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도서관 벚꽃이 떨어질 때

동화책을 보다가 배고프면 컵라면을 먹었다 (상대동에서)

by 머피
벚꽃 아래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벚꽃 아래 운동기구가 있다


상대동을 내려다보며 운동한다







연암도서관은 내부공사로 인해 작년 연말부터 충무공동 종합운동장에 한시적 이사를 온 상태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나는 두어 달 신나게 임시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오가며 신간 도서를 열심히 대출하고 갚았다. 도서관에서는 보통 반납이라는 말을 쓰지만, 대출 다음은 으레 상환이라든지 갚는다는 말이 따라오지 않나? (나는 빚 많은 중년이다.) 지극히 '갚음'에 익숙한 나는 책을 날짜보다 빠르게 갚고 또 갚았다. 신나게 갚다가 전염병이 돌았고 도서관은 문 닫더니 아직 문 열 줄을 모르고 있다. 아쉬웠다. 벌써 잘 갚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진주에서 연암도서관은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다. 도서관 곳곳에 아름드리 벚나무 수령만 해도 진주 인근에서는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령일 터다. 덕분에 꼬마 때부터 벚꽃을 보며 도서관을 다녔다. 꼬마일 때 나는 도서관과 비교적 멀리 떨어진 동네에 살았는데 어떻게 오게 되었을까.



열한 살 꼬마는 버스를 타고 상평동 학생수영장에 수영하러 갔다.

그러나 모처럼 찾아간 수영장은 때마침 쉬는 날이라 굳게 닫혀있었다. 하는 수 없이 꼬마는 친구들과 함께 진양교 아래 남강으로 향했다. 강둑을 내려가 잔디에 옷을 벗어두고 팬티 차림으로 뛰어들었다. 물은 허리춤까지 왔다. 오전 내내 땡볕에 그슬리며 헤엄치고 물장구도 쳤다. 금방 허기지고 목이 말랐다. 젖은 팬티 위에 그대로 바지를 입었다. 젖은 팬티를 입고 돌아가면 엄마에게 혼날 것만 같았다. 더욱이 팬티에 이어 바지까지 젖었다. 난감했다. 어딘가 팬티와 바지가 마를 때까지 시간 때울 꺼리가 필요했다. 꼬마는 안내판을 보고 인근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이 어떤 곳인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해 잘 알지 못했다. 하나둘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숨이 찼다. 배고픔이 밀려와 부리나케 계단을 돌아 지하 매점으로 달려갔다. 매점에서 대뜸 처음 본 컵라면을 사다가 물을 부었다. 뚜껑이 열릴세라 손으로 덮어 익기를 기다렸다. 얼굴과 몸은 햇볕에 달아올랐는데 팬티는 축축했다. 아직 팬티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중 후루룩 컵라면을 먹었다. 면발은 가늘었고 국물은 매웠다. 국물이 매웠지만 갈증에 목이 말라 억지로 다 마셨다. 매점 한쪽 커다란 스테인리스 물통에서는 더운물만 나왔다. 컵에 쪼르륵 더운물을 받아 호호 불며 조금씩 입을 달랬다. 입은 더없이 맵고 뜨거워 답답했다. 어딘가 식혀줄 곳이 없을까 두리번거렸다. 꼬마는 계단을 올라 어린이 자료실로 갔다. 자료실은 이른바 천국이었다. 우선 선풍기가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동화책이 보였다. 처음 본 세상에 꼬마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예전부터 꿈꾸던 세상, 무궁무진한 세계가 펼쳐졌다. 동화책은 여기저기 환상 속으로 꼬마를 데려가 주었다. 도서관은 마땅히 꼬마를 위해 존재하는 게 분명했다. 꼬마는 책상에 잔뜩 쌓아두고 읽었다. 읽어도 읽어도 동화책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아버지는 더러 며칠에 한 권 꼴로 동화책을 사다 주었다. 꼬마는 동화책을 받으면 하룻밤에 모두 읽어내었다. 동화책을 다 읽으면 또 뭔가 볼거리가 없나, 두리번거리다 거실 찬장에 있던 백과사전까지 펼쳤다. 백과사전 구석 조그맣게 그려진 그림과 설명에도 동화처럼 빠져들곤 했다. 그림은 신동우 화백의 것이었다. 신동우 화백의 그림에는 스토리가 있었다. 글이든 그림이든 세계를 구축하고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 족했다. 남는 시간에 남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어떤 책이든 이야기가 있는 책을 찾아 허겁지겁 헤맸다. 그토록 꼬마는 동화에 목말랐다. 아버지의 며칠에 한 권씩은 고픈 배를 채우지 못했다. 꼬마에게는 어쩌면 도서관이 딱 필요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읽을거리가 모자라던 집과 비교해 도서관은 사뭇 달랐다. 수많은 읽을거리가 서가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제는 읽을거리가 아니라 읽을 시간이 모자라게 되었다. 한참을 보다가 친구들이 가자고 하여서 더 있고 싶지만 길을 몰라 따라나서야만 했다. 버스비를 컵라면으로 써버렸기에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뒤벼리 길은 길어서 꼬마가 걷기에 벅찬 거리다. 터벅터벅 한참 걷는데 어느새 팬티와 바지가 다 말랐다. 다리가 아팠지만 이제 꼬마는 수영장이 아니라 도서관에 가고 싶었다.



