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라기 숲에 숨어있던 나날

벚나무는 길 보다 오래되었다. (칠암동 옛 산업대 캠퍼스)

by 머피
메타.jpg 메타세쿼이아 후문




감미로운 나날, 은은한 꽃내음이 진동한다.


팔짱 낀 그녀의 살결이 매끄럽다. 사월이면 매끄러운 벚꽃이 흩날린다. 그래서 특별히 사월로라 불리는 곳. 경남과기대(지금은 경상국립대로 통합됨) 사월로에 가면 오래된 벚나무가 띄엄띄엄 길을 이룬다. 내 팔에 닿은 그녀의 피부 감촉이 벚꽃을 비비는 것과 비슷하다. 벚나무길 끝은 샛길인데 그 앞에 매점이 있다. 나는 그녀와 매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라면을 주문한다. 우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는다. 매점은 작고 아늑하다. 테이블은 고작 두 개. 아주머니는 라면을 끓이고 그녀는 커피를 홀짝인다. 내 나이 스물넷에 그녀는 스물이다. 스물의 그녀는 적당한 키에 늘씬하다. 긴 머리에 가끔 뿔테를 낀다. 공부할 때는 뿔테를 끼고 데이트할 때는 벗는다. 머리칼 역시 평소엔 묶다가 데이트 때만 늘어뜨린다. 맑은 얼굴에 맑은 머리. 바람이 불면 자유로이 나부끼는 머리카락.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가끔 내 얼굴에 파라라 스칠 때면 그녀의 샴푸 내음이 물씬 밀려온다. 얼굴에 피부는 뽀얗게 티 하나 없고 몸매도 눈부시다. 전부를 갖춘 그녀이지만 아직 어리단 이유로 세련된 외출복이 아니라 캐주얼로 가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몰라볼 뿐이다. 이를테면 감춰진 원석, 다듬지 않은 에메랄드였다. 치마를 입어도 어설프지만 그 어설픔이 아름다웠다. 힙합 바지를 입으면 보이시했고 멜빵바지를 입으면 무척 귀여웠다. 다만 그녀는 잘 웃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번꼴로 내가 진땀을 흘려가며 떠들고 웃기면 열에 한 번꼴로 웃어주곤 했다. 그런데도 나는 노력을 그치지 않았는데, 그녀의 옆얼굴은 배시시 웃을 때 볼에 가벼운 홍조를 띠었는데 표정은 더없이 싱그러웠다. 고목의 싱그러운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껴 피톤치드가 흩날리다 웃음에 섞이면 나는 흠뻑 도취하여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고목이 내뿜는 호르몬과 그녀의 웃음은 내게 청량제와도 같았다. 아주머니가 라면을 내온다. 그녀는 한 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쥐고 후루룩 라면을 먹는다. 이윽고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 꿀꺽꿀꺽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허물없이 잘도 먹는다. 찬으로 깍두기가 나온다. 김치 대신이지만 라면 한입에 깨물어 반 개씩, 라면을 다 먹기에 적당한 양이다. 우리는 식사 후 남은 커피를 마신다. 그러곤 다시 벚나무 아래 벤치에 앉는다. 벚꽃이 흩날려 사월로 전체를 핑크빛으로 뒤덮는다. 그녀의 정수리에도 벚꽃 한 잎이 사뿐 내려앉는다. 그러자 그녀는 떼를 쓰듯 말한다. 결혼하고 싶어요. 갑자기 무슨 소리니? 넌 이제 스무 살이야.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벌써 성인이라구요. 그래도 넌 아직 어려. 전 맘에 드는 사람이랑 빨리 결혼하고 싶다구요. 그렇지만 난 아직 준비가 안됐어. 이제 막 복학했고 겨우 2학년이란 말이야. 어머 제가 언제 오빠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어요? 웃겨. 뭐라고? 잘 웃어주지도 않으면서 뭐가 웃겨, 암튼 웃기지 말고 우린 서로를 잘 몰라, 가령 너 내 친구들은 아니? 그럼 소개해 주시면 되잖아요. 나는 그녀의 친구를 몰랐고 그녀도 내 친구를 몰랐다. 우린 우리만 아는 사이였다. 서로가 서로를 보는 게 서로에게 전부였다. 사실만 말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적절히 포장하여 꾸며 놓았다. 실체를 알려면 두세 꺼풀 벗겨야 했다. 부담스러웠다. 난 내 친구를 소개하기에 앞서 미리 당부했고 말 맞춰 놓았다. 소개는 부랴부랴 일시적으로 끝났다. 어쩌면 그것 때문일까. 그녀는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그녀의 친구를 대동하고 나타나 이별을 고했다. 그녀는 비쩍 말라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는데.



