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 방안
간밤에 첫눈이 내렸고 찬 바람이 불었다. 이른 아침 단체팀 사람들과 함께 함안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은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비교적 깨끗했다. 자리를 잡고 긴바지 긴 티를 입고 해당 탁구대로 갔다.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8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한 분이 오셨는데 창원 분이었다. 나머지 한 명이 오지 않아서 우리 둘 먼저 게임을 진행했다. 예선에서는 한 명이 안 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을 이른바 왕재수라거나 이게 웬 떡이냐라고도 할 수 있다. 예선에서 한 명이 안 왔다고 하면 탁구인들은 저마다 우와~~ 부럽다, 좋겠당~~ 하는 눈으로 본다. 아마도 다들 자기 조에 제발 한 명이 안 왔으면~ 하고 바라지 않은 이가 없을 테다. 고수든 하수든 부수에 관계없이 다 같은 심정이리라. 예선이니까. 이른 아침이니까. 몸이 안 풀렸으니까. 긴장되니까. 쪽팔리니까. 예선에서 탈락하거나 힘겹게 사투를 벌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선에서 첫 게임이 끝날 때까지 오지 않으면 자동 기권처리가 된다. 다만 게임하는 두 명이 예선탈락을 하지 않더라도 일단 1, 2위를 가려야 하기에 일단 게임을 진행한다. 예선에서 1위로 올라가느냐, 2위냐는 토너먼트 대진표에서 큰 차이가 난다. 1위는 대개 부전승인 경우가 많고 2위는 다른 조 2위랑 붙어서 부전승으로 기다리던 1위와 한 번 더 게임해야 다음 토너먼트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창원 분과 게임했다.
1세트에서 계속 끌려갔다. 7대 5로 지고 있었고 10대 8로 지고 있었다. 어렵게 힘겹게 듀스를 만들어 역전하여 12대 10으로 겨우 1세트를 따냈다. 이상하다. 분명 어려운 스타일이 아닌데 왜 자꾸 스코어를 리드당하지? 1세트에서 상대의 서브가 비교적 천천히 오기에 포핸드로 돌아 걸며 대응했는데 이게 패착이었다. 내 리시브가 조금이라도 뜨면 3구를 때리시는데 이게 꽤 날카로웠다. 그래서 2세트부터는 스톱으로 리시브를 바꿨다. 나는 전진으로 탁구대에 붙어서 리시브했다. 그때부터 전진으로 플레이했다. 그러자 나타난 놀라운 현상. 스코어가 어느새 10대 0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머야? 갑자기 왜 이렇게 됐지? 왜 이렇게 내 플레이가 잘 되지? 그리고 보다 플레이가 쉽게 느껴지는 건? 이유가 뭔가? 상대의 커트서브를 굳이 먼저 걸지 않고 커트로 받으니 상대가 어렵게 공격해 왔다. 나는 상대가 어렵게 건 공격을 쉽게 받았다. 10대 0에서 나는 서브실수를 했다. 순간 참지 못하고 웃었다. 창원 분도 웃으며 "매너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주셨다. 이윽고 게임이 끝나자 창원 분의 말씀.
"혹시 4부에서 2 부수 내려오셨나요?"
그 어떤 덕담보다 기분 좋은 말이었다.
예선을 마치고 즐거운 기분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본선 2회전에서 영철 선수를 만났다. 과거 한차례 만났던 선수로 3대 0, 일방적으로 깨졌다. 영철 선수는 왼손 펜홀더로 중진에서 플레이하는 전형이다. 이번에는 세트스코어 1대 1, 3세트에서 19대 19가 되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한 마디씩 했다.
"이번 세트에서 이기는 사람이 이길 거야. 이번 세트에서 지면 그대로 무너질 거야."
그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나는 21대 19로 졌고 3대 1로 게임을 내줬다. 그래도 좋았다. 쉽게 지지 않았으니까. 저번보다 한층 더 좋은 모습을 보였으니까.
1회전은 부전승, 2회전은 창원팀과 붙어서 승리했다.