어른이 된 지금 벚꽃을 보러 왕왕 연암도서관에 간다.

진주 상대동 선학산 자락 높다란 곳에 있는 시립 도서관. 그곳에는 선학산 등산객, 나들이객과 공부객이 공존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니 등허리에 후끈 땀이 밴다. 그 옛날 조그만 꼬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올랐을까 문득 궁금하다. 오르면 돌 벤치와 나무 벤치가 혼재한다. 돌 벤치는 몇십 년 된 것이고 나무 벤치는 몇 년 된 것이다. 나는 나무 벤치에 앉지만 꼬마는 돌 벤치에 앉았다. 상대동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운동기구가 띄엄띄엄 자리한다. 거기는 대부분 연로한 노장들이 벤치에 앉거나 운동기구를 타거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대체로 부녀자는 둘둘 삼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남강을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구 법원 자락을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글쎄 그게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그러게 말이야, 참 희한한 일도 다 있지 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그에 반해 대장부들은 제각기 홀로 떨어져 물끄러미 남강을 보거나 주섬주섬 목장갑을 끼면서 운동기구를 본다. 한참 운동기구를 타다가 지치면 벤치에 앉아 목장갑을 벗고 덩그러니 혼자가 된다. 이야기를 하지 않던 그들의 입이 나지막이 삐죽거린다. 혼잣말을 하는데 그게 운동이 잘 안된다는 건지 지저귀는 새소리에 대한 대꾸인지 날씨가 춥다든지 등등 아마도 세상의 여러 질문에 대한 그만의 공감이요, 대답일 테다.



도서관에 입장하면 왼쪽에 신문 코너가 있다.

아침 일찍 도서관 직원이 일간지를 나무봉에 철하면 대장부들은 기다렸다가 하나씩 가져와 서서 가판에 기대어 읽거나 들고 앉아서 읽는다. 신문을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안다. 늙은 부녀자에게는 벤치만 주어져도 충분할지 모르지만, 늙은 대장부에게는 그것으로 족하지 않다. 뭐라도 할 꺼리가 넉넉해야 마음이 편한 법이다. 할 꺼리란 시간을 옳게 때우는 데 필요한 것이다. 옳게 때우는 것이란 일을 하든 운동을 하든 공부를 하든 세상 물정을 보든 뭐라도, 여보시게 부녀자여, 나 그거 좀 하고 오겠소, 라고 당당히 우렁차게 말할 정도의 가치 있는 대상을 가리킨다. 당당한 일을 하고 나서 여보시게, 나 그거 하고 왔으니 밥 좀 차려 주겠나, 할 정도의 긍지도 뒤따라야 한다. 사내가 태어나 한평생 공부하고 일 하였으니, 이제 노년을 맞아 몸이나 추스르고 신문이나 책으로 간간히 물정 따위를 살필 때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운동만 쫓거나 책만 보러 가기에는 대장부로서 한평생 연약하게 다뤄 약하디 약한 지성이 걸리고 소화력이 떨어진다. 기왕이면 겸사겸사 편식하지 않고 이것저것 톡톡 건드리며 조금씩 다양하게 챙기는 방법이 적당하다. 따라서 운동과 산책과 대화와 고독과 신문과 물정을 적당하게 하거나 보거나 때우니 도서관은 대장부가 가기에 더없이 알맞은 곳이다. 거기에 연암은 뒤편으로 등산로까지 나있지 아니한가. (이처럼 운동까지 챙길 수 있는 좋은 곳인데 아내는 내가 도서관에 간다 하면 한숨부터 쉰다. 미스터리다.) 도서관 건물 뒤편이 등산로 입구인데 아무래도 건물의 뒤편이라 외지고 아스팔트 길이 끝나는 지점이라서 이곳은 마지막 흡연 장소가 된다. 본격적인 등산에 앞서 한 대 피우고 가야 마음이 편하고 공부하느라 지친 두뇌도 풀어주어야 하기에 이곳에서는 등산객과 공부객이 종종 만나곤 한다. 더구나 그늘도 드리워져 있다. 나는 때때로 등산객이 되고 공부객이 된다. (지금은 담배를 피우지 않기에 마음이나 두뇌를 풀어주지 못한다. 애석하다.) 도서관 자료실에 들어가 신간을 보고 월간지를 본다. 주로 여행이나 산에 관련한 잡지를 보고 세상 돌아가는 풍경을 본다. 신간은 일단 아무 데나 펼쳤을 때 문장이 읽기 편한지를 먼저 살핀다. 다음으로 손에 닿는 결이 부드러운지를 살피고 작가 소개를 보아 나보다 연배가 높은 쪽을 택한다. 끝으로 목차를 보고 내용에 있어 옴니버스인지 연결되는지를 가늠한다. 역시 어지간해서는 대출하지 않게 되는데 간혹 둘에 한 번꼴로 흥이 동할 때가 있다. 흥이 동하면 갚는데 중독되어 잠시간 대출왕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대출하여 도서관을 나설 때면 책을 쥔 손에 잡히는 물성, 즉 물성에 족하는 물감의 무게감만큼 든든한 기분이 든다. 그것은 집에 돌아가서도 티브이를 뺀 볼 꺼리가 하나 더 생겼기 때문일까. 아무튼 할 꺼리가 많아야 시간이 가고 할 꺼리가 있어야 더욱 당당해지는 것이 대장부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여름방학, 버스 타고 도서관에 가던 길.