묘한 숲 하나가 있다.

옛날 공룡이 나올 만큼 고목이 우거져 쥐라기 숲이라 이름 붙었다. 쥐라기 시대에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여기는 사람이 거닐고 산책길이 나 있어 이른바 쥐라기 공원이라 불린다. 공원이지만 주로 아이보다는 어른들이 드나든다. 이곳 나무는 아이가 접하기에 익숙한 덩치가 아니다. 쥐라기 공원은 밝은 낮에도 어두컴컴하다. 어두운 숲 곳곳에 벤치가 자리한다. 나는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생각에 잠긴 이들은 벤치에 앉아 생각하고 고뇌에 빠져 생각한다. 무슨 생각을 할까. 현실을 돌아보고 대뜸 고목을 올려다보며 상상의 덧없음을 깨닫는다. 한없이 무거우리라 여겼던 망상의 조각들은 고목의 이파리 아래서 낙엽처럼 굴러다닌다. 쥐라기 숲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팽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삼나무가 즐비하다. 사람으로 치면 몇 세대나 흘러왔을 세월을 오롯이 한 몸으로 버티고 섰다. 한 몸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을 상대한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할아버지는 손아래 아들과 손자를 염려한다. 고목이 함께한 세월, 당신은 어찌어찌 버텨냈지만, 아들놈과 손자 놈은 어떻게 견뎌낼지 고목을 보며 손을 갖다 대 세월의 무상을 가늠한다. 그러곤 한숨과 함께 염려한다. 고목들 사이 벤치에는 고뇌에 찬 이들이 혼자서 찾아오곤 한다. 갈데없는 이들이 당장 갈 데를 찾지 못하고 태초부터 존재한 숲에 앉아서 무연히 고목을 바라본다. 그리 큰 숲은 아니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흡사 숲 속에 숨어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공룡이 날 찾아낼까? 부스럭 소리가 나면 상상에 잠겨 눈알이 또륵 숲 여기저기를 살피게 된다. 나는 숲에서 너무나 작은 존재다. 벤치에 앉아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고목의 굵다란 밑동을 헤아리면 다 부질없구나, 고작 얇은 나뭇가지 따위를 두고 뭐 하는 거람, 하는 생각에 마치 치유를 받듯 눈동자의 힘이 스르르 빠진다.



잘 다녀와. 응 다녀올게.

정장 차림에 넥타이까지 맨 나는 버스에 올라타 칠암동에서 내렸다. 회사가 있는 상평동은 아직 멀었는데 중간에서 내려버렸다. 나는 걸어서 경남 과기대 후문으로 향했다. 후문에 들어서자 드높은 메타세쿼이아 길이 멋지게 펼쳐졌다. 여름이면 진녹색, 가을이면 진갈색의 뾰족한 잎이 정갈한 지붕 통로가 되어 맞이한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갑자기 나타난다. 칠암동 큰길을 가다가 고작 옆으로 백여 미터 갔을 뿐인데 불쑥 눈앞에 펼쳐진다. 일직선으로 쭉 서 있는 자태가 경이롭다. 마치 군인처럼 오랜 세월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곧은 정신에 감탄한다. 나는 울퉁불퉁 좁은 인도가 아니라 가운데 나무 사잇길로 걸음을 옮겼다. 주인공이 된 듯 우아한 통로를 온전히 차지하여 걸었다. 어디로 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갈 데가 없었다. 출근한다고 나섰는데 회사에 가지 않으니 대체 갈 곳은 어디인가. 죄송합니다, 적성이 맞지 않아 관두겠습니다. 그래 자네는 우리 회사랑 어울리지 않는 거 같으니 내일부터 나오지 말게. 이제 겨우 아침 아홉 신데 저녁까지 어디서 버티려나. 저녁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제약이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집뿐이 아니라 거리를 쏘다니다 들켜서도 안 되었다. 우선 작은 연못으로 갔다. 거기 단풍나무 옆 벤치에 털썩 앉았다. 학생들은 수업 중인지 보이지 않았다. 고요하다. 어디 내가 일할 데는 없을까. 더 나은 직장이 있으리라. 광고지를 보고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에 빠져 멍하니 쳐다보던 곳. 아직 점심때가 되지 않았는데 배가 고팠다. 밥 먹으러 어디 가볼까. 마음이 위축되니 배가 더 고픈 거 같았다. 학교 식당에 들어가 식권을 사 이천오백 원짜리 정식을 먹었다. 된장국은 맑았다. 학생들이 먹는 국을 먹는데 나는 먹다가 희멀건 그 맛을 맛없다고 느끼던 학생으로 돌아가고픈 충동을 느꼈다. 학생이 아니고서야 비로소 학생 시절이 좋았다는 것을 알았다. 밥알이 입에서 버석거려 잘 씹히지 않았다. 한참을 우물우물거리다 다 먹지도 못하고 일어났다.



