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가방 주세요 (이현동 버스 정류장에서)
이현동 북부파출소 앞 정류장에 버스가 선다. 나는 25번 버스를 타고 국제로터리를 지나 상봉아파트를 거쳐 진주여고 앞에서 내리는 그녀를 본다. 나는 오랜 인연을 만나기 위해 채비를 한다. 모처럼 집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일찌감치 봉곡동에서 내려 이현동으로 향한다. 조금 걷더라도 오가는 풍경과 얼굴들을 보자면 마음이 소록소록 풍족해진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느낌. 그들의 표정은 대개 딱딱하지만, 오늘 하루 잠깐이나마 스치는 일상을 공존했다는 기억, 그 정다움이 좋으니.
오래된 사람의 이미지는 대부분 흐릿하다. 그동안 대충 뭉뚱 거려 깊은 곳에 쑤셔 넣기만 했다. 그래서 중간에 누구를 꺼내려면 몽땅 끄집어 내 뒤적거려야 한다. 평소에 쉽사리 꺼내지 않지만 문득 촤라락 파일을 더듬어 쏙 그 이를 떠올리고 얼굴 형상과 윤곽이 드러날 때 지켜보는 마음은 대체로 아릿하다. 느낌은 아리송하면서 때때로 신기루 같기도 하다. 내 머리에 각인된 그때 그 모습으로 그를 지켜보지만 그때 그 모습이란 지금껏 내 맘대로 만든 허상일 뿐. 그러나 허상이라도 좋다. 온전히 오래전 나를 만나는 시간이니까. 그래서 더 가슴 떨린다.
“저기요. 가방 주세요.”
나는 몇 달이고 연습한 그 말을 던졌다. 그녀는 자리에 앉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가방 주세요.”
나는 한 번 더 가방 달라는 말을 이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고 씩 웃을 뿐 가방을 내려주지 않았다.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두 번이나 말했는데, 그토록 연습한 대사였는데 실패하다니. 버스 안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우리를 번갈아 보며 수군거렸다. 남학생이 가방을 달라는데 여학생이 씹었어. 나는 고개 숙였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고 문이 열리면 확 뛰어내려버릴까 타이밍을 엿보았다. 그러다 그녀의 단화가 눈에 들어왔다. 맨들맨들하게 빛나던 표면. 다른 데로 가지도 않고, 아리따운 여고생 그녀는 앞뒤에 빈자리가 생겼음에도 계속 내 앞을 지켰다. 좌석 손잡이만 꾹 잡고 흔들리는 사람. 흔들릴 때마다 은근 가슴이 두근거렸다. 절망 속에 피어난 빛이 예뻤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주변의 길이 어긋나고 밀려나 복잡하게 변했다. 예전 이현동으로 가던 버스는 죄다 북파를 떠나버렸다. 지금은 북파 건물만 덩그러니 남았는데 길은 다른 데 복개도로 쪽으로 삐죽삐죽 나버렸다. 북파는 나불천 위에서 여전히 옛 전경을 지키지만 야트막한 건물이 어쩐지 위태롭다. 정류장이 있던 자리는 지게차와 기타 차들이 다닥다닥 붙어 주차장이 되었다. 이제 버스는 북파 앞을 돌지 않는다. 나는 다가가 북파 앞에 선 버스 정류장 표지판의 흔적을 본다. 얼기설기 녹이 슬었다. 표지판도 이제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 나는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표지판과 정류장을 보며 제기능 하던 그날을 바라본다. 여기는 여러 길이 만나는 중심지라서 많은 버스가 오가는 곳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늘 여기까지 걸어왔다. 그러면 버스 번호랑 상관없이 올라타기만 하면 어지간히 원하는 시내 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
슬그머니 천리향 냄새에 발길을 돌린다.