꼬마는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지 몰랐지만, 뒤벼리가 보이자 그제야 내릴 데를 알고 안내양에게 말했다.

“도서관에 내려주세요.”

뒤벼리를 지나자마자 안내양은 구 법원과 학생수영장 사이 주차장에 내려주었다. 꼬마는 길 건너 재수학원이 줄지은 상대동 골목을 지나 연암도서관으로 갔다. 어린이 자료실 자리에 앉아 서둘러 동화책을 고르고 잔뜩 쌓았다. 읽다가 배고프면 매점으로 내려가 컵라면을 먹었다. 한 번은 온수기에서 물을 내려 마시다 입천장을 데어 사이다를 사 마셨다. 사이다는 버스비였고 꼬마는 어두워지는 뒤벼리 길을 바삐 걸었다. 뒤벼리를 지나 시내가 나오면 시내를 지났고 시내를 지나 봉곡동과 상봉서동이 나오면 저녁때가 되었다. 엄마는 물었다.

“왜 이렇게 늦었니?”

꼬마는 도서관에서 내내 동화책을 봤다고 했다. 엄마는 위험하니까 이제 도서관에 가지 말라고 했고 꼬마는 그때부터 도서관에 가지 못했다. 이후 늘 그렇듯 아버지가 며칠에 한 권 사다 주는 동화책을 읽었고 앞집 옆집 책꽂이에 꽂힌 여러 책을 빌려다 읽었다.



나는 작년에 꼬마 시절 먹던 컵라면 맛을 상기하며 연암도서관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매점은 장사가 안되어 운영하는 사람이 없었고 입찰에 응하는 이가 없어 아무도 운영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음료수 자판기와 정수기만 휑뎅그렁하니 들어서 있다. (도서관 직원이 수시로 관리한다.) 컵라면은 밖에서 산 것을 가져와 정수기 물을 받아야 한다. 테이블마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올려져 있다. 라면을 먹고 테이블에 튄 국물을 화장지로 닦는다. 나는 라면을 먹으며 동화책을 생각했다. 얼른 먹고 동화책 보러 가야지. 보다가 배고프면 안 되니까 든든하게 국물까지 다 먹어야지. 신나던 꼬마의 마음을 나는 가만가만 떠올려본다. 매점 아주머니가 있던 곳은 텅텅 비어 재활용품 쌓아두는 곳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제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중이고 개장하면 도서관은 옛 모습 대부분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기 전에 미처 매점과 어린이실에 인사하지 못한 게 안타깝다. 꼬마 때부터 작년까지 변함없던 그 정경을 잊지 못하는데. 지금이나마 안녕이라고 인사를 전하면 늦은 것일까. 어쩌면 리모델링은 새로운 꼬마들을 위해 새로운 컵라면과 새로운 동화책을 위함인지도 모른다. 오래전 내가 물러나 마침내 노장이 되는 시간. 도서관은 조만간 탈바꿈해 새 얼굴로 나타날 터다.



대장부가 되어가는 장부로서 나는 도서관 공사가 마칠 때를 기다리고, 전염병이 끝나기를 고대한다. 등산과 대화와 풍광을 즐기는 벤치객이 되기 위해 기다리고 이따금 신간을 대출하려 기다리며 고독과 산책과 세상 물정을 두루 살피기 위해 할 꺼리를 모아 기다린다.


연암도서관은 벚꽃으로도 유명하다. 벚꽃이 다 지기 전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보았다.


바람이 분다, 살랑살랑 얼굴에 와 닿는 감촉이 감미롭다. 나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벚나무 아래로 걸어간다. 그러자 오래된 벚나무가 마치 나를 알아보는 것처럼 반가이 흔들, 손을 하늘거린다. 바람결에 나뭇가지는 하늘 가득 꽃잎을 떨어뜨린다. 후드득, 꽃잎이 두둥실 무수히 뜬다. 조용히 올려다보며 손 내미니 흩날리는 벚꽃 한 잎이 손바닥에 앉는다. 손바닥 너머 슬쩍 내려다보니 꼬마가 있다.


동화책 읽던 꼬마의 머리에도 꽃잎이 살랑 내려앉는다.









벚나무 아래 벤치에 앉으면 남강이 보인다
벤치 뒤엔 잔디가 있고 잔디 뒤엔 도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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