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머피 Jun 27. 2023

6부로 나선 첫 대회

진주탁구대회



일찍 잠이 깼다. 


더 자면 좋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준비하여 곧장 대회장에 갔다.

아침 8시. 

들어가 보니 남자 7, 8부 예선전이 한창이다. 


얼마 전까지는 나 역시 맨 먼저 와서 예선전을 치렀건만 이렇게 여유를 부리니 뭔가 이상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저 속에 없지? 내가 뭐라도 된냥 테이블 밖에서 응원하고 벤치 봐주고 하는 모양새라니... 약간 찝찝하면서 감개무량한 기분 뭐 그런 감정이 아닐까 싶다. 아직 7, 8부에도 강자들이 많다. 그런 강자들과 한조에 묶인 우리 구장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운 생각에 힘내라는 응원을 하면서 7, 8부 예선도 힘든데 내가 너무 일찍 승급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어서 여자 예선전이 벌어지고 그다음 남자 B 부 예선이 시작되었다. 남자 B 부는 4, 5, 6부를 한 곳에 묶어 예선을 펼친다. 나는 3조다. 명단을 보니 나 혼자만 6부고 나머지 둘은 5부다. 저 5부들은 작년까지 4부였던 고수들이다. 내가 지역 4부와 같은 예선조라고? 거기다 핸디도 고작 1점만 받고 치러야 한다고? 말도 안 돼. 내가 4부랑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한 수 배우는 자리도 아니고, 공식 탁구 대회, 같은 조에서 예선전을 치른다고? 하긴 나 역시 작년부수체계라면 지역 5부가 아닌가? 그런데 내가 정녕 5부의 실력이 된단 말인가?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했다. 


배정된 테이블에 가서 빨간 소쿠리를 내려놓았다. 소쿠리에서 공을 꺼내 테이블 한쪽에 섰다. 한분은 오십 대 후반 펜홀더인데 숏핌플이다. 또 한분은 작년에 개인전 5부 우승으로 4부로 승급한 아주 유망한 청년이다. 이 청년은 우리 탁구장에도 종종 놀러 온 실력 좋은 선수다. 먼저 나랑 펜홀더 숏핌플이 게임을 했다. 내가 어떻게 게임을 치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이쪽저쪽 열심히 뛰어다녔다. 이따금 3구 5구 쇼트가 왜 계속 네트에 처박히지? 아아~ 숏핌플이구나, 조심하자는 다짐만 반복한 게 생각난다. 결과는 3대 1로 내가 이겼다. 


6부로서 첫 대회 첫 승리를 거뒀다. 펜홀더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심판석에 앉았다. 보통 승리한 자가 연속으로 게임하는 게 관례이지만 사람에 따라서 쉬었다가 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비록 졌지만 연달아 몸 풀렸을 때 게임하는 걸 선호하기도 한다. 나는 심판을 보면서 청년이 3대 0으로 이기기를 바랐다. 그러면 청년이 1위, 내가 2위로 무리 없이 예선 통과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되면서 청년은 자꾸만 실수를 거듭해 펜홀더 아저씨에게 끌려갔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만일 청년이 지기라도 하면 모쪼록 거둔 나의 첫승이 날아가버린다. 첫승의 영광이 희석될지도, 어쩌면 예탈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청년이 한 점씩 내줄 때마다 어찌나 안타까운지 나는 심판석에서 다리만 동동 떨면서 움츠러들었다. 결국 5세트 듀스에서 청년은 장렬히 전사했다. 내가 그토록 빌었건만... 야속한 청년... 나는 속으로 '미쳤다'라고 되뇌며 게임 준비를 했다. 질지도 모른다. 예탈각이다. 절망적이다. 이런 외침이 머릿속에서 계속되었다. 


청년을 앞에 두고 예선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1세트를 내줬다. 이때까지만 해도 3대 0으로 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한 세트라도 따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결코 같은 서브를 연속으로 넣지 않고 내가 넣을 수 있는 종류를 짜내어 다양하게 돌려가며 넣었다. 어떻게든 변화를 주려고 했다. 그래, 까짓 거 어차피 질 거 여유롭게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최근에 가장 잘하는 거, 뭐지? 바로 루프 드라이브다. 짧게 커트 서브를 넣고 커트로 넘어오는 3구를 루프 드라이브로 올렸다. 카운터를 맞지 않게 최대한 낮고 짧게 보냈다. 이윽고 넘어오는 5구를 그대로 스매싱으로 때렸다. 이렇게 득점하는 방식 하나. 또 길고 강하게 서브를 보내고 돌아오는 2구를 돌아서서 드라이브로 날렸다. 예전 같으면 무리하게 쇼트로 갖다 대었을 볼이다. 드라이브로 한 박자 늦게 보내며 상대의 실수를 유도했다. 청년은 혼잣말로 '할 수 있다, 날려야지, 그래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이라고 자기 암시를 하며 게임에 집중했다. 게임은 5세트까지 갔고 마지막 세트에서 뒤늦게 청년이 주특기 한방 드라이브를 쏘아댔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나는 어렵게 극적으로 승리했고 2연승으로 당당히 조 1위를 차지했다.


기적이었다. 