어디지? 뚜벅뚜벅 걸음이 느려지면서 나는 정류장 너머 둑을 건너다본다. 다가가는 내 발걸음을 잡는, 벤치에 앉아있는 한 아가씨. 천리향의 향 때문인지 아가씨는 한층 예뻐 보인다. 덕분에 그녀의 얼굴이 등잔 위 촛불처럼 환히 눈에 들어온다. 긴 머리에 하얀 얼굴. 속눈썹이 새카맣다. 코끝은 작지만 날카롭고 입술은 윤기 나며 빨갛다. 나는 자세히도 본다. 아가씨는 앉아서 머리 숙여 책을 읽는다. 요즘은 폰만 들여다보는 사람 투성이기에 책을 본다는 것에 자못 신선한 느낌이 든다. 그녀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주위 사람들이 오가며 힐끗거려도 전혀 모르는 눈치다. 가만히 집중하여 독서하는 아가씨. 파라락 책장을 넘길 때마다 눈동자가 빛난다. 나는 슬며시 다른 곳을 보는 척 계속 그녀를 주시한다. 혹시 그녀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퍼뜩 눈을 내려 둑 아래 나불천을 봐야겠다, 고 생각하면서 아가씨를 본다. 나불천 둑에는 '준용하천 나불천'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어릴 적 열한 살의 나는 일곱 살 동생과 함께 '준용하천~ 나불천'을 외치며 노래했다. 동요의 선율에 가사만 입혀 노래하며 나불천을 거슬러 올라갔다. 가다 보면 갖가지 부유물들이 떠내려왔고 형제는 그것을 피하느라 분주했다. 허리춤까지 오는 깊이, 참방참방 물결을 두드리며 오르고 또 올랐다. 이현동에서 산청 방향으로 한참을 가면 나불천 상류가 나타난다. 상류에는 자그마한 모래사장과 가슴팍까지 오는 웅덩이가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준용하천~ 나불천'이라고 크게 소리치며 물놀이를 했다. 나불천 둑에서 독서하는 아가씨를 보며 나는 나불천에 둥둥 떠다니던 부유물의 정체를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지 말걸, 후회하던 장면을 본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 교복을 입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이현동 작은 다리 위 버스정류장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우리 학교 동기나 선배들에 근처 여고로 가는 여고생들과 시내를 지나 다른 학교로 가는 여러 학생들까지 가지각색이었다. 그들은 모두 둘러가거나 바로 가거나 어쨌든 시내를 통과하는 버스를 탈 것이고 남강을 따라 달릴 터였다. 버스에 탈 때는 한꺼번에 우르르 타지만 내리는 곳은 각자 달랐다.
나는 일부러 둘러 가는 버스를 탔다. 여고로 가는 버스는 둘러 가는 버스였다. 여고 교복은 하얀 블라우스에 까만 치마로 심플했다. 하양과 깜장의 대비. 그 단순함의 미학이란 마치 조선에서 신여성으로 탈바꿈하는 과도기적 한복처럼 정갈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오롯이 정갈한 하얀색과 까만색. 그것은 더러 우리네 역사처럼 침범에 맞서고 단호히 방어하기 위함을 표현한 색 같았다. 더럽혀지기 직전 깨끗한 원색. 그것은 어쩌면 공격을 부르는 색 인지도 모른다. 하얀 스케치북처럼, 어떤 종류든 수동적으로 여러 능동을 기다린다. 그녀는 스케치북이고 나는 펜이다.
여고생은 달걀을 세워놓은 것처럼 타원형 작은 얼굴에 금방 껍질을 벗겨놓은 듯 새하얀 피부였다. 그녀는 짧은 컷의 헤어를 선보였는데 앞머리를 내어 당시 유행한 만화 주인공, 오혜성의 연인 최엄지를 연상시키기에 적당했다. 만화 속 커플은 대개 시련에 부닥쳐 아파하고 괴로워하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따라서 그 얼굴은 항상 아픔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누군가 무턱대고 돌진하여 그녀의 선택에 의해 사랑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또 다른 아픔은 연신 덮쳐온다. 그렇게 슬픈 드라마가 시작될 것만 같은 얼굴. 엄지를 닮은 여고생. 나는 버스정류장에 늘 같은 시간에 나가 버스를 기다렸고 둘러가는 버스를 탔다. 가끔은 한 정류장 앞질러가 버스를 타고 뒤이어 그녀가 버스에 올라 정면에서 걸어오는 자태를 느긋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버스는 빨랐다. 몇 정거장 가지도 않고 금세 내리는 그녀를 보는 듯 안보는 듯 곁눈질하였고 내린 후엔 줄곧 돌아보면서 아쉬워했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고 어쩌다 발길이 여고가 있는 골목을 거닐 때면 멀리 교복만 보여도 가슴이 뛰었다. 교복은 교복을 입은 사람에게 청아한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깨끗한 마음. 단정한 몸. 짧은 머리. 얼굴은 희고 밝다. 밝기에 밝고 순수한 것만을 좇는다. 순수를 보는 눈빛은 특별하다. 하얀 블라우스에 까만 치마는 그리 말했다. 나는 한 장의 도화지이기에 갖가지 필기도구에 침범당할 터다. 순수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때때로 공격을 당하거나 방해를 받지만, 그때마다 더없이 높은 이상과 정도의 길을 상기하며 버텨내련다. 순수는 가끔 순수하지 않은 것과 어울려 탁해진다. 나는 여백이 아름다운 종이입니다. 그러니 언젠가는 꿈에 그리던 이상을 그리고야 말겠어요. 이렇게 부탁하고 싶어요. 비록 중간 누군가에게 굴복하였다 하더라도 나의 모든 것을 굴복함은 아니니 더는 욕보이지 마세요. 나는 높은 곳을 바라보던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하얗던 첫 날을 기억합니다, 하고 교복은 내게 말했다.
