면 바깥과 연결되는데, 여기는 확진자이거나 확진자에 가까웠던 이들이 모여 머무는 공간이므로, 공기를 통해 들어오면 안 될 무언가가 따라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든다. 그래도 안 보이면 대책도 없이, 앞차를 바짝 따라가 언제 무엇이 다가와도 이처럼 위험이 도사린 곳에서는 미리 대처하고 임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마스크를 고쳐 쓰고 통풍구를 열어 에어컨을 켠다. 금세 앞 유리는 맑아지고 어둠은 짙어진다. 명확히 보이는 앞차와 저 멀리 천막 앞의 불빛들. 이내 에어컨을 끄고 통풍구를 막아 또 잠깐 이동하고 에어컨을 가동하고 그렇게 혼자서 기계적인 동작을 반복한다.
딸아이는 겁을 먹다가도 아내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밀접 접촉자는 자진하여 신고하세요” 하고 명랑하게 뉴스를 따라 읽었다. 나는 검색하다가 검사할 때 입을 동그랗게 벌려서 아~소리를 내면 덜 아프다고 딸아이에게 알려주었다. 라디오를 틀었다. 내가 튼 방송은 불교방송이었다. 편안히 읊조리는 불자의 음성에 섣불리 채널을 돌리지도 못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방송은, 세상 만물 흘러가는 대로 잘 되겠지요. 새로운 소식 앞에서도 놀랄 것 없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다 잘 되겠지요, 걱정마세요, 라고 들렸다. 그러곤 다시 차 한 대 정도의 거리를 가고. 어느 정도 임박하자 야광봉을 든 사람이 분주히 앞차에 다가가 뭐라 뭐라 대화를 나눴다. 내 차례가 되자 남자는 “보건소에 전화로 접수하셨어요?”라고 물어왔다. 나는 “밤까지 고생하십니다, 접수했고 조사도 다 되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분들은 빨리 안 하고 기다리게 한다고 성질까지 부리시는데”라며 웃었다. 나는 “검사할 때 아기도 있는데 아프지는 않을까요?”라며 아프지 않게 검사해달라는 본연의 의사를 전했고 남자는 “아프지 않게 검사해 달라고 말씀 전해드릴게요” 하고 답했다.
드라이브 스루. 차 안에 앉은 채로 검사를 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야간이라 그런지 대부분 차에서 나와 천막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검사를 받는다. 한 남자가 고개를 약간 젖히자 의사가 콧구멍에다 긴 막대를 쑤신다. 그러자 남자는 눈물을 찔끔 손으로 훔치고는 뭐라 뭐라 말한다. 의사도 뭐라 뭐라, 원래 그런 거예요, 괜찮은 거예요, 라고 답하며 이번엔 목구멍을 쑤신다. 대체로 사람들은 콧잔등을 문지르며 검사 뒤 의사에게 내놓았던 제 얼굴을 챙긴다.
우리는 차 안에서 그 모습을 보며 순서를 기다렸다.
