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륨을 높여라

누구의 덩어리인가? (봉곡동 상가주택 공용화장실)

by 머피
국제1.jpg 이제는 모두 다른 가게로 변했다.





누구 것일까?

저 큰 덩어리는 정녕코 어디서 태동한 걸까. 마당 한편에 자리한 수세식 화장실. 남녀공용이다. 작은 거든 큰 거든 볼일을 보려면 그곳으로 가야 한다. 피할 수 없다. 얇디얇은 쇠사슬 줄을 당겨보라. 그러면 수통에 물이 쏟아져 내용물을 거두어 간다. 단지 소변이 급하다고? 소변이라 하여도 화장실로 들어가야지. 이미 너무 큰 것이 자리하고 있다고? 그것이 너무나 커서 도저히 안 보려고 버둥거려보아도 자꾸만 눈에 들어오니까 시선에 부닥치니까 견딜 수가 없다고? 그놈의 크기가 부담스러워서 나오려던 것도 쏙 들아가는 것 같다고? 아아 정말 무섭다고, 무서워 죽겠다고! 꼬마는 소리치면서 눈을 꽉 감고 바지를 내린다. 응가를 하는데 그것이 슬리퍼에 닿을 것만 같다. 찝찝하다. 철사줄을 무수히 당겨 물을 내려보아도 그놈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대체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진주시 봉곡동 국제로터리에서 이현동으로 향하는 세 번째 상가주택. 마당을 중심으로 다방, 미용실, 슈퍼 이렇게 가정집을 낀 상가가 3개 있다. 그리고 주인집 내외와 외동딸, 심희경 누나.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누가 그리 큰 것을 만들어두고 내리지도 않고 일어섰단 말인가. 나오자마자 내리면 내려갔을 테다. 그것이 바닥과 밀착할 여유를 한시도 주지 않고 곧바로 물을 내렸으면 좋았을 텐데. 꼬마가 보길 그것은 언뜻 왕고구마처럼 생겼다. 길쭉한데 양 끄트머리가 가늘고 가운데는 두껍다. 색은 시커멓다. 오래도록 뱃속에서 양산된 것이 틀림없다. 몇 날 며칠 계속 숙성되고 숙성되어 저렇게 늙어버린 채로 나왔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십중팔구 변비가 심한 여성의 것이라고 했다. 꼬마가 가늠하길, 슈퍼 노총각이 유력하다. 노총각은 여자처럼 엉덩이가 크다. 머리도 늘 여자 같은 파마머리다. 그리고 목소리가 음울하다. 그러니 여자처럼 변비에 걸리지. 엄마가 말하길 무식한 인간이라고 했다. 무식하니까 얼마든 그럴 수 있으리라. 짐작하니 아저씨가 미웠다. 물을 내려도 내려가지 않으면 슬그머니 밀어서라도 흘러내려야 도리 아니세요? 간혹 덩어리가 변기 바닥이랑 너무 달라붙으면 어쩔 수 없는 방법이지만요. 매개체에 조금 묻더라도 밀어내야 했어요. 어쨌거나 타인에게 보이지 말아야 해요. 초등학생인 저도 아는데 나이 많은 아저씨가 모르다니. 손가락 끝으로 밀든, 발로 밀든, 빗자루로 밀든, 나무 작대기로 밀든 뭐라도 갖다 대 밀어내고픈 욕구가 들지 않던가요. 그것이 교양이잖아요. 왜 자신의 것을 남에게 보인단 말인가요. 부끄럽지도 않나요. 어쩌면 복수인가? 꼬마는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노총각 아저씨의 음흉한 표정을 떠올렸다. 아저씨는 사십 대 초반. 80년대 당시 사십 초반의 남자는 지금으로 환산하면 예컨대 오십 후반쯤 되겠다. 이를테면 너무 늦어서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그 나이 되도록 뭐했나, 지탄이 쏟아지는 나이. 홀아비라도 혼자서는 안 살겠다는 말을 듣는 시대. 그래서 인생의 반항기가 다시금 재생되는 시기. 내가 뭐 어쨌다고? 도대체 날 그리 보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이냐. 꼬마는 노총각과 마주칠 때마다 슬금슬금 피했다. 노총각이 범인이다. 미용실 꼬마는 자신의 직감을 아버지에게 전했다.




다방에 딸린 방에는 이모 두 명이 살았다.