나불천 상류를 가기엔 아직 물이 차다. 혹 버스를 기다리는 거라면 다가가 여기엔 더 이상 버스가 오지 않으니 길 건너 새로 생긴 정류장으로 가라고 알려주어야 할까. 이제는 잊힌 건물과 정류장이다. 그녀는 버스가 오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나무 아래서 책만 읽을 뿐이다. 어쩌면 버스를 타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책을 읽으려 온건지도 모른다. 적당한 소음이 교차하는 곳. 나는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그녀가 정면으로 보이는 각도 밖에서 그녀를 본다. 그녀는 이따금 목이 아픈지 고개를 들어 흔들며 이쪽을 보기도 한다. 나는 그때마다 시선을 돌려 마주침을 피한다.
이날도 꿋꿋이 한 정거장 먼저 달려가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다음 정류장에서 그녀는 멀찍이 내 얼굴을 보고 어물쩍 다가와 섰다. 나는 이번에도 가방을 달라고 입을 쭈뼛거리는데, 툭 흔쾌히 내 품에 내려주었다. 순간 올려다보자 그녀는 씩 웃으며 쌍꺼풀진 한쪽 눈을 깜빡였다. 몇 달 동안 지켜만 보던 우리는 마침내 가방을 부탁하고 가방을 받아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손편지를 써 그녀의 가방에 넣었다. 안녕, 버스에서 네 가방을 받아주던 사람, 나야. 나는 너네 학교랑 같은 산자락에 위치한 남고 1학년 2반 44번이야. 학교에 갈 때마다 네 생각을 많이 했어. 간혹 정류장에서 너를 만나지 못한 날엔 어찌나 힘이 빠지든지. 엊그제, 네 가방을 처음 받던 날 너무 기뻤어. 가방에서 천리향 냄새가 났거든. 상큼한 향기. 아무튼 특별한 냄새가 났는데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잊히지 않더라. 오늘 하루 잘 보내. 그럼 답장 기다릴게. 다음날 나는 그녀의 가방과 함께 답장을 받았다. 어머. 놀라워라. 나도 1학년 2반 44번이야. 나도 성이 최 씬데 우린 같은 최 씨네. 정말 웃긴다. 44번은 최 씨의 숙명 아니겠니? 중학교 때부터 번호가 매번 사십 번대였는데. 고등학교 올라와서도 그러네. 암튼 너무 신기하다.
<추신> 그런데 너 위문편지용 규격 봉투에 규격 편지지로 쓴 그 편지…. 너무 웃겼어. 아저씨도 아니고.
나는 이름과 규격이라는 부분에서 두 번 놀랐다. 그녀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이름과 같았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에 빠져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나이까지 아버지 이름과 같은 여자를 보거나 들은 적이 없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혹시 우리 아버지로부터 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괜스레 반이나 번호도 똑같게 하여 성이 같으니 애초에 시작하지도 말라는, 그리고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되었고 사춘기에 접어들었으니 적당히 어울려주라는 특별지시를 받은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한 이유는 역시 사춘기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녀를 알고 지내던 나날, 몸이 아플 때마다 나는 괴로운 상상에 빠지곤 했다. 그녀가 내게 보내는 답장은, 실은 아버지가 썼고 아버지가 전하라고 시킨 게 아닐까. (그만큼 그 이름은 드문 이름이라 여겼다.) 나는 순진하게도 몇 번이고 다그치듯 네가 우리 아버지와 아는 사이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다 그녀의 하얀 블라우스 가슴팍에 달린 이름표를 보고서야 아니구나, 했다. 그날 이후 대신 네가 나랑 같은 1학년 2반 44번이고, 거기다 실제 이름도 그러하니 이것은 어쩌면 운명이다, 라고 몸이 아플 때마다 운명론에 빠지곤 했다.
