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벼리의 수변 데크길에 조명이 들어왔다. 하늘이 밝아 보이지만 해가 이미 졌기에 곧 어둠이 몰려올 터다.
잠이 쏟아진다.
혹 이미 잠든 건지도 모르겠다. 늦은 밤 동녘으로 하염없이, 주약동에서 새벼리로 가는 길, 나는 강가를 따라 타박타박 걷는다. 진주의 동쪽, 마냥 동쪽으로 가는 길, 동쪽의 벼랑, 여기는 새벼리다. 죽은 자들의 땅,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곳, 그래서 더 애절한 절벽, 이별의 갈림길, 아무도 없는 밤, 이제 그만 안녕, 잘 자, 다음에 만나, 별빛에 비친 강물이 새카맣고 벼랑에 달린 나무도 시커멓다. 적당한 간격의 가로등 빛에 취해 나는 멍하니 운동화를 내려다보고 아아, 내가 아직 걷고 있구나, 멈춘 게 아니구나 하면서 안심한다.
새벼리에 새로 난 데크 길.
자전거 도로는 벼랑 옆 강물 위에 있다. 길이 열리고부터 나는 걸어서도 가고 자전거로 달리기도 한다. 해 질 녘이면 걷다가도 하늘이 아름다워 멈추고 또 가다가 예뻐서 멈춰 발길이 이어지지 않는다. 밤이면 야경이 다채로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늘에 구름은 빨갛게 층층이 쌓이다가 얼마나 쌓였나 겹겹이 셀 수 없을 즈음 어두워진다. 김시민대교부터 상평교, 진양교까지 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시시각각 빛깔이 변한다. 풍경은 지극히 아름다워 감동을 주는데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정말 묘하게도 마음은 움츠러들고 쓸쓸해진다. 단지 혼자이기 때문일까. 벼랑에 달린 나무를 올려다보니 나더러 왜 같이 나오지 않느냐 물어보는듯하다. 그럼 누구랑 나올까요. 제가 당신을 쳐다보는 건 지금 혼자이기 때문이에요. 혼자이기 때문에 당신을 올려다보고 하늘을 쳐다보고 강물을 바라보는 거예요. 같이 있을 때는 모르다가 혼자이기 때문에 비로소 당신을 보게 된 거잖아요.
새벼리는 진주 가좌산 자락과 남강 사이 벼랑길이다.
오래전 가좌산 아랫동을 썽둥 잘라 길을 내 벼랑은 길 위에 벼랑과 길 아래 벼랑으로 분절되었다. 진주 남쪽 가좌동과 진주 주약동은 새벼리길 하나로 연결되었고 도로변에 인도는 없다가 최근에야 생겼다. 거기다 얼마 전 강 위에 자전거길까지 만들어져서 이제 걷는 이들은 죄다 자전거길로만 다닌다. 인도가 없던 새벼리길은 지금 인도가 있지만, 다시 사람이 다니지 않게 되어 외로워졌다. 가좌동에서 연암공대를 지나 석류공원을 왼쪽에 두고 계속 가노라면 강 건너 공장에서 나오는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덮는 게 보인다. 새벼리길을 걸으면 주로 하늘을 보게 되는데 나는 하늘만 보다가 무심코 지나쳤던 새벼리의 과거 흔적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 한국 시조 문학관과 김희혜 미술관은 새벼리길 가좌산 자락에 있다. 김 화백의 그림은 주류를 벗어난 꽃 그림이 많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중에 갓 피어나는 꽃이 아니라 이제 다 피고 지는 꽃 '꿈은 사라지고'라는 이름이 인상에 남는다. 꽃은 폈을 때뿐 아니라 지고 있을 때도 아름답다. 지는 과정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름답다. 이제 기력이 다해 움츠러드는 모양이 아름다운 것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아름답고 꽃은 꽃이 아니어도 아름답다. 힘을 빼 있는 그대로의 뒤 자태를 그대로 내보일 수 있어서 아름답다.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서 그가 포착한 세계에 어떠한 동질감을 느꼈다. 새벼리를 지날 때마다 나는 하늘과 남강을 보면서 이별과 헤어짐에 빠지곤 했다. 김 화백은 대개 꽃을 보았고 나는 하늘을 보았다. 김 화백은 그림을 그렸고 나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문학관 인근에는 형평 운동가 강상호 묘소가 있다.