3회전에서 통영 팀을 만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내 몫을 하지 못했다. 내가 지는 바람에 2대 2가 되었고 마지막 복식에서 아깝게 패했다. 내가 승리했다면 입상이었지만 나 때문에 입상하지 못했다. 나 때문에 입상문턱에서 멈춘 것이다. 나는 작년에 한번 진 사람과 다시 만나 또 졌다. 왜 졌을까? 상대는 펜홀더 백서브가 일품인 전형이다. 백서브로 튀는 서브와 너클 커트를 번갈아 넣는다. 그중 튀는 서브 비율이 높다. 그리고 변칙적으로 포핸드로도 튀는 서브를 넣어댔다. 나는 튀는 서브를 하나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깨졌다. 게임 내내 내 플레이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몸이 굳고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표정마저 굳었다. 머릿속은 하나의 과제로 가득 찼다. 내가 4번이 아니라 3번으로 뛰었으면 어땠을까. 내가 왜 오더를 바꾸지 않았을까. 차라리 다른 이를 출전시키고 나는 쉬어갈걸. 되든 말든 한방 때려볼걸.
무거운 마음으로 뒤풀이까지 다녀와서 이튿날 새벽에 깨 거실로 나갔다.
잠이 오지 않았다. 거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창밖 등산로 오르막에 가로등만 은은히 빛났다. 온통 세상이 어두워서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 아직 어둠 속에 숨어 있을 수 있으니까. 어둠 속 소파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했다. 왜 그리 바보처럼 졌을까? 대체 뭐가 문제일까? 유튜브를 보면서 검색에 들어갔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한창 잘해오다가 숨겨진 치부를 들킨 느낌. 예전부터 나는 튀는 서브에 늘 당해왔다. 튀는 서브에 대응하여 레슨도 받았지만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리시브할 때, 공이 오면 회전량을 보고 커트인지 너클인지 구분했다. 공 마크가 보이며 느리게 회전하면 너클, 보이지 않게 많이 회전하면 커트. 그런데 횡회전이 걸리면 하회전과 똑같이 회전이 많이 걸려서 이게 하회전인지 횡회전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대로 툭 걸면 네트에 걸릴까 봐 커트를 댄다. 그러면 여지없이 하늘로 붕 떠서 아웃되거나 한방 스매싱을 맞아야 했다. 횡회전이 걸린 건데 공이 하얗게 팽그르르 돌고 있으니 그리고 상대가 하회전 넣는 것처럼 모션을 낮게 취하니 겁이 나서 건드리지 못하는 거다.
튀는 서브를 만나면,
첫째, 슈트
중진에서 백슈트를 준비한다. 탁구대 왼쪽에서 한걸음 물러난다. 백으로 들어 올리는 쇼트다. 중진으로 떨어지는 건 튀는 서브 박자를 잡기 위해서다. 왼쪽에서 기다리는 건 백으로 잡기 위해서다. 이때 중요한 건 서브가 아무리 너클이나 커트처럼 보여도 들어 올려야 한다는 거다. 눈속임에 속지 말아야 한다. 저게 커트처럼 보여도 다가오는 속도를 보아하니 네놈은 횡회전 볼이다. 횡회전인 주제에 하회전인 척해봐야 안 속는다. 나는 결코 커트 대지 않을 것이다. 어설프게 커트대는 순간 끝장나는 거다. 한두 번 당해봤느냐. 그동안 얼마나 자책했는가. 안전하게 받으려다 무너지고 쓰러졌다. 안전이 대수냐. 이제 안전을 버리련다. 모험을 걸어야 한다. 차라리 모험이 더 안전하다. 상회전으로 들어 올려야 한다. 선제를 걸어야 해. 상대가 보낸 스피드를 그대로 돌려주어야 한다.
둘째, 쇼트
결대로 그냥 민다. 다른 거 없다. 평소 잘하는 쇼트로 민다. 커트도 아니고 너클도 아냐. 커트는 모르겠지만 너클은 관계없다. 일단 밀고 본다.
셋째, 죽여
전진에서 각 맞춰 덮어 받는다. 굳이 내가 뒤로 물러서야 하나? 앞에서도 받을 수 있단 말이다, 라는 것을 보여줘야지. 상대가 강하게 회전을 먹여 보내도 횡회전 각을 맞춰서 따닥 박자로 덮어주면 된다. 혹시 공이 뜬다 면 더 덮어주면 된다. 그래도 뜬다면 공의 스피드를 죽여주면 된다. 공이 바운드되자마자 받되 그 순간 라켓을 살짝 뒤로 당기며 파워를 죽인다. 드라이브에 쇼트 대듯 공을 죽인다.
