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을 쌌다

두려움.

by 머피




고모 말씀 잘 들어야 해.

엄마가 말하는데도 꼬마는 계란말이를 먹느라 정신이 없다. 천천히 먹어. 엄마가 꼭 데리러 올게. 따뜻한 연노랑빛 계란말이. 베어 무니 단면에 대파, 당근, 양파, 햄이 조각조각 보인다. 겉면에 두 줄로 뿌려진 케찹. 새콤한 맛 뒤에 따뜻한 감촉. 입가에 케찹이 덕지덕지 묻었다. 엄마가 손으로 묻은 케찹을 닦아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꼬마는 포크로 계란말이를 찍어 입안가득 넣었다. 볼이 불룩해졌다. 얌전히 잘 지내면 다음에 엄마가 또 만들어줄게. 꼬마는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 너무 맛있어, 라며 웃었다.




엄마가 없다.


엄마가 없는 도시. 동네는 이상하게 낯설다. 아홉 살 꼬마. 챙겨주는 이 없는 꼬마에게 온통 두려운 것들 투성이. 엄마는 고모에게 꼬마를 맡기고 떠났다. 무서워. 무엇에 기대 잠드나. 누구를 의지해 학교 가나. 터벅터벅. 힘이 없어서 어떻게 학교에 갔는지 모르겠다. 타박타박. 그냥 가라고 하길래 학교에 갔다. 엄마 없이 학교에 갔다. 엄마의 손길 닿지 않은 어린 학생. 어딜 가나 표 나기 마련. 선생님은 공포의 존재. 내가 엄마를 모셔오라고 했니 안 했니? 왜 말을 안 들어? 뭐 엄마가 없다고? 에휴, 엄마 없는 아이라니, 골치야. 그러면 아빠라도 데려와. 뭐 아빠도 없다고? 너 고아니? 꼬마는 고개를 저었다. 근데 고아가 뭐예요? 어이쿠 내가 못 산다 못살아. 아무튼 내일까지 아빠든 엄마든 함께 오지 않으면 안 돼. 이건 중요한 문제야. 꼬마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너한테 말할 수 없는 거라고. 자아, 종 쳤다. 어서 운동장으로 나가. 교장 선생님 훈시가 곧 있을 거야. 이건 우리 반의 명예가 달렸어요. 여러분, 줄 삐딱하게 서면 안돼요. 거기 학생! 선생님한테 혼날 줄 알아. 너 인마! 뭐해? 어서 나가! 뛰어, 뛰라고! 좋게 말하니 이것들이! 꼬마는 황급히 달려 나갔다. 가야 했다. 안 그러면 또 엄마를 데려오라고 할지도 모르니.


교실이 있는 본관에서 나서면 수돗가가 나오고 수돗가를 지나면 저만치 아래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내리막이 있다. 내리막을 다 내려가는데 꼬마는 멈칫 느꼈다. 오줌 마려워. 돌아가서 화장실에 가려니 운동장에 학생들은 벌써 반 이상 줄을 서고 있다. 분주히 적당한 간격으로 열과 줄 맞춰 선다. 어쩌지? 마려운데. 화장실에 가려면 도로 내리막을 올라야 하고 수돗가를 지나 교실이 있는 본관까지 들어가야 해. 가는 시간, 누는 시간, 다시 내려오는 시간까지 더하면 어쩌면 훈시가 시작될지도 몰라. 그러면 발각되어 눈에 띌 텐데. 눈에 띄면 또 혼나겠지. 혼나면 엄마를 부르라고 할 거야. 엄마가 없다고 하면 아빠라도, 없다고 하면 또 고아라고 하겠지. 꼬마는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대로 열과 줄에 맞춰 설 수밖에. 가야 하는데 움직일 수 없다. 얘들아, 앞으로 나란히. 옆으로 나란히. 한 발 더. 멀리멀리 벌려서라고! 선생님의 쉰 목소리. 그래 그렇게 멈춰. 햇볕이 약한 아침 시간. 서늘한 바람. 훈시가 시작되었다. 꼬마는 두 다리를 모아 바르르 떨었다. 차렷 움직이지 마. 선생님은 자기 반 아이들이 움직일까 봐 맨 앞에서 노려보았다. 누가 움직이나 누가 꿈틀거리나. 꼬마는 다리가 저려 견딜 수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제발 조금만 기다려. 오줌은 급격하게 차 올랐다. 나올 때가 지났다. 이건 참고 안 참고의 단계가 아냐. 나가야 한다. 꼬마의 방광은 소변을 참기에 너무 작고 연약했다. 단단히 여물지 못해 가득 차면 내보내야 했다. 어서 배출하지 않으면 넘친단 말이야. 늘 소변은 뒤늦게 마지막에 가서야 신호를 보내기 일쑤. 어릴수록 그래. 딴생각하다가. 어쩔 수 없어. 꼬마는 두 다리를 꼬아 막았다. 옆에 서 있던 긴 머리 여학생. 같은 반이 아니다. 낯선 얼굴. 예쁘다. 물끄러미 꼬마를 본다. 처음 보는 여학생이 지켜 보네. 어쩐지 부끄러워. 당당히 줄 잘 서 있어야지, 하는데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다. 한계다.