역시 새벼리는 유심히 새겨봐야 할 곳이 틀림없다. 선생은 1923년 4월 형평사를 만들어 백정 인권 운동을 펼쳤다. 백성들 사이에서 억압받던 백정들은 "이대론 못살겠다" 하면서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 이외다"라고 해방을 외쳤다. 일제 치하에서 억압받던 백성들도 "나라를 돌려다오"라고 해방을 외쳤다. 형평과 독립 해방의 근원은 진주에서 시작되었다. 1920년대는 일제가 문화통치, 이른바 정신적 세뇌를 강행하던 시기다. 그러면 형평운동의 기본 정신은 어떤 것일까. 사람 간에는 형평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형평이라 하니까 계속 형편이라는 말이 연상되는데 형편에 맞게, 가 아니라 형평, 즉 공평을 말하는 것이다. 백정의 불공평을 말하는 것에서 시작된 형평은 나라의 독립까지 형평스럽게 이끌어냈다. 형평은 나아가 시대의 이데올로기로 번지는데 애당초 강상호 선생의 형평은 그런 형평이 아니었을 것이다. 죄다 자신의 형편에 따라 형평을 갖다 붙이니 형평은 그런 형평이 아니라고 강상호 선생이 여기 새벼리에서 백 년 동안 소리치는 듯하다.
새벼리를 지날 때면 늘 어떤 이별 앞에서 가슴이 저민다.
이별 앞에서 나는 수다쟁이가 된다. 마지막이니까, 지금이 아니면 말하지 못하니까. 무슨 말이라도 지금 다 해야 돼. 지금을 나누고 싶다. 말해주고 싶다. 공유하고픈 강렬한 욕구.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내 눈에 담아 오직 당신에게 전하고자 한다. 너무나 외로워. 내가 느끼는 외로움을 네가 알아주길 바라는데, 그러면 더 이상 날 외롭게 두지 않을 것만 같은데, 그래, 전하면 되는구나. 지금 이 느낌 고이 간직했다가 고스란히 얘기해 주면 된다. 이 소식을 전하고픈 생각에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 일렁인다. 그러면 사진을 찍을까, 영상을 찍을까, 전화를 할까, 아니면 글을 써볼까, 그래 문자를 보내자, 그렇게 결정하고서 안심이 되어 나는 겨우 잠들 수 있다.
잘 자. 다리 쭉쭉. 좋은 꿈 꿔. 꿈속에서 만나. 소중한 보물. 눈 깜빡이는 거 좀 봐. 아이 예뻐. 너무 예뻐. 우리 똥강아지는 아빠의 목숨. 아빠의 하늘. 아빠의 전부. 사랑해요. 사랑한다. 내일 보자. 내일 저녁에는 공원에 가서 같이 배드민턴을 치자. 나는 딸아이의 배를 이불 위에서 도닥도닥 어루만지며 말한다. 딸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배드민턴 좋아요, 약속 까먹지 않아야지, 잊어먹지 않아야지, 꼭 기억해야지 하며 겨우 눈 감는다.
내가 전할 소식은 뭘까?
나는 상평교 다리 위에서 벼랑을 보고 서쪽 해를 보고 남강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지금, 이 순간을 전하고 싶어. 혼자서 보는 이 풍경을 말하고 싶어. 기억하고 싶어. 편지 쓰고 싶어. 두근거리는 이 느낌을 잊어먹지 말아야지, 기억해야지 하면서 당신을 떠올린다. 그렇담 내가 소식을 전하고픈 당신은 누구일까. 어째서 소식 전하기 전에는 잠 못 들 것 같은 불안에 서성이는 걸까. 당신은 바로 조금 전 나이다. 조금 전 나를 지금의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까먹고 생각해내지 못한다. 조금 전 나는 지금의 나를 믿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전 나를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떠올리지 않는다. 조금 전 나는 쉼 없이 소식을 전하지만 지금의 나는 편지를 받고 읽지도 않은 채 편지가 온 것도 잊어버린다. 안돼, 더 속지 않겠다, 믿지 않겠다, 의심이 시작된다.
그런데, 그러했는데 걷고 있는 지금 잠이 마구 쏟아진다.