넷째, 쵸핑
중진에서 공이 떨어질 때 커트로 받는 거다. 이때 포인트는 하회전을 받듯 커트하는 게 아니라 라켓 각을 세워서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려찍는 것이다. 이른바 수비수들이 하는 타법이다. 마롱도 간간이 한다. 마린도 즐겨했고 김택수도 한다. 상대의 드라이브성 공을 강하게 내려찍으며 순식간에 하회전으로 만들어 보낸다.
함안 대회에서 보았다.
창원 오른손 펜홀더 4부.
이쪽 상대는 진주 6부 김상훈. 이 분은 오랜 구력과 다양한 리그전에서 늘 좋은 성적으로 입상하는 분이다. 상대에 따라 적절한 작전으로 대응하여 상대 스타일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나는 창원 펜홀더 4부가 어떤 드라이브를 보여줄까 내심 기대했다. 그럼에도 당연히 6부 김상훈 씨가 이길 줄 알았다. 그런데 창원 펜홀더 4부는 겉모습이 무척이나 유유하게 보였다. 하늘하늘한 몸매에 힘없이 탁구대 앞에 서 있었다. 탁구대 가운데에 서서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커트로 리시브를 했다. 그러니까 거의 모든 공을 백커트로 내려찍는 쵸핑으로 받았다. 일명 수비수였다. 지켜보던 이들이 놀랐다. 펜홀더 맨 러버 수비수라니. 그것도 춤을 추듯 보드랍게 찍는 기술이라니. 살랑 비켜서서 찍고 살랑 돌아서서 찍었다. 하회전으로 돌아온 볼을 김상훈 씨가 드라이브 걸어 보내도 계속해서 찍었다. 그러다 김상훈 씨가 하회전으로 받아 보낸 공이 높다 싶으면 여지없이 백드라이브를 날렸다. 백드라이브도 강력한 폼으로 위험을 동반한 한방이 아니라, 아주 부드럽게 연결탁구를 하는 것처럼 안전하게 그러니까 한 치의 실수도 용납 없다는 폼으로 스무드하게 보냈다. 펜홀더의 백드라이브는 코스도 왼쪽으로 많이 빠지는 편이지만 아래로 가라앉는 특성이 있어서 맞받아치기가 힘들다. 그런 4부를 보고 아~또 다른 고수의 세계구나 하고 감탄했다. 고수로 올라갈수록 더 빠르고 더 파워 있는 것만 있는 게 아니구나. 어쩌면 더 느리고 부드러워도 또 다른 고수의 세계를 창출할 수 있구나. 나는 너무 한 곳을 지향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탁구 치는 사람들 중 탁구 치는 모습은 모두 다 다르구나. 같은 폼이 한 명도 없구나라고도 깨달았다. 같은 폼이 아니면 다 사파다, 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탁구 치는 폼도 같은 폼이 없다. 같은 스승에게 배워도 조금씩 다 다르다. 같은 스윙으로 해도 다른 것이 진실이다.
왼손 펜홀더 전형을 만나면,
포핸드 흘리기로 받으니 잘 받아졌다. 따닥 박자다. 여기에 남해 준영이가 알려준 대로 전진에서 한방 드라이브로 받아도 된다. 서브는 왼손 선수로부터 가장 먼 오른쪽으로 짧게 투바운드 서브를 해보자.
핌플 전형을 만나면,
핌플을 못쓰게 하면 돼. 핌플이 없는 왼쪽으로 짧게 투바운드 커트를 넣자. 어차피 넘어오는 건 커트야. 그걸 공략하면 돼. 핌플 쓰는 이에게 핌플을 계속 쓰게끔 하면 안 되는 거야.
함안 대회에서는 팀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했다. 이제 11월 말 고성 대회와 12월 진주 대회만이 남았다. 어제 회식자리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탁구는 상대성이 있잖아요. 평소 일반적인 전형에는 강한데, 특정 전형을 만나면 움츠러들고 힘을 못쓰는 거. 그런 게 적어야 잘하는 거예요. 지더라도 계속 붙어보세요. 그리고 질 때마다 연구하고 시도해 보세요.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작전을 짜세요."
그래, 이렇게나마 작전을 짜고서야 겨우 한시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