그녀들은 미용실에 밤낮 드라이하러 드나들기에 진짜 이모라 여길 정도로 친했다. 이모들은 담배를 피웠다. 미용실에서도 다방에서도 마당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그중 어린 이모는 스무 살 남짓 큰 키에 머리가 길었다. 늘 머리띠를 해 말끔히 얼굴을 드러내 다녔다. 이름은 하나였다. 하나 이모는 어딘가 청초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서구적 미인이었다. 머리띠를 한 하나 이모는 늘 맨 얼굴이었다. 맨 얼굴로도 충분히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거기에 큰 키, 기다란 손가락이 유별났다.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워 물때만 눈빛이 야릇하게 변해서는, 밤만 되면 술에 취해 꼬마의 어린 동생을 안아주었다. 동생은 아이 술냄새, 하면서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다소 통통한 서른 즈음의 이모는 짙은 화장에 웨이브 진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렸다.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특히 이모는 늘 껌을 씹었는데, 질겅질겅 껌을 씹다가 껌종이에 껌을 싸놓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성냥에서 성냥을 꺼내 칙! 한방에 그어 붙여 뻐끔뻐끔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다 피고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다시 껌종이를 펴 껌을 떼내서 입에 넣었다. 질겅질겅 씹는 입모양을 꼬마가 물끄러미 보노라면, 왜? 문제 있어? 하고 앙칼진,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을 연기로 후, 내뿜었다. 어떨 때는 껌 씹는 도중에 담배를 피웠다. 껌종이가 없기 때문이다. 질겅질겅 쫙쫙! 습! 휴우! 이모의 입은 연신 바빴다. 껌 씹고 연기 빨고 내보내고 쫙 소리 내고. 미용실 의자에 허리를 쭉 빼 비스듬히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하얀 허벅지가 마치 고구마처럼 굵었다. 그리고는 담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연기를 내뿜는 중 위에서 꼬마를 거만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자기가 봐놓고는 되레 뭘 봐? 하고 물었다. 꼬마는 통통한 이모가 종종 무서웠지만 짙은 화장 속 이모의 헤비 스모키 눈이 좋았다. 까만색 아이라인이 두터워 원래의 눈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어쩐지 외로워 보였기 때문일까. 다방의 대부분 손님들은 하나 이모를 좋아했다. 미용실 손님들도 하나 이모를 편애했다. 꼬마의 어린 동생마저도 하나 이모에게만 안겼다. 통통한 이모는 혼자였고 외로웠다. 꼬마야, 껌 줄까? 이모는 꼬마에게 아카시아 껌을 주곤 했다. 꼬마는 이모를 따라 삐딱한 자세로 껌을 씹었다. 난 껌 씹는 꼬마다. 이모는 슈퍼 노총각에 대해 왕왕 물었다. 이모 옆에서 껌 씹는 맛이란 담배 연기와도 같았다. 금방 단물이 빠져버리지만. 아직 단물이 빠지지 않은 것처럼 처음 그대로. 꼬마는 노총각 아저씨가 마녀 같다고 대답했다.


마당을 공유하는 사이.

한 집에서 사는 식구 같은 관계. 같은 마당을 쓰고 같은 화장실을 공유한다. 그럼에도 꼬마는 통통한 이모의 맨얼굴을 본 적이 없다. 담배는 눈빛을 변하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꼬마가 볼 때 이모들은 범인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처녀의 몸으로 자신의 것을 그대로 두고서 화장실을 벗어났을 리가 없다. 꼬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렴 당연하지. 근데 왜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까.


꺄악! 맨 처음 그것을 발견한 이는 희경 누나였다. 중학생 누나는 비명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학교에 가기 위해 아침이면 꼭 화장실에 가야 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께름칙하여 도저히 일을 볼 수가 없었다. 질끈 눈 감고 도전할까 하다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어떡해. 무서워. 꼬마는 누나의 울음에 그것을 보게 되었는데 물리적으로 누나의 몸에서 나올 게 아니었다. 그리고 꼬마의 몸으로 어떻게 처리할 수도 없었다. 거기다 누나의 부모님, 즉 주인 내외도 용의자 선상에서 뺐다. 내외는 늘 뚝딱거리는 입장이다. 뭐든 고장 나거나 막히거나 잘 안 돌아가는 것을 말하면 내외가 뛰쳐나와 고치는 식이다. 문제를 만드는 이가 아니라 해결하는 이였다. 그렇게 모두가 화장실의 그것을 보며 혀를 차면서 시선은 모두 슈퍼 쪽으로 향했다. 노총각이 범인이라고 생각한 건 꼬마뿐만이 아니었다.




싸움 났다!

