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 크러스트

처음 먹던 그날

by 머피


구구3.jpg 조금씩 떼어먹는다.




손에 쥔 아이스크림.


꼬마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 아빠가 사준 것. 차가운 겨울. 12월이었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 처음 본 아이스크림이다. 아홉 살 즈음. 꼬마는 아빠와 동생과 함께 거리를 걸었다. 아빠 추워요. 동생이 콧물을 줄줄 흘렸다. 걷다가 어느 허름한 상가에 들렀다. 상가에서 아빠가 옛다 하고 사 준 것. 아주 값진 아이스크림. 고급 과자. 그때까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것. 세상에 이런 먹거리가 다 있나? 놀라웠다. 종이박스 뚜껑을 여니 구구스타라는 글귀. 번쩍거렸다. 구구라는 문구마저도 귀했다. 바스락 얇은 포장지 속으로 뭉클 만져지는 촉감. 차갑고도 듬직한 느낌. 크리스마스에 아빠가 주는 선물이란다. 꼬마와 동생은 하나씩 손에 쥐었다. 기뻤다. 추운 겨울이지만 전혀 차갑지 않았다. 동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이 트리처럼 보였다. 와아 신난다. 아빠 고맙습니다. 아빠 잘 먹을게요. 벗겨주세요. 꼬마의 눈에 들어온 구구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벗기자 초코파이 같은 것이 나타났다. 비슷한 듯 달랐다. 물끄러미 보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렸다. 와아 뭐야? 어떻게 먹는 거야? 정말 먹어도 돼요? 작게 한입 베어 물었다. 차가운 감촉. 침이 나왔다. 달콤한 맛. 감탄했다. 기쁨으로 먹었다.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맛있는 걸 먹다니.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선물. 선물을 먹는 순간. 아빠는 흐뭇한 얼굴로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동생은 두 손으로 입술 주위에 초콜릿과 콧물을 묻혀가며 먹었다. 꼬마는 먹다가 금세 하나를 꺼내 아빠에게 내밀었다. 어디 아빠도 한번 먹어볼까? 그제야 아빠도 먹었다. 꼬마는 아껴먹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떼어먹었다. 그냥 팍팍 먹어. 괜찮아. 다음에 또 사줄게. 아빠는 큰 입으로 큼직하게 우적우적 먹었다. 꼬마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을 길게 길게 누리고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옆에 동생과 아빠와 함께...


지금 되돌아보면 아빠는 거짓말쟁이다. 다시는 먹어보지 못했으니까. 아빠가 사주는 구구 아이스크림. 크리스마스 선물. 한 겨울의 마법같은 장면. 차가운 계절 맛보는 차가운 음식. 한없이 따뜻해지는 마음. 달콤한 순간. 뭉클한 맛. 마지막이었다.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그때 동생과 아빠와 함께 먹었던 그날. 신비로운 장면. 환상적인 맛을.


그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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