처음 나선 부수에서 나보다 윗 부수 둘을 이기고 예선을 통과했다. 조 1위도 넘치는 성적이었다. 비록 나중에 본선 2회전에서 떨어졌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본선 상대는 지역의 유명한 롱핌플 선수였다. 이 분은 끊임없이 라켓을 돌리면서 맨 러버로 맞추는지 핌플 러버로 맞추는지를 체크해야 하는데 나는 내가 받은 볼만 계산하다가 무너졌다. 일례로 내가 커트 볼에 커트를 갖다 대 넘겼다면 다음 볼은 으레 너클이나 민 볼이 와야 하는데 다시 커트볼이 넘어오는 것이다. 상대 선수가 라켓을 돌려서 핌플 러버로 치는 척 하면서 맨 러버로 커트를 대었다. 난 그것도 보지 않고 쇼트를 대다가 수없이 네트에 공을 박았고 그렇게 졌다. 


최고 히트는 단체전이었다. 


단체전은 후보선수까지 하여 5명까지 들어갈 수 있다. 단체전은 4단 1복으로 승패를 가린다. 그래서 보통 4명이서 팀을 꾸리는데 나는 뒤늦게 승급하여 어쩌다 보니 나까지 5명이 되었다. 단체전 1, 2회전까지 나는 후보로 복식 멤버로만 배정되었다. 우리 팀이 단식으로 모두 승리하는 바람에 나는 한게임도 뛰어보지 못하고 결승까지 휩쓸려왔다. 어쩌면 묻어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거 같기도 하다. 아무튼 단체전 3회전이 결승이었다. 결승에 오자 팀원들 모두 내가 뛰어야 한다며 나를 3번에 배정하였다. 하필이면 상대팀 단식 선수 중 복식에 나가는 선수가 1번, 3번이었다. 즉 나는 상대팀 에이스와 맞붙게 되었다. 물론 우리 지역에서는 익히 아는 분이었다. 작년에 공식대회에서 여러 번 만난 상대다. 남해 대회 단체전 준결승에서 나는 이 분에게 3대 2로 졌고 산청 대회 단체전 결승에서 3대 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함양 대회 개인전에서 이 분에게 3대 0으로 졌다. 1승 2패로 열세인 전적.


이 분은 작년에 개인전 성적으로 4부까지 승급한 분이다. 올해는 1부수씩 내리는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5부다. 그리고 나는 6부. 우리는 서로 인사하면서 "어이쿠, 또 만났네요"라며 반가워했다. 


이번에도 나는 서브를 다양하게 넣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작년에 없던 옵션인, 짧은 커트에 이은 루프 드라이브와 한방 드라이브를 간간히 걸었다. 이 분 역시 게임 내내 혼잣말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중얼중얼 암시를 거는 거다. 정신 차려야지. 집중해야지. 할 수 있다. 돌아서 걸어야지. 자 이제 앞서간다. 뭐 이런 말이다. 의외로 이렇게 중얼거리는 스타일이 많은 게 5, 6부들의 특성 같기도 하다. 


마지막 세트 10대 8로 앞서고 있을 때였다. 

이제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승부를 지켜보는 수많은 이들. 때는 지금이다. 상대의 반회전 반커트 서브가 다소 짧다, 라고 느꼈지만 과감히 치고 들어가 드라이브를 걸었다. 한방 드라이브였다. 어찌나 강하게 걸었는지 나는 리턴되는 공 쪽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크게 왼쪽으로 한 바퀴 비틀 돌았다. 돌아서서 뒤에 서 있던 이들의 아아~ 탄식 소리를 듣고서야 아~ 젠장, 게임이 끝나지 않았구나, 라고 알게 되었다.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들. 모두 우리 구장 사람들이었다. 열 몇 명이 나란히 서서 큰 목소리로 응원하고 있었다. 파이팅! 힘내요! 이제 너만 이기면 끝난다. 그런 말들이 들렸다. 이때 우리 팀은 이미 2승을 올린 상태고 가운데 테이블에서 내가 1점만 내면 3승으로 끝나는 상황이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잠시 게임을 중단한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1점만 내면 끝이 나기에 대회장 절반의 눈길이 우리를 향해 있었다. 나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이길까? 그래서 그대로 냅다 몸을 날린 것인데 상대가 가뿐히 받아내었다. 이제 10대 9. 쫓긴다. 어떡하지? 이제 실수 하나면 뒤집어질 수도 있다. 듀스가 되면 지겠지? 상대가 다시 서브를 넣었고 나는 살짝 들어 올렸다. 리시브를 루프 드라이브로 안전히 넘겼다. 상대가 백으로 받으려다가 공이 옆으로 튀어 올랐다. 그대로 라인 아웃. 게임이 끝났다. 나는 고함과 함께 그대로 돌아서서 뛰어가 뒤쪽 응원하는 이들과 하나하나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상대와 넙죽 감사인사와 함께 악수를 나눴다. 이번에는 왼쪽에 있던 이들과 다시 하이파이브를 하고 우리 팀원들과 힘차게 포옹했다. 우리 팀원은 모두 50대 이상. 모두 나보다 형이고 경력이 화려한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도와주고 이끌어줘서 우승에 일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저에게 힘이 되고 도움 된 말이 있습니다. 멀리 양산에서 먼저 승급하신 분이 해주신 말씀.


"승급하니까 더 재밌어요. 랠리가 길어지고 접전이 많아지니 배울 것도 많고요."


더 어려운 상대가 많은 것을 안다. 쉬운 사람이 없는 부수. 고수들이 우글우글한 부수. 지면 어떤가? 어쩌면 재미있게 도전할 수 있어서 더 좋은 부수가 아닌가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