마침내 순서가 되고 우리는 천막 안 플라스틱 의자에 각자 앉았다. 내가 앉고 아내가 중간에 딸아이가 그 옆에 앉았다. 의사가 채취용 키트 비닐을 뜯으며 말했다. “어느 분이 먼저 할래요?” 뭔가 질문이 당황스러웠다. 누가 먼저 도전할래요, 라는 뜻인지 어쨌든 근래에 들어보지 못한 질문. 내가 머뭇거리자 아내는 “제가 먼저 할게요”라고 선수 쳤다. “자아, 콧구멍으로 들어가니 놀라지 마세요.” 의사는 말하며 긴 면봉을 들어 보였다. 차마 아내 쪽을 보지 못하고 나는 눈을 감으려다 문득 건너편 딸아이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잔뜩 겁먹은 표정. 다음 순서는 어쩔 수 없이 나였다. 나는 입을 벌리고 아~소리를 냈다. 콧구멍으로 비릿한 느낌과 함께 긴 창이 들어왔다. “3초간 있을게요.” 이물감을 참는 시각. 창은 3초간 머물다가 나갔다. 3초란 무엇인가. 어떻게든 3초를 버텨야 기록이 인정되듯 3초가 지나야 진위가 확인된다. 꼭 게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최근 딸아이랑 집에서 하는 놀이 중 하나인 미션대로 통과하기랑 비슷한데 풍선을 손으로 치면서 한 발로 3초간 버티기, 그런 따위의 내용을 임의로 정해 게임한다.) 내가 부르르 용쓰는 것을 본 아내가 웃었다. 그러나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는 딸아이. 자신도 한 명의 사람이라고 딱 세 개가 놓인 의자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예외가 없다는 것을 어느덧 아는 나이. 그 나이는 옛날 교실에서 불주사를 맞으려고 길게 줄 선 것처럼, 긴 줄에서 감히 벗어날 수 없음을 안다. 자기 차례가 다가올수록 뭔가가 가슴을 옥죄어오고 마침내 차례가 와 뭔가는 낯선 물체가 되어 괴괴히 침범한다. 나는 급히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네, 아하하 간지럽지도 않네, 웃지만 딸아이는 아빠의 긴장을 눈치챘다. 말릴 틈도 없이 그 작은 콧구멍에 면봉이 들어가고 3초 동안 눈을 꾹 감은 채 아아~귀여운 소리를 낸다. 검사가 다 끝나고 내가 “밤늦게 수고 많습니다”라고 인사하자 젊은 의사는 “그러게요, 밥도 못 먹고”라고 답했다.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각. 당연히 밥은 먹었을 테니 밥 먹었냐고 묻지도 않았건만 굳이 밥을 먹지 못했다고 말하는 의사에게서 밥 먹지 못한 자 중 한 사람으로 그의 고독이 반가우면서도 진하게 느껴졌다.
내가 다닌 곳은 어디 어디인가?
온 세상에 고스란히 '알아야 할 정보'라는 미명 하에 드러날 터. 사느냐 죽느냐에서 죽느냐로 접어들면 한없이 주눅 드는데. 굳이 변명하자면, 주말에 아파트 인근 자전거 방에 가니 자전거를 고치거나 사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그런데 왜 변명하는가. 나는 줄 서서 겨우 바람을 넣고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니 봄 날씨에 사람들은 저마다 정겨운 표정이다. 잔디에 자리를 깔아 도시락을 먹는 커플, 아가씨, 가족, 사진족, 산책족, 운동족. 남강 둔치에는 나들이 나온 각종 사람족으로 온통 붐볐다. 마스크를 낀 사람 안 낀 사람 관계없이 그들의 머리 위로, 벚꽃은 바람 따라 흩날리고 핑크빛에서 화이트까지 그 중간에 해당되는 꽃잎들이 저마다의 색상을 자랑했다. 그런 풍경에 사람들은 마냥 취했다. 이제 괜찮아지겠지. 점점 좋아질 거야. 그런 바람이었다. 뉴스와는 관계없다. 여기는 아직 청정 지역이니까. 그저 벚꽃이 예쁘니까 봄이니까 답답하니까 운동이 필요하니까 오롯이 즐거운 시간을 추구하는 사람들. 그런데도 한적한 길을 가리키며 누군가는 변명해보라 말한다. 술집에서는 하하하 웃으며 침 튀기고 맛있다면서 이것 좀 먹어보라 침 날리고 우적우적 먹고 마시고 떠드느라 공포의 비말을 투타타타 따발총처럼 쏘고 맞고 쏜다.
미친 것이 틀림없다.
