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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Apr 17. 2020

개표하고 왔습니다

세고 세고 세고 세던 밤




마스크 쓰고 거기다 투명 안면 보호구까지 착용합니다. 

코로나 19를 예방하려 장갑까지 낍니다. 이것은 거의 완벽합니다. 안경을 착용한 사람은, 얼굴에 쓸 수 있는 건 다 썼다, 라고 할 정도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은 가빠오고 보호구의 고무밴드가 뒤통수를 압박합니다. 누군가 참다가 "머리통이 아파서 못 견디겠다"며 안면 보호구를 벗어던집니다. 마스크도 코밑으로 내립니다. 그러면 또 누군가가 “조금만 참으세요”하고 다독입니다. “아, 저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그렇게 누구 한 명 예외 없이 규정에 따릅니다. 힘들지만 그래도 힘을 냅니다.    


개표하고 왔습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이른바 415 총선. 코로나 19로 시국이 어지럽지만 선거는 예고대로 치러지고. 사회적 거리두기 중 여러 장애가 가로막지만 선거는 정해진 시일 정해진 규정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저는 이색적인 개표과정을 다녀오고서 그 정경을 한번 소개해볼까 합니다. 아래 글은 개표 후, 만 하루가 지나 쓴 글입니다. 


이제야 정신 차려 보고합니다. 어젠 종일 비몽사몽, 오늘에야 겨우 제 컨디션이 돌아오는 저질스런 체력입니다. 그 옛날 마치 2교대 야간 근무를 하던 거처럼 머리가 뱅글뱅글 돕니다. 당시 야간 근무는 아무 생각 없이 대기하기만 하면 되니 그나마 낮보다 수월했지만 개표장에서는 낮밤 계속해서 날카로운 상태를 유지하니 얼굴에 기름기가 좔좔 흐릅니다. 지극히 기름값이 저렴한 시국, 체육관에는 기름 묻은 사람들이 기름 묻은 손으로 연신 기름을 훔쳐내느라 바쁩니다.


비례 정당 용지가 유독 길어서 밤새도록 숫자를 세고 또 세었습니다. 무려 37번까지 있다니요. 거기다 정당 이름은 처음 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대체 무슨 당을 찍어야 하나. 대충 이름만 보고 당 성격을 미루어 짐작하지만 하도 많아서 정말 확실한 소신이 없다면, 딱 하나를 고르기가 정말 힘들 것 같습니다. 역시나 찍기 어려웠던 고뇌가 용지에 고스란히 담겨있네요. 도장이 찍히지 않은 빈 용지도 많고 도장이 두 개 이상 찍힌 것도 부지기수입니다. 살며시 번호와 번호 사이 가운데에 찍힌 것도 있구요. 찍다가 비빈 것도 있습니다. 드물게는 옛다 너도 애 좀 먹어봐라, 하며 톡 희미하게 찍은 것도 있네요. 그렇습니다. 희미하게 찍힌 게 가장 애매합니다. 어쩌면 돋보기가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 투표지는 사람과 사람을 거쳐 최종 판단자에게 전해져 한참 후 힘겹게 유무효가 갈립니다. 


투명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어느 도시 어느 동, 몇천 장 용지가 테이블에 턱 올려지면 테이블 앞 전사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그것을 지켜봅니다. 제발 숫자가 적으면 좋겠다 꼴깍. 틀리면 안 되는데 꼴깍.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마자 손으로, 착착착 손맛을 느끼며 종이를 셉니다.


테이블 앞 8명에게는 애당초 자신에게 할당된 당 번호가 있습니다. 당은 무슨 당 무슨 당이 아니라 오직 번호로 통칭됩니다. 몇 번에서 몇 번까지는 너, 몇 번부터 몇 번까지는 나, 내 번호가 아닌 건 모아서 저쪽 해당되는 이에게 전달하고, 한편 내 번호가 아니지만 의외로 많은 숫자가 나온 번호는 일단 초벌로 세어 해당되는 이에게 전달, 세고 세어서 고무밴딩 하고 밴딩을 풀어 다시 세고 바꿔 세고 세어서 몇 번이고 셀 수 있을 때까지 세어 마지막에 이르러 귀신의 농간이 없는 한 적확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무거운 숫자를 그제야 기입합니다.  


마치 돈뭉치를 세듯 숫자를 세는데요. 가만히 생각하니 돈 세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네요. 옛날에는 돈 세는 거도 기술이었는데요. 그때는 심지어 돈 세는 폼을 보고서 인품을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어째서 인품이 돈 세는 폼에서 나왔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아무튼 아버지로부터 돈은 경박하지 않게 파르르 소리도 조용하게, 이렇게 세는 거다, 라고 배운 게 이처럼 투표용지를 세는데 도움될 줄은 몰랐습니다.   