잠이 오지 않던 시간은 이제 다 지나가 버렸다. 잠 오는 시간이 성큼 다가왔으니. 나는 잠 앞에 서서 고이 잠들어야 할지, 말지를 생각한다. 소식을 전해봐야 받아볼 사람이 없는 것을 알지만 이대로 잠들어버리면 편지도 쓸 수 없게 된다. 열어보지 않음을 알지만 그래도 편지를 전해야 안심이 되는데, 어떡하나, 시계를 보니 밤 열두 시. 어둠 속 강변을 따라 걷노라니 저녁에 보던 모습과는 판이하다. 저녁에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러 산책 나오는 이들이 많은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모두 잠든 시각 나 혼자뿐이다. 혼자라서 외롭다. 나는 잠들기 전 어떤 소식을 기다리는데 아직 소식이 오지 않았다. 몇 번이고 핸드폰을 살피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어느새 귀찮아져서 소식이 오든 말든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는 또다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여다본다. 아무도 없는 주위 거리가 괴괴하다. 강가에 자리 잡은 나무들도 외롭고 가로등도 외로워 보인다. 길 중간에 놓인 돌 벤치도 외롭고 운동기구도 외롭다. 빛이 뿌옇게 외로운 길을 밝히는 중 어느 순간 팍 갑작스레 꺼진다.
외로워 보이던 빛마저 사라지자 처절한 어둠만 남았다.
어둠은 순식간에 나를 감싼다. 나는 조명이 없는 길 위에서 어슴푸레 새벼리 절벽 무성한 나무를 본다. 가파른 경사면에 어찌 저리도 단단하게 박혔나. 커다란 나무의 굵직한 존재감과 나뭇잎의 무성함에 여름을 느낀다. 그러나 역시 조명이 없어 잘 보이지 않는다. 그토록 밝았는데 지금은 온통 어둡다. 이 어둠은 자정부터 동이 틀 때까지 내내 이어질 것이다. 모두 잠든 시각. 나도 잠들어있어야 할 텐데 깨어 있다. 오래전 군에 가기 전 가좌동에서 우리는 군주랍시고 술을 마시고 부어라 마셔라 버스비나 택시비까지 다 써버리고 오기가 발동하여 새벼리 길을 걸어간 적이 있다. 서쪽으로 가는 길. 석류공원을 지나서부터 갓길이 없어 위험했다. 가좌동에서 주약동은 참 멀기도 하다. 그때도 자정이 넘었다. 군주를 함께 한 우리는 혈기가 솟아올라 걸었다. 그때 함께 걸었던 이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 떠올려보면 도로에 차가 왕왕 맹렬히 지나치는데 그 속도와 소리에 놀라 움찔 기가 죽어 걸었다. 주약동에 들어서고 인도가 나타나자 그제야 안심하고 터덜터덜 군대를 입대를 생각하며 걸었던 기억이 있다. 먼젓번의 나를 버리려고 떨어뜨리려고 한참을 걸었던 새벼리길. 군에 가는 나는 그때까지의 나와 헤어지려고 그 길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걷는데 눈이 감긴다.
겨우 자정을 넘겼을 뿐인데 왜 이렇게 피곤할까? 이대로 걷다가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다. 아직 갈 길이 먼 데, 힘차게 걷는데 왜 눈꺼풀이 감길까. 잠들면 이대로 풍경 속 내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그토록 무거운 피로, 늙음, 고뇌. 그냥 마음을 놓아버리고픈 충동. 걸음을 정지해버리고픈 욕구. 나는 강렬한 유혹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스르륵 눈 감으면 그만인데 어째서 자꾸만 생각하나. 그래, 눈 감으면 모두 끝이다. 모두가 안녕이고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그 생각에 나는 쉬 눈 감지 못하는 건데. 아아, 어찌할까. 나는 기어이 뛰기로 하고 막상 뛰어도 보지만, 평소 저녁 시간에 뛰던 속도 반의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걸음보다 느린 달리기. 뛰는데 숨차지 않고 땀나지 않는다. 길 위에서 통통거리며 살아있다고, 마치 갑판 위에서 물고기가 퍼덕거리는 것처럼 퍼덕거린다.
만나고 헤어지고 알다가 모르게 되고 이제는 원래부터 몰랐는지도 알았는지도 모르는 사람.
그러고 보니 군주를 마시고 새벼리 길을 함께 걸었던 이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 모르고 모르게 되는 관계. 한편 다시 만나고 새로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일순 솟구치지만 자연스레 잊어야 하는 마음을 순리를 냉정한 세월 속에서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즐거웠구나. 즐거웠지만 너무 피곤해 잠이 오네. 안녕. 나를 알았던 사람들 모두와 내가 거쳐온 모든 풍경들이여, 안녕. 지금은 저녁이다. 해가 진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 저녁이면 시원하다. 저녁나절 새벼리 강변길을 거닌다. 이토록 아름다운 석양이란. 내가 죽어 다시 오지 못한다 해도 여전히 아름다울 풍경,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대, 간간이 만났던 그이도 나를 잊어가, 잊기 전 그네들에게 나는 안녕을 고한다. 잠깐 스쳐 간다고. 고마웠다고.