내가 탈 버스는 이미 다 지나가고 다시 오지 않는다. 나는 부쩍 늙었는데 당신은 아직 젊구나. 그런 따위의 푸념이 든다. 당신은 아마 옛 정류장에서 특별한 버스를 기다리는 것일 테지. 십 분에 한 대씩 오는 흔한 버스가 아니라 몇 년에 한 대씩 오는 특별한 버스. 일반적인 것과는 사뭇 다른 버스를, 정류장에 서서 버스만이 아니라 나를 기다리는 사람? 나를 기다리는 이를 만나려고 당신은 이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 나는 별안간 필기도구가 된다. 어찌 당신은 나를 모르나. 지금껏 당신을 보는 사람 중 가장 진중히 보는 걸지도 모르는 나를 두고 어찌하여 다른 이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려고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 당신은 왜 나를 알아보지 못하나. 지금까지는 다만 당신이 어디 있는지 몰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비록 늦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지금은 내가 나타났지 않은가. 그러면 된 거 아닌가. 나는 다른 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날 알아봐 주기라도 하길, 내게 한 번쯤 시선을 주어 짤막한 눈인사라도. 그러면 답장을 쓰듯 그녀는 내게 말할 테다. 당신이란 사람이 예전부터 어디에선가 존재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그랬군요, 마침내 여기 이렇게 나타났네요. 오래전에 제가 당신을 무척이나 깊이 생각한 적도 있었답니다. 그때는 사무치게 당신을 보고 싶어 했지요. 그러나 만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어디 있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당신도 내가 막연히 존재한다고만 느낄 뿐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셨겠죠. 그리고 지금 북파를 앞에 두고 저를 지켜만 보다가 어떠한 확신을 내리지도 못한 채 드문드문 드는 오래전 그 느낌에 가슴 아파하는 거겠지요. 하지만 어쨌든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그러니 당신을 쳐다볼 수도 없습니다. 음, 지금은 책 읽는 중이거든요.
규격 봉투에 규격 편지지라니. (그게 그때는 왜 그리 부끄러웠을까.) 이후 나는 예쁜 편지지. 예쁜 봉투에 정성껏 편지를 써 그녀에게 전했다. 그리고 내가 두 장을 쓰면 그녀도 두 장을 보냈고 세 장을 쓰면 세 장을 주었다. 그게 좋았다. 편지를 주고받는 그게 어찌나 좋던지, 답장을 받으면 이번엔 어떤 내용으로 편지를 쓸까 궁리하면서 한번 쭉 생각대로 써보고 새 편지지에는 한 글자도 틀리지 않으려 조심스레 썼다. 설렌 맘으로 편지를 전하면 답장을 기다리느라 가슴이 마구 떨렸다. 어떤 날 어떻게 답장을 받게 될까. 답장을 받는 나는 해피엔딩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답장이 왜 안 오지? 답장은 아직인가? 혹시 내가 뭘 잘못한 게 있을까? 그러며 막상 답장을 받으면 바로 뜯지도 못하고 어떤 내용일지 그대로 봉투만 매만지면서 비경의 낙원을 손에 쥔 듯 미지의 촉감을 즐겼다.
버스정류장에서 얼굴이 하얗고 주변 이들과 다른 분위기, 색다른 그녀를 보자니 그때 그 생각이 난다. 1학년 때 반짝하고 흐지부지됐던 그녀와의 인연. 당시 나는 신비로움과 운명론에 몸을 떨던 학생이었다. 잘 모르는 모양인데 네가 그리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나는 네게서 그런 느낌을 받는데 너는 왜 모르니. 가볍게 친구로 지내자는 말은 내가 남자로 싫다는 거니? 날 알아봐 주지 못하는 그녀가 야속했다. 네 앞에만 서면 심신이 딱딱하게 굳어 평소의 내 모습이 나오지를 않아서 내가 완전히 풋내기로만 보이는 모양인데, 사실 그것은 내 본모습이 아니다, 그렇게 억울하다는 뉘앙스를 열심히 피력했다. 원래 너와 나는 반 번호와 이름에서 보듯 하늘에서 정해준 운명인데 어찌하여 넌 내게 친구로 지내자고 그러니?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여자고등학교 1학년 2반 44번에게 정말 적극적으로 고백했던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이 없어서 포기한 내가 먼저 친구로 지내자고 말한 게 아닐까, 그래서 그녀가 내게 왜 남자가 돼서 용기가 없니, 라는 핀잔을 들었던 게 아닌가, 하는 짐작이다. 그때부터 지레 포기하고 도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가만히 있어도 고백해오는 여학생들에 익숙해져 큰 부담을 안고 도전하는 것을 피하기만 했던 건 아닌지, (수없이 도전한 고백에 비해 극소수로 한두 번 고백을 받았던 것 같다.) 비교적 부담이 덜하거나 까짓 거 안되면 그만이지 하는 고백과는 다르다. 왜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아쉬움이 남는지 참 의아하다. 어차피 끊어질 인연이라면 좀 더 솔직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하긴 그런 게 한두 번인가, 세상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옛 버스정류장에 앉은 그녀를 보다가 어두워져서 길을 건넌다.
그리고 새로 생긴 정류장에서 다시 25번 버스에 오른다. 펜을 부르는 얼굴의 그녀에게 차마 그리지 못하는 현재를 탓하며 카드를 꺼내 삑~ 감사합니다! 정다운 인사를 듣는다. 나는 버스 안에서 바깥을 바라본다. 부릉! 버스가 출발한다. 1학년 2반 44번 그녀가 책을 보다가 그제야 고개 들어 내가 탄 버스를 본다.
멀어져 가는 정류장과 버스는 언제고 다시 만날 테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