개표원들은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숫자를 셉니다. 다행히 투명 장갑을 배부받아 침을 안 발라도 잘 넘어갑니다. 분명 빨리 세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한 장 한 장 천천히 어디까지나 적확하게 세는 게 중요합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세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타인이 센 건 내가 센 것이 아니기에 오롯이 내 손만 믿을 뿐입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테이블 모두가 그러합니다. 자네가 센 건 내가 세어 넘기고 내가 센 건 자네가 세어 넘기세. 아무튼 그러한 책임감은 어디서 오는지 신기합니다.


자아, 똑똑히 보세요. 한자아아앙! 두자아아앙! 세자아아앙! 시간은 관계없습니다. 적확히가 목숨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장갑이 신의 한 수라고. 코로나 19 때문에 장갑을 배부했는데, 오히려 장갑 덕에 파르르 용지를 넘기는 게 수월합니다. 그러나 장갑은 요긴하지만 이따금 손바닥에 땀이 배는 문제가 있네요. 장갑과 손은 하나가 되어 한 동네의 계산이 끝나면 휴우, 한숨을 돌리다가 끈적거리는 장갑을 벗으면 몽글몽글 땀이 새어 나옵니다. 장갑을 벗을 때 아무리 조심스레 벗어도 손가락과 밀착하여 따라 나와서 뒤집어지고 어쩔 수 없이 뒤집어진걸 그대로 끼어 종이를 만지는데요. 감각은 별 차이 없이 느낌이 같습니다. 그렇게 또 뒤집어 끼고 이쪽저쪽 면을 상관없이 끼니 그렇게 앞뒤가 모호해집니다. 어쩌면 이 생과 저 생, 앞통수와 뒤통수, 일등과 이등, 당선과 낙선은 돌고 도는 같은 궤(櫃)라서 분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껏 낙선된 자도 언젠가 당선되고 당선된 자도 별의별 사유로 낙선되듯이요. 그래도 일단 다른 건 다른 거니 다른걸 다른 거로 선택해야 합니다. 다른 게 다른 거보다 세상을 다르게 하니 잘 구분해야 하는 게 우리네 선택이요 방식입니다. 그래서 선거는 중요합니다.


초반에는 아주 잠깐 개표가 너무 일찍 끝나는 게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모처럼 각오하고 왔거든요. 집에다 큰소리 뻥뻥 치고 나왔습니다. 오늘 밤 다시 만날 기대는 하지 마라고. 

처음에는 국회의원 용지랑 비례 정당 용지의 구분만 했으니까요. 테이블 초입에서 용지가 우르르 쏟아지면 앞사람이 뒷사람들 일감 떨어질세라 옆으로 뒤로 뭉치를 옮기고 바짝 긴장한 이들은 작은 용지와 긴 용지를 구분하느라 앉지도 못하고 구부정하니 서서 바삐 손을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딱 한 시간이 지날 무렵부터 목 어깨가 아파왔습니다. 나만 아픈가 싶어 둘러보니 여기저기 하나둘 슬그머니 자리에 앉아 요령껏 손을 놀립니다. 밤은 기니까 선 채로 아락바락 달려들어 해치우는 거보다 앉아서 차분히 가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 깨달았지요.


그런데 비례 정당 용지를 받고부터 퍼뜩 상황이 달라집니다. 용지가 참 길기도 긴데 3번부터 37번까지 어느 당이 몇 장 나왔는지 일일이 수작업으로 세는 건데요. 먼저 센 숫자가 이천 장이 나왔다면 옆에 사람과 앞에 사람이 확인 차 다시 세고, 또 세고 바꿔 세고 먼저 끝나면 끌어다가 도와서 세고, 또 검수 테이블에서는 개표 테이블에서 잘 셌는지 다시 세면서 확인! 확인! 확인에 들어가고, 그러다 딱 한 장이 더 나왔다고 그 한 장이 어디서 나온 건지 확인하느라 처음부터 다시 몇천 장을 세고 또 세어 몰입해서는 밤을 하얗게 지새웁니다. 저는 옆 동료에게 속삭였습니다.

"요 근래 몇 년, 이 시간까지 깨어있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테이블 아래나 바구니 밑을 확인하세요."