사월로 앞 운동장 한쪽에서 족구를 했다.

나는 한동안 시립 도서관을 다녔다. 삼십 대가 되어서도 비전이 없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은 죄다 도서관에 모였다. 도서관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공부를 했다. 아침 일찍 자리 잡아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점심을 먹었다. 책상 앞에서 꾸벅거리다 밤이 이슥해서야 내일부터, 내일부터는 반드시, 라고 맘먹기를 반복했다. 같이 공부하던 이들과 주말 하루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족구를 했다. 멀리 과기대 운동장까지 온 것이다. 시립도서관 족과 과기대 족은 과기대에서 족구로 맞붙었다. 과기대 족은 과기대 학생이 아닌데 여차여차 출입증을 만들어 과기대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이들을 말한다. 과기대 도서관에서 족구 좀 한다는 이들은 시립도서관에서 족구 좀 한다는 이들을 홈팀으로서 맞아들였다. 이윽고 경상대 도서관 족도 나타났고 게임은 삼파전 양상으로 흘렀다. 때때로 과기대의 진짜 주인인 학생들이 족구장을 선점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쥐라기 숲 안에 자그마한 딱 족구장만 한 넓이의 아스팔트로 가서 줄을 쳐 족구를 했다. 토요일 오후 족구 한 게임. 그것은 진주 시내 오갈 데 없는 이들의 들끓는 고뇌를 해소하는 창구였다. 쥐라기 숲에서 높이를 알 수 없는 삼나무 밑동에 줄을 묶어서 사람들은 공이 줄 아래를 지나갔는지 위로 갔는지 열띠게 싸웠다. 비가 오는 날에도 족구를 했다. 나는 빗물을 흠뻑 머금은 공을 머리로 받다가 목에 담이 걸리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목을 쫙 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돌아올 토요일을 기다렸다.



도서관 뒷길부터는 족히 수백 년 된 듯한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있다.

플라타너스는 어마어마한 밑동과 높이를 자랑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높이에서 바닥에 떨어진 잎사귀마저 큼직하다. 이런 크기의 나무는 아마도 진주 근방에서 여기뿐일 것이다. 도서관 뒤 플라타너스 길을 그녀와 함께 걸었다. 4년간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는데 굳이 돌아오는 대답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많이 변해있었다. 일단 웃음이 많아졌다. 그리고 아는 것도 늘었다. 아는 게 많아지니 내게 물어보는 것도 다양했다. 오빠 여자 친구는 있느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비전은 있느냐? 직장에서는 어떤 일을 하느냐? 삼십 대가 되면 어떤 청사진을 그릴 것이냐?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러면 자신이 조금 알려주겠다고 했고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어떤 사무실에 들렀다. 거기서 팀장이라는 사람의 설명을 듣다가 어떤 서류에 사인했다. 팀장은 카드를 내놓으라고 했다. 일시불로 할 거냐고 묻길래 삼 개월로 끊어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시 친절해졌다. 친절해졌지만 스무 살 그날처럼 팔짱을 끼지는 않았다. 과기대 플라타너스 아래를 걸으며 아마 저 나무 둘레처럼 오빠의 삼십 대는 든든해질 거라 했다. 나는 플라타너스에 손을 대 그 든든함을 느꼈다. 그녀의 화장한 얼굴을 보며 스무 살의 그녀를 떠올렸다. 지금도 빨리 결혼하고 싶을까. 스무 살에도 빨리하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한참 늦어서 당장이라도 내가 오케이 하면 오케이 하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내가 말을 많이 해 겨우 한번 웃기면 그렇게도 화사한 미소를 보여주던 그녀. 힘겹게 핀 꽃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그 미소를 볼 때면 가슴까지 쿵쿵 뛰었기에 끈덕지게 떠들곤 했다. 그녀는 스물넷이 되면서 마흔넷이 된 것처럼 말했다. 오빠 저는 남자 만날 생각 없어요. 사랑을 믿지 않거든요. 일단 비즈니스가 중요해요. 제겐 그게 일 순위예요. 스물넷의 그녀는 내게 비전 있는 직장을 잡으라고 했다. 나는 직장에 적응하기에 앞서 미리 염려하고 절망했다. 면접 보고 들어가서 관두기를 여러 차례. 플라타너스의 가지는 제멋대로 뻗어서 잘려 나간 단면이 많았다. 주위 학교 건물이 반듯하게 가지를 견제했다. 이래저래 잘려서 겨우 버티며 살아온 세월. 상처는 플라타너스의 성장처럼 왕성했다. 그녀의 미소는 전보다 빈번했지만 어쩐지 가슴 뛰지는 않았다.