세상의 지탄을 받아 어쩌면 살아남지 못할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자 어제는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손을 이마에 대 열을 재니 미열이 있다. 이 판국에 왜 열이 날까. 때마침 안전문자가 날아왔다. 윙스타워에 방문한 사람은 자진하여 신고하세요. 윙스타워에는 각종 사무실과 음식점과 서점과 목욕탕과 약국이 있다. 그중 약국을 방문했다. 머리에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보건소에 전화하세요. 왜 하필이면 오늘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약국에 다녀온 지는 꽤 되었는데. 윙스타워는 주 감염 진원지로 추정됩니다. 다녀온 분은 선별 진료소로 가세요.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보건소로 전화했다. 통화 중입니다. 다시 전화 걸어주세요. 삼십여 통을 전화해서 겨우 연결되었다. 안내원이 말하길 증상이 있다면 어서 선별 진료소로 가 검사받아야 하는데 주소와 주민번호를 불러 주시고 기저질환이 있는지도 알려주세요, 라고 물었다.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딱 맞춰 머리가 아프고 몸살기가 오는데 오늘 필히 검사를 받아야 한다니. 아아, 뉴스에서만 보던 검사를 나와 아내와 딸아이까지 받아야 한다니. 절망적이었다. 핸드폰으로 코로나의 검사받는 과정을 검색해보았다. 그때까지 어떻게 검사받는지도 몰랐다. 콧구멍에 기다란 면봉을 집어넣는다고 했다. 길면 얼마나 길까, 검색하니까 무려 20㎝라고 했다. 20㎝를 다 넣는가 했는데 절반가량 넣는다고 했다. 얼핏 보기에 콧구멍이 그리 긴 게 아닌데 어떻게 그리 많이 넣나 했더니 콧구멍 안으로 당신이 모르는 부분을 지나 뇌까지 닿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콧구멍이 구멍으로써 애초에 시작되는 지점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생성되는 태초의 분진을 문질러 훔쳐낸다고 했다. 그것을 용기에 담아 밀봉하여 바이러스를 배양한다. 배양해서 그것이 양성이면 양성, 음성이면 음성. 그렇게 판별 난다. 문득 딸아이의 코를 보았다. 저 작은 코에 20㎝의 면봉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몇몇은 코피까지 터지고 누군가는 너무 깊숙이 들어온 충격에 두통까지 앓는다고 했다. 걱정거리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검사받는 과정에서 노출되는 부분 면면이 타인과 스칠 터인데 그런 것은 또 어쩔 것인가.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 오듯 없던 바이러스를 묻혀 올 수도 있는 터. 나는 왜 그런 전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 되었는가. 당황스럽고 황당하지만, 머리는 지끈거렸다. 아내의 손을 당겨 몇 번이고 내 이마를 만져보라고 했다. 정말 열이 있는지 묻고 또 묻자 아내는 찰싹 이마를 때리곤 목이 따끔하네, 라고 말했다. 그곳에 들른 방문자는 전수조사 대상이라고 했다. 어쩌면 거미줄에 걸린 죄였다. 조심조심 안 날아다니고 아니 되도록 날지를 말아야 했는데 그나마 그쪽을 날다가 거미줄에 걸렸으니 일단 거미에게 가 나는 벌레가 아니니 거미줄 좀 벗겨주쇼, 하고 우선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 형편에 빠진 것이다.
우리는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인근 병원의 선별 진료소로 갔다.
도착하니, 간호사가 나와 “검사 키트가 다 소모되어 오늘 검사는 끝났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늘은 검사가 끝났으니 내일 아침 일찍 오라고 했다. 이럴 수가, 분명 보건소에서는 급하니 당장 검사받으라고 했는데 뭐가 맞단 말인가. 헷갈렸다. 간호사는 비용도 든다고 했다. 인당 12만 원. 세 명이니까 36만 원. 결국 우리는 내일 일찍 그 돈을 지불하고라도 검사하기로 하고 차를 돌려 집으로 왔다.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올라오는데 엘리베이터에 버튼을 누르는 지금의 장면을 누군가 돌려보고는 전국에 중계 하지나 않을까 불안했다. 나는 급히 손 덜미로 옷소매를 늘어뜨려 버튼을 눌렀다. 저녁 시간. 불안하여 계속해서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다. 보건소에 또 다른 안내자는 늦더라도 꼭 보건소에 오라고 했다. 이런저런 걱정에 저녁도 먹지 못하고 보건소로 달려갔다.