감독관은 수없이 외칩니다. 바구니는 정리된 표를 모아두는 용도입니다. 테이블당 4개가 꼭 필요합니다. 개표원들은 연신 바구니를 들고 테이블과 의자 밑까지 들춰봅니다. 세었던 거 또 세느라 입술은 내내 십팔 십구 이십을 외치고, 머리는 지끈거리고 숨은 막히고 그러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2시 반이 되고. 사람들의 총총하던 눈빛은 흐리멍덩해져서 제발 저 용지 가득한 통을 우리 테이블로 들고 오지 마, 라는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습니다. 많은 곳 중 대기하던 두 테이블 사람들은 발을 달달달 떨며 지켜봅니다. 용지 통을 옮기는 직원이 이쪽저쪽 눈치를 봅니다. 어디로 갖다 줄까.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립니다. 자아, 여기 마지막입니다, 하고 직원에 의해 용지 통이 옆 테이블에 배달되자, 누군가 안도의 목소리로 말합니다.

"에이, 마지막 꺼 우리가 하고 싶었는데."

그러자 모두 와하하, 빈말이라도 기분 좋구나, 웃음보가 터집니다. 


옆 테이블은 아, 탄식도 잠시, 곧 기립하여 투다닥 손을 놀립니다. 나머지 테이블들은 마지막 작업을 하는 그 테이블을 멀거니 바라봅니다. 지켜보는 눈은 때때로 하품을 하지만 마스크로 덮어 몰래 눈물을 훔칩니다. 눈이 감기지만 일하는 테이블을 위해 문지르고 비벼 어떻게든 또렷이 떠 봅니다. 늦은 밤 찬 기운이 돌아 체육관 문을 모두 닫았지만 열기로 후끈거리는 여기는 바로 선거 개표장입니다.     


시간이 늦고 피곤하지만 숫자를 셀 때면 어깨에 내려앉은 다른 존재를 느낍니다. 느낌은 대체로 신성합니다. 신성한 테이블에는 신성한 기운이 감돕니다. 신성한 기운에 사람들은 보다 신중하고 기품 있게 숫자를 셉니다. 온전히 나 혼자의 몸이 아니라 한표 한표 기표한 이들의 마음을 받아 조심스레 개표합니다. 구겨진 용지를 바르게 펴 차곡차곡 쌓습니다. 그러자 점차 질서 있는 정렬이 되고 한 표 한 표는 하나의 단어로 변해 조금씩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소리는 개표하는 사람, 참관하는 이, 관리하고 지키는 이의 힘이 합쳐져 하룻밤 진통을 겪고 난 뒤 마침내 의미 있는 목소리로 나옵니다. 목소리로 전해진 메시지는 세상을 꿈틀 움직입니다.    


저는 개표사무를 처음 경험했는데, 정말 몰랐습니다. 단 한 장의 표도 소중히 유효냐 무효냐를 두고 관리자와 감독자까지 뛰어다니고 섣불리 판단하지 마라, 애매한 건 모두 이쪽으로 넘겨라, 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저 스스로 하여금 몇 장이냐, 정말 확실하냐? 확실한 게 확실히 확실한 게 확실한가, 어디 다시 한번, 빼앗아 세고 바꿔 세고 또 세던 그 열정과 목소리들. 무엇이 그리 만드는지 놀랍습니다. 코로나 19도 가로막지 못합니다.


불공정한 일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어떠한 결정을 두고 이익을 보거나 손해 보는 경우가 허다하고, 손해 보는 이에게 정의는 불공정으로 바뀌기 일쑤입니다. 정녕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고 따져 끝없이 싸웁니다. 무엇이 정답인지 지금은 알지 못하기에 그게 어째서 정답이냐고 정말로 정답이라 장담할 수 있는 거냐며 모호한 정답 개론을 펼칩니다. 


코로나 19라는 장벽. 거대한 소용돌이가 전국을 휘몰아칩니다. 어떤 일이든 미루고 취소하게 만듭니다. 미루고 취소할 수 있으면 미루고 취소하는 게 미덕인 세상. 그런 상황 속에서 선거와 개표가 정정당당을 외칩니다. 당장의 현실에서 부단히 공명을 찾아 더없이 정대하려는 현장을 보면서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무엇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간 무수히 개표 현장을 지킨 고단한 씀씀이에 숙연해집니다. 코로나 19에도 손수 개표에 참여하신 많은 분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제게 다시 한번 개표작업에 참여할 텐가, 라고 묻는다면 혹시 또 마스크에 보호구를 써야 하나요, 라고 슬쩍 물어보렵니다. 










*경상남도문인협회회장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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