친구가 꼬마에게 저길 보라고 했다. 슈퍼 앞 노상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꼬마가 보니 한쪽은 아버지였다. 그리고 상대방은 노총각이다. 아버지와 노총각이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다가 마침내 멱살을 잡고 서로 간의 셔츠 단추를 뜯었다. "너 이 자식! 일부러 안 내렸지!" 주먹질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고성에 밀고 당기는 틈에 피가 튀었다. 꼬마는 놀라 아버지 뒤에서 지켜보다가 싸움이 끝나자마자 곧장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가 마당에서 씻는데 노총각이 슈퍼에서 나오려다가 어물쩍 나오지도 못하고 기다린다. 살짝 벌어진 틈으로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피는 아버지의 것이 아니었다. 노총각은 수돗가에서 상처를 씻었다. 노총각의 가슴팍에 긁힌 자국이 났다. 그날 밤 자정이 지난 시각. 슈퍼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노총각이 전축 볼륨을 최대로 올려서 틀었다. 오래된 팝송이었다. 웅웅 거리는 에코 소리가 상가주택 전체를 휩쓸었다. 심지어 국제로터리 인근 줄지은 상가들에도 들렸다. 봉곡동 전체가 들썩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야! 너 그거 끄지 못해? 노총각은 문을 잠갔다. 잠 좀 자자! 사람들이 소리쳤지만 대답 대신 음악만 나왔다. 음악은 꼬마의 방 벽을 타고 흘렀다. 드럼 소리가 날 때마다 벽이 지잉 지잉 울렸다. 아저씨는 절규했다. 음악이 나오는 중간 그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순찰차가 왔다. 경찰이 오자 소리가 멈췄다. 그때 아저씨는 뭐라고 소리쳤을까.




꼬마는 동생의 울음에 화들짝 깼다.

눈을 뜨니 사방이 어둡다. 저녁이다. 어느새 잠들었나 보다. 엄마는? 꼬마가 묻자 동생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는 엄마~ 부르면서 운다. 엄마가 어디 갔을까. 저녁이면 아버지는 가게 때문에 으레 없는 줄을 아는데 엄마는 어디로 갔나. 꼬마는 불을 켰다. 형광등 빛이 방안 가득 퍼지는데 큰 방에 어린 형제 둘만 덩그러니 있자니 문득 배고픔이 밀려왔다. 형아 배고파. 꼬마는 냉장고를 열었다. 부엌을 뒤적이니 라면이 보였다. 꼬마는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이윽고 물이 끓자 라면을 넣었다. 다시 냄비 뚜껑을 닫고, 이제 다 됐다 좀만 더 끓이면 돼, 하는데 동생이 티브이를 틀었다. 티브이에서 이상한 나라의 폴이 나왔다. 꼬마와 동생은 폴을 보느라 라면이 끓는 줄도 몰랐다. 라면은 익고 익다가 저를 잊은 형제를 애타게 불렀다. 내가 이제 스러져 간다고, 메말라 간다고 소리쳐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폴이 이상한 나라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지 형제는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다른 세계에서 헤매다 겨우겨우 작은 문을 통과해 현세로 돌아온 폴. 비로소 형제가 아 맞다, 정신 차렸을 때 라면은 벌써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냄비에 라면 가락이 다닥다닥 눌어붙었다. 젓가락으로 애써 떼 보려 하지만 이미 시커멓게 변했다. 순간 벌컥 방문이 열렸다. 니들 이게 무슨 냄새냐? 슈퍼 노총각이었다. 꼬마는 말했다. "아저씨, 우리 엄마 어디 갔어요?" 노총각은 모른다고 했다. 것보다 이게 무슨 냄새냐고? 뭘 태웠냐고 물었다. 꼬마는 라면을 끓이다가 깜빡했다고 했다. 노총각은 형제를 슈퍼로 데리고 갔다. 때는 11월, 찬바람이 부는 겨울날, 형제는 호빵 찜기 앞에서 손을 호호 불었다. "하나 먹어라." 노총각이 호빵 하나를 꺼내 주었다. 꼬마는 후후 불면서 한 움큼 떼어 동생에게 주었다. 동생은 볼에 단팥을 묻히면서 허겁지겁 먹었다. "이거 마시면서 먹어, 체할라." 노총각은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서 컵에 부어주었다. 꼬마의 입가에도 우유 자국이 하얗게 묻어났다. 호빵이 이렇게 달콤했나? 우유와 함께 먹는 호빵이 너무나 맛있었다. 어느새 꼬마의 눈에 노총각은 달리 보였다. 형제는 슈퍼 입구에 서서 엄마가 오나 안 오나 살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꼬마는 슬며시 뒤돌아보았다. 노총각은 냄비를 박박 문질렀다. 꼬마가 태운 냄비, 라면이 눌어붙은 것을 수세미로 떼어냈다. 노총각은 냄비를 씻으면서 불쑥 이모 이야기를 꺼냈다. 이모가 좋아하는 게 뭐냐는 둥 뜬금 하나 이모에 대해 물었다.


그래, 그건 아저씨의 냄새가 아니었어. 꼬마는 돌연 통통한 이모를 떠올렸다. 덩어리에서 은은히 피어나던 아카시아 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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