과기대에서 벌어지던 족구 게임은 진지했다.

갈데없던 이들은 진주시에서 주최하는 공식 시합에 출전했다. 직장에 나가지 않고 공부도 책 앞에서만 놀던 시절, 족구는 어딘가 하나에 정진할 분출구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공식 시합이라니, 공식은 머릿속에서만 외우고 입안에서만 뱅뱅 도는 거였는데, 이렇듯 직접 선수로 나가다니 긴장되었다. 너무 떨리고 벅차서 우리는 평소 안 하던 실수도 하며 공식 시합의 어려움을 맛봤다. 결국 우리 도서관 팀과 과기대 팀은 각각 1회전에서 탈락했다. 나는 온몸이 딱딱해져서 머리를 숙이고 발을 갖다 대었지만 지켜보는 심판 때문에, 얼음 같은 공기 때문에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다만 시합 종료를 알리는 호각소리를 선명히 기억하는데 호록! 소리가 나자마자 몸이 가뿐해지고 긴장이 탁 풀렸던 생각이 난다. 족구 시합이 끝나고 족구를 하던 족구 족들은 다시금 공부에 집중했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에 하나둘 들어가며 과기대 족구장에서 사라졌으니 호각소리는 단순히 시합이 끝났다는 신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쥐라기 숲 벤치에 앉아 전략을 짜던 사람들. 그때 함께 했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쩌면 각기 혼자가 되어 이따금 사월로의 벚나무를 보러 오고 쥐라기 숲 벤치에 앉아도 볼 터다. 쥐라기 숲은 족구 경기를 하던 이들의 어린 자녀를 만나며 족구 경기를 하던 아버지의 발길을 기억할 테다.



운동장 건너 데크길에는 은행나무가 줄지어 있다.

은행나무는 과기대와 칠암동 주택가 사이에도 있다. 가을이면 은행잎이 떨어져 사방을 노랑으로 뒤덮는다. 어떤 일을 해볼까,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막막하다. 고민거리가 생길 때면 은행나무 옆을 거닐곤 했다. 나는 연락이 되지 않던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내 연락을 피하다가 내 얼굴을 보고서 단념한 듯 순순히 사인을 해주었다. 나는 여전히 스무 살의 당신을 보듯 보는데 그녀는 아니었다. 카드 결제를 취소했다. 은행나무의 은행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주머니들은 포대를 들고 은행을 줍느라 연신 굽신거렸다. 나는 은행잎을 밟으며 은행나무 사이 벤치에 앉았다. 그러고 매점을 바라봤다. 매점 앞에는 학생들이 음료수를 사고 간식을 사 들락거렸다. 스무 살의 그녀도 보였다. 그녀의 꿈은 소박했다. 오빠와 결혼해서 빨리 아이 낳고 싶어요. 빨리 아이 낳아서 아이들이 크면 멀리 해외로 여행 다니고 싶어요.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요. 당근 오빠랑 함께 가야 하지요. 나는 오빠를 사랑하니까요. 오빠가 가장 좋아요. 그녀는 정말 예뻤다. 일시적으로 내 친구들에게 소개했을 때 다들 놀라워했다. 저렇게 예쁜 아이가 저토록 순수하다니. 그리 크지 않은 눈에 쌍꺼풀은 얇았다. 얼굴은 갸름했고 입술은 탐스러웠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을까. 사월로에 벚꽃이 날릴 때부터 이미 이별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를 웃기려고만 했다. 그저 웃는 얼굴을 보는 게 좋았으니까. 그러나 웃는 얼굴을 보고 나면 만족하여 더 웃기려 하지 않았다.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째서 잘 웃지 않는 건지. 간간이 어두운 얼굴로 쥐라기 숲에 앉아서 고목의 그림자를 얼굴에 드리우던 시간을, 나는 세세히 알아보지 않았다.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 철없는 동생은 집을 나가 해외에서 떠돌고 그녀는 홀로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귀담아듣지 않았고 헤아리지 않았다. 단순히 만나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스러운 얼굴만 좇을 뿐, 숨으려고만 하고 밖으로 함께 나가려 하지 않았다. 너무 빨리 찾아온 사랑은 너무 빨리 떠났다. 벚꽃이 짧은 나날 피었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해마다 사월이면 벚꽃 계절이 돌아오지만 그날 피었던 그 꽃이 어디로 갔는지 나는 알아볼 데가 없다.


나는 오래된 벚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학생을 본다. 저 앞에 벤치에서 고뇌하는 청춘을 보며 고뇌를 내려다보는 고목을 올려다본다.


그날도 그렇게 나를 봤겠지, 하며.







쥬라기3.jpg 쥐라기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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