새벼리를 지나 걷는데 저 앞에 어둠 속에서 걸어가는 여성이 보인다.
오십이나 되었나. 천천히 발을 옮겨가는 모습. 그녀의 걸음은 무척 고단해 보인다. 나도 그러한데 그대 또한 그러하구려. 그녀는 그간 힘들게 버티며 겨우겨우 살아왔나 보다. 사뭇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선뜻 그녀를 지켜주지 못하고 방치했던 자신을 나무란다. 내가 외면한 세월 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려나. 그녀는 홀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힘들게 하는 폭력, 의처증, 가난, 음주, 바람을 버티고 버티며 가까스로 살아왔구나. 대견하다고 생각하면서 앞질러 넌지시 옆얼굴을 돌아보니 흠칫, 가슴이 아프다. 아픔과 상처가 흉터가 되어 곳곳에 깃들어 있다. 나는 손을 뻗어 어루만져 보고 싶지만,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나 감히 그러지 못하고 무연히 가슴만 친다. 사랑해, 지켜줄게, 나만 믿어, 내가 알아서 할게, 많이 아팠어? 이제 걱정 마, 어서 자, 꿈에서 만나, 그래 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괜찮다고만 말하고 외면한 시간.
집 앞에 다 왔다.
교차로 앞에 신호를 기다리는데, 별안간 맞은편에서 꺄아~하는 여자의 음성이 들린다. 전동 킥보드를 남녀 커플이 함께 탄다. 남학생 뒤에 여학생이 껴안은 채 빨간불에 건넌다. 그걸 옆에서 뚱뚱하고 늙은 남자가 안경 너머로 지켜본다. 나는 맞은편 여기서 내쪽으로 건너오는 커플을 바라보다가 뚱뚱하고 늙은 남자와 눈이 마주쳐버린다. 우리는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의식한다. 문득 고독해 보인다. 그도 내가 고독해 보이리라. 늦은 시각.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묵묵히 초록 불을 기다리는 너와 나. 우리는 무엇 때문에 길을 건너지 못하는가. 내가 괜찮아, 네가 괜찮아, 라고 말하지 못함 때문인가. 소통의 부재, 우리는 의사를 주고받지 못한다. 반면에 희희낙락 지나가는 젊은 커플은 다르다. 그들은 의식하지 않고 물어보지 않는다. 혼자가 아닌 커플이기에 신호등을 보지 못한다. 빨간불을 빨강이라 인식하지 못하여 초록 불을 기다리지 못한다.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무서워서 남자 친구를 꼭 당겨 안느라 알아볼 틈이 없고 뒤에서 꽉 껴안는 여자 친구의 온기를 느끼느라 알아볼 여유가 없다. 한편 물끄러미 지켜보는 뚱뚱하고 늙은 남자는 혼자이기에 그걸 다 살펴본다. 커플이 떠나가는 뒷모습과 그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하늘에 어둠 속 빛은 괴괴히 주변을 비추고 주위에서 혼자는 나뿐 이기에 사방 천지가 나의 누군가가 된다. 그렇다면 사방 천지는 무엇인가. 교차로 건너편에 서서 마주 보는 저 사람, 곧 내가 아닐까. 내 앞뒤에서 새벼리를 함께 걸었던 이가 마침내 떠오른다. 지나는 차량의 굉음에 맞서 바락바락 소리 지르며 말하다가도 이내 멀어지는 차량의 뒷모습을 보며 움츠러들 때, 다시금 소리 지르며 용기 주던 이들. 새벼리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마주 보게 한다. 서쪽으로 걷던 이와 동쪽으로 걷는 이가 겹치는 순간, 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듯 사방이 번쩍인다. 곧 천둥소리가 사방천지를 가득 채울 터다.
"우리도 사람, 사람, 사람이란 말이오!"
설핏 고함소리가 들리자 벼랑의 나무에 나뭇잎이 파르르 떤다.
보름달이 뜬 저녁 시간, 주약동에서 새벼리로 접어든다.
조명이 모두 꺼졌다. 모두 잠든 시각. 나만 깨어 있다.
걷는이가 거의 다니지 않는 새벼리 윗길, 차만 다니고 차안의 사람들은 꽃과 노을과 공백을 동무삼아 남진주로 진입한다. 여기 새벼리 윗길 사진이 없어서 어젯밤 급히 달려가 찍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