최초의 화요일 아침. 사무실에서 멀쩡한 내가 말했다. “어제 자전거를 타는데요. 확진자의 근무지인 서쪽 평거동과 거주지인 남쪽 가좌동에 가니 뭔가 찝찝했어요.” 그러자 사무실에서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이 맞장구쳤다. “맞아요. 그래서 이동 동선이 중요한 거 같아요.” “나 저번에 거기 근처 다녀왔는데, 어떡하죠?” 그들은 걷는 중 발바닥에 벌레라도 밟지 않았는지 의심하는 눈초리로 내내 찝찝하다고 했다. 나는 발바닥을 보니 깨끗한데도 벌레의 어떤 부위가 튀어 스며든 게 아닐까 연방 불안하다고 응수했다. 어떤 직원은 “둘러 다녀야죠. 확진자가 나온 아파트 근처도 가기 싫더라고요”라며 눈을 찌푸렸다. 그러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건너편 여직원이 불쑥 말했다. “어머, 진주에 확진자 2명이 추가로 떴어요.” 나는 그 말에 “무슨 동이예요?” 하고 물었다. “충무공동이네요”라는 여직원의 대답. 충무공동은 내가 사는 동네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충무공동 어디요?” “이동 동선을 보니까 윙스 약국이 있네요.” 나는 황급히 말했다. “헉, 그 약국은 지난 토요일에 마스크 산다고 다녀온 약국이에요.” 이 말이 끝나자 사무실 모든 사람이 놀라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떤 이가 퍼뜩 “뭐 하세요? 이 시국에 어서 자가 격리하셔야죠”라고 말했다. 사무실의 사람들 누구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대뜸 격리부터 하라는 그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다 같이 벌레를 욕하다가 어느새 내가 벌레가 되어가는 과정. 순식간이었다.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과정은 경이로웠다. 갑자기 범인이 누구인지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나는 사람인 척 그들과 함께 범인과 벌레를 욕했고 순식간에 사람이 아님을 들켜버렸다.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더니 “환기예요, 환기”라고 애써 웃으며 말했다. 나는 찬바람이 솔솔 도는 사무실에서 급히 자판을 두들겨 연차를 신청하고 조퇴했다.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사무실을 나오며 생각했지만 벌레와 사람의 차이가 어떤 기준인지 알 수 없었다. 자가격리라. 자가격리는 누군가 지정하고 지정받은 자가 규정대로 격리하는 게 아니라 벌레니까 벌레답게 근처에 오지 말고 저 멀리 사라지는 게 격리일 터, 전염병이 낯선 도시에서 이것은 분명 낯선 문화, 입장 바꿔 생각 안 하는, 의식이 따라가지 못한 아노미였다.
공교롭게도 내가 간 약국이 문제인가, 아니면 약국에 간 자체가 문제인가, 아니면 문밖에 나선 모든 것이 문제인가?
결국에는 가까이 당신에게 더 가까이 다닌 동선 자체가 문제이다. 확진자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라면, 왜 당신은 우리 아파트에 사는가 그것이 문제다. 왜 당신은 두발이 달렸는가 그것이 문제고 벌어먹겠다고 대문을 나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그 손가락이 문제다. 더구나 사무실과 목욕탕과 음식점이 버글거리는 약국이라니. 그것은 만고의 사치이며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이율배반적 적대행위가 틀림없다. 많은 이들이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때 어찌하여 그곳엘 갔단 말인가. 마스크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탓이다. 너의 죄를 따지고 나무라는데 할 말이 있는지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이 시국에 약국이라니. 바깥이라니.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 좀 합시다. 뉴스에서는 연일 확진자가 쏟아지는데 어찌 그리 경각심이 모자라단 말인가.
확진자의 동선을 보고, 집에 있는 이들은 창문 너머로 욕을 던지고 집 밖에서는 쏟아지는 욕을 받거나 듣거나 피해 다닌다.
안팎을 오가며 정답게 주고받는다.
P.S 방금 23시 14분 보건소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문자가 오면 음성이고 전화가 오면 양성이라고 했다. 벨소리가 울리는 2초간~ 침을 꼴깍 삼키며 받으니,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