배 아파.


학교 가는데 이미 어느 정도 왔는데 도중에 배가 아파서 걸음을 멈춘다. 찌릿찌릿. 꼬마는 재빨리 그네를 찾아 앉는다. 그네에 앉아 몸을 웅크린다. 늘 그래 왔듯이. 고개 숙여 참는다. 어서 시간이 지나가기를. 그래서 고통이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통증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온다. 아팠다가 괜찮았다가 아프다가 괜찮아진다. 아프면 어쩔 줄을 모른다. 꼬마는 두 손으로 그넷줄을 꽉 부여잡는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하얗게 피가 통하지 않는다. 그러다 잠시 후 고통이 사라지면 힘없이 놓는다. 이제 일어나도 될까. 학교에 가도 될까. 아니야. 괜찮지 않아. 금방 다시 올 거야. 역시 아픔은 찾아온다. 찌릿찌릿 아랫배가 저민다. 칼로 도려내듯 쑤신다. 아, 제발 어떻게 해주세요. 엄마. 꼬마는 부탁하지만 들어주는 이 하나 없다. 못 참겠어요. 꼬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 마룻바닥에 그대로 엎어진다. 얼굴에 식은땀이 잔뜩 배여서. 배 아파, 엄마! 배 아프다고. 아파서 못 일어나겠어. 학교에 가야 하는데. 스르르 잠드는 아침.




엄마는 어디 갔지?


엄마 오줌 마려워. 꼬마는 수없이 엄마를 찾지만 엄마는 응답하지 않는다. 나타나지 않는다. 마침내 소변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반바지를 지나 허벅지를 타고 무릎을 타고, 종아리를 지나고 운동화를 지나더니 운동장 흙먼지에 자그만 웅덩이를 만들었다. 옆에 여학생이 저것 봐, 하면서 소리쳤다. 동갑내기 학생들이 수군거리며 주시했다. 선생님 이것 봐요. 큰일 났어요. 꼬마는 그럼에도 꼿꼿 계속 서 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주르륵. 움직이지 못했다. 선생님이 다가와 말했다. 너 이 녀석. 이 정도로 참으라는 말이 아닌데. 급하면 화장실에 가야지. 비로소 오줌이 멈췄다. 이제 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게 늦어버렸다. 여학생은 입을 가리며 왜 그 정도로 참았던 거야? 하고 물었다. 꼬마는 모르겠다고 대답 대신 고개만 저었다. 뭐가 그리 두려운 거지? 소변이 터지도록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대체 뭐가.




저 왔어요.


학교를 다녀왔다. 아파트 맨 꼭대기 5층. 꼬마는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 대답이 없다. 평소 약속된 장소. 우편함을 뒤져도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다. 별수 없이 대문 앞에 앉았다. 바닥이 차갑다. 어디로 가지? 5층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니 옥상이다. 옥상문은 잠겼다. 옥상문 앞에 꼬마는 박스를 가져와 깔았다. 아무도 올라오지 않겠지? 박스 위에 누우니 조금 안심이 됐다. 콘크리트의 차가운 기운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나마 따뜻했다. 꼬마는 몸을 움츠려 옆으로 누웠다. 가방을 옆구리에 올려두니 두근거리던 가슴도 진정됐다. 고모가 5층에 오면 문소리가 들리겠지. 그때 일어나면 돼. 또 야단맞을까. 열쇠가 없어진 건데. 옥상 앞에서 기다렸다고 하면 괜찮을 거야. 곰곰이 아침 등교할 때 상황을 더듬어본다. 열쇠를 다른 곳에 둔다고 했던가. 생각이 안 나. 꼬마는 그대로 잠들었다. 벌써 어둠이 내렸는데도 꼬마는 일어날줄을 모른다. 한밤중 꼬마를 찾는 소리가 소란스러운데 잘도 잔다. 아무것도 모르고. 배고파요. 일어나면 엄마가 계란말이를 줄거야. 모락모락 김나는 계란말이. 먹고 싶어. 케찹이 뿌려진 계란말이.

엄마 추워요. 무서워. 엄마 들려요? 나 데리러 언제 올 거야? 엄마 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요. 꼬마는 몸을 더욱 움츠린다.


박스가 축축하다.


눈물이 박스를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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